'국익 우선' 자주‧실용‧포용 외교 결실
미-러 회담 주선…'얄타 2.0' 얘기도
사우디, 다극화 흐름 속에 '균형자'
그린블라트 "중립 지대 지위 다져"
윤석열은 자멸 vs 빈 살만은 비상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 러시아 간 대화를 촉진함으로써 논쟁적 이슈들을 건설적으로 다룰 중립 지대로서 그 지위를 다질 수 있었다. 초대형 프로젝트 (네옴) 시티 건설도 대단한 일이지만 안정적인 국제질서의 구축을 돕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성취다."
미·러 회담 주선…'얄타 2.0' 관측도
그린블라트 "중립 지대 지위 다져"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중동특사를 지냈던 제이슨 그린블라트가 지난 18일 수도 리야드에서 미-러 고위급 회담이 사우디의 주선으로 전격 개최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트럼프-푸틴 리야드 정상회담은 대단한 일'이란 21일 자 '아랍뉴스' 기고를 통해서다.
그린블라트는 "협상이 리야드에서 열린 것은 현실적이고 매우 상징적"이라면서 국제무대에서 미국을 포함해 세계가 신뢰하는 협력자, 특히 중재자로서 사우디의 영향력 강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간 치중했던 투자, 관광, 전략적 협력의 유치는 물론, '외교와 국제문제 센터'로의 도약도 염두에 두고 안정적 국제질서 구축에 더 주도적으로 나섰다는 것이다.
이번 미-러 회담은 3년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과 적대적인 양자 관계 개선, 그리고 국제질서 재편 문제까지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세기의 협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제 외교가에선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를 재편한 '얄타협상 2.0'이란 말도 나온다.
올 다보스 포럼 '사우디 부상' 조명
"사우디, 절묘한 균형잡기 보여줘"
중동, 특히 사우디의 부상과 탈바꿈 작업은 1월 20일 개막된 세계경제포럼(WEF)의 올해 연례 회의(일명 '다보스 포럼')에서도 조명됐다. WEF는 24일 홈페이지에 올린 '사우디의 균형잡기'란 글에서 이렇게 전하고 "사우디가 참여한 우크라 관련 협상은 복잡한 새로운 지정학적 현실에서 사우디가 견지해 나가야 할 절묘한 균형잡기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WEF에 따르면, 세계는 지금 경제적 불확실성, 지정학적 긴장과 싸우느라 여념이 없지만, 사우디는 외교적, 경제적 균형잡기를 통해 '핵심 플레이어'로 떠오르는 중이다. 이를 위한 사우디 왕국의 전략은 △ 전통적 석유 의존 축소와 경제 다각화 △ 경쟁하는 강대국들 사이의 가교로 자리매김 △ 극히 중요한 에너지 공급자 역할 지속 등 세 갈래로 되어 있다.
그 탈바꿈의 중심에 경제 다각화를 위한 야심 찬 '비전 2030'이란 청사진이 있다. WEF는 사우디 국내총생산(GDP)의 52%가 비석유 부문이고 2026년까지 6.2% 성장이 예상된다고 소개한 뒤 "다보스에서 공유된 통계를 보면 유망한 성공의 그림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우디는 "전통적으로 탄화수소 지배적인 경제로부터 역사적 변화를 보여준다"라거나 "경제 다각화는 단지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이제 현실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WEF "미·러 회담 주선 사우디,
세계적 외교 중개자로 떠올라"
WEF가 보기에, 사우디의 외교적 균형잡기의 가장 놀랄만한 측면은 강대국들 사이의 '가교'로 자리매김이다. 강대국들의 역학 관계가 날로 복잡해지고 있지만, 사우디는 전략적으로 '중간'에 자리를 잡고 모든 당사자와 파트너십을 강력하게 유지하는 '균형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전략적 자리 잡기는 숫자로 뒷받침된다. 사우디의 대미 투자액은 7700억 달러(1127조 원)이고, 1조 달러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사우디가 미국 등 전통적 서방 진영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모든 주요 강대국과 생산적 관계를 유지하길 바란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게 WEF의 시각이다.
WEF는 "이런 외교적 스탠스는 실질적 결과를 낳았다. 사우디가 우크라 전쟁 종식과 관련해 미-러 고위급 회담을 주선함으로써 세계적 외교 중개자로서 사우디의 떠오르는 역할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매킨지앤컴퍼니의 '평화안보지수'가 냉전 이후 최악이라고 소개한 뒤 "잠재적 평화중개자로서 사우디의 부상은 더욱더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WEF는 "이런 글로벌 맞바람 속에서 탈바꿈을 견지하는 동시에 외교적 촉진자로 나아가는 능력은 놀랄만하다"라고 논평했다.
'국익 우선' 자주‧실용 외교 결실
사우디, 다극화 흐름 속 '균형자'
퍼져가는 세계질서의 다극화 흐름 속에서 '균형자'로서 이런 사우디의 존재감은 그냥 주어진 게 아니다. 실세 총리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지난 몇 년 자못 일관되게 추진해왔던 국익 우선의 자주‧실용 외교, 화해·평화를 향한 균형 외교가 열매를 맺는 중이라고 봐야 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 빈 살만은 '민주주의와 인권'으로 포장한 미국의 이분법적, 대결적 진영 외교를 거부하고 화해·평화의 흐름을 주도해왔다. 빈 살만은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로부터 대중국 봉쇄와 줄서기 요구, 그리고 대러시아 제재 동참 압박을 받았지만, 그것들을 물리친 채 국익 우선을 내걸고 자주‧실용 외교의 영역을 구축해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2018년 10월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암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
사우디는 2022년 12월 시진핑 국가주석을 국빈으로 초청해 극진하게 대접하고 대중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란 최고 단계로 격상하고 중국과 '밀월'에 들어갔다. 당시 서구 언론은 사우디가 '일부일처제'에서 '일부다처제'로 바꿨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이듬해인 2023년 3월에는 중국의 중재로 베이징에서 오랜 적대관계를 이어온 이란과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슬람 수니파의 맹주와 시아파 수장이 화해·협력을 다짐한 것이다. 그해 11월 이란 대통령이 사우디를 찾았고, 심지어 이란과의 군사협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을 정도다. 사우디-이란 발 화해 기류가 중동과 아랍 전역으로 빠르게 퍼졌음은 물론이다.
안하무인 트럼프, 빈 살만 '예우'
윤석열은 자멸 vs 빈 살만 비상
2023년 4월에 카타르와 바레인, 그리고 시리아와 튀니지가 각각 관계 정상화를 발표했고, 사우디와 시리아가 단교 12년 만에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예멘 내전도 종식되고 이라크 상황도 비교적 안정을 찾았다. 또한 사우디는 '두 국가 해법'을 통한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전제로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의 수교 논의에도 나섰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이 역내 불안정의 뇌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통치해온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중단됐다. 그 후 광기 어린 이스라엘군의 살육 작전으로 지난 1월 19일 하마스와 휴전하기까지 15개월간 팔 주민 중 최소 4만6707명이 학살됐다.
빈 살만의 외교적 성취를 보여준 사례도 또 있다. 바로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된 것이다. 2023년 11월 28일 파리에서 진행된 투표에서 사우디 리야드는 119표를 얻어 대한민국 부산(29표)을 상대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취임 직후부터 미국 진영에 가담해 '가치 외교'를 내걸고 배척과 대결을 일삼아온 윤석열 대통령과 화해와 협력을 견지해온 빈 살만이 극적으로 대비되는 순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백악관 복귀 직후 외국 정상급 중에서 제일 먼저 빈 살만과 통화한 데 이어, 사우디를 첫 방문지로 선택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1기 행정부 때도 사우디를 첫 방문국으로 선택한 바 있다. 빈 살만은 안하무인인 트럼프도 '예우'하는 인물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우디의 전략적 균형잡기 스탠스,
새 국제질서 형성에 상당한 영향"
암만에서 활동하는 언론인 오사마 알-샤리프는 '글로벌 외교 중개자로서 사우디의 부상'이란 18일 자 아랍뉴스 기고를 통해 '균형잡기'로 압축되는 이런 사우디의 세심한 전략적 스탠스가 새 국제질서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덕택에 중국, 인도, 러시아는 물론 브릭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으로 정치적, 상업적 동맹관계를 확장하면서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전통적 서방과의 동맹관계는 희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사우디 외교 정책에 대해 워싱턴 소재 중동연구소의 피라스 마크사드 선임 연구원은 지난달 16일 자 CNN에 출연해 미국과의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고정한 채 "상황에 따라 유연성과 실용주의를 고려하면서 지역과 세계 모두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추구해왔다"고 말했다.
사우디 외교관의 자화자찬도 들어볼 만하다. 주파키스탄 사우디 대사관 공보 담당관인 나이프 알로타이비는 "일부에선 사우디의 정치적 무게, 강력한 경제, 영향력 큰 재정적 위상 덕에 강하고 널리 인정받는 중재자가 됐다고 본다"며 "그러나 다양한 이슈 대처 과정에서 사우디가 보여준 중립성과 공정성, 그리고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능력 때문에 세계가 리야드를 신뢰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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