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알루미늄 내달 12일부터 25% 관세

주력 수출품 반도체·자동차도 가시권

한국 북미 수출 급증해 늘어 타격 클 듯

피해 최소화하려면 대미 통상 외교 시급

한국은 내란 사태 길어지며 속수무책

호주는 협상 통해 관세 면제 받을 수도

연초부터 수출 전선에 비상등이 커졌다. 1월에 이어 2월 들어서도 수출 실적이 뒷걸음질하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이 연이어 투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인데도 한국 정부의 대미 통상 외교 시계는 사실상 멈췄다. 우리 기업들의 피해를 줄이려면 트럼프 행정부와 활발하게 협상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12·3 내란 사태로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이 다 돼 가는데도 통화하지 못했다. 미국 쪽에서 곧 직위에서 물러날 최 대행과 서둘러 통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조태열 외교장관도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행정부와 첫 외교 장관회담을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주요국 정상이 트럼프 대통령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관세 폭탄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대미 외교를 활발하게 펼치는 것과 대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관세 25% 부과를 공식 발표한 11일 경기도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다. 2025.2.11.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관세 25% 부과를 공식 발표한 11일 경기도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다. 2025.2.11. 연합뉴스

트럼프 관세 폭탄에 한국 철강업체 비상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25%의 관세를 일괄적으로 부과하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어떤 국가도 예외나 면제가 없다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한국산 등에 대해서는 3월 12일부터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미국 백악관은 11일 밝혔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한국 철강 기업은 비상등이 켜졌다. 이들 기업은 현재 미국에 무관세로 철강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그런데 25%의 관세가 붙으면 가격이 올라 경쟁력이 떨어진다. 수요도 급감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인 2018년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를 철강에 적용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세계 철강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다만 자유무역협정(FTA) 대상국인 한국은 협상을 거쳐 263만 톤까지 무관세 쿼터를 적용받았다. 그런데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쿼터제를 없애고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세계 경기침체와 저가의 중국산 제품이 쏟아지면서 지금도 철강 시장은 공급 과잉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일괄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 기업들은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게 뻔하다. 미국으로 수출되던 저가의 중국 철강 제품이 유럽과 동남아 등 세계 시장으로 확산할 것이라는 사실도 우려된다. 중국산 제품과 극심한 가격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출 감소뿐 아니라 수익성도 나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의 대미 철강과 알루미늄 수출량 추이. 연합뉴스
한국의 대미 철강과 알루미늄 수출량 추이. 연합뉴스

철강 관세 부과되면 자동차와 가전업체도 피해

더 큰 문제는 철강과 알루미늄을 많이 사용하는 자동차와 가전업체로 피해가 확산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대차 등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미국 공장에서 완성차를 만들 때 한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을 수입한다. 자동차의 주요 원자재는 강판과 알루미늄이다. 높은 관세가 붙은 상태로 미국으로 들어오면 자동차 생산원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그렇다고 관세를 반영해 가격을 곧바로 올릴 수도 없다. 완성차 시장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생산원가는 올라가는데 제품 가격을 올리지 못하면 결과는 뻔하다. 수익성이 급격히 나빠진다. 무역전쟁에 대비해 미국에 완성차 공장을 확대한 게 오히려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철강 제품을 많이 쓰는 자동차 부품 업체로 마찬가지다. 냉장고와 세탁기 등을 미국에서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자동차 업계만큼은 아니지만 철강 제품에 관세가 붙으면 원가 상승의 압박을 받는다.

 

대미 철강 수출 상위국. 연합뉴스
대미 철강 수출 상위국. 연합뉴스

대미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자동차도 사정권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을 넘어 반도체와 자동차 등 다른 품목으로 관세 전쟁이 확대될 가능성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과 알루미늄뿐 아니라 반도체와 자동차, 의약품 등에 대한 관세 부과도 검토하고 있다. 만약 반도체와 자동차가 포함되면 한국은 철강 제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타격을 받는다. 대미 수출품 중 반도체와 자동차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는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지난해 3분기 보고서를 제출하고 북미 지역 매출을 별도 공시한 100개 사를 분석한 자료를 11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지난해 1~3분기 북미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9.5% 증가한 313조 5231억 원에 달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대미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현대차와 기아 등 한국 자동차 기업들의 북미 지역 매출도 눈에 띄게 늘었다.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에 힘입어 대미 무역수지 흑자액도 매년 사상 최대치를 기록 중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관세 폭탄을 떨어뜨리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이어 퍼붓는 관세 폭탄으로 수출 전선에는 화약 연기가 자욱하다. 그런데 연초부터 수출 실적에 불길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1월에 이어 2월 들어서도 수출이 뒷걸음질하고 있는 것이다. 11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수출액은 149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8% 증가했다. 그러나 조업일수를 고려한 하루 평균 수출액은 21억 3000만 달러로 6.4% 감소했다. 1월에는 하루 평균 수출액은 늘었으나 설 연휴로 인한 조업일수 감소 영향으로 전체 수출 실적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3% 감소했다. 수출은 작년 12월까지 전년 동월 대비 15개월 연속 증가했는데 이런 흐름이 끊긴 것이다.

 

500대 기업 품목별 북미 매출. 연합뉴스
500대 기업 품목별 북미 매출. 연합뉴스

한국은 속수무책, 호주는 협상 통해 관세 면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은 이제 서막이 올랐을 뿐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이 한국을 포함해 주요국에 관세 폭탄을 떨어뜨리고 각국도 여기에 대응해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등 관세 전쟁이 확전하면 한국은 수출이 최대 448억 달러 감소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것이지만 트럼프의 관세 전쟁이 한국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만은 분명하다.

대미 통상 외교를 통해 우리 수출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시점인데 대통령 대행 체제인 한국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1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호주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면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통화하며 미국이 호주를 상대로 많은 무역수지 흑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런 성과를 이뤘다고 한다. 협상을 통해 관세 폭탄의 피해를 방어한 것이다. 내란 사태로 아무 것도 못하는 우리로서는 이런 호주가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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