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부터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대미 철강 수출국 4위 한국 타격 커
미국 진출 기업들 원자재 비용 증가
12·3 내란 사태로 국정 공백인 한국
예고된 재앙인데 속수무책으로 당해
내달 예고된 자동차 관세가 더 걱정
한국산 철강 제품에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투하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에 예고한 대로 미국으로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25% 관세를 미국 동부 시간 기준 12일 오전 0시 1분(한국시간 12일 오후 1시1분)부터 부과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한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의 주요 수입국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철강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3%에 달한다. 이 물량에 25%의 고율 관세가 부과됨에 따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며 대미 수출은 급감할 처지에 놓였다.
한국, 독일과 일본보다 대미 철강 수출 많아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한 때부터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한국 철강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관세 면제를 받기 위해 다방면으로 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을 통해 우리 철강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이 시급했다. 그러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의 한국 정부는 예고된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12·3 내란 사태가 결국 기업 피해로 이어진 셈이다.
미국 상무부 산하 국제무역청(ITA)에 따르면 지난해 대미 철강 수출국 1위는 캐나다였다. 수출액은 71억 4000만 달러, 비중은 23%에 달했다. 멕시코(35억 달러·11%)와 브라질(29억 9000만 달러·9%)이 그 뒤를 이었다. 한국은 이들 국가에 이어 4위(29억 달러·9%)를 차지했다. 독일(19억 달러·6%)과 일본(17억 4000만 달러·5%)보다 대미 철강 수출이 많았다.
미국의 관세 부과로 한국산 철강 경쟁력 추락
관세 적용 대상은 철강과 알루미늄으로 만든 250여개 파생 제품까지 포함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에 관세를 부과하며 각국과 합의에 따라 적용해온 예외와 관세 면제는 모두 없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2018년에도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이때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라는 사실을 내세워 수출 물량을 줄이는 대신 연간 263만 톤에 대해 면세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존에 적용받았던 면세 할당이 폐기됐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25% 관세를 적용하는 것이라 한국산 철강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면세 할당이 없어져 수출 물량을 더 늘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희망 사항일 뿐이다. 25%의 관세가 붙은 철강 제품은 미국 내에서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 게 뻔하다.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철강 제품이 수입품을 대체할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이 기대하는 효과이기도 하다.
미국 진출 자동차와 부품업체도 타격받아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는 자동차와 부품, 가전 등 거의 전 업종으로 그 피해가 확산할 것이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미국에 현지 공장을 둔 현대차와 기아의 원자재 조달 비용은 상승할 게 뻔하다. 현대차·기아는 미국 내 자동차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현지 공장 가동률을 최고로 높이면 연간 12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다. 1대당 강판 1톤 정도가 사용된다고 할 때 연간 120만 톤가량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원자재 비용 절감을 위해 미국산 철강 제품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정과 품질 측면에서 단기간에 원자재를 바뀌기는 쉽지 않다.
완성차 업체만 부담이 늘어나는 게 아니다. 자동차 부품업체 중에도 철강과 알루미늄을 원자재로 사용하는 곳이 적지 않다. 현대차·기아와 미국에 동반 진출한 부품업체도 비용 부담이 커질 게 분명하다.
중소기업인 부품업체들은 완성차 업체에 비해 관세 폭탄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 부품업체는 영업이익률이 매우 낮다. 갑자기 비용이 증가하면 경영난에 빠질 수 있다. 자동차와 부품 외에도 가전 등 철강 제품을 원자재로 쓰는 기업은 모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에 현지 공장을 두고 있다. 이들 역시 트럼프 발 관세 폭탄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은 지지부진
현실이 이런데도 한국 정부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국정을 책임질 대통령 자리가 공백인 상태라 트럼프 행정부는 진지한 협상에 나서지 않고 있다.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 부처 장관과 실무자들이 미국을 방문해 협의체를 구성했으나 속수무책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한국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통화해 매듭을 풀었을 것이다. 캐나다와 멕시코 등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국가들은 보복관세 같은 채찍과 미국산 제품 수입 확대 등 당근을 내밀며 협상에 임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수출 기업에 대한 지원 확대 등 변죽만 울리는 정책만 내놓고 있다.
가장 시급한 일은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통상 외교를 전개하며 한국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협상 카드를 활용해야 하는데 대통령 대행 체제이다 보니 과감하게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국정 공백이 길어지면 미국이 요구하는 것만 들어주고 우리는 얻는 게 없는 쪽으로 협상이 진행될 수 있다.
정부는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조치가 시행된 첫날인 12일 경제단체와 업계, 학계가 참여한 민관합동 회의를 열었으나 이렇다 할 대응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기업 피해와 불이익을 최소화하겠다는 원칙론만 반복했을 뿐이다. 문제는 다음 달 예고된 자동차 관세다. 철강 관세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핵폭탄급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내란 사태를 종결하는 것만이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한국 경제에 몰고 올 충격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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