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문연 임헌영 소장, 현대사 꿰뚫는 필화 정리

'자유부인' 등 미군정-자유당 정권 필화 23개 장면

"이승만 존경한다면 이 책 읽고 다시 생각해주길"

"8·15 이후 가장 필화가 많은 시대가 윤 정권"

문학 등에 대한 필화의 역사가 곧 한국 현대사

신간 <필화의 문학 사회사-한국 현대 필화사 1>, 임헌영, 소명출판

필화란 '붓으로 인해 일어난 재앙'을 의미한다. 문학, 노래, 기사 등이 권력에 의해 검열을 당하고, 권력은 이들을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다'고 발표한 뒤 제재한다. 검열을 받은 문학 등은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한하운 시인의 <데모>, 정비석 작가의 <자유부인>, 남인수 가수, 계수남 가수 등이 우리 곁에 있었지만, 대중은 이들이 필화를 당했는지 알 수 없다.

<자유부인>은 1954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자 14만 부나 팔려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책 내용 가운데 '… 도장 하나 찍어 주고도 수천만 금의 뇌물을 예사로 받아먹는 세상'이라는 구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승만 정권에서 작가는 시경, 치안국, 특무부대 등 기관에 취조를 받고 연재 중단 압력까지 받았다. 해당 대목 때문에 신문에 '표현이 조홀(粗忽)했던 관계로 전체 공무원들의 위신을 손상케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해명까지 했다. 한 명의 문인이 그 시대를 관통하는 글을 써 '윗분의 심기를 거슬렸다'는 이유에서였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인 임헌영 작가의 신간 <필화의 문학 사회사-한국 현대 필화사 1>은 책머리에서 "필화가 주장한 대로 세상이 따랐다면 인류는 평화를 구가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지상의 모든 권력, 인간이 만든 제도와 권위와 믿음의 우상은 언제나 정의를 탄압하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한 인류사의 응전과 항쟁, 도전을 생각해본다면, 필화는 필연적이다. 그렇기에 "먹으로 쓴 거짓말이 피로 쓴 사실을 감출 수 없다"는 루쉰의 명언처럼, 필화는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 같으면서도, 사라질 수 없는 운명이다.

임 작가가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현재 역시 필화사로 엮인다. 그는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출간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 현대사를 움직인 것은 필화"라며 "지금도 우리는 필화를 당하고 있다"고 정의했다. 최근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를 예로 들면서 "한강 작가의 저서가 금서인 적이 있다"며 "국내에선 한강 작가 반대 운동도 있었다. 이것 자체가 필화"라고 했다. 고등학생이 그린 '윤석열차'와 <MBC>가 보도한 '바이든-날리면' 등도 이 시대의 필화 한 장면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한국은 그야말로 '필화의 나라'이자 저술의 보고다. 임 작가는 "8·15 이후 가장 필화가 많은 시대가 지금 윤석열 정권"이라며 "만약 '필화 올림픽'이 있으면 우리나라가 (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했다. 그는 "지금 시대에 필화 주인공은 윤석열 자신"이라며 "자기가 한 말을 자신이 부인하고 있다. 스스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라고 정의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윤석열'이라는 주인공이 만들어낸 필화는 이어지고 있다.

작가가 생각하는 올바른 사회가 되는 길은 필화 수난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복권되어 선각자로 평가받는 것이다. 이 평가가 빠르면 빠를수록 그 사회는 선진화되고, 늦으면 늦을수록 낙후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작가는 시대의 역행을 하루라도 빨리 막고자 필화 희생자들의 복권을 위해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작가의 바람대로 책은 미 군정기와 이승만 정권기를 다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역설적으로 지난 시대를 통해 우리 시대의 역행을 자각할 수 있다. 

 

2일 오후 11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 현대 필화사-필화의 문학 사회사1' 출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2024.12.02. 소명출판사
2일 오후 11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 현대 필화사-필화의 문학 사회사1' 출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2024.12.02. 소명출판사

이승만 집권 초기부터 후기까지 필화 사례 23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지성과 사상의 조감도'는 1945년 광복절을 기점에 발생한 현장에서 지식인들이 겪은 비극, 두 번째 '민족 운동사의 독도법'은 민주화와 통일을 다뤘다가 필화를 당한 일을 다뤘다. 세 번째 '정치 사회사 전반의 거울'은 조봉암 함석헌 등 이승만 정권 후반기의 필화를 다뤘다. 필화 피해자가 겪었던 고난과는 대조적으로 그 탄압 세력들이 얼마나 비이성적이며 반역사적이며 비민주적이었던가도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에서 벌어진 필화가 워낙 많아 이 책을 3권으로 나눠서 출판할 예정이다. 1권 미 군정과 이승만에 이어 2권은 장면과 박정희, 3권은 그 이후(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이다. 2권과 3권은 내년에 출판될 예정이다.

작가는 독자들을 향해 "이승만 동상을 세운다고 해서 빨리 책을 썼다"며 "이승만을 존경하는 국민이 많은데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해주길 바란다. 필화사를 보면 한국 현대사를 근본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그는 "격랑을 하나하나 다루면서 얼마나 많은 훌륭한 인물들이 참담하게 희생당하거나 고난의 생을 보냈던가를 상기하면 어떤 통곡으로도 그 원혼을 달랠 길이 없을 것"이라며 "이 모든 희생자들 앞에 작은 기념비를 세우는 심정으로 이 책을 바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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