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무회의에서 집회및시위에관한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되었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주요 도로에서 교통체증의 우려가 있을 시 관할경찰서의 판단에 따라 집회와 시위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주요 도로’에 대통령실이 위치한 이태원로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간 해당 법에 따라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대통령 관저’에 용산에 위치한 대통령 집무실이 포섭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견해를 빠져나가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이와 함께 경찰은 심야시간대 집회·시위를 예외 없이 금지하겠다는 것과 더불어 집회 신고시 불법의 소지가 있다면 금지할 수 있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 정부 들어 끊임없이 위협 당하는 집회와 표현의 자유
신고단계에서부터 집회를 무차별적으로 불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집회·시위의 사전허가제를 금지하는 헌법과 충돌할 여지가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내포하는 바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대폭 축소하는 데 있음은 분명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후보시절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에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발언 주체에 대한 평가를 떠나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근간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21조를 원용하지 않더라도 표현의 자유는 언어를 가진 인간 그 자체에 내장된 권리로서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청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표현의 자유는 다른 모든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전제로서 가장 중요한 공동체적 가치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런 발언이 무색하게 집권 후 상황은 정반대다. 국고보조를 받은 부천국제애니메이션 부대 전시에서 영부인의 논문표절 의혹을 풍자한 ‘Member Yuji(멤버 유지)’가 출품된 50개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전시를 불허당한 것이나, 제43회 부마민주항쟁국가기념식에서 공연이 예정되었던 가수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의 가사를 두고 행정안전부가 재단 측에 공연리스트를 변경하라는 요구를 한 것 등이 그렇다.
고등학생이 그린 풍자만화를 두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측에 엄중 경고를 내린 이른바 ‘윤석열차’ 사건이나 EBS가 주최한 영화제에서 이승만 정부 시기 민간인 학살을 다루어 공식 상영작으로 선정된 ‘금정굴 이야기’가 공정성과 객관성 위반을 이유로 EBS에서 방송불가 판정을 받은 것도 이의 연장선에 있다.
행안부·문체부 장관, 방통위 위원장까지 가세
일본의 핵오염수 방류를 비판하는 가수 김윤아의 발언에 대해 여당 대표와 최고위원은 물론 예술인의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까지 총출동해 ‘말조심 하라’고 엄포를 놓은 일도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수험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대통령의 수능 개혁 발언을 비판한 학원 강사 개인에게 국세청이 직접 나서서 세무조사를 행하는 것처럼 개인의 발언에 국가기관들이 나서서 위협을 가하는 것은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세무조사 이후 해당 강사는 9월에 시행된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사자의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상반된 두 발언의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은 언론에도 가해지고 있다. 현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를 ‘희대의 망발’로 표현한 언론사가 제재를 받은 것이나, 대통령에 대한 의혹이 담긴 녹취록 파일을 인용한 언론사들에 과중한 제재를 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방송통신위원장은 이른바 ‘가짜뉴스 근절 TF’를 설치하여 인터넷 언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단 한 번이라도 가짜뉴스를 보도한 인터넷 언론사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적용해 언론사를 폐간하겠다는 취지를 밝힌 바 있다.
가짜뉴스와 통상적 의미의 오보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 한 번의 보도를 이유로 언제든지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에 해당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가짜뉴스 심의규제 대상에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와 같은 메이저 언론사가 인터넷에 제공하는 뉴스는 제외한다는 것이다. 양자 모두 인터넷에 정보가 올라온다는 것은 동일하다는 점에서 규제의 대상을 취사선택한다는 것은 자의적인 법집행에 해당할 수 있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에 전방위적으로 행해지는 위협은 대통령과 현 정부가 천명하는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명징하게 보여준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몰락을 자초하려는가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는 어떠한 법률로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는 다소 불편하고 유해한 표현이 있다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보장할 때 공동체 전체에 가져오는 이익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가장 절실한 자유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의 견해가 다를 때 의사결정의 방식은 결국 서로를 물리적으로 다치게 하는 폭력적인 수단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부당한 권력들이 결국 좌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기 정당성이 부족한 정부일수록 검열과 폭력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 현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박근혜 정부 몰락의 단초가 되었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을 상기하며 지금이라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을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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