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나미술관 이재삼 개인전 '달빛 녹취록'

이재삼 '달빛녹취록 5' 전시 전경. 
이재삼 '달빛녹취록 5' 전시 전경. 

‘목탄화가’ 또는 ‘밤의 시인’이라 부르는 이재삼(b1960)의 개인전 <달빛 녹취록>(2025 2. 19~4. 20)이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2~4층에 31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20여 년에 걸쳐 천착해온 ‘달빛 연작’의 완결인 셈인데, 작가의 말에 따르면 “코로나 19 이후 칩거하면서 사다리를 오르내릴 힘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최대의 공을 쏟아냈다.”

누가 봐도 그렇겠지만, 31점 가운데 ‘달빛 녹취록 5’가 압권이다. 김제 종덕리 왕버들나무를 모델로 한 가로 22.7, 세로 5.4미터 대작이다. 가로 2.27, 세로 1.82미터 캔버스 21개를 2개 층에 걸쳐 쌓은 것. 그 앞에 서면 내가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그림이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오싹함이 느껴지는 것은 작품의 크기도 그러려니와 고목이 품은 어둠 때문일 거다.

 

'달빛 녹취록 5'의 모델인 종덕리 왕버들나무. 
'달빛 녹취록 5'의 모델인 종덕리 왕버들나무. 

이 작품의 키워드는 목탄, 밤, 나무 등 셋이다. 이를 구별하여 말하기 전에 작품에 편만한 달빛을 짚고 넘어가자. 20여 년에 걸친 ‘달빛 연작’이라 했지만 대개는 개별 작품에 달이 등장하지 않는다. ‘달빛 녹취록 5’ 역시 계획에는 없었는데 사비나미술관의 층고에 맞춰서 추가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재삼의 달은 ‘어둠 속의 무엇’을 드러내기 위한 광원일 뿐이어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군더더기다. 작가는 없음으로써 있음을 선택하였고, 그의 선택은 옳았다.

달을 광원으로 함은 해를 광원으로 함과 무엇이 다른가. 우선 태양광의 분광이 빚은 컬러가 소거되고, 밝음에서 드러나는 형태가 모호해진다. 작가는 이를 “무채의 볼륨만 남게 된다”고 표현했다. 실경이라 하면 월광이 지상에 내려앉는 모습이어야 할 터인데, 작품에서는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가? 이 질문은 어리석다. 작가가 가리키는 것을 못 보고 손가락을 보는 꼴이다. 시각의 쓸모가 덜한 밤은 청각, 후각, 촉각의 세계이고 이는 시각의 세상, 즉 낮에는 가려졌던 생명의 원시성이 드러난다. 야경은 심경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작가는 말했다. ‘달빛 녹취록 5’는 밤에 본 종덕리 왕버들나무가 아니라 밤의 나무가 뿜어내는 ‘신령함’이고, 작가의 내면을 거쳐 표현된 신령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배우지 않아도 DNA로 피내림해 온 그 것.

‘달빛 녹취록 5’의 대상이 왕버들이지만 굳이 왕버들일 필요가 없다. 그동안 작가는 달빛 연작에서 조선의 화가가 즐겨 대상으로 삼아온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그렸는데, 왕버들도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다만, 송죽매는 관행적인 소재이어서 묘사의 핍진성에 무게가 쏠린 데 반해 구태여 왕버들이라고 밝히지 않으면 수종을 알 수 없는 나무를 대상으로 하면서 ‘밤의 어떠함’으로 중심이 옮겨갔다는 차이가 있다. 얼핏 작아 보이는 차이가 이 작품에서 차원을 달리하게 되었다고 나는 평가한다.

 

'달빛 녹취록 5' 부분.
'달빛 녹취록 5' 부분.

누구든 살면서 두세 차례 탈각의 경험을 한다. 이재삼 작가 역시 몇 차례 그러한 경험을 했다.

첫 번째는 미디움으로서 목탄의 선택. 마흔 줄 대학원에서의 일이다. 대학 때까지 이식된 서양미술 체제에서 교육을 받아 서구중심의 사고에 익숙해 온 터, 과연 ‘한국성이 무엇인가’가 화두였다. 당시 설치미술을 주로 하면서 공간의 해석작업이 평론가와의 협업, 많은 스탭이 필요한데, 이러한 비엔날레 풍의 작업을 계속 끌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도 한몫을 했다. 일단 혼자 할 수 있는 회화로 방향을 정하고 국외 유명 미술관을 순례했다. 도판으로만 보던 명화를 친견하면서 얻은 깨달음은 이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물감은 재료가 아니라 문화구나.” 그들이 수백 년 쌓아온 전통을 동양, 그것도 한국 환쟁이가 배운들 테크닉에 머물 뿐 본령에 접근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귀국 뒤 한동안 칩거하면서 화가로서, 가장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 존재론적 고민을 했다. 작가는 이때 “40여 년 몸에 익혀온 미술체계를 쓰레받기에 담아서 한쪽에 버렸다”고 했다. 서양화가 선점한 색채를 배제하고 남은 것은 무채색, 이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낙점한 것이 목탄이다. 무채라면 먹일 수도 있겠으나 동양화로 방향을 틀기에는 너무 늦은 점도 고려됐다.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목탄은 숯덩이. 목탄화 작업은 스틱을 캔버스에 문질러 숯가루를 침착하는 일인데, 문지르다보면 태반이 부스러져 떨어졌다. 캔버스 올에 밀어 넣은 탄소가루는 후 불면 날아가기 마련이었다. 이를 고정하기 위해 아교와 송진을 섞어 희석한 액체를 분사했다. 그렇게 문지르고 고정하는 일을 5~6차례를 거듭하면서 회색에서 검정까지의 스펙트럼을 구현하는 기술을 습득했다. 이때 캔버스 앞에 세운 대상은 인물. 그의 목탄 인물화는 그로테스크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목탄이 거무스름해서 그렇기도 하려니와 단조로운 색인 까닭에 대상의 내면을 드러내는데 주력할 수 밖에 없기에 그랬다.

 

'달빛 녹취록 5' 부분.
'달빛 녹취록 5' 부분.

두 번째는 대상으로서 나무의 선택. 인물화에서 미디움으로서 목탄을 운용하는 테크닉을 연마한 뒤 ‘한국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2단계 고민으로 넘어간다. 그것은 태생으로 돌아가기. 강원도 영월에서 자란 그는 일찍이 단종이 유배돼 사사한 청령포 숲, 동강의 물과 골짜기에서 놀며 그 분위기의 어떠함을 체득하고 있음에 착목했다. 아내와 함께 전국 나무여행을 했다. 합천의 늙은 소나무를 시작으로 오지의 나무를 찾아다녔다. 나무의 수백 년 수령에 비하면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인생공부를 새로 하고, 나무에 신령이 깃들어 있음도 알게 됐다. 작가는 이를 두고 “나무를 보면 산신령인지 삼신할매인지, 문관인지 무관인지 알겠더라”고 했다. 그는 나무를 보되, 원경에서 나무의 놓임을, 중경에서 나무의 세를 본다고 했다. 그 다음 나무와 스킨십을 하며 또 다른 소우주를 보았다. 그렇게 마음으로 스케치한 것을 캔버스에 풀어내는데 나무의 외형을 그리는 것은 배반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의 탈각에서 이른 게 결국 나무의 어떠함인데, 그 어떠함의 묘사는 밤이어야 했다. 그러하니 밤과 나무와 목탄은 하나로 묶일 수 밖에. 색과 형을 떠나 작가가 이른 것은 혼이었다.

앞에서 작가가 목탄을 선택한 것을 두고 탁월하다고 말한 것은 결과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융합, 또는 동서양 경계에서 핀 꽃이 되었기 때문이다. 소묘 또는 데생의 기초, 또는 변방 재료를 메인재료으로 승화시킨 것은 물론 동양화 주재료 먹을 서양화에 접목해 동서양을 아우르는 미디움으로 탈바꿈시켰다.

요체는 먹의 해체와 재조합이다.

먹은 화석연료의 불완전 연소에서 얻은 탄소 미세분말에 아교를 섞어 굳힌 막대. 이를 벼룻물에 곱게 갈아내 물감으로 만든 뒤 단숨의 붓질로 종이에 흡착하는 방식이 동양화. 누천년 경험이 쌓이며 대상과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공식으로 굳어져 있다시피하다.

이재삼 작가는 탄소분말을 화폭에 문질러 흔적을 남기고 아교+송진을 뿌려 이를 고정하면서 먹 만들기와 그림 그리기를 동시에 재연한다. 그럼으로써 먹과 동양화에서 소거된 시간을 자신의 의도에 맞게 분절하여 버무려 넣는다. 동양화에서 납작해진 시간이 작가의 짓을 통해 풍성한 몸피를 얻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뿜어내는 오싹함의 정체는 신령함 아래에 깔린 시간의 적층이다. 오싹함에는 작가가 먹에서 풀어내 펼친 시간과 두 번의 탈각이 쌓여서 만든 내공이 줄다리기를 한다. 그러니 작품 앞에서 침묵할 수 밖에. 쓸데없이 말이 길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