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역사 왜곡" "종북 의심" 공격하던 조선일보
노벨상 이후 '정신승리' 궤변…"이승만이 옳았다"
왜 보수우파는 문화 예술을 검열하고 억누르는가?
이스라엘 대사관 측의 한강 축하도 기막힌 부조리
한강이 쓴 80년 광주와 4.3 제주는 지금의 '가자'
"한강 노벨상 수상은 팔레스타인 위한 외침이다"
최근 조선일보는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국한 덕분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능했다'라는 취지로 “그러므로 이승만이 옳았다”라는 논평을 실었다. 정말 놀랍고 황당한 정신 승리와 논리의 비약이 아닐 수 없고 허탈한 웃음을 참기 어렵다. 이승만이 4.3 민중항쟁을 짓밟으며 제주도민의 10%를 학살한 것이 한강 작가에게 영감을 준 공로라는 말인가? 독재자들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서 야만적인 학살을 저지른다는 말인가?
사실 조선일보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한강 작가가 '역사를 왜곡했고 종북주사파로 의심된다'라는 식의 공격을 해 왔다. 2017년에 한강 작가가 <뉴욕타임스>에 '미국이 전쟁을 이야기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라는 글을 기고했을 때 조선일보는 "누가 그에게 북핵과 한반도 전쟁 위기에 대해 한국인을 대변할 자격을 주었나"라고 비난하는 글을 실었고, <월간조선>에는 한강 작가의 주장이 "종북의 뿌리"를 보여준다는 기고문도 실었다.
그러나 조선일보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게 불리하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이번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재빨리 함께 축하하고 기뻐하는 대열에 서면서 기회주의적 변신을 시도했다. 요란스럽게 한강 작가를 찬양하면서 자신들도 같이 공을 세운 것처럼 나서는 조선일보의 태도는 그냥 지켜봐 주기 어려울 정도였다.
심지어 개인 SNS에는 막말에 가까운 표현들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헐뜯었던 김규나 작가마저 막상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에서는 "우리나라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문학과 소설이 대중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문이 열렸다"라면서 딴 사람 같은 점잖은 태도로 축하의 대열에 같이 섰다.
물론, 조선일보는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조선일보에는 "무거운 노벨상 가볍게 받았으면"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여기서 강천석 조선일보 고문은 "한강 작가가 … 언젠가 '이젠 역사 현장으로부터 조금 거리를 둬야겠다'는 뜻을 비쳤는데 그것도 방법이다"라면서 '이제 학살의 역사는 그만 쓰고 잊어라'라는 주문과 압박을 했다.
이렇게 밑밥을 깔더니 이제는 '한강의 성과는 이승만의 덕'이라고 궤변을 펼치는 것으로 발전한 셈이다. 물론, 조선일보의 이런 태도조차 요즘 윤석열 정권의 정치적 기반인 보수우파 지지자들의 카톡방에서 퍼지는 '한강은 일루미나티(사탄숭배 비밀조직) 소속이고 노벨상은 세계 단일 공산당 정부를 세우려는 악당들'이라는 놀랍도록 황당한 태도들보다는 나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쪽에서 임명한 선거방송심의위원회 한정석 위원도 "노벨 평화상, 노벨문학상 모두 파시즘이다. 문학도들이 여기에 열광한다는 건 한마디로 유치찬란한 행태다"라며 한강 작가의 수상을 매도했다. 더 나아가 보수우파 단체들은 "역사 왜곡 작가에게 노벨상을 줬다", "역사 왜곡의 손을 들어준 노벨상의 권위를 실추시킨 스웨덴 한림원을 규탄한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주한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기도 했다.
왜 한국의 보수우파는 이토록 문화와 예술과는 거리가 먼 야만적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한국의 보수우파가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식민 지배와 독재에 부역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야만적 학살을 자행한 세력에 정치적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폭력과 학살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고통을 문학과 예술로 치유하며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것에 관심이 없거나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보수적 질서와 가부장적 가치들을 지키려는 보수우파의 권위주의적 태도는 자유로운 예술적 상상력과 표현을 가로막는 것으로 연결된다. 박근혜 정부가 한강 작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이나 경기도의 보수교육감과 교육청이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청소년 유해 도서로 검열하고 폐기하려 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시도는 최근에도 성소수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예고편조차 모두 삭제하게 만든 보수우파 단체들의 집요한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번에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공관차석이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한 장면은 한강 작가의 작품과 노벨상 수상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또 하나의 사례이다. 이스라엘이 지난 1년간 가자에서 저지른 학살은 한강 작가가 그토록 몸서리치며 의문을 던진 '고통스러운 세상의 모습'이다. 한강 작가는 노벨상 수상 직후에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언급하면서 "전쟁이 격화되고 매일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어떻게 축하 파티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반응했다.
풍부한 상상력과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예술가들은 이 세상에서 펼쳐지는 고통과 그 희생자들에게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지난 연말에 개봉한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에서도 러시아의 침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의 흔적은 분명하다. 영화의 중간 중간에 라디오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희생자들의 소식이 전해지고 그때마다 주인공들은 깊은 한숨을 쉬거나 혼잣말로 욕을 내뱉는다.
한강 작가는 이미 "타인의 고통을 감지해서 자신의 고통으로 삼을 수 있다는 건 인간의 고귀함을 증언하는 최후의 방어선"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므로 한강 작가는 지금 팔레스타인의 비참한 상황과 희생자들에게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미 한강 작가는 2017년의 강연에서 자신에게 광주 학살은 '고유 명사'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짓밟히고 학살당하는 모든 시간과 장소를 뜻하는 '보통 명사'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나에게 광주는 더 이상 하나의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 인간의 폭력과 존엄이 극단적으로 공존한 시간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가 되어 있었다. … 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는 거라고. 존엄을 믿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이것은 지금의 팔레스타인 가자가 바로 '1980년 광주'라는 말이다. 더구나 제주도 4.3에서 벌어진 학살을 다룬 한강 작가의 최신작인 <작별하지 않는다>의 어떤 부분은 바로 지금 가자 학살을 보고 쓴 것이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로 너무나 똑같다. 지난날 제주도에서도, 오늘날 가자에서도 학살을 사주하고 방조한 강대국, 침묵하는 언론, 죽어간 아이들을 볼 수 있다.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2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즉, 이미 한강 작가의 모든 글은 가자에서 펼쳐지는 학살에 대한 반대를 뜻하고 있고, 따라서 한편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거대 언론과 정부와 권력자들이 다른 한편에서 가자 학살에 침묵하는 것처럼 엄청난 부조리도 없다. 미국의 인권운동가이자 작가인 KJ Noh의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팔레스타인을 위한 외침이다"라는 지적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야만적 폭력에 맞서서 인간 존엄을 지키려는 이 외침과 저항의 정신을 우리는 결코 외면할 수 없다.
"작별 인사 없이 죽거나, 잔해에 깔려 죽거나, 대량 무덤으로 사라진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며, 그들은 버려지고,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고집스러운 주장이다. … 4.3 학살로 제주도 인구의 20%가 미군 정부의 승인 아래 몰살당하고 폭격당하고 학살당하고 굶어 죽었다. 그것은 눈 내리는 가자였다. …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 각자는 이 질문에 개별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직면해야 하며, 우리 모두가 함께 행동에 나서야 한다. 우리 중 누구도 외면하는 것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팔레스타인을 위한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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