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3 항쟁 왜곡·폄훼했던 조선일보
한강 소설에 ‘쾌거’ ‘축하’…자아분열인가?
노벨상 선정사유 5.18, 4.3 가치엔 침묵
노벨평화상엔 핵폐기 운동 일본단체 선정
한국 핵 무장 주장해온 조선, 또 자기부정?
자아분열 조선 기자들 , 부끄러움 아는가
지난주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날아온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탄성을 질렀다. 거의 모든 언론이 11일 이 소식을 긴급히 전하고 크게 보도했다. 이튿날에도 대부분의 신문들이 1면과 주요면을 털어 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 노벨위원회의 선정 사유, 문단과 국민들의 반응 등을 상세히 기사화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그만큼 놀랍고 축하할 일이며 전 국민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일대 사건이다.
그러나 수상 소식 직후 일부 극우 인사와 일베 세력들이 한강 작가는 물론 노벨위원회까지 폄하하고 비아냥대는 발언을 하며 소동을 일으켰다. 조선일보에 칼럼을 쓴다는 한 작가는 유치한 질투심을 극우 사상으로 포장해 자신의 SNS에 올렸다가 오히려 많은 시민들로부터 질책과 조롱을 받았다. 몇몇 극우 인사들도 유튜브에서 한강 작가를 ‘좌파’니 ‘종북’이니 하며 색깔론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한국인 첫 노벨문학상 수상의 축하마당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극우·일베 집단의 어이없는 폄하·비아냥·막말에 상식을 가진 국민들이 동의할 리 없다.
주류 언론 가운데에도 극우·일베와 비슷한 매체가 있다. 한강 작가에게 ‘좌파’ ‘종북’ 색깔을 입힌 극우·일베 집단처럼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으로, 제주 4.3항쟁을 공산주의자의 소요로 매도해온 매체들이다. 그 가운데 조선일보는 주류 언론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여론을 흔드는 대표적인 극우매체다. 툭하면 ‘좌파’ ‘종북’ 몰이로 민주진보 진영을 매도하고 국민 이간질을 해온 신문이다. 그런데 5.18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등의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에게 축하 사설까지 쓰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어찌된 일인가?
조선일보는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소식이 알려진 직후 이틀 동안 1면 톱과 주요면에서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 소식을 다뤘다. 11일에는 “소설가 한강, 한국 첫 노벨 문학상”(1면 톱) “아버지·오빠도 작가…시로 등단해 소설로 방향 틀어”(2면 톱) “스웨덴 한림원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3면 톱), “한강 노벨문학상, 한국 문화의 새 역사”(사설) 등의 기사와 사설을 실었다. 12일에도 “한강 신드롬 대한민국이 종일 웃었다”(1면 톱), “한강 문학이 세계 시민의 언어 될 수 있음을 보여줘”(2면 톱), “한강, 5.18과 4.3 배경으로 인간 탐구…역사성·문학성 인정받아”(3면 톱) 등으로 지면을 가득 채웠다.
조선일보는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을 어느 언론 못지 않게 크게 보도했을 뿐 아니라 “한강 노벨문학상, 한국 문화의 새역사” 제하 사설(11일자)에서 “한 씨의 수상은 한국 문학의 높은 수준을 세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통해 인정받았다” “국가적 쾌거”라고 칭송하고 “한강의 노벨문학 수상을 거듭 축하한다”고도 했다.
조선일보 애독자들은 아마 의아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극우·일베 집단으로부터 ‘좌파’ ‘종북’으로 비난받고 있는 한강 작가를 이토록 칭송하다니? 광주 5.18을 ‘오쉿팔’이라고 모욕하고 ‘북한군 개입’ ‘불순분자 폭동’이라고 보는 극우·일베 집단도 조선일보의 이런 보도가 의문이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잠시나마 변절한 것일까?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민주진영에 대한 극우세력의 ‘좌파몰이’ ‘종북몰이’의 원천이자 선두였다. 광주 5.18에 대한 폄훼와 모욕을 가장 자주, 극렬히 벌여온 언론이다. 1980년 광주항쟁 당시 조선일보의 1면 기사 제목은 “광주 일원 소요사태” “고정간첩 침투 선동” “총 들고 서성대는 과격파들”이었다. 5월28일자 사설에서는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계엄군은 일반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소화한 희생만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며 계엄군 작전을 ‘성공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에게 가장 크게 찬송가를 불렀던 언론이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과거 이런 보도에 대해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최근까지도 광주 5.18 북한 개입설을 퍼뜨리고(TV조선), 이런 내용을 담은 극우단체 광고를 여러 차례 게재하기도 했다. 2019년 지금의 국민의힘 계열 국회의원이 국회 공청회에서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도 침묵한 신문이 조선일보였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노벨위원회가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1980년 군의 학살로 수백 명의 학생과 비무장 민간인이 학살당한 광주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정치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며 상을 수여한 한강 작가에게 ‘쾌거’ ‘역사성·문학성 인정’이라는 표현을 쓰며 축하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에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도 포함돼있다. 노벨위원회는 수상자 선정 사유에서 “이 이야기는 1940년대 후반 수만 명이 살던 제주도에서 일어난 대학살의 그늘에서 전개된다. 수만 명의 사람들, 그 중 어린이와 노인들이 공동 부역자로 의심되어 총에 맞았다...한강은 현재에 대한 과거의 힘을 전달할 뿐 아니라 집단적 망각에 빠진 것을 밝히고 그들의 트라우마를 공동 예술 프로젝트로 바꾸려는 친구들의 시도를 추적하여…”라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과거 제주 4.3항쟁을 어떻게 바라보았나? 이 극우신문은 수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4.3의 진실을 밝히고 알리려는 노력은커녕 ‘남로당이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반란’이라는 주장을 전파하고 민주당 정부가 과거사 조사를 할 때마다 이를 훼방놓는 사설을 쓴 매체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4.3 추념식에 불참하자 이날 행사가 ‘격이 낮은 국가기념일’이라고 하고 서북청년단 등 극우단체의 행사장 난동에도 입을 닫았다. 4.3항쟁에 대한 극우단체의 역사적 왜곡을 옹호하기도 했다. 이랬던 조선일보가 5.18과 4.3의 아픔을 그린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했을까? 그렇다면 이는 조선일보의 정신분열, 자아분열 때문일 것이다.
노벨문학상 발표 다음날 조선일보가 또다시 ‘멘붕’에 빠질 소식이 전해졌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일본 원폭 피폭자 시민단체(‘피단협’ 혹은 ‘히단쿄’)가 선정된 것이다. 이 단체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 피폭자들이 만들었는데 60년 넘게 핵무기 피해를 알리고 핵폐기를 주장해온 시민단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국내 주류 언론 중에 유일하고도 가장 열심히 한국 핵무기 존치를 주장해왔다. 기사를 통해 한국의 핵 보유론자의 주장을 상세히 전달하고 사설과 칼럼을 통해서도 “미국이 한국에 핵을 제공해야”(양상훈 칼럼), “우리가 핵을 갖겠다고 하는 것은...”(김대중 칼럼), “주한미군, 한국이 핵무장하면 필요없다”(사설)라며 핵 보유 필요성을 주장해왔던 것이다. 조선일보는 핵 무기 폐기를 주장해온 단체의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노벨위원회의 발표를 보도하긴 했지만 역시 자아분열이 아니라면 기사화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핵 폐기 운동단체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보도한 것을 보면 그것이 자아분열이나 변절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짐작할 수도 있다. 교묘한 왜곡보도로 ‘1등 신문’인 이 극우매체는 한강 작가에 대한 노벨위원회의 수상자 선정 사유 일부를 생략해 보도했다. 소설 ‘소년이 온다’ 선정 사유 “1980년 군의 학살로 수백 명의 학생과 비무장 민간인이 학살당한 광주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정치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내용 중 앞부분을 빼고 그저 “역사적 사건을 정치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만 쓴 것이다.
또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선정 사유에서도 “1940년대 후반 한국 제주도에서 벌어진 대학살...수만 명의 사람들, 그 중 어린이와 노인들이 공동 부역자로 의심되어 총에 맞았다”는 “1940년 후반 한국 제주도에서 벌어진 학살사건”으로 적었다. 조선일보가 광주 5.18이나 제주 4.3의 비극을 말하는 것은 자아분열이 아니고는 어려웠을 것이다.
조선일보의 열렬한 애독자인 극우세력의 한강 작가 폄훼·조롱에도 불구하고 이를 축하해야 하는 조선일보 기자들의 정신적 고통은 심했을 것이다. 조선일보의 정신적 지주 격인 김대중 대기자가 그토록 역설하던 핵 보유에 반대한 시민단체의 노벨평화상 수상도 떨떠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광주 5.18항쟁, 제주 4.3항쟁, 핵 확산 금지(핵 폐기) 운동이 품고 있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세계적 권위의 노벨위원회가 인정한 것을 조선일보가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조선일보에게 ‘그 입 다물라’고 하기도 어렵다. 온 국민이 기뻐하는 뉴스에 조회수를 올려 돈도 벌어야 하니 기사를 쓰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아분열, 자기부정까지 인내하면서 부끄러움 없이 일하고 있는 조선일보 기자들의 ‘밥벌이의 고단함’에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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