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지수 첫날 수익률 시장 평균 밑돌아

윤석열 정부 주식시장서도 '마이너스 손'

증권가 “미 편입 종목서 기회 찾아라” 권고

WSJ “재벌 중심 증시 구조가 가장 큰 문제”

‘부실한 정책→현장 혼란→땜질 대책’ 반복

한국거래소가 지난달 24일 공개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가 윤석열 정부의 또 다른 ‘마이너스 손’이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선 종목 구성이 지수의 본래 취지인 기업 가치 제고를 달성하기에 너무나 부실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 참여를 독려하고 세제 혜택까지 주려고 한다.

밸류업 지수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커녕 한국 증시의 매력도를 더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한국거래소는 발표하자마자 올해 안에 종목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의료 대란처럼 대통령의 한마디에 설익은 정책을 발표하고 현장에서 혼란이 일어나면 부랴부랴 땜질 대책을 내놓은 패턴이 증시 정책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밸류업 지수 (PG). 연합뉴스
밸류업 지수 (PG). 연합뉴스

가치제고는커녕 ‘밸류다운’ 걱정하게 만드는 밸류업 지수

정부는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저평가 현상을 해소하겠다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밸류업 지수를 산출한 것도 그 일환이다. 정부는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주주환원 정책을 투명하게 밝힌 기업을 밸류업 지수에 편입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출시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국내 증시에 등판한 첫날부터 수익률이 3% 가까이 하락하며 스텝이 꼬이고 말았다. 정식 산출일인 지난달 30일 수익률이 2.8% 하락한 것이다. 코스피(-2.13%)와 코스피200지수(-2.59%), 코스닥지수(-1.37%) 등 시장 평균보다도 못한 성과를 보였다. 총 100개 구성 종목 가운데 81개 주가가 하락했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결과다. 지수를 코스피와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종목 위주로 구성해 시장 평균을 넘어서기 힘든 구조였기 때문이다.

기존 우량주 위주로 편입해 차별성 떨어져

그렇다면 밸류업 지수를 추종하는 ETF도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 된다. 증권가에서도 주주환원 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는 저평가 종목이 아닌 대형주 위주로 지수를 구성한 것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예컨대 KB금융을 편입하지 않고 ‘2년 합산 흑자’ 기준을 충족하지 않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는 ‘주주환원’이 종목을 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각계 의견을 반영해 올해 안에 종목 변경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밸류업 지수도 오락가락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종목 구성이 졸속이라는 사실은 증권가 반응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일부 증권사는 밸류업 지수에 편입되지 않는 종목에서 투자 기회를 찾으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미편입 기업이 지수에 진입하기 위해 주주환원 정책을 더 강화할 것이라는 점을 그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이런 종목은 처음부터 편입했어야 했다. 시장에서 지수에 편입되지 않은 종목의 수익률이 더 높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면 지수를 산출한 의미가 반감된다. 이 문제는 종목을 추가하거나 변경하는 정도로 해결되지 않는다. 종목 구성 원칙을 바꿔야 한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 연합뉴스
코리아 밸류업 지수. 연합뉴스

외국 언론 “재벌 구조 바꿔야 증시 저평가 해소”

윤석열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특히 외국의 유력 경제 매체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으로 한국의 재벌기업 구조를 꼽으며 지배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는 해소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한국은 일본의 시장 개혁을 카피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논평하며 “삼성과 현대 등 재벌기업이 주가 상승을 제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WSJ는 또 “재벌과 같은 거대 기업제국을 통제하는 가족들의 이해관계는 일반적으로 소액주주들의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는다”며 “재벌기업 중심의 한국 증시가 밸류업 프로그램 성과를 내는 데 한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 공개 직후인 지난달 25일 외국인들이 6000억 원 이상 주식을 매도한 것도 이런 외국 언론들의 평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연금도 밸류업 지수 종목 비중 줄여

정부는 국민연금이 밸류업 지수 종목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최근 기금 운용 흐름을 보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상장사 중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152개 사의 보유지분율 변화(2023년 말 대비 9월 현황)를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밸류업 지수 편입 종목 중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46개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인 27개 종목의 투자 비중이 연초 대비 감소했다.

 

자료 : 리더스인덱스. 국민연금 5% 이상 지준율 현황.
자료 : 리더스인덱스. 국민연금 5% 이상 지준율 현황.

이 이유는 국민연금의 투자 비중 순위가 IT전기전자(8.93%), 생활용품(8.77%), 식음료(8.63%)에서 증권(9.48%), 식음료(8.82%), 제약(8.55%), IT전기전자(8.50%) 순으로 변화한 영향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연금에 밸류업 지수 투자를 강요하면 국민 노후 자금을 깎아먹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실패한 다른 정책과 마찬가지로 밸류업 프로그램도 ‘마이너스 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에서 탈출하려면 재벌기업의 지배구조를 일반주주 친화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비롯해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관련 법을 개정하는 게 핵심이다. 밸류업 지수를 산출하고 이에 근거한 ETF를 출시하는 정책은 외국 언론들이 지적한 것처럼 재벌이 지배하는 증시 구조를 바꾸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