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최근 불황속 중국변화 탐색
사회적 유동성 저하, 계급적 좌절과 분노
“용은 용, 봉황은 봉황 낳고 쥐새끼는 땅을 판다”
유동성 막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호구제도
한국 닮은 불평등한 교육기회와 사교육의 번성
“복지주의 안 된다” 시진핑의 뒤틀린 복지관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기득권은 손댈 수도, 뭐라 얘기할 수도 없다.”
지난 8월에 중국의 대표적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플랫폼 ‘웨이보’에 10만 팔로워를 지닌 한 이용자가 서민들이 꿈꿀 수도 없는 고액 연금을 받는 중국사회의 부유한 엘리트 계층을 비판하며 올린 글의 일부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기생충들”이라는 댓글이 달렸고, 이어서 “뱀파이어”, 그 다음에 “사회고화(社會固化, social stagnation, 사회적 정체, 경직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글이 달렸다. 그리고 “혁명만이 이런 기괴한 불의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글까지 떴다.
하지만 인터넷 검열이 심한 중국에서 이런 글들이 온전할 수 없다. 며칠 안 가 다 삭제됐다.
중국에서 싹트는 새로운 계급투쟁
<이코노미스트> 9월 23일 온라인 기사 “중국에서 새로운 계급투쟁이 싹트고 있다”(A new class struggle is brewing in China)에 나오는 내용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회그룹들 사이에 분노가 자라나고 있다”는 부제가 붙은 그 기사는 ‘담배 삼대’(烟草三代人)라는, 특권적 엘리트들이 그들끼리 국영 담배전매사업체 관리직 같은 선망하는 일자리를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것을 비꼬는 소셜 미디어 용어로 글을 시작했다.
올해 초 85만 팔로워를 지닌 한 마이크로블로거가 SNS에 “이 세습체제의 결과는 하층민들이 일어설 기회를 완전히 막아버리는 폐쇄적인 권력구조다!”라는 글을 올렸다. 동의한다는 수백개의 글들이 달렸다. “지배계급이 뭉치고 있다.” “엘리트 자식들은 앞서 가고 가난뱅이 자식들은 가난뱅이로 남는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중국의 최근 변화를 웨이보 등 SNS 플랫폼에 올라왔다 금방 사라지는 사회비판적인 글들과 전문연구자들의 중국 분석자료들을 인용해가며 흥미롭게 보여준다. 새로 형성되는 계급 격차와 특권층에 대한 계급적 분노, 그 원인 진단과 대책까지 거론한다. 한국사회와는 물론 다르지만 닮은 점도 많다. 빈부 격차와 불평등한 교육기회, 사교육 발호, 정실주의 인사 등이 흡사하다. 이런 현상들과 시진핑 주석의 복지정책관을 보면 중국이 과연 사회주의국가가 맞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사회적 유동성 저하, 계급적 좌절과 분노
1990년대에 중국인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나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사회적 유동성(social mobility, 사회적 계층 이동)이 높아졌다. 도시로 나간 농부들이 타고난 재주와 근면 성실로 공장 주인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SNS 글들이 보여주듯, 그런 낙관주의는 시들기 시작했다. 지금 중국은 경제사정이 나빠지고 있다.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많은 중국인들이 ‘기득권들끼리 다 해먹는다’는 담배 삼대의 ‘사회고화’를 입에 올리고 있고, 부유층의 자기 재생산을 바라보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계급적 원망과 분노가 자라고 있다.
미국의 중국연구자 스콧 로젤레와 마틴 화이트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한때 심한 불평등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능력만 있다면 자신들도 성공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지금 그들은 연줄과 부잣집에서 태어나 자라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얘기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중국 헌법이 명기하고 있듯이 “노동자와 농민들 동맹을 토대로 노동계급이 선도하는 인민 민주주의 독재”를 수립했다고 주장해 온 중국공산당을 짜증나게 한다. 시진핑 주석은 “공동 부유” 달성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유동성을 증대시키도록 한층 더 노력하라고 촉구해 왔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겁먹은 사업가들이나 부유층이 아닌 일반대중에게는 거의 먹혀들지 않는다. 웨이보에서 혁명만이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댓글이 달리는 상황이다.
높아지고 있는 세대간 소득탄력성(IGE)
사회적 유동성을 측정하는데 쓰이는 세대간 소득탄력성(IGE)이란 개념은 부모와 자식 세대의 소득을 비교해 0에서 1까지의 수치를 매기는데, 수치가 낮을수록 세대간 소득차이와 사회적 지위 편차가 낮아지고 수치가 높을수록 높아진다.
2019년에 독일 본의 싱크탱크 노동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70~1980년에 태어난 1990년대의 젊은 노동자들의 IGE는 0.39였다. 그런데 1981~1988년에 태어난 노동자들의 IGE는 0.44로 높아졌다. 부자나라들에서처럼 사회적 유동성의 감소는 불평등의 증대와 함께 진행된다. 1990년대에 중국에서는 (시장경제로의) 경제개혁이 본격화하면서 빈부격차가 급격히 벌어졌다. 2019년에 발표된 난징 재경대학의 진멍지에와 동료 연구자들의 논문은 중국의 사회적 유동성이 미국의 그것보다는 높지만 영국과 캐나다, 독일보다는 낮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시진핑은 이런 사회적 정체(사회고화)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막기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2021년에 “일부 나라들에서 빈부격차 확대와 중산층(middle class) 붕괴로 사회적 분열과 정치적 양극화, 포퓰리즘 만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를 “심각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지난 7월 한린슈 난카이대학 교수는 학술지에 사회고화를 믿지는 않지만 “이 부정적인 감정의 확산”이 “잠재적인 정치적 리스크(위험)”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중국공산당은 2019년에 사회적 유동성에 관한 첫 정책문서를 공표했다. 계급(class)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새로운 것이 조성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당 이데올로그들에겐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문서는 유동성을 저해하는 장벽들을 제거하는 것이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경제 발전에 대한 강력한 지원이 될 것이라며, 핵심적인 장애들 몇 가지를 제대로 짚어냈다.
유동성 막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호구제도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호구(戶口, 호적)제도다. 호구제도는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는 도시 의료 서비스나 교육, 주택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한다. 지난 30여년 간 약 3억 명의 중국인(‘농민공’)들이 도시로 이주해 그런 사회적 혜택을 한 차례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도시들은 그런 이주민들을 2류 시민 취급을 하면서 호구제도로 그들의 더 나은 일자리 취득 길을 막았다. 제대로 된 일자리에 취업신청을 하려면 그 도시의 호구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들에겐 그것이 없다. 일부 영구직(정규직)을 지닌 이주자들 중에는 호구를 바꾸지 않아도 도시 주민들과 같은 혜택을 누릴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감춰진 장벽들이 존재한다. 이주민에겐 자신이 일자리를 갖고 있고 거주 자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 계약서가 없다. 그리고 공산당은 가장 좋은 일자리들이 집중돼 있는 대도시들에 그들이 들어와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변화(개혁)를 꺼린다. 그 주된 이유는 많은 수의 이주자들이 도시에 들어와 살다가 실직자가 돼도 도시를 떠나지 않을 경우 사회적 안정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불평등한 교육기회, 사교육의 발호
또 한 가지는 불평등한 교육기회다. 지방사람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평등하게 누리지 못하는 것은 사회진보에 큰 장애가 된다. 지방 학교들은 도시 학교들보다 자금이나 교사진 등 인적 자원이 열악하다. 지방에 호구를 두고 있는 중국인들이 좋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는 기회는 상대적으로 훨씬 적다.
2008년까지 10년 간 중국에서는 대학과 단과대학들 수가 6배나 늘었지만, 지방의 학생들이 엘리트 대학들에 진학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매우 어렵다. 중국사회과학원의 류바오중 연구원은 이런 상황에서 약 40%의 대학생들이 관리들 자식이고, 중국인구의 35% 이상이 살고 있는 지방의 농민들 자식은 10%에도 못 미친다고 추산했다.
한국 닮은 사교육 번창과 불평등 심화
한국처럼 사교육도 중국의 사회적 유동성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소다. 1990년대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중산층(middle class)이 오늘날 약 4억 명에 이를 정도로 급속히 늘었다고 중국 공식자료들은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들 새로운 계급 속에서도 불만이 일고 있다. 승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가능한 한 좋은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 돈을 쏟아 부었다. 2021년에 중국정부는 교육 평준화를 위해 대입 준비생들을 겨냥한 돈벌이 사교육을 대부분 금지시켰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불법화되면서 더 높이 치솟은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부자들에게만 더 큰 혜택을 몰아 준 셈이 됐다.
“복지주의 안 된다” 시진핑의 뒤틀린 복지관
시진핑 주석의 복지정책에 대한 생각도 문제를 꼬이게 만드는 근본적 요인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많은 중국 학자들은 의료 서비스 비용과 부족한 연금, 변변찮은 실업수당, 그리고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한 보이지 않는 추가비용 등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세대를 이어가며 가난뱅이로 남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공공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중국정부는 나서기를 꺼린다. 시진핑은 2021년에 “공동 부유를 이루기 위해서는 복지주의로 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정책이 “게으른 인민들”을 부양한다며 이런 말을 했다. “개인의 능력 이상으로 ‘복지국가’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지속 불가능하며 반드시 심각한 경제적 정치적 문제들을 낳게 된다.”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주의 사회에 유행하는 ‘능력주의’와 다를 바 없다. 먼저 평등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는 박약해 보이고, 능력과 기여한 만큼만 대접받아야 한다는 강자와 기득권자 중심주의는 강해 보인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가 맞기는 한가?
정실주의 사회에서 공산당원 되기도 쉽지 않아
공산당원이 되면 개인적 난관을 돌파하는데 유리하겠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당원이 되려면, 당 문서들을 공부하기 위한 회의들에 자주 참석해야 하는 등 긴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선망하던 공무원과 국영기업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게 당원 자격은 승진에 필수적이다. 중국에서 공무원 시험은 공정한 것으로 평가가 높지만, 공산당원이 되는 것은 내부자(insiders)의 기분에 달려 있고, 국가라는 보루 내에서는 정실주의(nepotism)가 만연해 있다.
용은 용을, 봉황은 봉황을 낳고 쥐새끼는 땅 판다
지난 4월에 국영 텔레비전도 그런 내용을 보도했다. 그 방송은 SNS상의 ‘담배 삼대’와 그 비슷한 얘기들에 대해 대중들이 우려하는 것은 “국영기업들과 지방정부 기관들에서 여전히 상당히 많은 근친교배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했다. 부유한 특권계급이 그들만의 배타적 독점체제를 형성해 그들끼리만 부와 사회적 지위를 주고 받는 자기 재생산 구조를 굳혀 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 재앙은 “숨겨진 구석들에서 만연하고 있다”고 방송은 지적했다. 소련을 자멸로 이끈 노멘클라투라를 떠올리게 한다.
SNS 이용자들은 그런 사실들을 어렵사리 SNS에 올렸고, 검열관들은 눈에 불을 켜고 살폈지만 일부는 잠시 살아 남았다. 그 중에 하나는 “이 사람들은 전통문화를 선양하고 있다”고 비아냥대며 시진핑이 애용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를 언급했다. “용은 용을 낳고, 봉황은 봉황을 낳으며, 쥐새끼는 땅 파는 법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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