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꺾고 의장 선출돼 파란, 대규모 탈당 사태
이재명이 적극 수습해 진정됐지만 불안 행보 계속
우원식 "방송4법 강행, 이진숙 탄핵 논의 중단하라"
이번엔 특검법에 지역화폐법까지 상정 보류 선언
양자택일 문제 아닌데 "여야의정 협의체 집중해야"
법사위원 "경악" 집단 반발…지도부서도 첫 표출
결국 우원식 방침 수용, 추석 연휴 이후 상정키로
반기는 국힘…한동훈 "환영" 추경호 "더 늦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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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 국회의장을 향해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불만이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당초 국회의장 후보자 경선에서 추미애 의원을 제치는 파란을 일으켰을 때부터 대규모 탈당 사태가 벌어지는 등 당원들 불만이 들끓었지만 이재명 대표가 전국 순회 당원 컨퍼런스 행사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제를 당부한 끝에 겨우 사태를 진정시킨 바 있다. 그런데 그 뒤에도 이런저런 논란을 일으키던 우 의장이 지난 7월 민주당을 향해 "방송 4법 강행을 중단하라"고 만류한 데 이어 이번엔 김건희 특검법과 채 상병 특검법, 지역화폐 활성화법까지 본회의 상정을 보류하자 당원들이 폭발함은 물론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기류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국정 파탄을 가속화하며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윤석열 정권에 맞선 야권의 절박한 대치 전선에서 우 의장이 보이는 행보가 갈수록 불안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당의 극렬 저항을 뚫고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에 관한 각종 의혹을 수사 대상으로 하는 특검법안을 의결했다. 이 법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주식 저가 매수, 인사 개입 및 공천 개입, 명품 가방 수수 등 8가지 의혹을 수사 대상으로 망라한 '김건희 종합 특검법' 성격을 띄고 있다.
야 5당이 공동 발의한 채 상병 특검법은 윤석열 대통령의 잇단 거부권 행사로 인해 이번이 네 번째 발의인데,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요구해왔던 이른바 '제3자 추천' 방식을 과감하게 수용해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 4명을 추천하도록 한 내용이 골자다. 민주당과 비교섭단체 야당(조국혁신당)이 후보군을 2명으로 추리면 그중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만약 대법원장 추천 인사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야당이 재추천을 요구할 수도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지명 및 임명됐고 보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허수아비 특검이 되지 않도록 야당이 몇 가지 장치를 만들어둔 것이다. 물론 대법원장이 김건희 씨를 법과 원칙에 따라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 특검 후보들을 추천하면 민주당이 굳이 '비토권'을 꺼낼 이유도 없겠지만, 국민의힘과 법무부 측은 "무늬만 제3자 추천이고 겉과 속이 다른 수박 특검법" "중립성과 객관성에 문제가 있다" 등의 이유로 시종일관 반대해왔다.
그러나 내곡동 특검(2012년), 박근혜 국정농단 특검(2016년), 드루킹 댓글조작 특검(2018) 등 특검을 아예 야당이 추천한 역대 사례가 수두룩해 이는 생떼에 가깝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활약했던 국정농단 특검팀의 박영수 특검은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당에서 추천한 인물이고, 드루킹 특검인 허익범 변호사 역시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현 국민의힘 전신)에서 추천한 바 있다. 윤석열 정권은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채 상병 특검을 어떻게든 무력화하는 게 절체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에 무슨 억지를 써서라도 특검법의 발목을 잡으려는 것뿐이다.
이날 법사위에서 야권 연대를 통해 처리된 법안에는 민주당의 당론 추진 법안인 지역화폐법(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법) 개정안도 포함돼 있다. 이 법안은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지역사랑상품권의 발행·판매·환전 등 운영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규정한 게 핵심이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정청래 법사위원장과 야당 의원들에게 고성을 지르는 등 강력 반발하다 표결 직전 회의장에서 퇴장했지만 민주당은 흔들림 없이 이들 법안을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우원식 국회의장이 급제동을 걸면서 법안 상정을 거부하고 나섰다. 우 의장은 법사위 법안 처리 직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 국회의 가장 큰 책무는 한시라도 빨리 의정 갈등이 해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온전한 '여·야·의·정 협의체' 가동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본회의에 회부된 이들 3건의 법안에 대해 "대화와 협력의 분위기가 단절되지 않도록 야당이 법안 처리 시기를 조금 유연하게 하는 것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19일에 처리할 수 있도록 여야가 협의해달라"고 말했다.
국민적 요구와 기대가 높은 특검‧민생법안 추진과 윤석열 정권이 열쇠를 쥔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이 어느 하나를 취하면 나머지는 포기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까지 악화 일변도로 치달은 의정 갈등의 절대적 원인과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다. 그럼에도 막연한 희망만으로 두 사안을 연계시켜 법안 상정 보류를 선언한 것이다. 게다가 김건희 씨의 4·10 총선 공천 개입 의혹은 10월 10일이면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때문에 특검법 처리의 시일이 촉박하다.
우 의장은 지난 7월에도 기자회견을 열어 본회의 개최를 요구하는 야당을 향해 "방송 4법 입법 강행을 중단하고 여당과 원점에서 법안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한다"며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소추 논의도 중단해 달라"고 해 야권을 당혹시킨 바 있다. 당시 우 의장은 여야에 "극한 대립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잠시 냉각기를 갖고 합리적 공영방송 제도를 설계해보자"면서 정부·여당을 향해서도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일정을 중단하고 방통위의 파행 운영을 멈춰 정상화 조치에 나서달라"고 호소했지만 소 귀에 경 읽기로 끝났다. 그런데 이번에 또 의미 없는 시간 끌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목에 걸린 가시 같은 법안들의 처리가 연기되자 즉각 반겼다. 한동훈 대표는 페이스북에 "오늘 우원식 의장께서도 여야의정 협의체를 통한 의료 상황 해결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환영하고 공감한다.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적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12일에 법안 처리를 하지 않기로 의사 결정을 한 것에 대해서는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한술 더 떠 "의장과 양당 교섭단체 대표들 간에 안건 처리를 위한 26일 본회의 개최를 합의한 바 있다. (19일이 아니라) 26일에 본회의를 진행하면 충분하다"고 더 늦출 것을 요구했다.
반면 정청래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법사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국회의장을 이례적일 정도로 강도 높게 성토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법사위원들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사위에서 진통 끝에 이 법안들을 통과시킨 이유는 양 특검법이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고 지역사랑상품권법은 민생과 직결되는 법으로 한시가 급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처리한 것"이라며 "민주당, 조국혁신당 법사위원들은 이 법들이 추석 전에 통과돼 국민께 많은 위로와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최선을 다했다"고 전제했다.
이어 "그러나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이 오늘 법사위에서 처리한 법안들을 단 한 건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법사위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국회의장의 처사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면서 "국회의장께 오늘 처리한 세 건의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주실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했다. 심지어 "오늘 법안이 국회의장의 반대로 무산된다면 그 책임은 국회의장이 오롯이 져야 할 것"이라고까지 한 뒤 "재고해주시고, 법안을 상정해주실 것을 다시 한번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압박했다.
정청래 위원장은 기자회견 직후 이어진 백브리핑에서 "원내지도부는 채상병·김건희 특검법과 지역화폐법 3가지를 놓고 여러 가지로 의장과 밀고 당기기가 있었다. 여러 고민과 논의 끝에 법사위원들은 3가지 법을 다 통과시켰다"며 "(12일 본회의에) 한 건도 올리지 않겠다는 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납득하겠나"라고 의아해했다. 또 "의장은 의장이기 전에 한 명의 국회의원"이라며 "의장 개인의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의 열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재고해주길 부탁한다"고 거듭 12일 상정의 당위성을 부각시켰다.
정 위원장은 특히 "절차적 하자를 방지하기 위해 국민의힘이 요청한 안건조정위원회까지 시급하게 마친 법안에 대해 국회의장이 상정하지 않는 사례는 처음 본다. 매우 당황스럽고 경악스럽기까지 하다"면서 "법사위 논의까지 마친 법안을 의장 개인의 판단에 따라 올리고 안 올리고 결정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닌가. 이런 일이 반복되면 법사위도 의장에게 협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노기를 숨김없이 표출했다.
민주당 지도부에서도 처음으로 우 의장에 대한 정면 비판이 나왔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12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국민의힘과 한동훈 대표가 여·야·의·정 협의체를 놓고 언론 플레이를 세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여당은 일부 의료단체가 협의체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 민주당에 추석 전 여·야·의·정 협의체를 출범시키자고 제안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대표성이 있는 의료단체의 참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일단 야당을 끌어들여서 중재자 한동훈을 명절 밥상에 올려놓고 싶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의료계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우리 민주당을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아울러 "당장 이틀 후면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국민 불안은 점점 커지는데 정부‧여당은 엉뚱한 대책으로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며 응급실 진찰료 3.5배 인상과 3년간 의대 교수 1000명 증원 정책 등을 거론한 뒤 "이렇게 의료계를 자극하는 대책만 내놓는데 의료계가 협상 테이블에 나와 앉겠는가? 대통령이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께 진심 어린 사과부터 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 보건복지부 등 주무 부처 장관과 차관의 경질과 문책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 의장을 정조준해 "국회를 원만하게 운영하려는 국회의장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여야의정 협의체와 국회 입법을 연계하신 것은 참으로 뜻밖"이라며 "각각 별개의 프로세스로 진행될 사안 아닌가? 여야의정 협의체는 국회 본회의 논의나 의결을 요하는 문제가 아니다. 정당과 의료계, 정부가 서로 입장을 조율해서 성사시킬 일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다. 나아가 "입법은 국회 본회의를 열어서 처리해야 할 일"이라며 "전혀 별개의 절차, 별개의 프로세스로 진행될 일인데 이것을 한데 묶어 '입법을 고려하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 납득하기 어렵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지금이라도 재고해주셨으면 좋겠다"면서 "정히 여야 간의 대립과 갈등을 우려하는 거라면 지역화폐 지원법만이라도 오늘 본회의에 상정해서 처리해주셨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민생을 최우선의 가치를 삼고 정치 활동을 해 오신 의장 아닌가? 간곡한 심정으로 건의 드린다"고 덧붙였다.
우 의장이 두 특검법을 '정쟁거리'로 인식한다면 명백한 민생법안인 지역화폐법 하나만이라도 추석 전에 통과시키자고 호소한 것이다. 그러나 우 의장은 세 가지 법안을 '패키지'로 처리해야 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민주당은 자당 출신 국회의장과 더 이상 대립각을 세울 수는 없어 우 의장의 제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본회의 표결을 추석 연휴 이후로 미룬 것이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의장 제안이 일리가 있고 의료대란으로 국민들 걱정이 큰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일정 기간 정부‧여당에 (시간을) 주는 것도 명분이 있다"며 "19일에 3개 법안을 일괄 처리하는 것으로 (의장과) 이야기가 됐으니 수용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윤종군 원내대변인은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 법안을 처리하려 했던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을 때 국정감사가 시작되는 10월 7일 이전에 재의결을 하는 데 무리가 없기 때문"이라면서도 "19일에 처리해도 계획했던 (재의결) 일정이 가능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은 일주일 동안 정부‧여당은 의료계 참여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주길 바란다는 게 오늘 의총 입장"이라며 "의장에게 항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일부 있었으나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의료대란을 해결하기 위한 의장의 결단을 통 크게 받아들이면서 당이 하나 된 모습으로 의견을 모아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정리)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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