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추미애 국회의장'
'이재명 일극 체제' 운운하며 가로막은 주류언론
또다시 족벌-개혁언론이 합심해 민심 꺾은 효과
윤석열 탄핵 민심도 거스를지 모른다는 불안감
우원식의 개혁성과 진정성은 의심하기 어렵지만
당원 중심 대중정당으로 발전에 많은 과제 남아
이번에 모두의 예상을 깨고 추미애 의원이 아니라 우원식 의원이 국회의장이 된 ‘정치적 이변’과 그 후폭풍은 여러 가지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언제나 모든 기성정당의 정치인들은 장점과 함께 단점도 있고 잘한 점도 못한 점도 있다. 당연하게도 추미애 의원도 찾아보면 많은 장점과 잘한 점만이 아니라 ‘2004년 노무현 탄핵’ 과정에서의 행보와 ‘2009년 노동법 날치기’ 과정에서 구실 등 부족한 점이 있다.
그러나 총선이 윤석열 정권의 참패로 끝난 상황에서 22대 국회를 이끌 국회의장으로 추미애 의원이 적격이라는 것은 대다수 ‘민심’의 기대였다. 2만 명이 넘는 민주당 당원들이 연서명을 통해 추미애 국회의장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등 민주당 당원들부터 기대와 지지가 강력했다. 더구나 단지 민주당원을 넘어서 다수 시민의 여론이 추미애 국회의장을 원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추미애 국회의장에 대한 지지는 압도적이었다. 후보로 출마한 의원 중에서 2, 3, 4위를 차지한 의원들이 얻은 지지 여론을 다 합친 것보다 추미애 국회의장을 기대하고 지지하는 여론이 3~4배에 달할 정도였다. 그것도 모든 지역, 나이, 성별, 심지어 지지 정당을 넘어서 차기 국회의장으로 추미애 의원이 가장 적합하다는 응답이 대다수였다.
총선에서 정권을 심판한 시민들은 윤석열 정부가 거부권으로 발목 잡고, 기존의 국회의장들이 ‘중립과 협치’를 강조하면서 고구마같이 가로막혀 온 정치 상황을 시원하게 돌파해줄 국회의장을 기대했다. 윤석열 탄핵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지금의 정치적 상황과 시점에서 추미애 국회의장이 가장 나은 대안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여기에는, 레거시 미디어가 주도한 2020~21년의 ‘추-윤 갈등’ 프레임과 마녀사냥에 속았던 것에 대한 후회, 당시 철저히 고립되었던 추미애 의원에 대한 미안함과 부채 의식, 윤석열 정권 심판에 대한 강력한 열망이 반영돼 있었다. 추미애 의원도 “국회의장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지만 중립도 아니다”, “국민 뜻을 따를 것이다”라면서 이런 ‘민심’에 응답했다.
더구나 국회의장은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에서 5선 이상을 한 다선 의원이 되는 관례에 따르더라도 추미애 의원이 국회의장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였고, 모든 분야에서 높은 자리는 대부분 중년 남성들이 차지하는 한국 사회에서 최초의 여성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것도 사람들의 기대를 모은 측면이 있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해 추미애 의원은 최근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전시 피해자로서 가장 취약한 여성 인권의 문제”, “의장이 되면 윤석열 정부에서 후퇴한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위상과 국제적 연대를 복원하겠다”고 말했는데, 일부에서는 윤미향 의원이 마녀사냥으로 발목 잡혀 못한 일을 이제 추미애 국회의장이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도 나타냈다.
결국, 레거시 미디어들이 떠들 듯이 ‘명심이 추미애에게 있고, 이재명이 추미애를 낙점했다’는 것은 사실도 아니고 본질도 아니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누구를 지지한다고 공식적으로 말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따지고 보면 추미애 의원은 소위 ‘찐명’도 아닌 이재명의 잠재적 경쟁자였다. 이재명 대선 캠프 총괄선대위원장이었던 우원식 의원도 ‘이재명 대표는 오히려 나를 지지한다’고 주장했다.
핵심은 ‘민심’이 추미애를 원했고, 민주당 지도부는 그것을 거부하지 못하며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 진실이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의 투표 결과 추미애 의원은 낙선했다. 22대 민주당 당선자로 투표에 참여한 169명 중에서 과반수 이상인 89명이 우원식 의원에게 투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민심’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라가지는 않는 선택을 했다.
국회의장은 ‘민심’을 대변하는 자리라기보다는 국회의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원내 정당들의 의견 대립을 조정하는 역할이라는 전통적 개념과 관행이 좀 더 크게 작용한 것이다. 이처럼 생각하고 판단한 민주당 의원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주요 계파들에 조직적 기반이 있고, 다선 중진 의원들과 더 긴밀한 신뢰 관계를 가진 우원식 의원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또 민주당 의원들을 더욱 신경쓰고 고민하게 만든 것은 레거시 미디어의 프레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조선일보를 비롯한 족벌언론뿐 아니라 한겨레와 경향같은 개혁(‘진보’)언론까지도 모두 ‘민주당은 이재명이 지명하는 사람이 원내대표도 되고 국회의장도 되는 일극 체제가 됐다’면서 추미애 의원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비판적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의원들은 이런 압박을 무시하기 어려웠다.
'명심이 낙점했다'는 추미애 의원이 낙선한 이번 결과는 이런 프레임이 얼마나 허구인지 드러내지만, 또다시 족벌-개혁 언론이 합심해서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데 조금은 성공한 것이기도 하다. 즉, 조중동이 앞장서고 한겨레 경향이 뒤따르면 민심의 흐름을 바꾸는 것까지는 어려워도 적어도 국회나 민주당을 흔들고 움직일 수는 있다는 것이 다시 드러난 셈이다.
족벌언론만이 아니라 개혁언론들도 자신들이 몇 년 전에 조중동의 뒤를 쫓아서 추미애 마녀사냥에 동참한 것이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기 싫었고, ‘거대양당의 협치와 국회의장의 중립’을 강조하면서 추미애 국회의장의 가능성을 막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 최초의 여성 국회의장에 대한 기대도 이뤄지지 못했다.
지난 2년간 민주당 당원이 2배 정도 늘었고, 그중에서도 대다수는 주류언론이 ‘개딸’이라고 멸시하는 여성들이었다는 점에서 이것은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다. 여전히 22대 민주당 의원 당선자의 80%는 남성이고, 이번 추미애 낙마로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젠더의 벽과 유리천장은 사라지지 않았음이 다시 드러났다. 실제로 SNS에서는 민주당 여성 지지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물론, 이 모든 지적이 우원식 의원은 개혁성이 떨어지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원식 의원은 을지로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사회적 약자나 노동자들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 준 정치인이다. 우원식 의원과 함께 일해 본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대부분 ‘믿을 수 있는 국회의원 중 하나’라고 입을 모을 정도다. 다만,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이번에 ‘민심’의 기대를 꺾으며 국회의장이 결정되는 과정 자체가 낳을 정치적 효과이다.
또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우원식 의원이 과거 차별금지법을 함께 발의한 이후에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동성애에 반대하고 차별금지법이 뭔지 잘 모르고 이름을 올렸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소수자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게 매우 중요하고 보수우파가 극우기독교 세력(태극기부대)과 손잡고 한사코 차별금지법을 가로막는 상황에서 이것은 걱정되는 지점이다.
무엇보다 씁쓸한 것은 이번 국회의장 선거 결과로 총선 이후에 형성되고 있던 개혁 입법 강공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린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와 상황이다. 총선에서 승리감을 맛본 시민들은 이제 ‘민심’을 존중하고 대변할 자세가 돼 있는 민주당 대표와 원내대표, 국회의장, 법사위원장을 만들어서 그 흐름을 이어갈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민주당 의원들이 검찰과 언론의 압박에 굴복하며 이재명 체포동의안을 가결하는 일은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 기대에 약간의 금이 갔다. 그렇다면, 나중에 ‘민심’의 압도적 다수가 윤석열 탄핵을 요구할 때도 민주당 의원의 일부가 그 반대로 투표할지 모른다는 걱정과 불안감이 자라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민주당 당원들이 탈당하고 민주당 지지율이 급락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추미애 국회의장의 현실화를 거부하고 가로막는 데 의기투합했던 레거시 미디어들은, 이제는 이번 선거 결과와 실망감을 이용해서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 당원과 지지자들을 길들이고 갈라치기 하며 힘을 약화시키는 데 이용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흔들리고 넘어가서는 안 되겠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연인원 1천700만 명이 참가한 2016년 촛불혁명과 2019년 검찰개혁 촛불시위, 검·언 카르텔의 반동 시도 등을 거치면서 정치적 격동이 일어났고 민주당은 당원이 무려 240만 명이 넘는 대중정당이 됐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10년 전에 좌파 지도자인 제러미 코빈이 일으킨 정치적 돌풍 속에 영국 노동당이 유럽 역사상 최대의 대중정당으로 성장했을 때도 당원 규모는 50만 명을 약간 넘는 정도였다. 따라서 민주당은 ‘의원 중심의 원내정당을 벗어나 당원 중심의 대중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해 있었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 민주당은 당원과 지지자들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는 ‘공천 혁신’을 통해서 이런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번 국회의장 선거에서 벌어진 ‘이변’은 여전히 갈 길이 많이 남았음을 보여 줬다. ‘공천 혁신’을 통해서 물갈이된 의원들 속에서도 여전히 ‘당원 중심의 대중정당’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거나 어긋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래서, ‘586 정치인들이 인맥과 학맥으로 연고와 계파를 형성해서 주로 교수, 판사, 변호사, 기업인 출신의 엘리트들을 충원하고 영입하는 민주당의 오랜 구조를 손봐야 하고 당원과 지지자들의 요구와 민심을 더 긴밀하게 민주적으로 반영하고 실행하는 제도적인 해결책들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이것은 민주당만이 아니라 조국혁신당과 다른 진보정당들도 같이 고민하고 더 나은 길을 찾아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강성 팬덤에 흔들리지 말고 책임 있는 전문가들이 정당을 이끌면서 적대적 공생을 벗어나 협치를 해야 한다’는 레거시 미디어와 대다수 지식인 엘리트들의 프레임은 더 이상 오늘날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 낡은 것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려는 시민 대중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참여와 동참 속에서 함께 배우고 집단적 지혜를 통해서 시대적 과제의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채해병 특검법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거부권 행사 이후에 ‘심판’을 넘어서 ‘탄핵’으로 발전할 '민심'을 받아안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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