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 1053조 원 중 ‘국채비’ 갚을 돈만 260조 원
정부 재정부채 이자 지불액만 98조 원 넘어
국채 잔고 1105조 엔(약 9945조 원), 33년간 6배 늘어
금리 1% 인상, 이자 2년 뒤 18조, 9년 뒤 78조 원 증가
재정 파탄 피하려면 소비세율 17~18%로 올려야
‘사회 연대세’ 등 새 세제 창설, 세출 삭감 주장도
일본이 20년만에 “금리가 있는 세계”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예금자가 오히려 이자를 내고 은행에 돈을 맡기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간 초저금리의 무제한 금융완화정책을 시행해 온 일본은행이 지난 3월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하고 7월에는 정책금리를 0.25%까지 추가 인상함으로써 ‘탈 아베노믹스’ 쪽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이에따라 일본경제와 일본인들의 일상생활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오랜 ‘금리 없는 세계’에 맞춰 온 세계 최대의 재정 부채국 일본이 늘어나는 이자 지불을 감당할 수 있을까? 세금을 대폭 올리거나 세출을 대폭 삭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증세나 복지예산 삭감을 용납할까?
내년 예산 117조 엔 중 ‘국채비’ 갚을 돈만 약 29조 엔
30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이날 마감된 일본의 2025년도 일반회계 예산의 미확정 개산(槪算)요구액은 117조 엔(약 1053조 원)이고, 이 중에서 국가가 빌린 돈인 국채의 이자 지불액이 10조 9320억 엔(약 98조 3900억 원)이었다. 이 이자 지불액은 결산 기준으로 사상최대였던 1991년도의 약 11조 엔(약 99조 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내년도 일본 국가예산에서 국채 이자로 나가는 돈만 100조 원에 가깝다는 얘기다.
일본 재무성은 국채 이자 지불과 원금 상환에 충당할 ‘국채비’로, 전년도 예산보다 7% 늘어난 28조 9116엔(약 260조 원)을 요구했다. 원금 상환액까지 합하면 260조 원이 넘는 돈이 내년 예산에서 정부 재정부채(빚)를 갚는 돈(국채비)으로 빠져 나간다는 것이다
정부 재정부채 이자 지불액만 98조 원 넘어
이 가운데 (원금)상환비는 3.8% 늘어난 17조 9557억 엔(약 162조 원)인데 비해, 이자 지불액은 (약 98조 3900억 원으로) 12.8%나 늘어난다. 이런 원리금 지불은 정부 세출 확대에 엄청난 부담이 된다.
일본은행이 지난 3월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하고, 7월에 정책금리를 0.1%에서 0.25%로 올림에 따라, 재무성은 이런 금융정책 변경에 따르는 장기 금리 상승을 예상한 이자 지불액 산출을 전제로 해서 10년물 국채의 금리를 산출했다. 그 결과 올해 국채 금리는 지난해 (예산)개산 요구 때의 1.5%에서 2.1%로 올렸다. 일본은행의 대규모 금융완화가 시행 중이던 2017~2023년도의 예산에서 1.1%였던 상정 금리는 이로써 단기간에 1%가까이 더 오른 셈이 됐다.
국채 잔고 1105조 엔(약 9945조 원)으로 33년간 6배 늘어
그런데 지금은 이자 지불액이 사상최대였던 1991년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당시의 장기 금리는 6% 정도로, 이번 상정 금리의 3배에 가까울 정도로 높았다. 그럼에도 이번의 이자 지불액 규모가 1991년 당시와 같은 수준인 것은 국가가 안고 있는 부채(빚) 규모가 엄청나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1991년도에 172조 엔(약 1548조 원)이었던 보통국채 잔고는 2024년도에는 1105조 엔(약 9945조 원)으로 늘어나, 33년간 무려 6배 이상으로 팽창했다.
국채는 상환기한을 맞는 것부터 지금의 금리 수준 국채로 순차적으로 바꿔 가기 때문에 이자 지불액은 서서히 늘어나게 돼 있다. 부채가 많아지면 그만큼 높은 금리의 국채로 바꿔 가는 규모도 커진다. 부채가 잔뜩 쌓인 지금의 일본 (정부)재정은 예전보다 금리 상승 영향을 더 받기 쉬운 상태다.
금리 1% 올리면 이자는 2년 뒤 18조, 9년 뒤 78조 원 증가
일본 재무성이 지난 4월에 시산한 바로는, 2025년도 이후의 금리 수준이 1% 올라갈 경우, 이자 지불액은 2026년도에 2조 엔(약 18조 원), 2033년도에는 8조 7000억 엔(약 78조 3000억 원) 더 늘어난다.
닛세이기초연구소의 우에노 다카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행은 금리 인상 자세를 견지하고 있고, 국채 매입액도 줄여 가기로 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금리는 서서히 올라갈 것이고, 이자 지불액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그 결과) 재정 악화가 진행되면 엔의 신용이 흔들리고 그것은 다시 엔 약세와 금리 인상으로 연결돼 일본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탄력적인 재정운영과 세수 증대로 이어질 경제의 개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일본 재정은 지속 가능할까?
이처럼 일본에서 ‘금리 있는 세계’가 부활할 경우 지금 어린이들이 어른이 돼 자녀 양육을 시작할 2050년 무렵의 일본 재정은 과연 지속 가능할 것인가.
사토 모토히로 히토쓰바시대 교수(재정학)은 일본의 재정이 금리인상을 견내낼 수 있을지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우리는 20년만에 ‘금리 있는 세계’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20년 전과는 풍경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사회보장비 증가로 세출이 늘어나고, 국채 발행 잔고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도 국채 이자 지불 비용 9조 6910억 엔
2024년도 예산은 국채 이자 지불 비용이 전년도의 당초 비용보다 14% 늘어난 9조 6910억 엔(약 87조 2000억 원)으로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일본은행이 지난 20년 이상 금리를 극도로 낮은 수준으로 억눌렀기 때문에 국채 잔고가 아무리 늘어나도 이자 지불액은 억제됐다. 하지만 금리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이제까지 잠자고 있던 이자 지불액이 급증할 위험이 현실화한다.
재정 파탄 피하려면 소비세율 17~18%로 올려야
사토 교수는 “금리가 1% 올라가기만 해도 이자 지불 부담이 가속적으로 늘어난다. 연금이나 의료 등 사회보장 급부가 2040년도에는 지금보다 약 50조 엔(약 450조 원)이 늘어난 190조 엔(약 1710조 원)이 될 것이라는 정부 시산도 있기 때문에, 세출 삭감만으로는 도저히 재정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정 파탄을 피하기 위한 절대조건으로 “17~18% 정도까지 소비세율을 인상(지금은 8~10%)해야 한다”고 했다.
미즈호 리서치 앤 테크놀로지의 사카이 사이스케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사토 교수와 마찬가지로 “2050년 시점에서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려면, 소비세율 15% 이상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사카이는 정부와 일본은행이 설정한 2%의 물가 안정목표이 실현과 금융정책 정상화에 따르는 ‘금리 있는 세계’를 상정하면, 경기가 확대돼 국내총생산(GDP)을 끌어 올리고 세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일반적으로 세수가 늘면 재정의 지속 가능성도 올라가지만, 사카이는 “일본의 재정은 금리가 올라가시 시작한 시점에서 이미 거액의 채무를 껴안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면서 “중장기적으로는 GDP 상승에 따른 세수 증대보다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지불 증가가 더 많을 것”이라고 봤다.
사카이는 이자 지불액 증가에다 급증하는 사회보장 급부액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사회보험료 인상이나 증세로 세입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하지만 사회보험료를 인상할 경우 주요 담당자들인 현역 세대에 부담이 집중괸다. 이 때문에 사카이는 “사회보장비를 충당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재원으로, 고령 세대까지 포함해서 사회에 폭넓고 얕은 부담을 요구하는 소비세(인상)가 이상적”이라고 강조했다.
‘사회 연대세’ 등 새 세제 창설 주장도
한편 “소비세 증세가 바람직한 수단”이긴 하지만 정치적인 장벽이 높기 때문에, 새로운 세제 창설을 선택지로 드는 전문가도 있다. BNP 파리바증권의 고노 류타로 수석 이코토미스트다.
고노는 “이미 채무가 엄청나게 팽창해 있는 상황에서 30년 안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수도권 직하 지진이나 난카이 해곡 지진과 같은 대규모 재난이 겹칠 경우 재정이 그것을 흡수하기 어렵다”고 예측하면서, 방위비에서 저출산 대책비까지 폭넓은 예산의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회 연대세’ 도입을 제안했다. 2, 3년마다 0.5%포인트씩 단계적으로 세율을 올려 2040~2090년 정도까지 10~15% 세율을 실현하자는 구상이다.
고노는 “장기적으로 일본 재정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지만, 경기를 꺾지 않고 경제성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조금씩 간격을 둔 증세가 바람직하다”고 했다.
“증세, 사회보험료 인상보다 세출 삭감이 정답”
2050년의 ‘재정 서바이블’(지속 가능한 재정)을 위해 증세나 사회보험료 인상보다 세출 삭감을 통한 재정 건전화를 우선해야 한다는 전문가도 있다. SMBC 닛코증권의 미야마에 고야 선임 이코노미스트다.
미야마에는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초래한 2014년 4월의 5%에서 8%로의 소비세 인상을 예로 들면서, 세입 확보를 위한 증세는 경기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년 되풀이되는 추가경정예산 삭감을 비롯해 재정 낭비와 사업규모를 먼저 줄여, 부담을 늘리기보다 세출을 삭감하는 것이야말로 재정 건전화의 요체”라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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