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진흙탕, 시궁창이라는 평가를 받은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가 막을 내리고 한동훈 대표 체제가 시작됐지만, 막장까지 갔던 당내 갈등의 여파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가 만찬을 하고 '러브샷'까지 했지만, 어디까지나 '외적인 화합'일 뿐이었다. 두 사람을 둘러싼 정치권 움직임은 겉으론 '단합'이라는 달콤한 말을 외치며, 배에 칼을 찌르는 '구밀복검' 형국이다. 파열은 이제 시작이다. 

윤석열과 한동훈, 두 사람의 '불편한 동거'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관심이다.

"한동훈 특검과 채 상병 특검은 한몸"

동훈 반대파, 새 체제 출범부터 견제

반(反) 한동훈계의 반발은 예상보다 빨랐다.

'한동훈호(號)' 출범 첫날인 24일, 국민의힘 김재원·김민전 신임 최고위원은 한 대표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대법원장 등이 추천하는 방식의 채 해병 특검법안(일명 제삼자 특검법안)에 대해 원내 사안인 만큼 추경호 원내대표의 뜻을 따라야 한다며 '원외'인 한 대표에게 대놓고 간섭하지 말라는 뜻을 전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KBS 라디오 <전격시사>와 인터뷰에서 "채 상병 특검법은 국회의원들이 표결하고 국회에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내대표에게 전권이 있다"며 "당 대표와 원내대표의 의사가 다를 때는 원내대표 의사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또 "(한 대표가) 이 문제에 대해 정치인으로서 의견을 내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의사가 다르다면 원내대표 의사에 따라야 한다"며 "만약 의원총회에서 이미 결정이 됐다면 이견을 말하는 것도 굉장히 조심스러워해야 한다"고 했다.

김 최고위원은 과거 한 대표가 검사 시절, 자신을 기소했던 '악연'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2018년 2월 제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사 과정에서 기소가 됐다"며 "서울지검 특수3부에서 수사를 받고 기소가 됐는데 그때 수사의 총괄 책임자이자 지휘자가 한동훈 3차장 검사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징역 5년, 벌금 10억 원, 추징금 2억 5000만 원의 구형을 받고 기소가 됐었는데 그 구형까지도 전부 한동훈 차장검사가 지휘했다고 알고 있다"면서 "(한 대표는) 저를 교도소로 '골인'시키려고 했던 분"이라고 했다.

김민전 최고위원도 채 해병 특검법이 원내 사안이므로 원외에 있는 한 대표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며 말을 맞췄다. 그는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와 인터뷰에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입장이나 특검 임명 문제는 원내 전략에 해당하는 것"이라면서 "당 대표가 이래라저래라 할 얘기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친윤계 추경호 원내대표 역시 한 대표의 제삼자 특검법안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추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국회 기자 간담회에서 한 대표의 제안에 대해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25일 의원총회에서도 "채 상병 특검법을 당론으로 반대할 것"이라며, 협상의 여지를 닫았다.

이러한 움직임에 친(親) 한동훈계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반격에 나섰다. 전당대회 뒤 언급된 '단합'과 '화합'은 온데간데없는 모습이었다.

김경율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이날 채널A 라디오 쇼 <정치 시그널>에 출연해 김민전 최고위원이 '특검법안 처리는 원내대표 소관'이라고 문제삼은 데 대해 "당 대표가 이래라저래라 못한다고 하는 건 의아스럽다"면서 "그렇게 따지면 김 최고위원은 원외인 보좌관들의 도움을 안 받느냐"고 비판했다. 원내 사안이어도 원외인 대표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한 대표는 일단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 표면적으로 국민의힘 전체가 한 배를 타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는 데 주력했다. 전당대회 기간 당내 분열이 극에 달했던 만큼 최대한 갈등 상황을 피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새 지도부 출범 이후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저는 전당대회 내내 민주당이 발의한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서 강력히 반대해 왔다"면서 "오늘 민주당의 그런 얄팍한 기대가 착각이라는 것을 우리가 하나로 뭉쳐서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실제 오후 본회의에서 채 해병 특검법은 재표결에 부쳤으나 부결됐다.

다만 한 대표의 발언은 민주당 법안에 대한 반발일 뿐, 채 해병 특검법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 변화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특검법 재의결 반대 이유에 대해 "선수(야당)가 심판(특별검사)를 고르는 것이고, 사법 시스템을 파괴하는 무소불위의 법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법안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닌 특검 추천 방식만을 문제 삼은 것이다. 한 대표는 지난 23일 당 대표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특검법에 대해 "지금도 생각이 같다. 당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토론해 보겠다"고 했다. 전날인 24일에도 재차 "내 입장에 변함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한 대표가 '당심' '민심'을 내세워 특검법과 관련해 당내 토론을 강조하고 있지만, 친윤계가 '특검은 무조건 안 된다'는 입장인 만큼, 이를 두고 친윤계, 반한동훈계의 본격적인 견제가 전망된다. 김건희 씨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 대표는 김건희 특검엔 반대했지만, 당 대표 당선 직후 김건희 씨 비공개 특혜 조사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면서 용산의 '역린'을 건드렸다.

이미 친윤계는 한 대표가 당선될 경우 선출직 최고위원 5인 중 4인이 사퇴해 지도부를 붕괴시키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는 시나리오를 구상했었다. 장동혁 최고위원, 진종오 청년최고위원이 지도부에 들어가면서 5인 중 2인이 친한동훈계로 채워져 방어는 했지만, 친윤계가 모종의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거 친윤계가 이준석·김기현 대표를 완력으로 제압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야당이 상정한 '채 해병 특검법'과 '한동훈 특검법'이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권 일각에선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을 직격하는 채 해병 특검법을 통과시킬 경우, 한동훈 특검법을 통과시키는 시나리오도 언급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한동훈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해 반대했다는 정치적 명분을 갖고, 재의결 무기명 투표에서 친윤계가 찬성표로 넘어가면 특검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친윤계인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24일 KBC 광주방송 <여의도 초대석>과의 인터뷰에서 "채 상병 제3자 특검과 한동훈 특검은 한 몸처럼 붙어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이나 김건희 씨와 각을 세운다면 친윤계에서 집단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로 해석된다.

한 대표 입장에선 62.8%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음에도, 주도권을 행사하면 당 안팎으로 극심한 갈등에 휘말리게 되고, 주도권을 내주면서 어정쩡하게 공생하면 윤 대통령과 친윤계에 잡아먹히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셈이다. 이만한 지지를 받고도 자기 정치를 못 한다면 죽기는 매한가지다.

한동훈 '독대' 없이 원희룡·나경원도 만찬에

"축하자리도, 위로자리도 아닌 이상한 자리"

전날 있었던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만찬도 이러한 양쪽의 불편한 기류를 반영한 듯 했다.

두 사람의 공식적인 식사 자리는 '1차 윤-한 갈등' 이후 가졌던 지난 1월 29일 이후 6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총선이 끝난 4월 중순 있었던 윤 대통령의 식사 제안은 한 대표가 건강상 이유로 거절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그간 갈등을 봉합하자는 듯, 전날 만찬 인사말에서 "당내 선거는 선거가 끝나면 다 잊어버려야 한다.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잘할까 그것만 생각하자"면서, 신임 지도부를 향해서도 "우리는 다 같은 동지라고 생각하고, 대통령실 수석들과 바로바로 소통하시라"고 당부했다. 표면상 당정 간의 단합과 당내 화합을 주문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두 사람의 불편함, 껄끄러움은 만찬 자리로 그대로 이어졌다.

지난해 3월 전당대회에서 '윤심 후보'였던 김기현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가진 만찬엔 안철수, 천하람 등 당 대표 경선 출마자들은 초청되지 않았다. 오로지 김기현 체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특별한 만찬을 가졌다.

그러나 이번 만찬에는 신임 지도부뿐만 아니라 나경원, 윤상현 의원과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 등 한 대표의 경쟁자들이 함께 참석했다. 한 대표를 위한 자리로만 보기 어려웠다. 신임 당 대표와 대통령의 독대도 없었다. 만찬 기념 사진에서조차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왼쪽에 한동훈 대표, 오른쪽에 추경호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장관, 윤상현 의원으로 갈라졌다.

이 때문에 채 해병 특검법뿐 아니라, 전당대회 기간 불거진 '김건희 씨 문자 읽씹(무시) 논란' 등으로 껄끄러워진 윤석열, 한동훈 두 사람의 관계를 반영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JTBC>는 만찬과 관련, "한 대표 쪽에서 '축하 자리도, 위로 자리도 아닌 이상한 자리'라는 불만도 나왔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을 두고도, 한 대표를 견제하려는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만찬 참석자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우리가 앞으로 하나가 돼 우리 한동훈 대표를 잘 도와줘야 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혼자 해결하도록 놔두지 말고 주위에서 잘 도와달라"고 말했다. 또 "같이 식사하고, 술도 마시고, 상갓집도 가며 친밀하게 스킨십이 있어야 리더십이 생기는 것"이라며 "여러분이 한 대표를 모시고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상갓집도 가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겉으로 덕담처럼 읽힌다. 하지만 주요 당직자들 면전에 대놓고 당 대표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혼자 해결하도록 놔두지 말라"거나, 술도 안 마시는 한 대표를 "모시고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상갓집도 가라"고 조언한 것은 62.8% 지지를 받은 신임 당 대표에 대한 존중보다는 '옛 보스'가 '부하'를 대하는, 즉 상하관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듯한 태도로 보인다. 한 대표가 강조한 당정 수평관계와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간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 '윤석열 사당' 격이었던 국민의힘이 대통령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이 된 만큼 '정치 초보'인 한 대표와 신임 지도부를 압박하고 동시에 경계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한 대표 입장에서 보면 한편으로 굴욕이다.

김유정 전 민주당 의원은 국회방송 <국회라이브1>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한 대표가 외롭지 않게 해야 된다 얘기하고 있는데 정작 대통령은 그렇게 했나. 이준석, 김기현 대표 다 뒤끝 있었던 모습을 익히 봐왔기 때문에 그 말이 그대로 안 된다는 건 너무 잘 알고 있다"면서 "어제 곧바로 친윤 최고위원들의 견제구 들어오는 거 보면, (갈등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용주 맥 정치사회연구소 소장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한 대표가 김건희 여사를 오르락내리락하거나 채 해병 특검을 막 밀어붙이거나 하지 않도록 (지도부에게) 잘 감시하라는 소리"라고 해석했다. 그는 "김재원, 김민전 최고위원의 발언이 첫 스타트가 된 것"이라며 "한 대표가 진퇴양난이고 굉장히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결국엔 힘겨루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일부 언론에선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러브샷'을 했다며 화합의 의미를 강조했지만, 이에 대한 비판적인 논평도 나왔다.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러브샷은 술자리에서 안 친한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라며 "친해지기를 바라, 뭐 이런 뜻을 담아서 하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박 전 의원은 그러면서 "현충원 참배 장면이 여당의 신임 당 대표 참배 장면치고는 굉장히 간소했다. 몇 사람 안 갔다. (…) 현역 의원들은 거의 없었다"면서 "지금 국민의힘의 전당대회 이후의 기류가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63%를 받은 당 대표가 현충원 참배를 가는데, 이준석 대표가 됐을 때 현충원 참배 모습보다도 규모나 모양 자체가 굉장히 맥 빠지는 모양이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