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부하와 불편한 동행 예고하듯 불편한 표정
김기현 선출 땐 어퍼컷하며 신나하더니…
레임덕 재확인한 용산…여권 분열 신호탄 되나
무릎꿇기도, 반기 들기도 어려운 한동훈 딜레마
정치력 시험대…계파갈등 정리 못하면 보수궤멸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불편한 동행의 시작
이변은 없었다. 예상대로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이었다.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62.8%를 득표, 4명의 후보 중 과반 1위를 차지했다. 원희룡은 18.8%, 나경원은 14.6%, 윤상현은 3.7%였다. 한 전 위원장의 압도적인 과반 득표로 결선 투표는 진행하지 않게 됐다.
그러나 전당대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의 표정은 시종일관 어딘가 불편한 모습이었다. 대통령실의 노골적인 당무개입으로 '윤석열 사당' '김기현 꼭두각시 체제'를 만들었던 지난해 전당대회 당시 윤 대통령은 대선 때 했던 '어퍼컷' 세리머니를 보여주며 마치 자신이 당선된 것처럼 활짝 웃었고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옛 보스'와 '부하'의 불편한 동행을 예고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윤석열의 언짢은 미소
23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지난해 전당대회와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3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전당대회는 대통령실이 사실상 김기현 후부로 '교통정리'를 하면서 전당대회라기 보다는 '윤석열 사당 대회'에 가까웠다. '윤석열당' 탄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관련 기사 2023년 3월 8일자 <시대 역행한 국힘 전당대회…윤석열 우상화 대회로 전락>
하지만 윤 대통령이 개선장군처럼 입장하며 당원들의 환호에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던 지난 전당대회 행사장과 달리, 올해 대통령이 입장할 때는 그만한 환호도 없었다. 멀리서 대통령의 입장을 가만히 지켜만 보는 당원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확인됐다. 최근 대통령에 대한 여권 내 반감과 낮은 국정수행 지지율을 보여주는 듯 했다.
한 전 위원장이 '옛 보스'인 대통령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지만, 윤 대통령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은 채 악수만 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지난 1월 첫 '윤-한 갈등' 직후, 서천 화재 현장에서 한 전 위원장이 대통령에게 '90도 폴더 인사'를 하고 윤 대통령이 팔을 툭 치던 모습과 비교하면 단 몇 개월 만에 달라진 풍경이었다.
주요 당직자들이 대놓고 '윤석열 띄우기'에 나섰지만, 지난 전당대회처럼 낯뜨거운 수준의 '윤비어천가'는 눈에 띄게 줄었다.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헌승 전당대회 의장은 지난해 전당대회 인사말에서 "내일이 우리 윤 대통령께서 5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낸 대선 승리 1주년 되는 날"이라면서 "윤 대통령 승리는 바로 이 자리에 계신 당원 동지의 승리"라고 외쳤다. 이에 당원들은 장내가 진동할 정도로 "윤석열" "윤석열"을 연호했다.
그러나 이 의장은 올해 인사말에서 "바쁜 국정운영에도 불구하고 저희 당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주시기 위해 직접 참석해주신 1호 당원 윤 대통령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겠다"며, 가볍게 소개했다.
이 의장은 오히려 "아직 대통령 임기가 3년 가까이 남아있다. 윤 정부가 성공해야 국민의힘이 정권을 재창출 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 임기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고, 연설을 듣고 있던 대통령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이 의장은 전당대회 기간 당내 갈등을 의식하듯 "뭉치자"라고 연신 외쳤지만, 윤 대통령은 앉은 자리에서 옅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추경호 원내대표도 "천장이 들썩일 정도로 윤석열을 세 번 외쳐달라"고 했지만, 지난해 전당대회 수준의 호응은 없었다. 추 원내대표 역시 전당대회 기간 극단으로 치달은 갈등 국면을 의식한 듯 "뭉치자, 뭉치자 뭉치자"라고 연신 외쳤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주호영 원내대표가 "윤석열"을 연호하거나 "힘내라 대한민국" "힘내라 국힘의힘" 같은 구호를 외친 것과는 딴판이었다.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이 "우리 당의 1호 당원이신 자랑스러운 윤 대통령이 더욱 힘차게 (나라를) 잘 이끌어주십사하고 힘찬 박수와 환호를 바란다"고 제안하자, 가장 큰 환호가 나왔다. 하지만 대통령은 당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고개 숙여 인사만 했다. 황 위원장이 "퇴임할 때 60% 이상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꼭 만들어주자"고 했지만, 대통령은 크게 웃지 않고 자리에 앉아 조용히 박수만 쳤다.
윤 대통령 본인 역시 지난해 전당대회 축사를 위해 연단에 올라올 때, 어퍼컷을 하며 마치 자신이 전당대회에 출마한 것처럼 분위기를 즐겼지만, 올해는 손을 흔들고 조용히 인사만 했다.
윤 대통령도 축사에서 여권 분열을 의식하듯 "아무리 일을 하고 싶어도 제대로 일하기 어려운 정치 상황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거대 야당은 시급한 민생현안, 한시 바쁜 경제 정책을 외면한 채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면서 "극단적인 여소야대 상황을 이겨내고 이 나라를 다시 도약시키려면 무엇보다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극단적인 여소야대가) 우리 당이 바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라며 "국민의힘은 저와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는 집권 여당이다.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이고 우리는 하나"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통령의 연설 중간에 일부 당원들이 "윤석열"을 연호하거나 박수를 치기도 했지만, 함성의 크기는 이전 전당대회와는 달랐다.
윤 대통령은 축사 뒤 전당대회 결과는 보지 않고 퇴장했다. 마치 누가 당 대표로 선출되는지 아는 듯한 뒷모습이었다.
레임덕 재확인한 용산
한 전 위원장이 62.8%로 결선 투표도 가지 않고 과반으로 당 대표에 당선되고, '윤심 후보'인 원희룡 후보는 18.8%로 크게 밀리면서 용산 대통령실에선 윤 대통령의 레임덕(권력 누수)을 재확인한 모습이다. 예상되는 결과였지만, 충격이 적지는 않아 보인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여론조사에서도 원희룡이 나경원한테도 밀려서, 이미 용산에선 레임덕 이야기까지 나왔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현실 인식이 뒤쳐졌을 뿐, 대통령의 레임덕은 이미 4·10총선 참패 직후 시작됐고,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한 후보들이 대통령 부인을 소재로 진흙탕 싸움을 할 때, 레임덕이 현실화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차기 대권까지 바라보는 당권 주자들에게 '금단의 영역'이었던 대통령 부인 문제는 이제 자신들의 권력 쟁취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과거와 같은 두려움은 없었다.
전당대회가 '자멸쇼' '자폭대회'로 치닫는 동안 대통령실은 아무런 컨트롤을 하지 못했다. 친윤 진영에서 시작된 한 전 위원장의 '김건희 씨 문자 읽씹 논란'은, 한 전 위원장이 김건희 씨의 문자 공개에 '당무개입'이라고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야당의 공격 소재까지 됐다. 용산은 김건희 씨가 전면에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지만, 후보들은 갈등을 멈추지 않고 거리낌없이 김건희 씨 이름을 입에 올렸다.
급기야 '친윤' 장예찬 전 최고위원의 폭로에 의해 김건희 씨 문자 논란이 한동훈 전 위원장의 '댓글팀 운영' 의혹으로 번지고, 갈등이 폭발하면서 지지자들끼리 난투극까지 벌였다. "배신자는 꺼지라"며 의자를 던지는 원희룡 후보 지지자와 이를 제지하는 한 전 위원장 지지자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면서 곳곳에서 사람들이 다쳤다. 눈뜨고 보기 힘든 진흙탕 싸움이었지만, 대통령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한동훈의 난제
전당대회가 어떻게 끝났든 '역대급' 막장 난투극으로 치달았던 만큼 한 전 위원장 입장에선 당내 갈등을 수습하고, 당정 관계, 대통령(또는 대통령 부인)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위원장도 이날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경선 과정에 모든 일을 잊자, 하루 아침에 잊을 수 없다면 며칠 몇 날이 걸려서라도 잊자라고 말했다"면서 "경쟁한 모든 분과 함께 가겠다. 각별한 정성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건희 씨 '문자 읽씹'에 따른 '당무개입' 파문 △한동훈 전 위원장의 법무부 장관 시절 '댓글팀 운영' 파문에 이어 △나경원 후보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하 부당 청탁'까지 폭로되면서 후유증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감정적인 문제나 개인간 신뢰 문제도 있지만, 야당이 이들 사건을 수사기관에 고발하면서 본격적인 사법 리스크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정 관계 정립은 한 전 위원장 입장에서 더더욱 딜레마다. 유시민 작가는 최근 <시민언론 민들레> 칼럼에서 "국힘당 대표 한동훈은 벗어나기 어려운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어 있다. 그는 윤석열에게 꿇어도 안 되고 대들어도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차기 대권을 위해 한 전 위원장이 차별화하면 용산과 부딪힐 수밖에 없는 한계점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만큼 한 전 위원장에게 주어진 정치 환경은 고도의 균형 감각을 요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게 그만한 정치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전당대회 출마 일성으로 "당정 관계의 수평적 재정립"을 공언한 한 전 위원장은 친윤계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사사건건 부딪혔다. 그럼에도 한 전 위원장은 전당대회 직후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김건희 씨 비공개 조사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용산의 '역린'을 또다시 건드렸다.
아울러 한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직결되는 채 해병 특검법에 대해서도 "우리 당이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하나하나 순리대로 풀어나갈 거란 말씀을 드린다"면서 추진 의사를 밝혔다. 한 전 위원장 입장에서는 이러한 입장이 차지 대권을 위해 차별화하는 지점이 될 수 있지만, 용산이 그의 구상대로 길을 터줄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절반 이상 남았고, 한 전 위원장의 당내 조직이 불안정한 만큼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 대통령실과의 직접 충돌은 한 전 위원장의 정치적 입지 자체를 흔들 수 있다. 한 전 위원장 역시 이러한 자신의 한계, 모순적인 입지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씨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를 언급한 한 전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역설적으로 "아직 일정을 구체적으로 잡지 않은 상태지만, 당연히 당정관계를 생산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대통령을 찾아뵙고 자주 소통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가 김건희 씨를 건드리고 채 해병 특검법에 찬성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실이나 친윤계가 가만히 지켜볼 지는 의문이다.
친윤계는 한 전 대표가 당선될 경우 선출직 최고위원 5인 중 4인이 사퇴해 지도부를 붕괴시키고 비대위로 전환하는 시나리오를 구상했었다. 이른바 '3일 천하'라 불리는 '김옥균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요행히 친한동훈계 장동혁, 진종오 후보가 각각 최고위원, 청년최고위원에 당선돼 방어는 했지만, 친윤계가 과거 이준석·김기현 대표를 완력으로 제압한 사례가 있었던 만큼 한 전 위원장에겐 불안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만한 선택지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 유지 정도로 보이지만, 소극적인 선택지일 뿐 아니라 용산에 종속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반대로 한 전 위원장 역시 세력을 모아 적극적으로 탄핵 저지선을 흔들거나, 채해병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등으로 정권의 핵을 찌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 역시 '한동훈 특검법'으로 얽혀 있어 마음대로 치고나갈 환경은 아니다. 여권 내부에서 "대통령이 한동훈 특검법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란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원외에 있는 한 전 위원장이 개인기로 야당까지 컨트롤하며 돌파하긴 어려워 보인다.
여권 분열의 시작
한동훈호(號)가 우여곡절 끝에 출항했지만, 진흙탕 경선으로 촉발된 계파 갈등은 향후 여권 분열의 시작점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 전 위원장에게는 또다른 난제다.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한 후보가 당 대표가 되든 실패하든 친윤·비윤은 갈라지게 돼 있다"며,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여권이 분열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극우·보수 진영 내에서도 비슷한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는 "한동훈이 당 대표가 된다면 이준석 전 당대표 이상으로 당정 관계에 심각한 불협화음이 일어날 것"이라며 "2026년의 지방선거, 2027년 대선 패배로 이어지면서 아마 '보수의 궤멸'까지도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벌써 반응은 나타난 모습이다. 차기 대권주자로 불리는 홍준표 대구시장은 한 전 위원장이 대표로 선출되자마자 페이스북에 "당분간 중앙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아야겠다"며 "당원들의 선택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실망"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단합해서 이 난국을 잘 헤쳐 나가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한 전 위원장은 수락 연설에서 "저는 당내 이견있을 때 항상 당원들께 ,동료들께 설명드리고 경청하고 설득하겠다. 저는 저를 지지하지 않은 분들의 마음 챙기겠다"며 원론적인 발언을 내뱉었지만, 지난 총선에서도 실패했던 총책임자가 원내도 아닌 원외에서 어느 정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는 여전히 정치 경험이 짧은 초보다. 그가 여태까지 보여준 것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감 외엔 없다. 정책적인 역량을 보여준 바도 없다.
당내 갈등을 수습하고, 계파 등을 잠재우고, 대통령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여소야대 상황에서 복잡하게 맞물린 정국을 뚫고 가는 것은 노련한 정치인에게도 쉬운 과제가 아니다. 한 전 위원장이 적절한 균형 감각과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의 미래는 몰락의 길을 걷는 '옛 보스'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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