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반 때 과태료가 고작이라 있으나마나

담당 공무원이 대상이 되면 적용 쉽잖아

블랙리스트 핵심 용호성이 차관승진하는 현실

홍태림 미술비평가, 문화연대 집행위원
홍태림 미술비평가, 문화연대 집행위원

1948년 제정된 헌법 제14조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저작자, 발명가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고 했다. 이처럼 헌법에 명시된 예술의 자유는 제헌헌법에서부터 6공화국 헌법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대한 헌법의 규정과 헌법을 통해 발현되는 현실 사이의 깊은 괴리는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냉전의 최전선인 한국에서 헌법의 가치는 너무나 쉽게 무시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1987년 체제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쳐 비로소 약진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진전은 이명박 정부에 접어들어 급격히 형해화되더니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국면에 이르러 철저히 파괴되기에 이른다.

문화·예술 현장은 2017년부터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 보호, 성평등 환경 조성, 예술인의 직업 권리 신장을 위해 협의체를 구성하여 장기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따라서 2019년에 더불어민주당에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권리보장법)을 발의했으나 국회 법사위의 문턱을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다행히도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문화·예술 현장이 연대와 투쟁을 힘겹게 이어간 덕분에 2021년 8월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제헌헌법에서부터 명시되었던 예술가의 권리가 21대 국회에 이르러서야 법률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권리로 구체화된 셈이다.

입법 과정에서 형해화된 예술인권리보장법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된 것은 분명 큰 진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법이 어느 정도의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20대 국회에서 발의되었던 예술인권리보장법도 예술인에 예술교육 활동을 하는 자를 포함하지 않거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자를 처벌하는 내용, 예술인 권리 침해 사안 및 성폭력 관련 사건을 심의·의결하는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 등과 같은 핵심 내용들이 일방적으로 삭제 및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 이 법이 다시 발의될 때도 앞서 언급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으나, 예술인권리보장법 추진 협의체의 문제 제기로 기존 법안을 가능한 선에서 일부만 보완하여 현재의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

 

22대 국회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 개정을 대표발의 한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출처: 연합뉴스
22대 국회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 개정을 대표발의 한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출처: 연합뉴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국회를 통과한 후 시행령 준비 기간을 거쳐 2022년 9월에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문화·예술 현장의 충분한 의견 반영은 이뤄지지 않았기에 법이 시행되고 나서도 당사자들의 우려는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을 근거로 예술인 권리 침해 사안 및 성희롱·폭력 사건을 심의·의결하는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가 2023년 1월에 출범했으나 표현의 자유 사안에 대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위원은 위촉되지 않았다. 애초에 예술인권리보장법이 국가권력이 주도하는 검열 억제를 위한 내용이 매우 미진하다는 평가가 자자한 상황에서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위원 구성을 이렇게 부실하게 한 것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문체부의 반성이 없다는 인식을 더욱 확산시킬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기존의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개정될 필요성이 있다는 논의가 계속 거세졌다. 이런 흐름 위에서 최근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은 예술인, 예술단체의 활동을 방해한 자를 형사 처벌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예술인권리보장법을 곧 대표 발의할 예정임을 언론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22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예술인권리보장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필자도 이 법의 어떤 측면들이 보완될 필요가 있는지 다시 짚어보고자 한다.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의의 체계성 강화

현재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운영은 문체부 예술인지원팀의 공무원 3인이 맡고 있다. 물론 전국에서 다양하게 발생할 권리보장 사건을 문체부 공무원 3인이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문체부는 산하기관인 예술인복지재단의 사무처 직원 몇 명에게 이와 관련된 업무들을 대행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이런 땜질식 운영 구조는 장기적으로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의 안정적 운영을 담보할 수 없다. 이런 구조는 예술인권리보장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인력의 체계적 확보에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4년 기준으로 체육계에서 학교 및 직장 운동부, 전문클럽 선수 인구는 13만 명이 넘는다. 그리고 13만 명이 넘는 체육인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설립된 스포츠윤리센터는 현재 직원이 40명에 이른다. 그런데 예술인복지위원회는 예술인복지재단을 통해 예술인증명을 받은 이들만 18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10명 내외의 불안정한 인력에 기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예술인권리보장 업무를 맡은 이들이 겪는 과부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은 2023년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된 이후 1년간 약 160건의 신고가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로 접수되어 문체부 공무원 3인이 1인당 1달 평균 5.4~5.9의 사건을 다룬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따라서 차후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를 행정기관의 사무 일부를 독립해서 준입법, 준사법적 기능을 수행하는 (중앙)행정위원회 정도까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법인으로 규정하여 별도의 사무국을 운영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후 예술인복지재단의 권리보장 업무를 이관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예술인권리보장법 제25조에 따라,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의 의결을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 공개하게 되어 있음에도 그 내용들을 찾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므로, 별도의 홈페이지를 구축하여 (개인정보 침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의결 내용의 공개는 물론이고 상담·신고, 이의신청, 교육·연구 자료에 대한 접근성도 높일 필요가 있겠다.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운영의 독립성, 자율성 강화

예술인보호관은 권리침해 및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조사와 분쟁조정 지원, 정책 수립 및 시행과 같은 중요 업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이런 중임을 문체부 예술정책관 1인이 겸직하여 수행한다는 것은 전문성과 자율성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가령 자율성 문제는, 박근혜 정부 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문체부에서 다시 재발하여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의 사건으로 접수되었을 때, 문체부 장관의 아래에 있는 예술정책관이 문 장관을 조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가를 떠올려 보면 쉽게 그 문제점을 알 수 있겠다. 따라서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라는 취지를 담은 예술인권리보장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하여 현재의 예술인권리보장법 제27조와 같이 문체부 장관이 소속 공무원 1인을 예술인보호관으로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개방직 방식을 통해 소명의식과 전문성을 겸비한 예술인보호관 2인(표현의 자유, 성희롱·성폭력 각 1인) 체제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술인보호관과 달리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위원은 공모 방식으로 민간인이 위촉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표현의 자유라는 핵심 사안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위원이 1명도 위촉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예술인권리보장법 제21조 ‘위원 자격’에서 명시된 예술인 권리보호에 표현의 자유를 추가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예술인권리보장법 제22조 ‘위원의 결격 사유’에 정당법에 따른 당원을 추가할 필요도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위원 중 김윤후 위원은 국민의힘 당원임은 물론 김건희, 윤석열 등에 대한 찬양과 친분을 온라인으로 꾸준히 과시하고 있어, 현 정부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 사안이 생겼을 경우 공정성을 발휘하기 매우 힘들 것이라는 우려를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김건희, 윤석열 부부와의 정부 주요 인사들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현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김윤후 위원의 페이스북
김건희, 윤석열 부부와의 정부 주요 인사들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현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김윤후 위원의 페이스북

한편 현재 예술인권리보장법의 구제 조치는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의 의결 내용을 문체부 장관이 집행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의 예술인권리보장법은 현재의 예술인보호관의 자율성 문제와 마찬가지 맥락으로, 현직 문체부 장관이나 공무원들이 과거 김종덕, 조윤선 시기 문체부처럼 장관과 공무원들이 표현의 자유를 파괴했을 경우에 대한 대응력이 전혀 없다. 따라서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의 구제 조치를 최종적으로 집행하는 문체부 장관이 권리침해 당사자가 되었을 경우에 구체 조치를 대신할 행정 단위를 예술인권리보장법에 명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처벌 조항 미비 덕에 차관까지 된 블랙리스트 핵심 공무원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령에는 권리침해나 성희롱 및 성폭력, 불이익 조치 등 대한 시정명령을 받은 후 정해진 기간까지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250~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그리고 사건 조사에 비협조할 경우에는 150~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근거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과태료 기준은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 전부터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이러한 우려는 고 이우영 작가의 <검정고무신>에 대한 불공정행위에 대하여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의 시정 명령이 있었음에도 ‘형설퍼블리싱’이 행정명령을 불이행하는 상황을 통해 재점화되었다. 이에 따라 국민의 힘 김승수 의원은 예술인권리보장법에 시정명령 미이행 시 100분의 3에 해당하는 과징금 부과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처럼 구제 조치의 구속력 강화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과 벌도로 예술인권리보장법을 어긴 자가 과태료 외에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근거를 추가하는 것도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2018년 6월에 전·현직 문체부 공무원과 산하 공공기관 임직원 가운데 26명은 검찰 수사 의뢰, 105명은 징계하라고 문체부에 권고했다. 그러나 문체부는 진상조사위가 제시한 131명 중 68명만 검토 대상으로 삼은 후 수사 의뢰 7명, 주의 조치 12명이라는 입장을 내놨다가 문화·예술계의 거센 항의에 부딪히자 10명 수사 의뢰, 68명을 징계·주의 조치라는 여전히 실망스러운 결론을 냈다. 이에 따라서 문화·예술 현장에서는 예술인권리보장법을 어긴 자의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논의가 재점화되기도 했다.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문체부 1차관으로 임명된 용호성과 그의 1차관 임명을 반대하는 문화·예술 현장의 성명서, 사진출처: 연합뉴스, 블랙리스트 이후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문체부 1차관으로 임명된 용호성과 그의 1차관 임명을 반대하는 문화·예술 현장의 성명서, 사진출처: 연합뉴스, 블랙리스트 이후

앞선 논의는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헌법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현행법에 형사 처벌 조항이 없어 검열이 발생했을 때 고위 공무원들에게 적용이 쉽지 않은 직권남용죄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현실로부터 비롯되기도 했다. 그래서 청와대, 국정원으로부터 시작된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하위직 공무원 그리고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의 임직원 및 민간 심사위원 등은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의 위치를 점하기도 했다. 또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검찰 수사 의뢰가 필요한 핵심 인물로 명시한 문체부 공무원 중에 용호성의 경우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직 문체부 장·차관 12명이 그에 대한 중징계를 재고해 달라고 청원서를 만들어 결국 불문경고라는 경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중대한 국가범죄의 핵심인물로 지적되었음에도 솜방망이 징계만을 받았던 용호성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문체부 1차관으로 임명되기까지 했다. 조금 더 일찍 형사 처벌 조항이 담긴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되었다면 용호성 같은 자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며 차관으로 승진까지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측면에서도 이번 국회에서는 예술인권리보장법을 개정할 때 형사 처벌 근거를 반드시 추가하여 헌법에 명시된 예술 표현의 자유가 법률을 통해 실질적으로 수호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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