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만의 정권 교체, 노동당 의회 70% 장악

탈EU 4년 세월 영국인들 심각한 삶의 질 저하

스타머 당수, 급진좌파 ‘코빈 노선’과 결별

키어 스타머 영국 노동당 대표가 조기 총선을 하루 앞둔 3일(현지시간) 레디치에서 유세 도중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제1야당인 노동당의 지지율이 집권 보수당을 큰 격차로 앞서면서 스타머 대표는 차기 총리가 유력시되고 있다. 2024.07.04. 로이터 연합뉴스
키어 스타머 영국 노동당 대표가 조기 총선을 하루 앞둔 3일(현지시간) 레디치에서 유세 도중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제1야당인 노동당의 지지율이 집권 보수당을 큰 격차로 앞서면서 스타머 대표는 차기 총리가 유력시되고 있다. 2024.07.04. 로이터 연합뉴스

한때 11%가 넘었던 인플레와 주택 대출 변동 등을 감안한 가계 실질 가처분소득은 2019년보다 7%나 줄었다. 저소득 세대일수록 감소율이 높았다. 공공의료 진료대기 환자는 지난 4월에 잉글랜드에서만 757만 명으로, 2019년 12월보다 70%나 늘었다. 식비와 전기 가스 요금도 대폭 늘었다.

브렉시트 이후 4년여 세월, 심각한 삶의 질 저하

2019년 12월에 EU(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최종결정한 조기 총선이 실시되고 보수당이 1987년 이후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렇게 해서 영국은 EU를 탈퇴했고, 그것을 주도한 보리스 존슨(당시 총리)의 보수당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듯했다. 하지만 4년여의 세월이 지난 지금, 상황은 오히려 훨씬 더 나빠졌다.

영국인들이 브렉시트를 지지한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동유럽에서 밀려 오는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EU를 탈퇴하면 이민자가 줄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이민자가 오히려 급증했다. 2022년과 2023년에 영국에 살러 온 사람은 각각 120만 명 정도였고, 2023년의 경우 바깥으로 나간 사람을 뺀 ‘순이민’은 68만 5천 명으로, 2019년의 3.7배로 늘었다. EU에서 들어온 이민자는 줄었지만, 아시아 아프리카 쪽에서 온 이민자들이 크게 늘었다. 이들 이민자가 가져다 준 혜택도 많아 이민자 증가 자체에 대한 평가는 간단하지 않지만, EU를 탈퇴하면 이민자가 줄 것이라며 브렉시트를 강행했던 보수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배신감은, 경제사정 악화와 함께 증폭됐다.

지난 5월 여론조사에서 영국인의 58%가 ‘브렉시트는 잘못이었다’고 응답했다. 그것이 ‘옳았다’에 응답한 비율은 31%에 지나지 않았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2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총선 유세를 하고 있다. 수낵 총리가 이끄는 집권 보수당은 최근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제1야당인 노동당에 크게 뒤지고 있어 4일 치러지는 조기 총선에서 패배가 유력한 상황이다. 2024.07.03. AP 연합뉴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2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총선 유세를 하고 있다. 수낵 총리가 이끄는 집권 보수당은 최근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제1야당인 노동당에 크게 뒤지고 있어 4일 치러지는 조기 총선에서 패배가 유력한 상황이다. 2024.07.03. AP 연합뉴스

14년만의 정권 교체, 노동당 역사적 대승

영국에서 14년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진다. 4일 총선에서 키어 스타머가 이끄는 노동당이 2010년부터 집권해 온 보수당에 역사적인 대승을 거둘 것이라는 것은 일찌감치 예정돼 있었다. 영국의 인터넷 기반 시장조사 및 데이터 분석 업체인 유고브(YouGov)는 총선 직전에 실시한 여론조사를 토대로, 노동당이 지난 5월 의회(하원 650석 정원) 해산 전의 206석에서 431석으로 의석을 늘리는 역사적인 대승을 거두고, 집권 보수당은 해산 전의 345석에서 102석으로 줄어드는 대패를 당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유민주당은 72석(해산 전 15석),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18석(43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됐다. 유고브 외의 여론조사기관들 조사 결과도 노동당이 430~484석, 보수당이 64~126석을 얻을 것으로 나왔다. 개표 결과 정확한 수치는 달라지겠지만 보수당 참패, 노동당 압승이라는 결과는 이미 확정적이다.

<BBC>가 지난 2일 종합해 보도한 여러 여론조사업체들의 조사결과들을 보면, 정당별 평균 지지율은 노동당이 40%, 보수당은 21%였다. 조사업체 ‘서베이션’에 따르면 노동당은 블레어 정권이 발족한 1997년 총선 때의 확보 의석수보다 60석 이상 늘어난 484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다. 총의석수의 70%가 넘는다.

노동당은 토니 블레어 당수 시절이었던 1997년 총선에서 418석을 획득하는 대승을 거두었으나, 이번에는 그것을 넘어 2차 대전 이후 단일정당으로서는 최대의석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다. 1832년 이후 최대 의석을 확보하는 단일 정당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반면에 보수당은 165석을 얻어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대패’로 기록된 1997년 총선 때보다도 못한 ‘전후 최악’을 넘어 지난 100년간 겪어 보지 못한 대패를 당할 가능성이 짙다.

최대 쟁점은 생활수준 저하와 공공의료 질 저하

이번 총선의 핵심 쟁점거리는 심각한 생활수준 저하와 급증하는 진료대기 환자로 대표되는 공공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다.

영국인들의 삶의 질은 보수당 주도로 브렉시트를 완료했던 2019년 12월 총선 때보다 훨씬 더 나빠졌다.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이 7%나 줄었고, 브렉시트 이후 더 심해진 인력 부족, 코로나 팬데믹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가세했다. 팬데믹 봉쇄 때 보수당 존슨 총리는 관저에서 파티를 열고 동료 의원의 스캔들에 늑장 대처하는 등의 실책으로 물러났고, 후임 리즈 트러스 총리는 근거 박약한 대규모 감세정책으로 시장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은 끝에 취임 45일만에 물러났다. 인도계 총리로 관심을 끌었던 리시 수낵 현 총리는 이미 보수당을 떠난 민심을 되돌릴 수 없었다.

조사업체 ‘모어 인 커먼’이 6월 말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뽑은 주요 쟁점은 인플레로 인한 생활비 급증 위기(64%), 공공의료 서비스(53%), 이민정책(25%), 주택정책(19%) 순(복수 응답)이었다. 보수당이 잃은 실점 순위표와 같다.

 

7월 3일 영국 스코틀랜드 이스트 킬브라이드의 칼레도니아 글래디에이터즈 스타디움에서 열린 노동당 총선 캠페인 행사 중 키어 스타머 노동당 당수와 스코틀랜드 노동당 지도자 아나스 사르와르가 사진을 함께 찍고 있다.2024.7.3. 로이터 연합뉴스
7월 3일 영국 스코틀랜드 이스트 킬브라이드의 칼레도니아 글래디에이터즈 스타디움에서 열린 노동당 총선 캠페인 행사 중 키어 스타머 노동당 당수와 스코틀랜드 노동당 지도자 아나스 사르와르가 사진을 함께 찍고 있다.2024.7.3. 로이터 연합뉴스

당수 키어 스타머, 급진좌파 ‘코빈 노선’과 결별

당수(대표) 키어 스타머의 탈급진좌파 노선도 이번 총선에서 노동당이 압승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015~2020년에 노동당 대표를 맡았던 정통 좌파 사회주의자 제러미 코빈의 ‘그림자 내각’ 각료였던 스타머는 2020년 대표선거 때 ‘코빈 노선’을 일부 답습해 대학 무상화, 우편과 수도 국유화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그것이 먹혀들지 않는다고 판단해 이번 총선에서는 그런 정책을 대부분 버리고 코빈 등의 급진적 좌파세력과 결별했다. 이것이 이번의 ‘역사적 대승’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였다는 평가들이 있다.

그러나 노동당 승리의 최대 요인은 브렉시트를 무리하게 강행한 보수당의 실패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카리스마가 없다는 평을 받아 온 스타머는 이번 총선에서 별다른 정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당내 좌파 쪽으로부터 “보수당과 다를 바 없어졌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하지만 도드라졌던 보수당의 대실패 속에서, 그의 온건 노선이 실망하고 좌절한 보수파 유권자들 표까지 대거 흡수하는데 더 유리했을 것이다.

스타머는 4일 투표가 시작된 뒤 노동당이 전례없는 승리를 거두어 “희망과 기회의 새 시대”를 열 것이라면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위대한 나라 영국 국민들은 그들의 야망에 걸맞은 정부를 가질 자격이 있다”며 노동당과 함께 영국 재건을 시작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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