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동적 극우를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교훈
영국 노동당 실용적 중도화로 얻은 것과 잃은 것
프랑스 진보좌파의 폭넓은 단결과 유연한 전술들
사퇴 요구받는 미국 바이든의 이미 진행되던 추락
실용적 중도화보다 선명한 진보 노선과 단결 중요
최근에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의 총선 결과와 다가오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혐오와 갈라치기를 무기로 삼는 반동적인 극우 정치세력을 막아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과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라는 극우 세력이 나라를 망치고 있고, 이것을 하루빨리 끝내는 것이 중요한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먼저 최근 영국 총선에서는 보수당이 14년 만에 참패하고 노동당이 대승했다. 보수당은 노골적으로 대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감세 정책과 노동자와 서민들을 힘들게 하는 긴축 정책을 지속해 왔다. 이런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지난 2019년 총선에서는 유럽연합 탈퇴의 ‘브렉시트’로 이주민 혐오를 부추기고 시민들을 갈라치기 해서 집권 연장에 성공했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시민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는 것만 분명해지는 상황에서, 최근에는 ‘불법 이주민들을 아프리카 르완다로 추방하겠다’라는 극단적 정책까지 추진하며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런 보수당이 참패한 것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그 공백을 차지한 것은 키어 스타머가 당 대표로 있는 노동당이었다.
스타머는 강성 좌파로 유명했던 제레미 코빈 전 대표의 노선에서 벗어나 노동당을 상당히 오른쪽으로 이끌었다.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친기업적인 노선을 발표하고, ‘이민자를 규제하고 영국인에게 우선적으로 일자리를 주겠다’라고도 했다. 이런 변화가 ‘강성 지지층을 벗어나 중도층으로 노동당의 지지 기반을 넓혔다’라고 평가받고 있다.
일종에 영국의 조중동이라고 볼 수도 있는 <더 선>,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 타임스>가 모두 이번 총선에서 보수당이 아니라 노동당을 지지할 정도였다. 선거와 투표를 현실주의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것이 어느 정도 실리를 가져왔으리고 짐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도 볼 필요가 있다.
바로 노동당을 지지해 온 전통적 지지층인 노동조합과 진보적인 시민사회 단체와 청년들의 지지는 그만큼 줄어들고 약화했다는 측면이다. 무엇보다 스타머의 노동당은 이번에 이스라엘의 가자 인종청소와 대량학살을 지지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식량, 물, 전기를 차단할 권리가 있다"라는 게 스타머의 주장이었다.
그래서 스타머 노동당의 득표수와 득표율은 2017년 총선에서 강성 좌파인 제레미 코빈이 대표였던 시절의 노동당보다 오히려 훨씬 줄어들었다. 당시 코빈 노동당은 1300만 표와 40%의 지지를 얻었는데 이번에 스타머 노동당은 970만 표와 34%의 지지만을 얻었다.
‘제3의 길’로 가다가 잃어가던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을 코빈의 노동당이 상당히 회복시켰는데, 스타머 시절에 그것이 다시 사라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스타머 자신도 후보로 나선 지역구에서 지난 총선 때보다 17%나 더 적은 표를 얻었다. 스타머 지역구에 출마해 이스라엘의 학살 반대를 주장한 무소속 반전평화 운동가가 19%를 얻었다.
스타머의 실용주의적 중도화와 친이스라엘 노선이 노동당에게 이익뿐 아니라 손해도 가져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는 18~24세 청년들 속에서 노동당의 득표율이 16%나 추락한 사실에 있다. 반면 18~24세 청년들 속에서 노동당보다 더 진보적인 대안으로 보인 녹색당은 득표율이 11%가 증가했다.
‘이번에 왜 노동당을 찍었나’라는 물음에 ‘스타머의 리더십 때문’이라는 응답은 1%, ‘노동당의 정책이 좋아서’라는 응답은 5%에 불과했지만, ‘보수당을 심판하고 영국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61%에 달한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그래서 이번 노동당의 승리는 '실용적 중도화' 덕보다는 보수당 지지 기반의 붕괴와 보수당-개혁당으로 우파가 분열한 결과이고 비례성이 없는 승자 독식 선거제 덕분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실제로 이번에 보수당의 득표는 심각하게 추락했지만, 보수당과 개혁당의 득표와 의석수를 합치면 노동당을 넘어서고 있다. 물론 ‘2019년 총선에서 코빈의 노동당이 얻은 32%와 비교하면 이번에 노동당 득표율은 34%로 약간 늘어났다’라고는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는 보리스 존슨 보수당 대표의 ‘브렉시트 쿠데타’ 속에서 영국 보수우파가 똘똘 뭉치고, 노동당의 주류 기득권층과 ‘진보언론’들마저 코빈을 공격하고 대표 사퇴를 요구하며 태클 걸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마저 코빈의 노동당은 당시 1000만 표를 얻었는데, 이것은 이번에 스타머 노동당이 얻은 것보다 조금 더 많다.
그 후 스타머가 대표가 되면서 '극단적 좌파'라는 낙인이 찍혀서 노동당에서 쫓겨났던 코빈은 이번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에서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에 맞서 무소속 후보로 다시 출마했다. 코빈은 선명한 진보적 정책과 팔레스타인 연대 주장을 분명히 하면서 보수당과 노동당 후보 모두를 꺾고 압도적으로 승리해 다시 당선했다.
코빈만이 아니다. 노동당의 친이스라엘 입장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 연대를 주장한 녹색당과 무소속 의원들도 좋은 성과를 얻고 다수가 당선했다. 따라서 '영국 노동당은 강성 지지층을 벗어나 실용주의적 중도화를 통해서 승리했고, 우리나라의 민주당이나 진보정당들도 이것을 배워야 한다'라는 조선일보 등의 평가는 매우 일면적인 것이다.
더 극적인 것은 프랑스 총선에서 좌파의 역전승이었다. 극우 파시스트 ‘국민연합’을 물리치고 오히려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이 승리했다는 소식에 광장으로 몰려나온 프랑스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고 기뻐하고 서로 부둥켜안았다. 반면 SNS에는 '국민연합'의 활동가들이 웃으면서 기대에 들떠있다가 총선 결과가 나오자 표정이 흙빛으로 변하는 장면들이 올라왔다.
조기 총선이라는 마크롱 대통령의 도박이 자충수로 변하면서 극우 국민연합이 집권의 문 앞까지 갔던 공포의 총선은 이렇게 좌파의 극적 역전승으로 끝났다. 국민연합이 1위를 차지한 6월 말 1차 투표 결과가 나왔을 때만 해도 거의 모든 언론과 전문가들이 국민연합의 승리를 당연하게 예상했다.
중도우파인 마크롱 정부의 부유세 폐지, 연금 개악 등 노골적인 친기업 반서민 정책은 거대한 불만과 분노를 만들었고 그것은 국민연합이 성장하는 데 발판이 됐다. 더구나 유럽의회 선거에서 참패한 후에 마크롱 정부가 난데없이 제기한 조기 총선은 거대한 자충수가 되면서 결국 국민연합이 더 빠르게 권력으로 다가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 꼴이 됐다.
여기에 브레이크를 건 것은 좌파였다. 먼저 프랑스의 좌파는 총선을 앞두고 급진좌파인 ‘불굴의 프랑스’와 공산당, ‘반자자본주의신당’부터 온건 진보세력인 사회당, 생태주의당까지 모두 함께 ‘신민중전선’으로 단결했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 부유세 부활, 공공요금 동결, 공공주택 확충, 횡재세,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 즉각 중단 등 150개 공동정책에도 합의했다.
무엇보다 프랑스의 좌파와 진보세력은 개방적이고 폭넓게 반극우 연합 전선을 구축했다. 신민중전선 자체가 한국으로 보면 민주당과 정의당, 진보당, 녹색당이 손을 잡은 것과 비슷하다. 2차 결선 투표에서는 중도 우파인 마크롱의 집권당 후보들과도 후보 단일화를 하며 ‘공화주의 전선’을 구축했다.
이것은 지난 한국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 맞서 이재명, 심상정, 안철수가 후보 단일화를 하는 상황으로 비유할 수 있다. 특히 2차 결선 투표를 앞두고 국민연합과 1:1 대결 구도를 위해 신민중전선의 후보 200여 명이 사퇴했다. "두 가지 위험 사이에서 우리는 먼저 가장 크고 즉각적인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결선 투표제의 존재도 물론 매우 중요했지만, 극우파를 막기 위해서 좌파가 상당한 타협과 양보를 한 셈이다. 만약 한국에서 좌파가 이런 식의 접근과 시도를 했다면 ‘마크롱 2중대’라고 비난받고 ‘진보정당도 아니다’, ‘노동운동에서 제명해야 한다’라는 공격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프랑스의 좌파와 진보세력은 이런 선택을 통해 결국 극우를 막아낼 수 있었다.
반면에 트럼프 집권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 다가오는 미국 대선의 상황은 분명한 진보적 대안의 부재가 극우 세력의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직 대통령이자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은 최근 TV 토론 이후에 거센 후보 사퇴론에 직면해 있다. 특히 유력 언론과 민주당 후원자들이 바이든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바이든이 너무 나이가 많고 기력이 없어서 토론에서 쉰 목소리를 내면서 말을 더듬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라며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날 토론의 핵심은 태도보다 내용에 있었다. 누가 더 많은 이민자를 추방했고, 누가 더 중국에 강경했고, 누가 더 이스라엘의 친구이고, 누가 더 골프를 잘 치는가의 논쟁에서 바이든은 트럼프를 이기기 어려웠다.
쉰 목소리와 말 더듬기와 4살 많은 나이 때문만이 아니었다. 자금과 무기를 제공하며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돕는 바이든의 입장 때문에 바이든의 지지율은 이미 유색인과 아랍계 미국인, 무슬림 속에서 추락하고 있었다. 특히 대학가에서 학생들의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점거 농성이 들불처럼 번지는 상황에서 청년들의 바이든 지지율은 더 급속하게 추락했다.
지난 5월에 바이든을 민주당 대선후보를 뽑는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서는 ‘지지 후보 없음(Uncommitted)’에 투표한 유권자가 무려 20%에 달했다. 이것은 민주당 역사상 유례가 없는 수준이었다. 즉, 바이든은 진작에 교체했어야 했다. 단 더 젊고 목소리가 좋고, 말을 더듬지 않고, 골프를 더 잘 치는 후보보다는 반이민 인종주의에 맞서고, 신냉전이 아니라 평화를 추구하고, 이스라엘의 대량학살을 막을 후보로 말이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의 총선 결과나 미국 대선 상황은 극우를 물리칠 힘은 ‘실용주의적 노선과 중도화’보다 선명한 진보적 노선과 진보좌파 세력의 폭넓은 단결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언론과 전문가들이 툭하면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에 ‘강성 지지층을 벗어나 중도로 가야 한다’, ‘종부세 등에서 실용주의적 타협이 필요하다’, ‘민주당 2중대를 벗어나 제3지대로 가라’고 주문하는 것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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