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참패, 총선서 보수당 전멸 사태 시사"
남부·부유·우익·노인이 핵심, 젊은층은 '외면'
브렉시트와 보리스 존슨, 보수당 쇠락 촉발
"견고한 다수 영국인, 유럽연합 탈퇴 후회"
수낵, 국정 기조 고수…당내선 "더 오른쪽"
"극우 약진…존중받는 전통적인 보수 소중"
5년간 총리 4명…당내 갈등에 온갖 추문도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이끄는 집권 보수당이 2일 진행된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보수당은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에서 치러진 11곳의 시장 선거에서 티스 밸리를 뺀 나머지 지역을 제1야당인 노동당에 모두 내주고 107개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기존 의석의 절반 가까운 474개 의석을 잃었다. 또한 보수당 스콧 벤튼 하원의원이 의회 로비 대가로 금품수수 의혹으로 물러나 보궐선거가 치러진 블랙풀 사우스 지역구도 노동당이 가져갔다.
"지방선거 참패, 총선서 보수당 전멸 사태 시사"
시장 11곳 중 10곳, 지방의회 의석 절반 내줘
이번 결과는 이변이 없는 한 내년 1월까진 실시해야 하는 총선에서 보수당의 또 한 번의 참패를 예고한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AP는 "이번 선거 결과는 영국 총선에서 14년 만에 노동당의 재집권 전망을 강화했다"라고 평가했다. 2019년 총선에서 보수당을 뽑은 유권자 26%가 노동당으로 옮겨간 것으로 분석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선거 전문가 존 커티스 스트래스클라이드대 교수는 "보수당에는 40년 만에 최악이거나 그 동급의 결과"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압승한 노동당은 '조기 총선'을 요구하며 수낵 총리를 압박하고 있다.
보수당 상황을 훨씬 심각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영국 언론인이자 작가인 조프리 위트크로프트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성공적이었던 당이 전멸을 향하고 있다'란 9일 자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선거 결과는 수개월 간 야당인 노동당이 10~20%포인트 격차로 리드했던 여론조사를 확인해 주었다. 총선에서 (보수당의) 전멸 같은 사태를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정당의 역사는 찰스 2세 시대인 16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명예혁명 결과로 조성된 입헌군주제 환경에서 왕위 계승 논쟁 과정에서 토리당과 휘그당이 탄생했다. 1832년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토리당은 보수당(Conservatives), 휘그당은 자유당(Liberals)으로 바뀌었다.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자 계급의 성장에 힘입어 1906년 노동당(Labor)이 탄생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대체로 보수당과 노동당의 거대 양당 체제로 유지돼고 있다.
350년 화려했던 영화는 '옛말'…최대 위기
5년간 총리 4명…당내 갈등에 온갖 추문도
영국 보수당의 이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려했다. 위트크로프트에 따르면, 보수당은 독자 또는 연합 형태로 지난 150년 중 98년을 집권했고, 계속 새로운 상황과 도전에 성공적으로 적응해왔다. 솔즈베리 경, 스탠리 볼드윈,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가 대략 15년 안팎씩 총리로서 보수당을 이끌었을 정도다. 최근에는 30년 만에 최대 다수 의석을 확보한 2019년 총선을 비롯해 지난 4번의 총선에서 연이어 승리했다. 반면, 지난 세기에 총선 참패는 3번뿐이었다. 1906년 자유당, 1945년과 1997년 노동당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현 수낵 총리까지 포함해 보수당은 내리 14년간 집권하고 있지만, 지금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5년간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 현 리시 수낵까지 벌써 4명의 총리가 나왔다. 그럴 만큼 당내 갈등과 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코로나19 방역 정책, 대규모 감세안, 르완다 난민 이송 법안 등이 분란을 촉발했던 대표적인 쟁점들이었다.
최근엔 각종 추문에도 휩싸여 있다. 벤튼 하원의원은 금품 수수 추문으로 정계에서 쫓겨났고, 한 의원은 미성년자 성폭력으로 수감됐고, 다른 의원은 하원 본회의장서 포르노를 보다 들켜 잘렸다. 마크 멘지스 의원은 개인 의료비로 당 기금 1만4000파운드(약 2400만 원)를 사용해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았다. 위트크로프트는 "수많은 문제로 점철된 집권 14년이 끝나면 보수당은 받아 마땅한 벌을 결국은 받게 될 것 같다"고 논평했다.
'죽어가는' 집권 보수당…30세 미만 젊은 층 외면
남부·부유·중산층·우익·노인층이 보수당 핵심 당원
위트크로프트는 "보수당은 통계적 측면에서도 더욱더 죽어가는 당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보수당은 1950년대에 280만 명의 당원을 확보해 당시 유럽에선 최대 대중 운동의 하나였다. 개별 지역구마다 1만 명 이상의 당원을 지닌 지역 '보수연합'과 '젊은 보수'란 조직들이 있었다. 1980년대만 해도 당원 수는 130만 명 수준을 유지했지만, 가장 최근 당수를 뽑던 2년 전 선거에선 단지 14만 명의 당원이 투표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현재 보수당 당원의 분포와 성격과 관련해 위트크로프트는 "영국 전체 유권자는 물론이고 보수당 지지자들보다 훨씬 더 남부적이고, 부유하고, 중산층이고 우익이며, 또한 훨씬 더 나이를 먹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여론조사들은 30세 미만에서 다가오는 총선에서 보수당에 투표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충격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영국 보수당의 쇠락을 부른 결정적 요인은 브렉시트와 보리스 존슨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과거 70년 이상 영국 보수당은 유럽을 '동경'하는 정당이었다. 1963년 당시 해럴드 맥밀런 총리는 유럽경제공동체(ECC) 가입을 추진했으나 실패했고, 10년 뒤인 에드워드 히스 총리 때에서야 가입에 성공했다. 그런 뒤 1986년 대처 총리가 '하나의 유럽법' 제정에 힘을 쏟으면서 유럽통합의 중요한 걸음을 내디뎠다.
브렉시트와 보리스 존슨, 보수당 쇠락 촉발
"견고한 다수 영국인들, 유럽연합 탈퇴 후회"
그러나 1990년대부터 점차로 보수당 내에서 훨씬 더 광적인 "유럽 혐오 세력"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당 밖에선 우파 진영의 국민투표당, 영국독립당, 브렉시트당, 현 영국개혁당과 같은 소규모 반유럽 정당들로부터 시달렸다. 위트크로프트는 "이들 정당은 의회에 한 명의 의원도 진출시키지 못했지만 보수당 표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는 일이 잦았다"고 지적했다. 소수였지만 보수당의 목줄을 쥔 이들을 잠재우고자 2016년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유럽연합(EU) 탈퇴에 관한 국민투표란 승부수를 던졌으나 패배했다. 그 결과에 따라 영국은 마침내 2020년 1월 31일 EU에서 공식 탈퇴했다.
이 과정에 보리스 존슨이 있었다. 위트크로프트는 "존슨은 당권 장악의 유일한 길이란 사실을 깨닫게 됐을 때 (EU) 탈퇴를 지지했다. 그는 야망을 달성했고 2019년 총리가 돼 3년을 지속했다"며 "브렉시트는 그의 유산이지만, 황금빛 미래의 여명은 절대 밝아오지 않을 듯하다"라고 예상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영국은 지난해 3·4분기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기술적 경기침체 상태다. 물가상승률은 올해 들어 둔화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높다. 기준금리 또한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연 5.25%로 유지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주 발표된 보고서에서 영국이 고금리와 고인플레로 인해 2025년도에 주요 선진 7개국(G7) 가운데 최악의 경제 성적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위트크로프트는 "영국인들이 지금 '브레그렛'(브렉시트+후회)으로 고통받는 건 놀랍지 않다. 여론조사들을 보면 견고한 다수가 EU 탈퇴를 후회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수낵, 국정 기조 고수…당내선 "더 오른쪽"
"극우 약진… 존경받는 전통적인 보수 소중"
지방선거 참패로 사면초가에 빠진 수낵 총리는 일단 기존의 국정 기조를 고수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지만, 이민자 단속과 법질서 유지, 감세 등에 더 보수적 태도를 보여온 당내 강경파들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수엘라 브레이브먼 영국 내무장관은 텔레그래프 기고에서 "총리의 계획은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노선을 바꿔야 할 때"라며 당의 방향을 훨씬 더 '오른쪽'으로 돌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위트크로프트는 "그건 재앙을 부르는 처방이고 당의 역사적 특징의 포기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럽 전역에서 이민자를 배척하는 극우 정당들이 약진하고 있는 때는 존중받을만한 전통적 보수주의가 더욱더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위트크로프트는 "보수주의는 나쁜 점도 많지만, 특히 영국의 토리주의(Toryism)는 회의주의, 실용주의, 염세주의, 상식의 공유와 같은 나쁜 점을 보완할 몇몇 좋은 점도 있다"면서 "토리당원들이 이런 좋은 점들을 버린다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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