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사업자 대출 연체액 11조 육박

지역신보 대위변제도 5개월간 1조 돌파

전기요금 지원과 부채 탕감만으론 한계

소비 쿠폰·할인 등 내수 진작 병행 필요

“민생지원금 무조건 반대할 일 아니야”

“장사는 안되는데 빚은 쌓이고…일자리 구하기 힘들어 폐업도 어렵고….”

극심한 내수 불황에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매출은 떨어졌는데 전기요금과 인건비, 이자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문을 닫고 일자리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가게 문을 닫는 순간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빚만 쌓이니 한숨만 늘어날 뿐이다.

정부는 대출 상환 기간을 연장하고 이자를 저금리로 전환해주는가 하면 각종 공공요금을 깎아주는 등 여러 지원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소비가 살아나 매출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부채 탕감이나 금리 혜택 등은 임시방편으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이 소비 진작을 목적으로 추진하는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해 정부와 여당, 대통령실은 재정 부담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자영업자의 빚은 천정부지로 쌓이고 있다.

 

지난해 경기부진과 부동산 침체로 은행 대출금 갚지 못하는 개인과 소상공인들이 늘어나면서 이들 대출에 보증을 섰던 금융공공기관들의 대위변제액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사진을 서울 명동에 붙은 대출 광고물. 2024.3.17. 연합뉴스
지난해 경기부진과 부동산 침체로 은행 대출금 갚지 못하는 개인과 소상공인들이 늘어나면서 이들 대출에 보증을 섰던 금융공공기관들의 대위변제액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사진을 서울 명동에 붙은 대출 광고물. 2024.3.17. 연합뉴스

1일 한국은행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양부남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분기별 자영업자·가계대출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3월 말) 현재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권 사업자 대출 연체액은 10조 8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했던 2009년 이후 최대 규모다. 지난해 4분기 연체액은 8조 4000억 원이었는데 불과 3개월 만에 2조 4000억 원이 급증한 것이다. 대출 연체액은 1개월 이상 원리금을 갚지 못한 금액을 뜻한다.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권 사업자 대출 연체율도 지난해 4분기 1.30%에서 올해 1분기 1.66%로 석 달 사이 0.33%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2013년 1분기(1.79%) 이후 11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 폭이다. 가계대출까지 포함한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권 대출 잔액은 1분기 말 현재 1055조 9000억 원(사업자 대출 702조7000억 원과 가계대출 353조 2000억 원)으로 추산됐다. 직전 분기보다 2조 7000억 원가량 늘면서 다시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가계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들은 살인적 수준의 이자 부담으로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들의 평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작년 4분기 58.2%에서 올해 1분기 58.8%로 높아졌다. 평균 대출액도 1억 2401만 원에 달한다. 대출 상환 측면에서 가장 상황이 좋지 않은 취약 차주인 저소득·저신용 다중채무자는 DSR이 64.8%까지 상승했다. 금융 당국은 DSR이 70% 안팎이면 최소 생계비를 빼고 다른 소득을 원리금을 갚아야 하는 상황으로 본다.

 

 사업자 대출 연체액 추이. 연합뉴스
 사업자 대출 연체액 추이. 연합뉴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갚지 못해 지역신용보증재단(지역신보)이 대신 변제한 은행 빚도 올해 들어 5개월 만에 1조 원을 돌파했다. 양부남 의원이 신용보증재단중앙회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1~5월 지역신보 대위변제액은 1조 291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74.1% 급증했다. 대위변제액은 2021년 4303억 원에 그쳤으나 지난해 1조 7126억 원으로 폭증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올해는 2조 원을 돌파할 수도 있다.

연합뉴스가 한국신용데이터의 ‘1분기 소상공인 경영지표’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소상공인 평균 매출은 4317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7% 줄었고 영업이익도 915만 원으로 23.2% 감소했다. 고물가와 고금리 장기화로 소비가 급감하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전기료와 인건비, 임대료는 계속 올라 수익은커녕 현상 유지도 힘든 상황이다.

올해 1~5월 ‘폐업’을 이유로 소상공인에게 지급된 노란우산 공제금도 6577억 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18.3% 늘었다. 노란우산 공제금은 소상공인에게 퇴직금에 해당하는 자금으로 다급하지 않으면 깨지 않는다. 노란우산 폐업 공제금은 지난해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했는데 올해 들어 증가세 더 빨라졌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한 정부 대책이 쏟아지고 있으나 대부분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에 그친다. 정부와 여당, 대통령실은 지난달 30일 고위 협의에서 전기료와 배달비 등을 지원하는 한편 정책자금을 활용해 대출 상환기간을 대폭 연장하고 고금리를 저금리로 바꿔주는 대상도 확대하기로 했다. 착한 임대인에 대한 세액공제 지원 기간을 내년 말까지 연장하고 소상공인 채무조정 등을 위한 ‘새출발기금’도 대폭 늘리겠다고 한다.

이런 정책으로 일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혜택을 볼 수 있겠지만 내수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일 뿐이다. 민주당이 어떤 식으로든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하려는 것도 소비가 살아나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자력갱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을 포함해 여기에 반대하는 쪽은 재정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를 꼽고 있으나 무조건 반대할 일은 아니다. 민생회복지원금 같은 소비 쿠폰이 내수 진작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역 신보 대위변제액 추이. 연합뉴스
 지역 신보 대위변제액 추이.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인 소상공인 지원 정책인 새출발기금도 필요한 재원이 수십조 원에 달한다. 이 기금은 빚을 갚기 힘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22년 10월 도입됐다. 무담보 5억 원, 담보 10억 원을 합쳐 총 15억 원까지 원금을 최대 80% 감면(취약계층은 최대 90%)해 주거나 최장 20년 분할 상환 대출로 전환하는 식으로 이자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다. 수요는 많은데 조건이 까다롭고 기금도 부족해 아직 정책 효과는 크지 않은 편이다.

새출발기금 같은 지원책의 근본적 문제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구제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구제와 함께 내수 경기를 살리는 정책도 필요하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민생회복지원금이 내키지 않으면 다른 방식의 내수 진작책을 찾아야 한다. 다만 금리 인하처럼 부동산 경기와 물가를 자극하는 정책은 피해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지난 2020년 5월 지급된 14조 원 규모의 1차 재난지원금은 그해 2분기 실질 총생산이 3% 이상 감소하는 와중에도 민간 소비를 1.5% 끌어올렸다. 투입된 재원 대비 소득증대 효과가 만족스러웠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재난지원금의 내수 활성화 효과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내수 부양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살리는 차원을 넘어 수출에 치우친 한국 경제의 쏠림을 보완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