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규탄 시위…여전한 전쟁과 학살의 공포

철학적인 가사로 반전과 평화를 노래한 밥 딜런

고야의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반핵의 상징

베트남전 참상을 기타로 분출한 지미 헨드릭스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전쟁으로 잃은 로저 워터스

"미국은 악의 제국"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이승원 코리안헤리티지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승원 코리안헤리티지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지난 봄 미국 대학생들의 이스라엘 규탄 시위가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콜롬비아대에서 시작한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퍼졌고 4월 30일 뉴욕 경찰이 콜롬비아대 해밀턴홀에서 점거시위 중인 학생들을 연행하며 해산시켰다. 공교롭게 이날은 1968년 베트남전 반대 시위대를 진압한 날과 같았다. 그 후 몇몇 대학은 친이스라엘 시위대와 충돌을 염려해 졸업식을 취소했고 졸업식장에서 졸업생들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거나 바이든 연설 때 의자를 돌려 앉는 등 항의 시위로 이어졌다. 이번 주제는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에 얽힌 노래 이야기다.

시대의 노래,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

1960년 초, 미국은 흑인 인권운동과 베트남전 반대로 들끓었다. 특히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 앞에서 벌어진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행진”은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이었다. 그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연설을 통해 “흑인과 백인 모두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며 자유의 종을 울리자”고 호소했다. 그의 연설이 끝나고 무대에는 오른 이는 밥 딜런이었다. 그리고 그의 대표곡인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불렀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 진정한 인생을 깨닫게 될까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 흰 비둘기는 모래밭에서 쉴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포탄이 날아야 하나 / 영원히 폐기될 때까지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Bob Dylan, Pete Seeger, Peter Paul & Mary, and Joan Baez -Blowin' In The Wind (Newport 1963)

이날 킹 목사의 연설과 딜런의 노래는 많은 이들에게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꿈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여전히 그날 연설을 기억하고 노래를 부른다. 무엇보다 딜런의 노래가 울림이 있는 이유는 철학적이고 시적인 가사에 있다. 반전과 평화를 섬세하고 소박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이것을 진정한 인간의 길이라 노래했다. 통속적인 사랑 노래에 머무르지 않고 삶과 시대를 통찰했기에 스웨덴 한림원은 딜런의 노래를 ‘귀를 위한 시’로 일컬으며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사람들은 그의 노래가 시대 정신을 대변한다며 저항가수라 불렀으나 정작 본인은 그런 평가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노래했을 뿐이라며 자신을 영웅시하는 시선을 불편해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2016년 노벨문학상 시상식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넉달 후 스톡홀롬 공연을 앞두고 한 호텔에서 스웨덴 한림원 관계자 몇 명만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조용히 노벨상을 받았다.

 

CND 심볼에 아이디어를 준 고야의 ‘1808년 5월 3일’. 위키피디아
CND 심볼에 아이디어를 준 고야의 ‘1808년 5월 3일’. 위키피디아
반전과 평화의 상징, CND 심볼. 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 홈페이지
반전과 평화의 상징, CND 심볼. 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 홈페이지

고야의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핵무장 해제 캠페인’ 심볼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는 ‘핵무장 해제 캠페인’(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이 한창이었다. 런던에서 핵무기 제조공장이 있는 버크셔의 앨더마스턴까지 반핵평화행진을 계획하며 디자이너 제럴드 홀텀은 행진을 상징하는 CND 심볼을 만든다.

그는 1808년 5월 3일 나폴레옹군의 스페인 민중학살을 그린 고야의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총을 겨눈 나폴레옹군 앞에서 양손을 밖으로 뻗은 스페인 농부를 형상화해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았다. CND 심볼은 1958년 부활절을 맞아 반핵 행진에서 처음 사용됐고 지금은 반전과 평화의 상징으로 사랑받는다. 이 풀뿌리운동은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으로 성장했고 201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Jimi Hendrix - The Star Spangled Banner.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그의 연주는 충격적이었다. 소리 하나하나에 베트남전의 참상이 담겨 있다.

일그러진 세상을 찌그러진 소리로 담은 지미 헨드릭스

CND 심볼이 널리 퍼진 계기는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이었다. 베트남전을 반대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은 자신의 주장을 CND 심볼에 담았고 한자리에 모여 3일 동안 음악 축제를 벌였다. 이제 CND 심볼은 정치적 메시지를 넘어 하나의 상징이자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으나 1969년 8월 18일 지미 헨드릭스 연주는 많은 이에게 충격을 주었다.

무대에 오른 지미 헨드릭스는 미국 국가 연주를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에서 뿜어진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성스럽거나 경건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꺼이꺼이 울다가 폭탄이 터지고 비명을 지른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청중을 베트남전 한복판으로 데려가 전쟁의 고통과 참상을 소리로 체험하게 했다. 어느 전쟁 반대 외침보다 강렬한 소리였다. 일그러지고 고통스러운 세상을 아름답게 그릴 수 없다. 그것은 일종의 위선이다. 피투성이 아우성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찌그러지고 비틀린 소리로 담아야 했다. 지미는 자신의 생각을 기타 연주에 담았다.

 

Pink Floyd - Goodbye Blue Sky. 핑크 플로이드는 전쟁의 참상을 비판적이고 냉소적으로 표현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굿바이 블루 스카이>

또 다른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핑크 플로이드의 대표작 ‘더 월’을 들 수 있다. 로저 워터스는 ‘두려움이 벽을 쌓는다’(Fear builds the wall)는 생각에 가상의 인물 핑크가 겪는 내면의 갈등과 인간 소외를 한편의 록 오페라로 담았다. 1982년 알란 파커 감독은 ‘더 월’을 영화로 옮겨 이야기를 구체화했다. 이 가운데 ‘굿바이 블루 스카이’에서 하늘을 나는 전투기가 하얀 십자가로 변하고 유니온 잭의 붉은 십자가에서 병사의 피가 흘러 하수구로 버려지는 대목은 전쟁의 참상을 비판적이고 냉소적으로 꼬집었다.

로저의 개인사 역시 ‘더 월’의 배경이 됐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없다.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돌아가셨다. 그의 아버지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전쟁이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잇따라 앗아간 것이다. 이런 개인사는 그의 반전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지금도 그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규탄하며 반전평화운동에 적극적이다.

 
응오딘지엠 정부의 불교 탄압에 항의해 분신한 틱꽝득 스님. 이 장면을 찍은 말콤 브라운은 그해 퓰리쳐상을 수상했다.
응오딘지엠 정부의 불교 탄압에 항의해 분신한 틱꽝득 스님. 이 장면을 찍은 말콤 브라운은 그해 퓰리쳐상을 수상했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데뷔 앨범 재킷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데뷔 앨범 재킷

틱꽝득 스님의 분신 사진을 내세운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1963년 6월 베트남 사이공에서 틱꽝득 스님이 응오딘지엠 정부의 불교 탄압에 항의해 분신했다. 가톨릭 신자였던 오딘지엠은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강제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틱꽝득 스님은 이런 독재정부에 맞서 가부좌를 틀고 소신공양한 것이다. 끝까지 가부좌를 풀지 않았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라 세계는 오딘지엠 정부를 규탄했으나 오딘지엠의 동생인 오딘누의 부인은 “그깟 중놈 하나의 바비큐”로 폄훼해 그나마 우호적이던 이들마저 등 돌리게 했다. 역사가들은 틱꽝득 스님의 분신을 베트남전의 서막으로 평가한다.

틱꽝득 스님의 분신은 1992년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데뷔 앨범 재킷으로 다시 조명받았다, 밴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현대사회 문명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다. 반전은 물론 반자본주의, 반기업에 이르기까지 매우 급진적이다. 톰 모렐로의 격렬한 기타와 잭 데 라 로차의 분노에 찬 보컬은 저항적인 노랫말과 잘 어울렸다. 199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는 미국을 악의 제국으로 비판하며 성조기를 태우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Rage Against The Machine - Killing In the Name (Live At Finsbury Park, London, 2010)

소설 <은하영웅전설>에서 양 웬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간 사회에 흐르는 사상의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 생명 이상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생각과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야. 인간은 전쟁을 시작할 때는 전자를 구실로 삼고, 전쟁을 끝낼 때는 후자를 이유로 들어. 그걸 수백 년, 수천 년 동안이나 계속했단 말이지.”

오늘도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전쟁으로 공포에 떨며 세상을 등지는 사람이 있다. 그곳에 평화가 깃들길 소망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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