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탄생해 효과 입증

한국에선 1997년 대선 때 ‘DJ와 춤을’이 히트

미국선 후보자 정체성 상징…한국선 소통에 방점

서민들에게 인기 있고 떼창 쉬운 트로트가 대세

이승원 코리안헤리티지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승원 코리안헤리티지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광고하면 CM(Commercial Message)송이 떠오른다. “열두시에 만나요”하면 특정 아이스크림이 떠오르고 “손이 가요 손이 가”, 이 소절만 듣고도 어떤 과자가 생각난다. 거의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한다.

선거철이면 길가에서 로고송에 맞춰 율동하는 선거운동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때로는 큰 소리의 노래가 시끄럽기도 하지만 로고송도 들리고 조금 시끌벅적해야 선거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선거운동하면 누구나 이런 모습을 먼저 떠올린다.

 

1952년 아이젠하워 선거 로고송 ‘I Like Ike’

세계 최초의 선거로고송 <아이 라이크 아이크>

그렇다면 언제부터 선거로고송을 사용했을까? 1952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선 아이젠하워가 처음으로 노래를 선거운동에 사용했다. 세계 최초로 선거로고송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노래는 월트 디즈니의 형인 로이 디즈니가 만들었다.

“Do you like Ike? / I like Ike / Everybody likes Ike” 간결한 노래에 공화당의 상징인 코끼리가 아이크(아이젠하워의 애칭) 깃발을 앞세워 힘차게 행진하고 그 뒤를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따른다. 민주당의 상징인 당나귀는 멀뚱멀뚱 바라본다. <Ike for President(I Like Ike)> 노래와 애니메이션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기발한 선거운동이었다. 더구나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이 재밌는 애니메이션과 쉬운 노래로 다가가니 친근함은 배가되었고 낙승할 수 있었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선거로고송. 유튜브 호박고구마

선거로고송의 교과서 <DJ와 춤을>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많은 이들이 선거로고송하면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DJ와 춤을>을 떠올린다. 여전히 이 로고송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만큼 강력했다는 방증이다. DJ DOC의 발랄한 <DJ와 춤을> 노래 가사를 “김대중과 함께라면 든든해요”, “준비되어 있는 우리 대통령 / DJ로 만들어 봐요 / 이번 2번 이번에”로 개사해 “든든해요”, “준비된 대통령”이란 선거 슬로건을 효과적으로 녹였다.

또, 김종필, 박태준이 등장해 “물론”, “좋지” 하고 추임새를 넣는 장면은 권위적이고 노회한 정치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친근한 동네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마지막에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잘할 수 있습니다. 꼭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김대중 후보의 짧은 연설은 백 마디 사자후보다 효과적이었다. DJ를 싫어하는 이도 이 선거로고송만큼은 이의가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선거로고송의 교과서로 불린다.

 

주현미 – 비 내리는 호남선. 주현미TV

해공 선생을 기리던 <비 내리는 호남선>

선거에서 노래의 힘은 이미 1956년과 1960년에 확인된 바 있었다. 1956년 대선을 열흘 앞두고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를 앞세우며 돌풍을 일으키던 해공 신익희 민주당 후보가 전주로 유세가던 중 열차에서 뇌일혈로 사망했다, 불과 이틀 전인 5월 3일 한강 백사장에서 수십만의 인파가 모여 정권교체의 기대가 무르익었는데 그 꿈이 사라진 것이다. 사람들은 손인호의 <비 내리는 호남선>을 부르며 해공 선생을 추모하고 아쉬움을 달랬다,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 내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다시 못 올 그 날짜를 믿어야 옳으냐

속는 줄을 알면서도 속아야 옳으냐

죄도 많은 청춘이냐 비 내리는 호남선에

떠나가는 열차마다 원수와 같더란다

그런데 자유당 정권은 노래를 부른 손인호, 작곡가 박춘석, 작사가 손로원을 불러 심문했다. 이들은 1년 전인 1955년에 만들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추모곡으로 의도하고 만든 노래는 아니었지만, 해공 선생을 잃은 마음을 절절히 대변했다. 훗날 김수희가 부른 <남행열차>의 첫 구절인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는 이 곡에 대한 헌정의 뜻을 담은 대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박재홍 - 유정천리

조병옥 급서를 아쉬워하며 부른 <유정천리>

4년 후인 1960년, 대선을 한 달 앞둔 2월 15일 조병옥 민주당 후보가 미국에서 사망했다. 해공 선생에 이어 또 조병옥 박사까지 잃었으니 당시 민중이 얼마나 황망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해 2월 22일자 동아일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급서한 민주당 조병욱 후보를 아쉬워하며 경북 지역 중고생들이 <유정천리>를 개사해 노래 불렀다. 이 노래가 널리 불리자 당황한 교사들은 가사를 적은 쪽지 찾기에 혈안이 됐다. 이에 대해 기사는 “울고 웃는 사람의 칠정을 뉘라서 막을소냐. 노래 속의 구절처럼 ‘백성들이 울고 있는’ 것뿐인데”라고 꼬집었다. 개사한 가사는 다음과 같았다.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 선생 뒤를 따라

장면 박사 홀로 두고 조 박사도 떠나갔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당선길은 몇 구비냐

자유당에 꽃이 피네 민주당에 비가 온다

세상을 원망하랴 자유당을 원망하랴

춘삼월 일오일에 조기 선거 웬 말이냐

천리만리 타국땅에 박사 죽음 웬 말이냐

설움 어린 신문 들고 백성들이 울고 있네

 

Bruce Springsteen - Born in the U.S.A.

공화당 후보 레이건, 민주당 지지자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본 인 더 유에스에이>를 사용하다

선거로고송과 관련해 가장 웃기는 이야기는 198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레이건 후보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Born In The USA>를 사용한 사례다. ‘미국에서 태어나’라는 제목만 보면 미국을 찬양하는 애국적인 노래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가사는 베트남 참전용사 시각에서 전쟁을 비판하며 참전용사에 대한 미국 사회의 푸대접과 무시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후렴구로 반복되는 ‘Born In The USA’는 미국 찬양이 아니라 미국 사회를 향해 외치는 분노의 절규다. 그런 노래를 공화당 레이건 후보가 자기 로고송으로 쓰겠다고 제안하니 민주당 지지자이자 노동계급의 ‘보스’로 통하던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단칼에 거절했다. 그런데도 레이건은 기어이 이 노래를 자신의 선거로고송으로 사용했다. 비유하자면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을 소재로 안치환이 ‘이것도 나라냐!’며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라는 노래를 만들었는데 이를 국민의힘 후보가 선거로고송으로 쓴 것과 다름없다. 후안무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Neil Young - Lookin' For A Leader 2020. 닐 영은 이 노래에서 “버락 오바마 뒤에 서있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해야 해”라며 조 바이든 지지를 시사한다.

트럼프 반대를 위해 미국 국적을 취득한 닐 영

선거로고송과 관련해 구설수가 많았던 인물은 단연 트럼프다. 트럼프는 R.E.M.의 <It's the End of the World as We Know It (And I Feel Fine)>을 승낙 없이 유세장에서 사용하다 반발을 샀고, 아델의 히트곡 <Rolling in the Deep>도 사용해 항의를 받았다. 또 빌리지 피플의 <Y.M.C.A.>, <Macho Man>을 허락 없이 쓰다가 고소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자기가 쓰고 싶은 곡을 마음대로 가져다 썼다. 이런 트럼프의 막무가내 행동을 표로 응징하기 위해 미국 국적을 취득한 가수도 있었다. 캐나다 국적인 닐 영은 트럼프가 자신의 노래 <Rockin' In The Free World>, <Like a Hurricane>을 무단으로 사용하자 트럼프에게 반대표를 던지기 위해 2020년에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의 뜻대로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낙선했다.

 

정치혁명을 주장한 버니 샌더스의 로고송 'It's a Revolution'

미국에서 선거로고송은 후보자의 정체성을 상징

선거에서 유권자의 마음을 사야 하는 일은 만국 공통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선거로고송이 사용되지만 그 의미와 선호하는 장르는 다르다. 미국에서는 후보자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의미로 선거로고송이 쓰인다. 예를 들어 버니 샌더스는 <Power To The People>, <Uprising>, <Takin’ It to the Streets>, <Revolution Starts> 같은 곡을 선거로고송으로 썼다. 민중혁명을 부르짖는 후보자의 주장이 노래에 그대로 드러난다.

선거로고송과 관련해 트럼프가 비판받는 이유도 자신의 정체성을 담는 로고송을 선택하는 정치문화에서 벗어나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노래라면 뭐든지 가져다 쓰고 보는 막무가내식 태도에 기인한다. 뭐든지 일단 먹고 보는 황소개구리나 다름없다.

 

1일 인천 미추홀구 용현시장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남영희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율동을 하고 있다. 2024.4.1. 연합뉴스
1일 인천 미추홀구 용현시장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남영희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율동을 하고 있다. 2024.4.1. 연합뉴스

왜 한국에서 선거로고송은 주로 트로트 장르일까?

하지만 미국과 정치문화가 다른 한국에서는 후보자의 정치적 주장보다는 유권자와의 소통에 방점이 찍힌다. 주로 댄스곡이나 트로트 노래가 선거로고송으로 쓰인다. 동요나 만화 주제가를 활용할 때도 있지만 자칫 후보자가 가볍게 보일 수 있는 단점이 있어 잘 쓰이지 않는다. 실제 198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는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김대중이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자전거 동요를 로고송으로 썼는데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로고송이 생소한 시기였고 후보자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인기가 없었던 셈이다.

지금도 거리에서 <무조건>, <샤방샤방>, <엄지척>, <한잔해>, <찐이야> 등을 개사한 로고송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트로트 계열의 노래들이 주를 이룰까? 그 배경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서민이 좋아하는 노래가 트로트이기 때문이다. 유권자와 소통이 중요한 정치인으로서는 서민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선택해야 친근감을 높일 수 있다. 평소에는 잘 가지도 않던 시장통에서 떡볶이나 어묵을 먹는 것도 유권자인 서민에게 친근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서민들이 좋아하는 트로트로 로고송을 선택하는 데는 좌우도 없고 여야도 없다.

둘째로는 함께 부를 수 있는, 이른바 떼창이 가능한 곡이기 때문이다. 어떤 노래든 여럿이 함께 부르면 힘이 생긴다. 군가가 대표적이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군인에게는 사기를 높이는 노래가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노래는 혼자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함께 부르는 노래여야만 한다. 이렇게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에 맞춰 운동원들이 율동까지 더하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물론 로고송 때문에 지지 후보를 바꾸거나 결정하는 유권자는 드물겠지만 적절한 로고송은 후보자의 인상과 정보를 유권자에게 각인하는 데 효과적이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둘째날인 6일 서울 중구 명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하고 있다. 2024.4.6. 연합뉴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둘째날인 6일 서울 중구 명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하고 있다. 2024.4.6. 연합뉴스

우리네 민주주의는 그렇게 익어간다

10년 후에도 우리네 선거운동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지금 들리는 로고송들 가운데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쓰이게 될 노래도 여럿 있을 듯싶다. 다만 시대정신에 따라 노랫말에 등장하는 인물과 구호는 바뀔 것이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가 아니라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바뀌었네’가 맞겠다. 오늘도 거리의 노래에 실려 우리네 민주주의는 그렇게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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