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자들 정치 효능감 배반한 89명의 당선자들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강기석 민들레 상임고문
강기석 민들레 상임고문

“우원식도 수박일까?” 우원식 의원이 민주당 당선자 총회에서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자로 선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퍼진 ‘의문’이었다고 한다. ‘좋은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민주당을 지지할 뿐, 사실 여의도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더구나 1백 몇십 명에 이르는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 개개인의 활동이나 성향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의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의문에 대해 여의도를 좀 안다는 사람들로부터 “아니다. (우 의원은) 꽤 괜찮은 정치인이다” “충분히 강성이다” “기대할 만하다” 등의 답변이 쏟아져 나왔다.

민주시민들에게까지 충격과 공포 준 국회의장 후보자 선출

정치권 동향을 비교적 관심 있게 지켜보는 내 눈에도 우 의원이 수박계라는 증거는 아무 데서도 찾을 수 없다. 국회의원만 4선 포함, 30년 넘게 정치를 해오면서 지도자급 큰 정치인의 면모를 보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의와 명분을 저버리고 내부총질에 열중하는 수박 행태를 보인 적이 없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수박’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지만, 스트레이트 기사도 아니고 ‘누구누구는 수박’ 식의 인신공격용도 아니라면, 쉽게 그 의미가 전달되는 정치적 용어로서 개인 칼럼에서 차용하는 것은 예외라고 생각함) 오히려 그는 2013년부터 당내 ‘을지로위원회’(을 지키는 민생실천위원회)를 주도했고, 지난해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사태 땐 보름간 단식 농성을 벌였으며,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서 홍범도 흉상 철거 시도를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한 모범적인 정치인이다. 당내에서는 ‘합리적 행동파’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나는 ‘우 의원이 꽤 괜찮은 정치인이어서 의장 역할을 잘 해낼 것이다’라는 답변은 ‘우원식 의원이 수박이냐, 아니냐’는 질문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충분치 않은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그 질문은 민주당 당원이나 지지자들을 포함한 민주시민들이 민주당의 차기 국회의장 후보자 선출 과정에서 받은 충격과 공포가, 그들 내면에서 들끓고 있는 ‘3년은 너무 길다’는 갈망과 부딪혀 일어난 파열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질문은 단순히 우원식 개인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아직도 민주당에 수박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 아니냐. 이런 수박들을 어떻게 믿고 검찰을 앞세운 윤석열 폭압정권과 싸울 수 있겠느냐”는 민주시민들의 성난 아우성인 것이며 22대 국회가 21대 국회와 전혀 다를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과 두려움까지 섞여 있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지난 2년 온갖 가시밭길을 걸으며 민주당 내 수박계열 의원들 퇴출 운동으로 대선 패배의 절망감을 극복하고 총선 대승을 거둔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이제 모두가 기꺼이 당원들의 명령에 복종할 당선자들로 22대 국회를 가득 채우고, 조국혁신당이란 우군까지 덤으로 얻었으니, 드디어 검찰독재에 맞설 수 있는 삼권분립의 한 축을 든든히 구축했다는 자신감과 안도감이 충만했던 것이다. 이처럼 정치적 효능감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대로부터 일격을 당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이날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우원식 의원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24.5.16.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이날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우원식 의원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24.5.16. 연합뉴스

지지자들 정치 효능감 배반한 89명 민주당 당선자들

도대체 그런 정치적 효능감에 느닷없이 찬물을 확 끼얹은 89명의 당선자들은 누구인가. 투표가 비밀로 이루어져서 한 사람 한 사람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 사정에 밝은 정치분석가들은 민평련(민주평화연대), 586(80년대 학번 학생운동권 출신), 일부 친문(노무현·문재인 대통령 덕분에 국회의원이 된 이들) 등 당내 계파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혐의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민평련과 586은 겹치는 부분이 많은데 그 특징은 한 마디로 엘리트주의라고 한다. 자신들이 민주화를 이끈 가장 양심적이고 유능한 인재들이란 자부심이 크고 그에 대한 보상심리가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그런 자부심을 공유하고 정치를 해오면서 선후배들끼리의 결속력이 강해진 만큼 배타성도 강해서 그럴듯한 자리가 생기면 자기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의리가 대단하다고 한다. 그러니 자기 당 지지자 열 중 아홉이 추미애를 지지해도 눈 딱 감고 자신들 계파의 보스급인 우원식을 밀었다는 것이다.

나는 우원식 의원과 일면식도 없지만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그의 온화한 인품과 민생을 위한 헌신과 열정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21대 국회의장들처럼 최소한 법조문에 들어있는 ‘중’과 ‘등’ 간 차이를 모를 만큼 무식(을 가장한 교활)하지도 않을 것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해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에서 무작정 합의를 종용할 만큼 우유부단(을 가장한 비겁)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 감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으며, 필요할 때 필요한 결정을 내릴 결단력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우 의원은 당선 소감에서 “국회를 구성한 국민의 민심을 그대로 반영해나가는 국회의장이 돼야 한다”고 밝혔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무엇보다 그는 차기 국회의장에 대한 민심이 압도적으로 추미애 당선자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음에도 정면으로 이에 맞서 의장 출마라는 무리수를 두었다. 그리고 동료 의원들의 이기주의와 엘리트의식에 힘입어 이기기는 했으나 결국 민심을 뒤집은 셈이 됐다. 그는 또 “국민들의 삶 안에 깊숙이 발을 붙이고 국민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장해나가는 그런 길로 나아가겠다”는 약속도 했는데, 지금 국민이 겪는 진짜 고통의 본질과 그 원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추미애를 간절히 불러내고자 했던 것이 바로 지금 국민이 극심하게 겪고 있는 고통의 본질 아닌가! 민생은 그 고통의 현상일 뿐이다.

“거부권 믿고 싸우라” 대통령이 선동하는 마당에 협치라니!

이번 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 결정을 두고 대통령실과 국힘당, 보수언론, 심지어 진보언론까지 ‘협치’ 합창을 하며 민주당을 갈라치기 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민주당 갈라치기는 우선 이재명 대표가 추미애 당선자를 밀었다는 전제 하에, 그런 추 당선자가 패함으로써 이 대표가 리더십에 타격을 받았다는 주장에서 비롯된다. 누가 봐도 이재명 대표는 아무 명망이 없는 정성호 조정식 두 의원이 ‘명심’을 팔아 출마하려는 것을 만류했을 뿐, 우원식-추미애 두 사람간 경쟁은 그야말로 민심과 당심에 맡긴 것이 분명하다. 설사 이재명 대표가 당심도 민심을 따라갈 것이라고 잘못 생각했을 수는 있지만, 그랬다면 굳이 추 당선자를 밀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당내 여러 계파들이 민심과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다 한들 이 대표가 오랜 세월 자기들 계산대로 움직여 온 민평련, 586, 친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나. 이들 당내 계파들과의 갈등을 해소하고, 이들이 움직이는 당심을 민심과 동조하게 만드는 작업은 이재명 대표의 오랜 숙제이며 앞으로도 심각하게 풀어나갈 문제이지 새삼스럽게 리더십에 타격받은 것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여당 당선자들을 모아놓고 “대통령 거부권을 믿고 국회에서 열심히 싸우라”고 독려하는 마당에 민주당에 ‘협치’ 운운하는 저들의 뻔뻔함에 기가 찬다. 우 의원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8석 정치’를 강조했다. 야권 192석에 여당에서 8명만 합류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재의결 정족수인 200석을 채울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자신이 추미애 당선자보다 적격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처음 들을 때는, 자신이 협상과 협치의 달인이라는 선전으로 들렸는데, 지금은 거부권을 무력화시키는 투사로서 열과 성을 다 하겠다는 선언으로 바꿔 듣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3년은 너무 길다”는 조급한 마음에, 차기 국회의장 내정자에게 너무 박한 평가를 내린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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