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직접 거명 안 했지만 사실상 특검법 압박

첫 영수회담서 작심 공개 발언…주요 현안들 망라

"기자‧언론사 압수수색 일상…'독재화' 해외 발표도"

"민생지원금 꼭 수용해야" "재생에너지 중심 재편"

"의대 증원 문제, 국회 '공론화 특위'에서 논의하자"

"거부권 행사 유감 표명, 국회 결정 존중 약속해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채 상병 특검법 적극 수용을"

"가치 중심 진영 외교 아닌 국익 중심 실용 외교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4.29.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4.29.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영수회담에서 작정하고 주요 현안에 관한 요구 사항을 쏟아냈다.

의제에 제한이 없는 이번 회담에서 이 대표는 '민생회복지원금' 정책은 물론 거부권 행사 중단, 이태원 참사 특별법 및 채 상병 특검법의 수용을 직설적으로 촉구했다.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들도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고 말해 윤 대통령 면전에서 사실상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압박했다. 이밖에 언론 탄압, 의대 증원, 재생에너지, 외교‧안보 정책의 문제점 등을 망라해 '총선 민의'를 폭넓게 전달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공개된 모두발언 자리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어진 비공개 회담에서도 적극성을 보였을 가능성은 희박해 실질적인 성과가 도출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재명 대표는 29일 오후 1시 30분쯤 국회 의사당을 출발해 2시쯤 용산 대통령실에 도착했다. 윤 대통령은 집무실 앞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한 뒤 이 대표와 악수를 하고 집무실에 나란히 앉았다. 윤 대통령 우측에는 정진석 비서실장,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이 대표 좌측에는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 천준호 대표 비서실장,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배석했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뒤 대통령실 출입기자단 소속 취재진(풀기자)이 두 사람의 모두발언도 듣지 않고 곧장 퇴장하려고 하자 이 대표가 이를 제지했다.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이 많아서 써 왔다"며 안쪽 주머니에서 A4용지에 적은 메모를 꺼냈다. 이 대표가 "제가 대통령님 말씀을 먼저 듣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라고 하자 윤 대통령은 "손님 말씀 먼저 듣자"고 했고, 이에 이 대표는 "고맙다"면서 "국민들이 '정치가 국민을 걱정해야지 어떻게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게 하냐'고 말씀하신다. 저희가 오다 보니 (용산 대통령실까지) 한 20분 정도 걸리는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고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영수회담에서 집무실에 도착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맞이하며 악수하고 있다. 2024.4.29.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영수회담에서 집무실에 도착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맞이하며 악수하고 있다. 2024.4.29. 연합뉴스

본격적인 모두발언에서 이 대표는 "약간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얘기도 있어서 오늘 이 만남이 우리 국민들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드리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대통령 취임하실 때 제가 이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저는 정말로 성공한 대통령이 되시길 바란다. 그것은 개인적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성공, 정부의 성공이 국가와 국민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제1야당의 대표로서 대통령님께 이번 총선에서 나타났다고 판단되는 국민들의 뜻을 전달해드리려고 한다.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저의 입을 빌린 우리 국민들의 뜻이라고 생각해주면 고맙겠다"면서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 삶이 어렵다.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경제‧사회, 또 외교‧안보 모든 영역에서 많은 위기가 도출 되고 있는 상황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들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건 대통령님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본론에 돌입한 이 대표는 맨 먼저 언론 탄압 문제를 꺼냈다. 그는 "최근에 많은 우려를 하지만 정부 비판적인 방송에 대해 중징계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보도를 이유로 기자와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매우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며 "우리 국민들이 혹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잡혀가는 거 아닐까 이런 걱정을 하는 세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또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평가받던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서 스웨덴 연구기관이 독재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며 스웨덴 예테보리대학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민주주의 리포트 2024> 내용을 언급한 뒤 "남북 관계를 보면 소위 말 폭탄이 진짜 폭탄이 되는 게 아닌가 이런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이번 총선에 나타난 국민 뜻은 잘못된 국정을 바로잡으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우리 국민들께서는 선거를 통해서 민생과 경제를 살리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평화와 안전을 지키라고 명하셨다"면서 "민생의 어려움과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는 유능한 국정,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한 공정하고 상식적인 국정, 편 가르기나 탄압이 아닌 소통과 통합의 국정을 대통령과 여당에게 주문하셨다고 생각한다. 2년 만에 처음 성사된 오늘 회담이 이러한 국민 뜻을 받드는 소중한 자리가 되길 바란다. 국정의 방향타를 돌릴 마지막 기회라는 그런 마음으로 국민들의 말씀에 귀 기울여주길 부탁한다"고 거듭 윤 대통령에게 당부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영수회담을 하고 있다. 2024.4.29.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영수회담을 하고 있다. 2024.4.29. 연합뉴스

그러면서 줄곧 주장해왔던 국민 1인당 25만 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정책을 민생 회복의 첫 번째 의제로 제시했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도 20여 차례 '민생토론회'에서 파악했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참으로 민생경제가 어렵다. 가뭄이 들면 얕은 웅덩이부터 말라가는 것처럼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서민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골목이나 지방이 더 어렵다"며 "민간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 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줄 것을 부탁한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을 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이나, 소상공인, 자영업자, 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은 꼭 수용해주길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통령님도 말씀하셨던 R&D 예산 복원도 내년까지 미룰 게 아니라 가능하면 민생 지원을 위한 추경이 있다면 한꺼번에 처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전세사기특별법이라든지 다른 화급한 민생 입법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꼬일 대로 꼬인 의대 증원 문제를 '공론화 특별위원회'를 통해 풀자는 제안도 내놨다. 이 대표는 "대통령께서 결단하셔서 시작한 의료 개혁은 정말로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그런데 의정 갈등이 계속 심화되고 있어서 꼬인 매듭을 서둘러 풀어야 할 것 같다"며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 의료진의 즉각적인 현장 복귀, 공공·필수·지역의료 강화라는 3대 원칙에 입각해서 대화와 조정을 통한 신속한 문제 해결이 꼭 필요하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했던 국회 공론화 특위에서 여야와 의료계가 함께 논의한다면 좋은 해법이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연금 개혁 문제도 꺼낸 이 대표는 "연금 개혁은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인데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대통령님께서 과감하게 연금 개혁을 약속하고 추진한 점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최근에 국회 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원회에서 소득대체율 50%, 보험료율 13%로 (상향 조정)하는 개혁안이 마련됐다. 대통령님께서 정부‧여당이 책임 의식을 갖고 개혁안 처리에 나서도록 독려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4.29.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4.29. 연합뉴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의 상습적인 거부권 행사도 도마 위에 올렸다. 이 대표는 "사실 지난 2년은 정치는 실종되고 지배와 통치만 있었다는 그런 평가가 많다. 특히 어렵게 통과된 법안들에 대해 우리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과도한 거부권 행사, 또 입법권을 침해하는 시행령 통치, 인사청문회 무력화 같은 이런 조치들은 민주공화국의 양대 기둥이라고 할 삼권분립,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일일 수도 있다"며 "입법부와 행정부는 견제와 균형 속에 국정을 함께 이끄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행정 권력으로 국회와 야당을 혹여라도 굴복시키려 하면 성공적인 국정은 쉽지가 않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나 특검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대해 유감 표명과 함께 향후 국회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해주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고, 또 정중하게 요청드리는 바이다"라고 말해 거부권 행사에 대한 유감 표명 및 자제를 요구했다. 나아가 이태원 참사 특별법 및 채 상병 특검법의 수용을 구체적으로 촉구했다. 그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제1책무다. 159명의 국민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던 이태원 참사나 또 채 해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큰 책임"이라며 "채 해병 특검법이나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주실 것을 요청드린다"고 했다.

이 대표는 특히 "이번 기회에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들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고 말해 사실상 김건희 특검법의 수용도 압박했다. '김건희'라는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 대신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이라고 표현해 장모인 최은순 씨 등 처가 비리 의혹을 포괄적으로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22대 국회에서 김건희 씨와 최은순 씨의 주가조작 의혹뿐만 아니라 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명품백 수수 의혹 등으로 범위를 넓힌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도입하겠다고 벼르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이밖에 저출산 대책과 재생에너지 확대 등 '미래 의제'도 거론했다. 그는 "미래 의제들이 중요한 것 몇 가지가 있다. 우리는 현재 인구 위기나 기후 위기, 국제질서 재편이라고 하는 중요한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이 중 하나라도 대처에 실패하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저출생의 핵심 원인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고, 따라서 그 대책은 불안의 해소라고 하겠다. 그런데 파편적이고 부분적인 저출생 대책으로는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서 결혼, 출산, 양육, 교육, 취업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에너지 대책이라고는 '원전'밖에 모르는 윤 대통령을 향해 "기후 위기, 그리고 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이해서 재생에너지 정책의 일대 변화가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부족 때문에 수출 기업들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 산업 경쟁력 추락이 매우 걱정된다"며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제품만 구매하겠다는 세계적 추세에 맞춰서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불황기인 지금이 바로 에너지 고속도로와 같은 재생에너지 산업 기반 확충에 대대적으로 투자할 적기"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미국과 일본에 극단적으로 편중된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서도 일대 전환을 주문했다. 이 대표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 또한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대화와 협력에도 조금 더 관심 가져주기를 당부드린다"면서 "가치 중심의 진영 외교만으로는 국익도 국가도 지킬 수 없다.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로 전환을 검토해달라. 독도, 과거사, 핵오염수 같은 이런 대일(對日) 관계 문제에서 국민의 자긍심이 훼손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상당히 단호한 어조로 입장을 밝혔다.

 

29일 서울 용산 전자상가 매장에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회담 장면이 TV로 보도되고 있다. 2024.4.29. 연합뉴스
29일 서울 용산 전자상가 매장에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회담 장면이 TV로 보도되고 있다. 2024.4.29. 연합뉴스

15분에 걸친 모두발언을 마무리하면서 이 대표는 "대통령님,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것이 상당히 불편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긴 하지만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며 "이념이 아니라 국민의 상식에 기반해서 국정을 운영하겠다,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겠다, 국민 앞에 정직한 대통령이 되겠다, 당연히 기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대통령님께서 당선 인사 기자회견에서 하신 말씀이다. 이 같은 초심을 잊지 않고 잘 실행하시면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님과 정부를 전적으로 믿고 따를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국민을 두려워하고 존중한다면 대통령님과 이 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서 저희가 돕겠다"면서 "발목 잡기가 아니라 선의의 경쟁으로 국민에게 편안함과 희망을 만들어 드리면 좋겠다. 정치라고 하는 것이 추한 정쟁이 아니라 아름다운 경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면 좋겠다. 상대를 죽이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비공개 자리에서도 더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화가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좋은 말씀 감사하고, 또 평소에 우리 이 대표님과 민주당에서 강조해 오던 얘기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실 것으로 저희가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했을 뿐 별도의 모두발언은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저희들끼리 얘기를 진행하도록 하시죠"라고 말함으로써 풀기자는 퇴장하고 비공개 회담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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