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먼저 손 내밀어 성사된 윤-이 회담
의제 조율 거부한채 “차 마시면서 자유롭게”
대화·소통 흉내내며 이미지만 챙길 가능성
호랑이굴 가는 이재명, 뭘 얼마나 끌어낼까?
무시와 냉대, 모욕
윤석열 대통령에게 지난 2년간 협치는 없었다. 그에게 '불통'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 중 하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022년 8월 당 대표를 수락하자마자 "영수회담을 요청하겠다"고 했지만, 돌아오는 건 거절이었고, 모욕이 뒤따랐다. 윤 대통령은 같은 해 10월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 초청 오찬을 하며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라며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이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또다시 영수회담을 언급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한 모독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현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범죄 피의자와 면담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해 8월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또다시 "여소야대에 언론도 전부 야당 지지 세력들이 잡고 있어 24시간 우리 정부 욕만 한다"며 날선 발언을 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협치, 협치 하는데, 새가 날아가는 방향은 딱 정해져 있어야 왼쪽 날개 오른쪽 날개가 힘을 합쳐 가지고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이렇게 힘을 합쳐 갖고 성장과 분배를 통해 가지고 발전해 나가는 것이지, 날아가는 방향에 대해서도 엉뚱한 생각을 하고, 우리는 앞으로 가려고 그러는데 뒤로 가겠다고 그러면 안 된다"며 '협치 불가론'을 강하게 내세웠다.
지난해 9월 단식을 마치고 회복 중이었던 이 대표는 또다시 대통령을 향해 '민생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이지 여당 총재가 아니므로, 국회에서 논의할 민생현안은 여야 대표끼리 만나 협의하는 것이 의회민주주의의 당연한 기본"이라며 "격에도 맞지 않는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형사 피고인으로서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신분세탁 회담에 매달리지 말라"고 비아냥했다.
강성 당원, 거야, 입법독주
무시와 냉대, 모욕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4월 10일 총선이 끝난 뒤 마치 그런 적이 없었다는 듯, 야당 때문에 협치가 안 된다는 듯한 <조선일보>와 그를 위시한 언론의 태도는 곱씹어볼 만하다. 지난 19일, 2년간 협치와 담 쌓았던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다음 주 용산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하고, 나흘이 지난 뒤인 23일 <조선일보>는 민주당이 '협치는 없다'는 강경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면서, 추미애 당선자, 박찬대 최고위원, 민형배 의원, 조정식 의원 등을 직격했다.
총선 기간 이 대표에게 사퇴까지 요구하며 거칠게 비판했던 <경향신문>역시 조선일보 보도 다음 날인 24일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의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강경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면서 "이재명 대표가 '당원 중심 민주당'을 선언하면서 22대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강성 당원들에게 휘둘리는 풍경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여권과의 협치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들 보도는 민주당 당원을 단순히 '팬덤' '강성' 프레임 안에 넣고, 왜 밑바닥에서 '협치'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지에 대한 이해는 못 하고 있다. 양비론과 기계적인 중립, '조용한 국회'가 절대적 '정도(正道)'라는 듯 독자를 가르치려 할 뿐이다. 여기에 덧씌워지는 '거야(巨野)' '입법 독주' '역풍'은 덤이다. 21대 국회 내내 반복됐던, 언론과 시민들이 반목했던 그 지점에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악습'만 되풀이할 뿐이다.
언론은 정권을 심판했다며 일제히 신문 1면을 장식했던 지난 4월 11일을 이미 잊어버린 듯하다. 범야권 192석, 민주진보 진영 189석이라는 압도적인 의석을 만들어준 국민의 목소리는 안중에 없다. 국민이 투표로 정권심판을 했지만, 정권심판의 대상이 된 문제들은 실제로 아직 해결된 것은 없다. 총선 내내 외쳤던 채 해병 사건과 김건희 씨 명품백 사건 등은 특검 절차도 밟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 태도는 한국 사회의 '공정과 상식'을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마저 협치의 대상으로, 야당이 여당을 설득해야 할 대상으로만 그리고 있다. 이 문제의 한복판에 서 있는 대통령이, 그리고 그를 둘러싼 여당이 스스로 내려놓고 국민과 야당에 사과하고 해명할 문제를 정반대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면서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22대 국회에서도(…)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는 국면이 되풀이 될 수 있다"고 윽박지른다.
진성성 없는 그들만의 리그
언론이 강성 당원을 '지적질'하기 전에 오히려 깊게 봐야할 지점은 윤 대통령의 태도다. 대통령이 협치에 대한 진정성이 있는지 여부다. 지난 2년간 협치를 온몸으로 거부해 온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 총선 참패 직후에도 40여 자의 짧은 메시지를 냈지만, 그간의 반성이나 협치 의지는 없었다. 그 다음 주 국무회의에서 총선에 대한 입장을 직접 표명했지만 국정기조를 바꾸겠다는 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은 최근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등 인사를 기자들 앞에서 직접 발표하며 마치 '소통'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 어느 정도 우리가 나아가야 될 방향, 정책은 세워져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국민들께 더 다가가서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더 설득하고 소통하고(…)"라며, 자신의 정책은 올바르나 국민을 설득하지 못해 총선에서 졌다는 메시지만 반복했다.
국민에 대한 사과 메시지도 공개된 자리가 아닌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냈다. 유례없는 '비공개 사과'가 대통령이 보여준 태도였다. 비록 영수회담을 위해 대통령이 먼저 이 대표에게 전화하긴 했지만, 일련의 발언과 행동을 본다면 과연 대통령의 협치가 진정성 있는지 여러모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진정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영수회담을 위한 2차례 실무회담에서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 점은 이를 방증한다.
대통령실이 "사전 의제조율이나 합의가 필요 없는 자유로운 형식의 회담을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자(홍철호 정무수석)"고 제안했던 것 역시 협치에 대한 의문만 키웠을 뿐이다. 최소한의 조율도 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는 건 '정치적 수사'에서 명시적인 결과를 도출하자는 의미로 보긴 어렵다. 그저 대화가 목적인 협치라는 점을 보여줄 뿐이다.
윤 대통령과 친윤계에 의해 축출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윤 대통령이) 근본적으로 '내가 이재명 대표랑 협치를 하겠다'는 이런 생각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며 "이화영 부지사 재판 결과가 빨리 나와서 '분위기가 반전되기를' 물 떠 놓고 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 부분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대통령이 소통과 협치라는 이미지만 가져가고 싶어하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다.
'대국민 소통 강화'라며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과 '김치찌개 간담회'를 검토하는 것 역시 이러한 '이미지 메이킹'의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2022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단 한 차례 소통도 하지 않았던 대통령이 당장 해야할 일은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날것의 국민 목소리를 듣고 직접 답변해야 하는 것이다. 기자단이 요구해야 하는 것도 김치찌개 간담회가 아니라 기자회견이다.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과 만나서 김치찌개에 빈대떡, 족발 등을 늘어놓고 진행하는 간담회는 국민과의 소통이 아니라 '그들만의 리그'를 단단하게 할 뿐이다. 그걸 소통이라는 볼 국민도 아무도 없다. 그러나 대통령과 대통령실, 언론은 본질을 피하는 듯하다. 영수회담처럼 만남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만 하자는 협치가 진정성 있느냐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영수회담과 양보
그럼에도 이 대표가 영수회담에 먼저 한 발 양보한 것은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교착된 국면을 본인이 직접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풀어야 할 실타래를, 언론이 지목해야 할 지점을 이 대표가 대신 풀어준 셈이다. 이날 오전 이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제245차)에서 "총선 과정, 그리고 현재 상태에서 국민들께서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코로나 때보다 더 어렵다'"라며 민생경제의 어려움을 길게 토로했다.
그는 "서민들의 급전 창구라고 할 수 있는 카드론 규모가 계속 늘고 있다고 한다. 원리금을 못 갚는 기업과 가계의 비율이 5년 만에 최고 수준이 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 때도 버텼던 자영업자들이 고금리·고물가 때문에 줄줄이 폐업을 하고 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늘어나고 있다. 작년 하반기에 임금노동자 중에 20%, 즉 다섯 명 중의 한 명이 최저임금인 201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을 받았다고 한다. 당장 해결책을 마련해야 되는데, 정말로 답답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하는 영수회담이라 의제도 좀 정리하고, 미리 사전 조율도 해야 되는데, 그것조차도 좀 녹록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며 "복잡한 의제들이 미리 좀 정리됐으면 좋았을 텐데, 쉽지 않은 것 같다. 그것 정리하느라 시간을 보내기가 아쉽기 때문에, 신속하게 만날 일정을 잡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야권 인사 기용을 두고 "협치를 빙자한 협공"이라며 날선 발언을 했던 이 대표가 영수회담 의제를 두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대통령실에 먼저 양보를 한 것은 민생 위기가 긴박하다는 인식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민생 위기를 길게 강조하면서 영수회담 의사를 밝힌 것 역시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당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발언으로 읽힌다. 이 대표 핵심 관계자는 "민생위기 골든타임까지 고려한 대표의 결단"이라고 전했다.
이날 이 대표 발언 뒤, 대통령실 홍철호 정무수석과 민주당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은 오는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에서 회담을 열고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정국 현안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회담은 오찬이 아닌 차를 마시면서 대화하는 형식으로 결정됐으며, 의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기로 했다. 다만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대화 자체가 국민들에게는 '단비'같은 소식일 수 있지만, 전망이 마냥 순탄치 않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의제 제한이 없는 만큼 두 사람이 국정 전반에 폭넓은 대화는 가능하겠지만, 이미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실무 조율 과정에서 채 해병 순직사건 외압 의혹 특검, 김건희 특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사과 등을 두고 팽팽하게 맞섰던 점을 고려하면 명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생을 강조하며 만나지만, 이 대표가 총선 공약으로 내세운 민생회복지원금(국민 1인당 25만원) 지급에 대해 대통령이 전향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지금으로선 크지 않다.
윤 대통령은 지난 22일 정진석 비서실장 인선을 발표하는 브리핑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초청했다기보다 이 대표 이야기를 좀 많이 들어보려고 용산 초청이 이뤄졌다"고 말했지만, 특검법안 외에도 전세사기 특별법, 이태원 특별법 등 윤 대통령이 받기 어려운 난제가 많은 만큼 정치권에선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스스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이 대표가 복잡한 정국을 어떻게 풀어낼지,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지, 언론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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