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 만남, 회담이라기보다는 윤 '마이 웨이' 독창

국민과 거리는 물론 대통령 직분과 먼 거리 확인

'윤석열 식 정치' '윤석열의 초심' 무엇인지 보여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의 영수 회담에 대해 상당수의 언론들은 소통 모드와 협치로의 전환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정치 복원의 계기” “정치 복원의 신호탄”이라며 우호적으로 평가했다. 이같이 후한 평가가 전적으로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현 정부 출범 후 720일 만에 여야 지도자 간에 만남이 이뤄졌다는 것 자체가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같은 평가 이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의 여야 영수 간의 만남은 과연 회담이었는가, 라는 것이다. 회담은 무엇보다 대화로 이뤄지지만 85%인지 95%인지의 시간을 윤석열 대통령이 거의 독점했다는 언론 보도대로라면 그 회담은 회담이라고 보기 힘들다. 한 시간 중의 59분을 혼자 말한다는 윤석열식 대화법에 비춰본다면 15% 혹은 5%의 시간을 상대에게 할애한 것을 큰 양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인가. 29일의 회담은 회담이라기보다는 담화였고, 대화라기보다는 야당 대표를 앞에 앉혀 놓고 홀로 부르는 ‘마이 웨이’ 열창의 시간이었다고 해야 할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에서 이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4.4.29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에서 이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4.4.29 연합뉴스

이재명 대표는 대통령과 마주 앉기까지 720일이 걸렸다고 했지만 그만큼 먼 것은 윤 대통령과 국민과의 거리였다. 그리고 그보다 먼 것, 더욱 본질적인 거리는 윤석열과 ‘현실’과의 머나먼 거리였다. 그는 국민의 다수를 대표하는 야당 대표를 대통령실로 부름으로써 ‘현실’과 대면하려는 듯했지만 야당 대표와 국민들을 자신의 현실로 불러들였을 뿐 대통령실과 자기 자신의 머릿속 밖의 현실로 나갈 생각이 없음을 보여줬다.

자신의 2년간의 국정 운영에 대한 심판이 내려진 총선 이전과 이후는 다를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자리로 그가 먼저 제안해 이뤄진 자리였지만 결국 그 자리는 ‘윤석열식 마이 웨이’의 또 다른 변주곡일 뿐이었다. 총선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의 결여 이전에 총선 결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어 보였다는 것이 진정한 문제임을 그는 보여줬다.

29일 회담에서 드러난 윤석열과 현실과의 거리는 또한 대통령이라는 직분과 윤석열과의 거리이기도 하다. 회담 모습을 찍은 사진의 좌석 배치에서 누가 대통령인지를 혼동되게 한 것은 대통령실 의전팀의 잦은 실수의 또 한 번의 노출이었던 듯하지만 그것은 윤석열과 대통령직 간의 거리를 또한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보인 말과 행동은 윤 대통령이 최근 참모들에게 했다는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 속의 ‘정치’, 윤석열의 ‘정치’가 무엇인지를 실체로서 시현한 것이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은 ‘최고 정치 지도자’란 점에 대한 각성이 있었던 것 같다”고 언론은 보도했지만, 2년 만에 대통령의 일이 정치라는 것을 비로소 발견한 이의 고백이었다. 정치가 가장 필요한 곳에서 정치가 부재했던 현실의 자기폭로였다.

그와 대통령직 간의 거리는 대통령의 일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그는 이해할 의지, 뒤늦게라도 준비할 의지부터가 없어 보였다. 회담에서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역할이 뒤바뀐 듯한 것에서도 그 의지 결여, 준비 부족이 명백하게 보였다. 이번 회담에서 따로 의제를 정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것은 의제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었지만 그는 이를 논의할 의제 자체가 없다는 말로 이해한 듯했다.

이재명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당부했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인사 때 '이념이 아니라 국민의 상식에 기반해서 국정을 운영하겠다',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겠다' '국민 앞에 정직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던 언급을 상기하며 "이 같은 초심을 잊지 않고 잘 실행하시면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님과 정부를 전적으로 믿고 따를 것"이라고 했다.

이 초심 회복의 주문은 조선일보의 지난 16일자 김대중 칼럼 <윤 대통령을 다시 주목한다>에서도 나왔었다. “윤 대통령은 2년 전 대권에 도전할 때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뭔가를 처음 출발할 때에 가졌던, 지키고자 하는 지향과 가치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그런 당부의 말은 정치뿐만 아니라 무엇에든 지표가 되는 바가 있다.

그러나 윤석열의 초심의 문제는 초심을 지키느냐 잃었느냐가 아니라 과연 초심을 제대로 세웠느냐에 있다고 해야 할 듯하다. 애초에 초심다운 초심을 정립했느냐에 있다.

여야 영수 회담에 대해 많은 이들은 그 결과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 예상은 들어맞은 듯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상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줬다. 윤석열의 행태는 지난 2년간 항상 봐 왔던 모습이지만 29일 첫 여야 영수 회담은 그 예상과 맞아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예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윤 대통령의 대통령직에 대한 기대는 이미 매우 낮은 편이며 거의 최소한의 기대이지만 그 최소치를 더욱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분명히 보여줬다. 그런 점에서 29일 회담에는 큰 성과가 있었다. 윤석열의 현재, 그 적나라한 실상을 보여준 것이었으며, 윤석열의 미래는 현재의 연장, 더욱 많은 현재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내일의 윤석열은 ‘더 많은 윤석열’일 뿐이라는 걸 보여준 것이야말로 이 회담의 소득이라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여야 영수 회담의 큰 주제는 민생 대책이었다. 그러나 29일 회담이 한편으로 분명히 보여준 것은 사실상 대통령이 부재한 것과 다름 없는 현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사실상의 ‘대통령 공석’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회담은 역설적으로 큰 성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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