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DJ 핑계, 이재명 발언 아전인수 이용도
윤석열 "민심 청취 기능 취약…검사가 정보 다뤄야"
문재인 정부 땐 민정수석 6명 중 5명 비검사 출신
취임 전부터 수차례 폐지 공언하더니 또 말 뒤집어
박근혜 시절 대검 차장 김주현 임명…'우병우 라인'
"사정기관 수사 정보 수집?" 기자 핵심 질문 피해
야권 "민심은 핑계일 뿐 사법 리스크 방어에 골몰"
"방탄수석, 정치 검사들 줄 세우고 야당 탄압할 것"
윤석열 대통령이 예상대로 민정수석실을 되살리고 김주현 전 대검찰청 차장을 수석으로 임명했다. 물론 '민심 청취 기능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야권은 일제히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 통제 및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사법 리스크 방어가 주목적일 것이라며 '우병우 시즌 2'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7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 내려와 민정수석 인선을 직접 발표한 뒤 별도의 설명 없이 곧바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한 기자가 "인수위 시절 민정수석을 폐지할 때는 역기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폐지하기로 결정했을 거라 생각되는데 부활을 결정한 계기가 뭐냐"고 묻자 윤 대통령은 "제가 대통령직 인수위 때 민정수석실을 안 만들겠다고 한 게 아니고 사실은 정치를 시작하면서, 2021년 7월로 기억하는데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대통령이 되면 민정수석실을 설치하지 않겠다'라고 얘기했다"며 "그 기조를 쭉 유지해왔는데 아무래도 민심 청취 기능이 너무 취약해서 그동안 취임 이후부터 언론 사설부터 주변 조언 등을 많이 받았다"고 답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민정수석실 폐지를 여러 차례 공언해왔다.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인 2021년 7월 26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과감하게 폐지하고 필요한 기능은 다른 조직으로 가도록 하는 게 맞다"며 "민정수석은 민심을 청취하려고 있는 자리인데, 우리는 사정 기능이 너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문재인 정부에 대해 "현 정부에서 '이 정부는 부패가 없다'고 하는데 제가 볼 때는 부패가 없는 게 아니라 부패 수사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이던 2021년 12월 28일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청와대부터 단속해야 하는데 본연의 기능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며 "대통령이 수사, 조세, 세무 등 사정 기능을 할 수 있는 기관들을 민정수석을 통해 장악해서 정치적 반대 세력을 합법을 위장해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검찰 수사는 검찰에, 경찰 수사는 경찰에 맡기고, 국세청이나 금융감독원은 지휘계통에 따라 일하게 놔두겠다"면서 "사정기관을 관장하는 그런 조직은 대통령실에 두지 않겠다"고 호언했다.
대선 과정에서 정부혁신 분야 공약으로 민정수석 폐지를 내걸었던 윤 대통령은 대선 직후 당선인 신분이던 2022년 3월 14일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에서 당시 안철수 인수위원장, 권영세 부위원장, 원희룡 기획위원장과 차담을 가지며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에서 사정, 정보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못박았다. 그는 "일명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면서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世評)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줄곧 민정수석 폐지를 호언하고 정부 개혁의 성과로 자랑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또 말을 뒤집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모든 정권에서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건데 민정 업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그래서 저도 고심을 했다"며 "과거 김대중 대통령도 역기능을 우려해서 법무비서관실만 뒀다가 취임 2년 만에 다시 민정수석실을 복원했다. 저도 복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25년 전 DJ 시절 사례를 핑계로 내세웠다. 나아가 "지난번 이재명 대표와 회담 할 때도 '민심 청취 기능'을 지적하더라"면서 "대통령 참모들로부터 일선 민심이 대통령에게 잘 전달이 안 되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저도 민정수석실 복원을 얘기한 바 있다"고 했다.
영수회담 당시 이재명 대표가 수용을 촉구했던 13가지 의제에 대해 대부분 민심과 거꾸로 가는 대응을 하고 있는 윤 대통령이 이 대표의 발언 일부만 임의로 취사선택해 아전인수격으로 이용한 셈이다. 당장 윤 대통령은 국민 여론의 압도적 지지 속에 국회를 통과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서까지 조만간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시사해왔다.
다른 기자가 "신임 민정수석이 검찰 출신이다 보니 사정기관 장악에 대한 우려가 외부에서 제기되고 있고 야당에서는 사법 리스크 방어용이다, 특검 방어용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고 질문하자 윤 대통령은 뻔히 예상한 듯 "민정수석이 답변해도 될 사안이지만 제가 간단히 얘기하겠다"며 "민정수석은 국민을 위해서 설치한 것"이라고 준비된 답변을 내놨다.
이어 "민심 정보라고 하지만 결국은 정보를 수집하고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정보를 다루는 부서는 꼭 법률가가 지휘하면서 정보 자체가 법치주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그래서 과거 역대 정권에서도 대부분 검사 출신들이 민정수석을 맡아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사법 리스크가 있다면 제가 (해결) 해야 할 문제이고, 저에 대해 제기된 문제가 있다면 제가 설명하고 풀어야지 민정수석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는 초대 민정수석에 학자 출신인 조국 서울대 교수를 임명한 것을 비롯해 감사원 출신(김조원·김종호·김진국)과 판사 출신(김영식) 등 민정수석 총 6명 가운데 5명을 비검사 출신으로 발탁한 바 있다. 검찰 출신은 신현수 전 민정수석 1명뿐이었다.
윤 대통령은 기자 2명의 질문만 받고 브리핑룸을 떠났다. 곧이어 인사말에 나선 김주현 신임 민정수석은 "지금 대통령님이 말씀한 바와 같이 그동안 민정수석실을 쭉 역대 정부에서 운영해왔는데, 민심 청취 기능이 부족하다는 말씀들과 지적들이 있어서 저는 앞으로 가감 없이 민심을 청취해서 국정 운영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 "공직기강과 법률비서관실의 업무가 이관되기 때문에 각 정책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국민의 불편함이나 문제점 등이 있다면 국정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민정비서관실을 새롭게 만들어서 주로 민심을 청취하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민정수석의 업무 범위나 업무량 등은 신속히 파악해서 정리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한 기자가 과거 사정기관에서 올라오던 수사 관련 정보들의 수집도 이번 민정수석 업무에 포함되느냐고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지만 김 수석은 "구체적인 정보 내용 등은 이미 공직기강이나 법률비서관실이 운영하고 있었다"며 "민정수석실에서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는 차차 검토해 나가겠다"고 모호한 답변으로 비껴갔다. 김 수석 역시 기자 2명의 질문만 받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김 수석은 30년 가까이 검찰과 법무부에 몸담으며 요직을 두루 거쳤던 인물이다. 서울 서라벌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18기로 이원석 검찰총장(27기)보다 아홉 기수 선배이며 박성재(17기) 법무부 장관보다는 한 기수 후배다. 법무부 검찰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 법무부 대변인,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을 지냈고 특히 박근혜 정부 때인 2015∼2017년 법무부 차관에 이어 검찰 조직의 2인자인 대검찰청 차장검사까지 올랐다.
박근혜 정부 당시부터 '우병우 라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영전을 거듭하며 검찰총장에까지 물망에 올랐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2017년 5월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일했다. 2021년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재직 중이다. 윤 대통령과는 평검사 때 대구지검, 서울지검에 함께 소속돼 일한 인연이 있다. 김 수석이 대검 차장에서 퇴임할 때 서울중앙지검장이 윤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실 실세이자 '왕수석'의 등장을 두고 야권은 사정기관 장악 및 야당 탄압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며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더불어민주당 최민석 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대통령실은 민심 청취를 위한 인사라고 하지만 민심은 핑계거리일 뿐이다. 검찰 장악력 유지가 고단한 민생과 무슨 상관인가?"라면서 "민정수석실은 검찰, 경찰 등 사정기관을 통제하며 중앙집권적인 대통령제를 강화하는 데 활용돼 왔고 이번에도 그렇게 쓰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더욱이 김주현 민정수석은 박근혜 정부 법무부 차관으로 우병우 민정수석과 함께 사정기관 통제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패배 후 약화되는 사정기관 장악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 민정수석 부활을 통해 총선 민의를 외면하고 검찰 장악을 통해 가족을 사법 리스크에서 구하는 데 골몰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검찰 권력에 취해 불통과 독선의 정치를 계속하려는 윤석열 대통령을 국민께서 묵과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조국혁신당 배수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궁여지책 방탄수석'이라고 표현하면서 "4‧10 총선 참패 직후부터 간을 보더니 채 해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되는 검찰 출신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한 것이다. '한동훈식'에서 '우병우식'으로 검찰을 장악하는 방식만 바뀔 것"이라며 "정치 검사들 줄 세워 서울중앙지검장 인사와 김건희 여사 수사를 둘러싼 검찰 내부의 동요를 잠재우려 할 것이다. 그동안 해왔던 대로 수사기관을 은밀하게 조종하고 온갖 법 기술을 활용해 야당을 탄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검사가 범죄자 잡는 데 특화된 것은 알겠는데 '정보를 잘 다룬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은 '검찰 만능주의'임이 다시 확인됐다"면서 "윤 대통령 말씀을 들어보면 '민심 청취'라는 단어가 '민심 정보' '정보'로 치환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법으로 금지시킨 국정원 국내 정보를 음습한 곳에서 꺼내 민간인 사찰, 정치인 사찰, 국정원 정치개입을 부활시키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진보당 김도현 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민심 청취가 목적이라면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거나 야당과의 회동 정례화, 대국민 기자회견을 강화하면 된다. 그런데도 굳이 민정수석실을 신설하고 검찰 출신 측근을 임명하는 것은 사정기관 장악을 통한 정적 제거나 가족의 사법 리스크 대비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며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대통령 일가의 호위무사가 아니라 민심을 받들겠다는 국정 기조 전환의 약속이다. 대통령 권력 누수를 완력으로 틀어막으려 한다면 레임덕의 속도만 빨라질 뿐"이라고 지적했다.
개혁신당 주이삭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는 본질이 다뤄지지 않는다면 민정수석실을 새로이 신설하는 것만으로 대통령의 민심 청취 능력이 크게 향상할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지금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바닥난 상황"이라며 "민정수석이 없어도 뻔히 느껴지는 민심인 '채 상병 특검'을 전격 수용하게끔 제언하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실 첫 민정수석의 첫 성과이기 바란다. 또한 윤 대통령 가족 관련 의혹이 많은 만큼 유명무실하던 '특별감찰관'도 임명해 윤 대통령에 대한 신뢰 회복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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