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철 칼럼] ‘ 독박 육아’ 국가와 마을이 나눠야

아이 키우는데는 국가복지·'사회적 자궁' 다 필요

보육수당, 코뮌자치 등 프랑스의 성공요인 5가지

읍·면·동 자치정부, 기본소득, 농어촌 특례입학을

임진철 직접민주마을자치전국민회 상임의장
임진철 직접민주마을자치전국민회 상임의장

“한국말에도 이런 말이 있잖아.아이는 마을이 키운다고 ....

한국은 마을을 삭제(해체)해 버리고 없앴어. 마을이 했던 역할을 개인한테나 혹은 부부한테 떠맡기니까 감당할수 없는거야.

마을이 했던 거를 개인이 감당해야 하니 부담이 돼. 너무 부담이 돼.

한국에 살면서 그 부분이 제일 안타까웠어.”

이 이야기는 ‘그가 해준 충격적인 이야기: 외국인이 말해 주는 한국 저출산 해결책’이라는 제목의 유튜브에서, 한국에서 8년 동안 살아 본 르완다 사람이 한 말이다.

딱 맞는 말이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열린 '저출산 대응 경제단체 민관협의회 출범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4.3.27. 연합뉴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열린 '저출산 대응 경제단체 민관협의회 출범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4.3.27. 연합뉴스

“한 아이를 기르는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아 본 사람들은 알 거다. 관혼상제는 물론 농사일(품앗이), 아이 보는 일 등을 마을이 다 했다. 인디언의 속담에도 “한 아이를 기르는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는 전세계 공통의 말이다. 한 아이를 길러내는 데에는 부모들만의 독박 육아로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전통적 마을공동체 사회에서는 형과 누나 삼촌이모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길과 관심 돌봄이 있기에 한 가족당 7-8명의 자녀를 기를 수 있었다.

21세기 첨단문명시대를 살아가는 지금도 ‘독박 육아’가 아니라 ‘공동체 육아’시스템을 운영하는 생태마을 공동체인 밝은누리 마을(강원 홍천), 오늘공동체(서울 도봉) 등에서는 한 가정에 3명 이상의 아이들을 두는 경우가 자연스럽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아이들의 삼촌이고 이모다. 육아의 공동주체들인 것이다.

 

1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어린이박람회에서 어린이들이 클레이 똥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2024.4.12. 연합뉴스
1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어린이박람회에서 어린이들이 클레이 똥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2024.4.12. 연합뉴스

아이 돌봄과 노인 돌봄

2024년 1월 16일자 <한겨레> 신문은 화제의 주인공으로 대구의 안심마을 통합보육교육공동체인 ‘한사랑 어린이집’을 다루었다. 그 내용은 “진짜 이모는 없는데 이모들이 넘쳤다”라는 사회적 이모들의 이야기다.

관료행정과 시장의 돈벌이 수익모델로는 해결이 안 되는 영역이고 또한 그리해서도 안되는 영역이 있다. 그것은 아이 돌봄과 노인 돌봄 영역이다. 이는 사회적 이모와 사회적 아들딸들이 함께해야 되는 영역으로서, 마을주민들의 자치와 협동, 상호부조 품앗이문화가 살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사람 살만한 세상이 되고 사람 살맛이 난다.

 

김태흠 충남지사가 3일 충남도청에서 0∼2세 자녀를 둔 공무원의 주 1일 재택근무 의무화 등을 비롯한 충남형 저출생 극복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2024.4.3. 연합뉴스
김태흠 충남지사가 3일 충남도청에서 0∼2세 자녀를 둔 공무원의 주 1일 재택근무 의무화 등을 비롯한 충남형 저출생 극복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2024.4.3. 연합뉴스

저출산 극복해법, 사회적 자궁인 마을의 복원

한 여인의 자궁이 어떤 이유로 해서 망실되었다면? 생물학적으로 아기를 낳을 수 없을 것이다.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는 마을을 ‘사회적 자궁’이라 했다. 마을은 생명그물망의 인간학적 토대이고 생명의 산실이다. 그래서 이러한 마을을 살리고, 환대와 돌봄이 있는 마을공동체 사회로 전환하지 않으면 한국은 희망이 없는 사회가 될 것이라 했다. 현재의 한국은 '사회적 자궁'인 마을이 망실되고 갈가리 해체되었다.

이렇게 망실된 마을이 사회적 자궁 역할을 할 리 만무하다. 사회적 자궁이 망실된 사회체계는 생명의 지속을 작동 불능상태에 빠뜨린다. 파국적인 기후 격변과 극단적인 저출산이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이 세계최고의 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음은 한국의 마을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망가져 있음을 의미한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급속히 진행되는 한국과 일본.  일본 도쿄 신주쿠의 비즈니스 및 쇼핑 지역 건널목 모습. 일본 총무성이 지난 12일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10월 1일 현재 외국인을 포함한 일본의 총 인구는 전년 대비 59만 5000명이 감소(0.48%)한 1억2435만2000명으로 13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일본 국적자만의 인구는 83만7천명(0.69%) 감소한 1억2천119만3000명으로 1950년 이후 가장 큰 인구 감소를 기록했다. 2024.4.12. EPA  연합뉴스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급속히 진행되는 한국과 일본.  일본 도쿄 신주쿠의 비즈니스 및 쇼핑 지역 건널목 모습. 일본 총무성이 지난 12일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10월 1일 현재 외국인을 포함한 일본의 총 인구는 전년 대비 59만 5000명이 감소(0.48%)한 1억2435만2000명으로 13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일본 국적자만의 인구는 83만7천명(0.69%) 감소한 1억2천119만3000명으로 1950년 이후 가장 큰 인구 감소를 기록했다. 2024.4.12. EPA  연합뉴스

승자독식 무한경쟁 각자도생의 모래알 사회

그러면 한국이 이렇게까지 한국의 마을공동체가 망가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수도권 인구 초과밀화 현상과 맞물린 승자독식 무한경쟁 사회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는 약탈적인 천민자본주의가 사회적 자본(경제)과 마을공동체를 해체시켜 각자도생의 모래알 사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독박 육아’가 가능한 사람은 아이 기르는데 필요한 모든 일에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금수저 집안 출신자들 뿐일 것이다.

프랑스의 저출산 극복 성공요인 5가지

그러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젊은이가 결혼과 출산을 생각할 때 제일먼저 고려하는 것이 무엇인가? 첫째가 ‘일자리’다. 그 다음에는 아기와 부부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이다. 마지막으로는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육아현장인 ‘마을환경’이다. 신혼부부들이 ‘공동체 육아’가 가능한 마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한테 양질의 공공주택을 50년 장기임대로 공급해주는 싱가포르, 독일식 주택정책, 사교육에 부모의 등골이 빠지고 허리가 휘는 사교육비 부담이 구조적으로 없도록 되어 있는 유럽식 대학평준화와 무상교육 정책, 육아의 현장인 통 리와 읍 면 동 단위 마을이 아이를 기르는 마을교육 공동체 형성이 필요하다.

약 25년 전부터 한국처럼 저출산 초고령화 지역소멸 문제 때문에 고민하였으나 이제는 이를 극복한 모범국가가 된 프랑스가 주목을 받고 있다. 먼저 저출산문제 극복 성공사례를 살펴보자.

2020년 OECD 38개국의 평균 출산율이 1.59인데, 프랑스는 1.8의 적정 출산율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가 저출산 극복 모범국가가 된 요인은 무엇일까?

➀가족수당(Allocation Familiale)이라는 이름의 다단계 출산보육 수당 정책.

➁아이 많이 낳는 문화권(아프리카ㆍ중동 등) 출신의 이민자 수용 정책.

➂1999년 시민연대협약(PACS) 제도 기반 비혼 동거 자녀 차별 철폐(프랑스 비혼출산율 62%, 한국 2.4%).

➃영유아부터 대학 박사과정까지 무상에 가까운 교육 시스템.

➄가족주의 공동체 문화와 지역 '코뮌 자치시스템(Commune, 마을공화국)'의 융합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저출산 극복 성공요인을 보면 위의 ➀➁➂➃는 저출산 극복의 직접적 효과를 가져오게 한 요인이고, ➄는 저출산 극복의 간접적 효과를 가져오게 한 요인이다.

다섯번째의 “가족주의 공동체문화와 지역 코뮌 자치 시스템의 융합” 요인은 프랑스의 중앙집권국가 행정체제와 풀뿌리 직접민주주의 코뮌 체제가 융합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요인은 ➀➁➂➃ 정책이 성공할 수 있게 하는 요람이자 뒷받침 역할을 하였다. 프랑스의 시의적절한 직접민주주의 자치분권체제 구축이야말로 저출산 관련 제반 정책의 수용성과 효과성을 매우 높여 주었던 것이다. 저출산 극복의 직접적 정책과 간접적 정책을 종합적으로 잘 배합하여 추진한 것이 주효했음을 잘 보여준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0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용현여자중학교에 마련된 용현5동 제6투표소에서 한 어린이가 아빠와 함께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2024.4.10. 연합뉴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0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용현여자중학교에 마련된 용현5동 제6투표소에서 한 어린이가 아빠와 함께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2024.4.10. 연합뉴스

이제까지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하는 한국

한국의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

한국의 국가행정 체제는 농산어촌과 지역을 희생시키고, 대도시를 키우며 고도 성장을 지원하고 고효율을 조직하는 체제다. 즉 산업화시대의 국가행정 체제는 고출산과 고도 경제성장의 시대에 최적화된 성장중심의 중앙집권 행정체제인 것이다. 이러한 체제는 인구를 ‘생명’이 아닌 ‘생산’으로 보는 사회체계다. 극단적인 한국의 저출산은 이러한 체계의 파산을 의미한다.

이제 한국은 이제까지 걸어온 기존의 길과는 거꾸로 저출산율과 저성장시대에 최적화된 성장과 복지(분배), 그리고 혁신의 선순환체제로 국정의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 방향전환의 내용은 저출산 극복을 위하여 농산어촌을 청년들의 유토피아존(Utopia Zone)으로 만들어주는 일을 비롯하여, 국가행정 체제의 근간을 아이 기르기 좋은 환경에 최적화된 풀뿌리 마을자치 기반의 분권자치 행정체제로 만드는 일이다. 이는 생명의 활력과 창조적 고양이라는 목표를 갖는 생명정치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이 28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저출산과 지역소멸 극복을 위한 기업의 역할' 세미나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앞줄 왼쪽 세 번째부터 요시무라 타카시 21세기정책연구소 사무국장, 정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이인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 2024.3.28. 연합뉴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이 28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저출산과 지역소멸 극복을 위한 기업의 역할' 세미나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앞줄 왼쪽 세 번째부터 요시무라 타카시 21세기정책연구소 사무국장, 정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이인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 2024.3.28. 연합뉴스

마을 공동체 복원을 위한 자치분권 체제

그러면 먼저 한국사회를 아이 기르기 좋은 마을환경으로 재구축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잃어버린 사회적 자본과 신뢰 경제를 되찿는 사회적 경제를 일으키고, 갈가리 찢기고 해체된 사회적 자궁인 마을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회적 자궁인 마을을 복원하려면, 이를 복합적으로 가능하게 해 줄 직접민주주의 자치분권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중앙집권체제하의 상명하달식의 국가복지 체계로 저출산 초고령화 지역소멸 문제를 극복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국가복지는 복지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뼈대다. 복지에 피가 돌고 살을 찌우는 것은 마을의 통합복지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은 주민자치에 토대를 두고 사회적 우정과 살림의 영성에서 비롯되는 자발성이 우러나올 때 제대로 작동한다. 이러한 근본해법이 전제되지 않은 저출산 대책은 헛다리 짚기일 뿐만 아니라 그 효과는 언발에 오줌누기에 지나지않는다. 20여년에 걸친 그 동안의 한국 저출산 대책의 결산이 출산율 0.72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껏 한국은 경제성장 체제를 뒷받침하는 관치행정과 주식회사 기반의 시장경제 시스템 중심으로 국가운영을 해 왔다. 이제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지속가능한 사회로 만들어 줄 돌봄복지 체제를 뒷받침하고, 실질적 경제 민주화를 위해서 협동조합 기반의 사회적 경제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협동조합청(협동사회경제부)을 신설하고 광역 지역별로 공공은행을 설립하며, 면 동 단위에는 마을기금을 만들어가는 분권재정 정책을 서둘러 구현해야 할 것이다.

지역 균형발전과 자치분권 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읍 면 동장 선출제를 기반으로 한 3500여 개 읍 면 동 마을 자치정부 건설과 국가예산의 읍 면 동 마을 자치정부로의 분권재정, 농촌과 대도시를 넘나들며 살 수 있는 듀얼 라이프(Dual Life)정책, 그리고 서울대 등 국립대와 공무원의 100% 지역균형 선발제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양로원화해 가는 농산어촌을 살리기 위하여 농산어촌 거주민 기본소득제, 농산어촌 자녀들의 대학까지 무상교육 우선 실시, 농산어촌 군병역 대체복무제 등을 조속히 실시해야 할 것이다.

저출산 초고령화 지역소멸이라는 국가멸절 위기의 칼이 대한민국의 턱밑에 들이닥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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