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칼럼]총선, 자성과 한계 극복 계기로

총체적 재생산 위기 마주하고 있는 한국사회

한반도 짓누르는 생명·불평등·전쟁 위기 삼중고

최악의 무기력에 빠진 진보적 생명평화운동

생산현장과 마을에서의 생명평화 가치 연대를

정범진 사단법인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정범진 사단법인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성찰하기 : ‘생명평화운동’의 무기력

2024 총선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온통 난리다. 하지만 보수 기득권 양당 외에 다른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의민주주의 선거에서 대중의 선택지로 등장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은 존립의 정당성을 상실한다. 이번 선거에서 소위 진보로 표현되었던 소수 정당들은 기득권 양당 세력에게 포섭되었거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 탓도 아니고, 우리는 그 답을 진보운동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 사회 근본문제에 대한 진보세력의 진단과 처방, 실천이 시민의 참여와 동의를 얻지 못한 것이다. 1987년 이후 역대 최악의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진보의 부재, 특히 ‘생명평화운동’의 무기력은 고통스럽다.

‘생명평화운동’은 글자 그대로 생명과 평화를 지고지순의 가치로 여기는 운동이다. 이 ‘생명평화운동’에 대한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특히 생명평화운동은 개인 차원의 영적 수양과 에너지·자원 절약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 전환운동’이라는 오해가 존재한다. ‘생명평화운동’이 사회 구조 안에 놓여 있는 자신의 존재와 그 의미에 대한 개인적 자각과 성찰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생명평화운동’은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실천, 생명질서의 회복, 비인간 자연과의 공존, 불평등 해소와 평화를 추구한다. 당연히 ‘생명평화운동’은 우리 사회의 생명평화에 반하는 여러 모순과의 긴장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그 모순을 가장 근본적으로 천착할 때 정치적으로 유의미할 수 있다. 진보운동의 부재와 무기력을 절감하는 시기, 우리의 ‘생명평화운동’이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생명평화운동은 존재와 그 의미에 대한 개인적 자각과 성찰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사회적 실천, 생명질서의 회복, 자연과의 공존, 불평등 해소와 평화를 추구한다."  소양강.  정범진 쵤영
"생명평화운동은 존재와 그 의미에 대한 개인적 자각과 성찰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사회적 실천, 생명질서의 회복, 자연과의 공존, 불평등 해소와 평화를 추구한다."  소양강.  정범진 쵤영

직시하기 : 우리 안의 탐욕, 그 모순과 역설

한국 사회는 총체적 위기, 지속 가능성의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오늘의 재생산 위기는 이미 오래 전에 예고된 것이었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 0.6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거둔 우리의 자화상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이 상황을 관통하는 핵심고리는 불평등이다. 개선의 여지는 없고 날로 심화만 되어 가는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는 재생산의 단절은 물론 공동체의 안정을 위협한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자조를 넘어 확신으로 갖기에 이른 세대에게 그 다음 세대와 공동체가 자리할 여지는 없다.

기성세대는 자신의 집값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지만, 청년세대가 그 진입 장벽 때문에 재생산을 포기하는 현실은 받아들인다. 생태계 훼손은 물론 기대이익이나 타당성 모두 낙제점인 각종 개발사업을 남발하며 여당과 야당은 앞다퉈 표를 구걸한다. 총선을 앞두고 전국을 순회하며 모든 규제를 풀어버리겠다는 대통령 앞에서 청중은 환호작약하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이익에 대한 기대에 생태계 파괴와 혈세 낭비 주장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분단 70년 동안 국방예산 1200조 원(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SIPRI)이 넘는 돈을 남의 나라 무기를 사는 데 쓰다가 이제는 세계 10위권 무기 수출국이 되었다고 자랑한다. 언론은 그 무기 수출의 경쟁력이 약화될까봐 우려한다(“K방산 경쟁력 갉아먹는 전 안보실장의 처신” , 「민들레」 2024년 3월 12일). 대한민국이 개최한 역대급 대규모 무기 박람회에서 인명을 살상하는 총알에 중금속이 들어가 있지 않아 친환경 ESG라는 기업체의 홍보문구는 아연실색케 한다.

탐욕에는 휴전선도 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조선’)을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편입시켜 흡수통일하고, 경제성장의 방편으로 삼겠다는 전략은 김정은 위원장의 “교전 중인 두 개의 국가 관계 간주와 국토 완정”발언으로 보듯 조선과 정면 충돌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사회는 국내 최저임금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초저임금을 노동자들에게 지급했던 개성공단 재개를 노래 부른다.

이런 비판이 개성공단을 일방적으로 폐쇄하고, 기업들의 생존권을 박탈한 대한민국 정부의 반헌법적 행태를 정당화하려는 뜻은 물론 추호도 없다.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기득권 구조에 대해, 생태계를 파괴하는 국가에 대해, 생명을 살상하는 무기를 팔아도 돈만 벌면 된다는 군산복합체에 대해, 개성공단 노동자의 초저임금과 인권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안의 탐욕에 대해 ‘생명평화운동’은 무엇을 물었는가?

 

지난 4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된 한반도 방어를 위한 정례 연합 훈련 '자유의 방패'(FS:Freedom Shield) 연습을 하루 앞둔 3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RC-12X 가드레일 정찰기가 이륙하고 있다.한미 군 당국은 FS 연습 기간 지휘소 훈련과 함께 북한 순항미사일 탐지 및 타격 훈련, 연합공중강습훈련, 연합전술실사격훈련, 연합공대공사격, 공대지폭격훈련, 쌍매훈련(대대급 연합공중훈련) 등 실기동 훈련도 한국 전역에서 실시했다. 2024.3.3. 연합뉴스
지난 4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된 한반도 방어를 위한 정례 연합 훈련 '자유의 방패'(FS:Freedom Shield) 연습을 하루 앞둔 3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RC-12X 가드레일 정찰기가 이륙하고 있다.한미 군 당국은 FS 연습 기간 지휘소 훈련과 함께 북한 순항미사일 탐지 및 타격 훈련, 연합공중강습훈련, 연합전술실사격훈련, 연합공대공사격, 공대지폭격훈련, 쌍매훈련(대대급 연합공중훈련) 등 실기동 훈련도 한국 전역에서 실시했다. 2024.3.3. 연합뉴스

진단하기 : 한반도 짓누르는 생명·불평등·전쟁 위기 삼중고

현시기 지구공동체는 기후위기로 대변되는 생명의 위기가, 인류공동체는 양극화로 대변되는 불평등의 위기가, 그리고 이에 더해 한반도에는 분단 지속으로 인한 상시적 전쟁 위기가 짓누르고 있다.

당연히 한반도 공동체의 성원이라면 이 3중고의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에 매진해야 하나 정작 우리는 그러하지 못하다. 그 이유를 여러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으나, 핵심은 생명평화운동이 현재 한국사회의 모순구조를 정확히 드러내지 못하고, 제대로 된 대응도 조직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정치가 거세된 주류 환경주의의 기후위기 대응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의 라이프 스타일 전환 환경교육에 머무르고, 기후위기를 불러온 주범인 자본과 기업, 개발과 성장을 모든 것에 우선하는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노동자, 농민 등 생산자 대중을 보호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제도적 노력은 지속적으로 좌절당하고 있다.

입으로는 분단구조를 허물고 전쟁의 위험을 해소하겠다고 외쳤지만, 역대 극우 보수정부를 무색케한 군비증강과 참수부대 창설, 외국 군대와의 군사훈련 재개와 정례화는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였다. 정권교체들이 있었지만 기획재정부 관료가 주도하는 경제정책에서 자본 중심의 성장전략 외에 약자를 보듬는 공동체 대안경제는 여전히 설 자리가 없다.

총선을 맞아 윤석열 정부의 퇴행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비례연합정당이 만들어졌다. 지난 선거에서 그토록 위성정당을 비판하던 시민사회와 진보의 이름을 내건 정당들은 이제 그 위성정당의 주축이 되어 표를 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정작 자신들이 선출한 후보자마저도 지켜내지 못했고, 이런 행태에 대해 그 많던 민주당 민주인사(?)들은 단 한마디의 자기비판도 없다. 자신의 생존을 연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극복 대상인 보수야당과 정치적으로 연대하면서 대중의 동의를 구하는 것은 구차하고, 비루하다. 이것은 운동도 아니고, 지난 겨울 촛불로 추운 광장을 지켜냈던 시민에 대한 도리는 더더욱 아니다.

이번 비례대표 후보자 취소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런 연대는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에 대한 해법을 두고 선거 후 연대를 약속했던 그 집단에 의해 곧바로 무너질 수도 있음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5일 '일요일 의무휴업 사수 마트 노동자 300인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2024.3.5. 연합뉴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5일 '일요일 의무휴업 사수 마트 노동자 300인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2024.3.5. 연합뉴스

넘어서기 : 극복해야 할 남과 북의 한계와 신화

‘생명평화운동’은 보수야당과의 연대를 통해 한국 사회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환상과 헛된 희망고문을 멈춰 세워야 한다.

지금 한국 보수야당의 과오와 한계를 지적하자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7년 당시 후보 단일화를 거부하여 국민적 좌절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불러왔던 장본인이다. 오늘날 더욱 기승을 부리며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김대중 정부에서 도입되었다.

대북 송금 특검으로 남북의 신뢰를 흔들고, 전 국토를 개발대상으로 만들어 부동산 폭등과 불평등을 심화시킨, 그리고 남의 나라 전쟁터에 군대를 파견한 당사자는 노무현 정부였다.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 합의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개헌만 빼고 다할 수 있는 18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 수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의 자구 하나 바꾸지 않고 극우 검찰독재정권을 탄생시킨 장본인은 문재인 정부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 총선 공약에서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지키고, 대의민주주의를 넘어 민주주의를 확장·심화시킬 공약은 ‘반윤석열’ 구호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이북으로 시야를 넓혀보자. 연말을 거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통일과 평화를 추구하던 한반도공동체 구성원의 지난 시기 노력을 부정하고, 그 흔적을 지운다고 해서 남과 북, 한반도공동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조선(북한) 사회 역시 조선의 인민에 의해 생명과 평화의 관점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의 한계와 신화를 넘어서야 하듯, 북은 북대로 김정은 신화를 넘어서야 한다.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매표정치ㆍ색깔정치 중단 촉구 각계 선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4.3.20. 연합뉴스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매표정치ㆍ색깔정치 중단 촉구 각계 선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4.3.20. 연합뉴스

희망 만들기 : 생산현장과 마을에서의 생명 평화 가치 연대

‘생명평화운동’은 남과 북에서 공히 생명질서의 회복, 비인간 자연과의 공존, 불평등 해소,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새로운 대안사회 구축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분단 극복과 통일은 그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최소한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국제 질서의 정립, ‘생명평화민주주의 공동체’의 구축을 지향해야 한다.

그것은 당연히 혁명이고 체제 전환이며, 새로운 생명과 평화의 문명 건설이다.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강대국 중심의 패권적 국제질서를 거부하며, 부족한 빵을 민주적으로 나눠먹을 수 있는 탈성장 호혜의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돌봄과 보호에서 배제된 여성과 소수자가 생산현장과 마을에서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공유하고,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연대할 때 그 전망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기성 시민운동과 진보정당 앞에 놓인 절망의 벽은 높다. 그러나 지난 2월 초 2박 3일 동안 연인원 2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한 ‘2024 체제전환 포럼’의 열기에서 확인되듯이 우리 사회의 모순이 가장 응축된 현장에서 운동가들은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우리 안의 탐욕과 모순을 직시하고, 역설과 신화를 넘어 생명과 평화, 민주주의의 새 지평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생명평화운동’에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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