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정 칼럼]기후‘완화’와 ‘적응’ 위한 기후‘돌봄’ 사회

‘난잡’한 돌봄-모든 존재에 대한 무차별적 베풂과 우애

소극적 적응 넘어 이웃과 자연으로 친족 범위 넓히기

한윤정 한신대 생태문명원 공동대표
한윤정 한신대 생태문명원 공동대표

필자가 속한 한신대 생태문명원 연구자들은 최근 『기후돌봄: 거친 파도를 다 같이 넘어가는 법』(신지혜·한윤정·우석영·권범철·이재경·조미성 지음, 산현글방)이라는 책을 펴냈다.

기후돌봄? 이 새로운 조어를 들으면 누구든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사실 필자들도 기후돌봄이라는 말이 아직은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 단어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핵심 가치를 담고 있다는 점만은 확신한다.

기후돌봄은 과연 무슨 뜻일까?

기후‘완화’, 기후‘적응’을 위한 기후‘돌봄’ 사회의 구축

지난해 초, 한살림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 시행하는 생명협동연구 지원사업에 응모하기 위해 ‘한국형 기후돌봄 공생체 구상’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연구계획서를 작성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연구의 배경과 목적은 이렇게 돼 있다.

“기후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대응할 과제이지만 인식의 차이와 탄소경제 기득권층의 저항으로 인해 기후 변곡점 이전에 효과적인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이 가능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엄중한 상황이다. 게다가 우리가 지금 바로 효과적인 기후변화 대응 행동을 하더라도 200년 넘는 산업화 과정에서 배출된 온실기체는 장기간 대기권에 머무르며 그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는 두 가지 방향의 행동이 동시에 요청된다. 하나는 기후변화 완화(mitigation)이며 다른 하나는 기후적응(adaptation)을 위한 기후돌봄 사회의 구축이다.”

기후돌봄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기후위기 시대에 잠재적/실질적 기후재난 피해자인 인간(개인/집단)이 자신과 잠재적/실질적 동료(인간/비인간 존재) 기후재난 피해자들을 위해서 기후재난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최소화하며 발생한 기후재난 피해로부터 삶을 복구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돌봄 활동”으로 잠정 정의했다.

 

지난 4월 25일 호주 던스버러 토비즈 인렛 해변에 좌초한 고래. 이들을 돕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2024.4.25.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4월 25일 호주 던스버러 토비즈 인렛 해변에 좌초한 고래. 이들을 돕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2024.4.25. 로이터 연합뉴스

또한 “기후돌봄 사회의 구축은 국가나 공공부문의 중요한 정책과제이겠으나 지금으로서는 시민사회 및 지역공동체의 재활성화 원리로서 추구되어야 한다.”라고도 밝혔다. 왜냐하면 “기후재난 피해 사태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돌봄 메커니즘과 역량은 취약하다 못해 우려스러운 상황”(오송지하차도 참사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이며 “그동안 시민사회 역시 암암리에 성장을 전제로 한 분배, 비인간 존재를 고려하지 않은 인간 중심적 인권의 원리를 중심으로 형성되어왔지만 지금 기후위기 시대에는 탈성장 전환이라는 목표에 비춰 과거와는 전혀 다른 (인간/시민사회의) 정체성과 임무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 후 일 년여 여러 차례의 토론을 거쳐 연구팀은 기후돌봄의 개념을 좀 더 구체화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돌봄을 사회운영의 원리로 삼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게 어떤 모습일지 가늠해보고 가능하면 구체적인 실천방안도 제시하고자 했다. 물론 각자의 글을 모아서 펴낸 지금도 기후돌봄 연구는 초기 단계이고 더 정교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 우선은 기후와 돌봄, 둘 다 크고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데 그 이유가 있다. 요즘 기후는 기후정치, 기후경제, 기후식단처럼 ‘기후를 고려한’이란 뜻의 전치사처럼 사용된다. 급변하는 기후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요동치게 만들고 변화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기후보다 좀 더 사회적 실체가 뚜렷한 개념인 돌봄으로부터 출발했다. 돌봄이라고 하면 어린아이, 노인, 환자, 장애인 등 취약한 인간을 돌보는 행위를 먼저 떠올린다. 돌봄(care)이란 용어 자체가 간호학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하면 돌봄이 필요한 인간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취약하지 않은, 건강한 성인도 살아가는 일 자체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임금노동을 해야 한다면 그런 생산을 위한 의식주 돌봄, 즉 재생산이 필요하다. 이 같은 돌봄은 전통적으로 아내, 엄마로 호명된 여성이 가정에서 수행해왔다. 그래서 돌봄은 페미니즘 용어로 전유되었다. 임금을 받지 못하면 가치 없는 노동이 되던 시절, 페미니스트들은 부불(否拂, unpaid)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싸웠고 주부의 가사노동에 법적 비용이 매겨졌다. 돌봄은 점차 가정과 가족의 영역 바깥으로 나오면서 국가(公)가 책임지는 복지와 시장(私)이 개입한 돌봄상품의 중간쯤 자리 잡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주 헌팅턴 비치의 병원 관리자와 자원봉사자가 지난 14일 오렌지 카운티의 습지 및 야생동물 관리 센터에서 아픈 갈색 펠리컨 환자를 돌보고 있다. 이 센터는 최근 몇 주 동안 굶주림, 빈혈, 저체온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100마리 이상의 갈색 펠리컨을 돌보고 있다. 수백 마리의 쇠약해진 펠리컨이 캘리포니아 해안 여기저기에서 발견되었으며 일부는 최근 몇 주 동안 낚시 바늘과 낚싯줄에 부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4.5.14. AFP 연합뉴스
캘리포니아주 헌팅턴 비치의 병원 관리자와 자원봉사자가 지난 14일 오렌지 카운티의 습지 및 야생동물 관리 센터에서 아픈 갈색 펠리컨 환자를 돌보고 있다. 이 센터는 최근 몇 주 동안 굶주림, 빈혈, 저체온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100마리 이상의 갈색 펠리컨을 돌보고 있다. 수백 마리의 쇠약해진 펠리컨이 캘리포니아 해안 여기저기에서 발견되었으며 일부는 최근 몇 주 동안 낚시 바늘과 낚싯줄에 부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4.5.14. AFP 연합뉴스

‘난잡’한 돌봄-모든 존재에 대한 무차별적 베풂과 우애

이런 돌봄이 크게 주목받은 건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이다. 사회화된 돌봄이 갑자기 중단됐을 때, 일례로 학교와 어린이집이 문을 닫아서 부모가 종일 아이를 집에서 돌봐야 했을 때, 사회적 혼란이 벌어졌다.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직장생활을 접고 집으로 돌아간 엄마들도 적지 않았다. 노인요양원의 열악한 돌봄은 사망률을 높였다. 적은 임금을 받는 외국인 여성 노동자 손에 맡겨진 노인들은 가족의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삶의 의욕과 저항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평상시 보이지 않던 돌봄 노동자의 존재도 드러났다. 중산층 이상 시민들이 집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할 때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물건을 배달하던 이들은 감염 위험에 전면적으로 노출됐다.

돌봄을 사회운영의 중심 원리로 삼자는 주장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돌보거나 돌봄을 받을 권리를 인정하고, 돌봄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며, 무엇보다 돌봄을 생산의 보조수단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삶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놓자는 것이다. 팬데믹은 앞으로 또 올 것이고, 그만큼 동시적이고 강력하지 않더라도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경제적 어려움, 부정의, 불평등, 지정학적 갈등을 비롯한 복합위기가 예고돼 있다. 이런 세계에서는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인간과 모든 비인간 존재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취약해진다. 그 연결고리를 확인하고 튼튼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언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기후돌봄 연구에서 가장 큰 영감을 주었던 말이 ‘난잡한 돌봄(promiscuous caring)’이다. 『돌봄 선언: 상호의존의 정치학』(더케어콜렉티브, 정소영 옮김, 니케북스, 2021)이라는 짧은 책에 나오는 이 말은 돌봄의 성격을 바꿔놓는다. 난잡한 돌봄이란 대상을 차별하지 않는, 우선순위를 두는 시선이 없는 돌봄을 뜻한다. 이는 “인간, 비인간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체 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돌봄”이며 돌봄 대상을 실험적으로 확장해가는 돌봄, 즉 “가장 가까운 관계부터 가장 먼 관계에 이르기까지 돌봄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증식해가는 윤리 원칙”에 따른 돌봄이다.

이 말의 출처를 알면 좀 더 이해하기 쉽다. 더케어콜렉티브는 이 말을 더글러스 크림프의 에세이 「전염병 중에 난잡할 수 있는 방법」에서 가져왔다고 밝혔다. 크림프는 이른바 스톤월(1969년 경찰이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게이바를 습격한 사건) 이후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실험적인 성적 행위들이 배가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억압 그리고 에이즈라는 ‘재난’ 속에서도 관계를 지키고 삶을 이어갔다는 뜻이다. 여기서 크림프는 난잡하다는 말을 ‘가벼운’, ‘진정성 없는’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게이들이 서로에 대해 친밀감과 돌봄을 나누는 방법을 다양화하고 실험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이는 급진적 돌봄이 기존 질서를 거스르는 해방적 잠재력을 지니며 돌봄의 정의나 윤리마저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구성원에게 정당한 몫을 분배하는 정의나 서로가 지켜야 할 도리인 윤리에 따라 움직이는 관계를 넘어,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면 누구에게나 무차별적으로 베푸는 우애의 정신이 들어있다. 이런 난잡한 돌봄은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인간을 넘어, 동식물을 넘어, 생명을 넘어, 자연과 인공물까지 무한정 확장된다. 서식지를 침범당한 동물이 인수공통 감염병을 일으키고, 무기물인 온실기체가 지질시대(홀로세에서 인류세로)와 인류의 역사를 동시에 변화시키며, 인간의 무대이던 죽은 지구(Earth)가 불현듯 일어나서 인간을 위협하는 가이아(행성, Planet)로 변신하는 게 우리가 당면한 기후위기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제323회 서울특별시의회 임시회 3차 본회의가 열리는 26일 오후 서울시의회 앞에서 공공돌봄을 확충하라며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조례 폐지 중단을 요구하는 시민들. 2024.4.26. 연합뉴스
제323회 서울특별시의회 임시회 3차 본회의가 열리는 26일 오후 서울시의회 앞에서 공공돌봄을 확충하라며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조례 폐지 중단을 요구하는 시민들. 2024.4.26. 연합뉴스

소극적 적응 넘어 이웃과 자연으로 친족 범위 넓히기

기후돌봄은 기후위기 시대에 모든 존재의 취약성에 근거를 둔 돌봄을 확대한다는 의미와 함께, 기후를 돌본다는 좀 더 단순한 의미로도 사용할 수 있다. 기후를 돌본다는 것은 지구를 구한다는 것만큼 황당한 소리이며 여전히 인간 중심적인 오만한 사고가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돌봄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기후가 만물을 순환시켜 우리를 돌보듯이 우리도 기후를 돌볼 수 있다. 기후위기가 더 악화하지 않도록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완화), 기후재난의 향방을 살펴서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적응), 나아가 어쩔 수 없이 닥친 재난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실패를 바탕으로 과거보다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는 일(회복력) 등이 기후를 돌보는 일들이다.

이 가운데 완화와 적응의 문제는 돌봄의 필요와 관련이 있다. 지금 기후위기 대응 방향은 완화 못지않게 적응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후위기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제6차 종합보고서(2023)는 파리기후협약 가입국들이 제출한 국가감축목표(NDC)를 모두 지키는 최선의 시나리오에서도 지구 평균기온 2.7도(2.1~3.5도 범위)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해부터 벌써 기후 변곡점인 1.5도를 넘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더욱이 인류가 이미 배출한 온실기체는 길게는 수백 년까지 대기에 머물기 때문에 당장 배출을 멈추더라도 상당 기간 기후재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둘째, 완화정책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동안 기후 완화를 위해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고안하고 탄소 포집 기술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이 이어졌음에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계속 늘고 있다. 사실 기후변화를 완화한다는 말에는 인간이 과학기술의 힘과 정책, 제도를 활용해 기후변화를 제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숨어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처럼 현재 생활방식을 유지하더라도(BAU, Business As Usual)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정부와 기업의 노력, 국제사회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이에 재난은 늘어나고 개인과 공동체의 삶은 무너진다.

 

지난 3월 26일 워싱턴 주 오번에 있는 조기 학습센터 교실에서 두 살배기 딸을 안고 웃고 있는 어머니 자네타 자타. 워싱턴 주는 가족들이 보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큰 격차가 남아 있다. 2024.3.26. AP 연합뉴스
지난 3월 26일 워싱턴 주 오번에 있는 조기 학습센터 교실에서 두 살배기 딸을 안고 웃고 있는 어머니 자네타 자타. 워싱턴 주는 가족들이 보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큰 격차가 남아 있다. 2024.3.26. AP 연합뉴스

완화가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는 일이라면 적응은 지역공동체가 지방정부와 협력하면서 이뤄나가야 하는 일이다. 기후위기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지만 그 피해는 구체적인 지역마다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적응은 완화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현실로 닥친 문제에 대응하면서 완화를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일이다. 기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사업들은 다양하다. 고효율 단열재를 활용한 집수리, 태양광 패널 설치, 빗물 관리와 물 절약, 도시 텃밭과 옥상정원 마련, 새살림(업사이클링)과 폐기물 순환 등이다. 국가나 기업에만 의존하는 대신 스스로 안전을 지키고 생태계를 살리며, 나아가 기후적응에 필요한 사업을 중심으로 대안적 경제를 만들어내는 길이 지역공동체에 열려 있다.

이 같은 활동을 기후적응이라는 정책과 행정의 용어 대신 기후돌봄이라 이름 붙인 이유는 기후위기라는 주어진 조건을 견디며 살아간다는 소극적 태도를 넘어 삶을 지지해주는 돌봄의 대상을 기후까지 확장함으로써 거대한 생태적 연결망의 한 고리로서 우리 자신을 자각하자는 뜻이 들어 있다. 나아가 기후재난이라는 쉽지 않은 현실에서도 이웃과 자연과 더불어, 친족의 범위를 넓혀나가면서 욕망을 억압하지 않고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삶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의 표현이다. 기후위기 시대를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면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좋은 사회의 모습에 가까울 것이며 돌봄이라는 말은 그런 사회를 조직하는 중심 원리이다. 기후돌봄은 상호의존하는 자연생태계를 닮은 사회를 위한 발판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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