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PF·취약 차주 채무불이행 사태
산유국 감산·수요 증가…국제 유가 급등
“고물가·고금리 고통 상당 기간 지속”
22대 총선이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잠시 잊고 있었지만 잠복한 경제 위기 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고 있다. 정부가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문제를 선거 전까지 틀어막아 총선이 끝나면 일시에 분출할 수도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분야는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를 초래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다. 정부와 금융업체, 건설사, 보증기관 등이 연착륙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국제 유가가 다시 큰 폭으로 오르고 있는 것도 좋지 않은 징후다. 유가가 상승하면 물가를 잡기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금리 인하 예상 시점이 지연되며 원 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인플레이션 촉발 요인이다. 원화 가치 하락은 수입 물가 상승을 야기한다.
한국 경제의 고질병인 가계부채는 최근 증가율이 둔화했다고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때 금융지원을 받아 이제 대출을 갚아야 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다중채무자 등 약한 고리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한계가구와 한계기업이 늘고 있는 것도 빚 폭탄의 파괴력을 키우는 요인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지난달 28일 회의에서 최근 부동산 PF 연체율이 급등하는 흐름에 대해 경고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35조 6000억 원으로 작년 9월 말 대비 1조 4000억 원 증가했다.
이 기간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도 2.42%에서 2.70%로 상승했다. 2022년 말과 비교하면 1.51%포인트 급등한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연체율이 더 가파르게 올라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고금리 상황이 극적으로 바뀔 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부실 PF 사업장의 채무불이행 사태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 부실 PF가 초래할 금융시장 불안은 총선에서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선이 끝나면 '진실의 순간'에 직면할 수 있다. PF 대출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는 부실 사업장이 급속히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중소건설사 중에는 PF 대출 보증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한 곳이 적지 않다. 고금리와 부동산 시장 침체가 길어지고 있어 대형 건설사들도 안전하지 않다. 제2, 제3의 태영건설이 나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신용경색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경제 위기를 촉발하는 뇌관이 된다.
국제 유가 급등세 역시 우리 경제를 강타할 위기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유가가 오르는 것은 공급과 수요 양쪽에 이유가 있다. 석유 수요가 급증하는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하는 데다 산유국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멕시코 국영석유회사인 페멕스는 외국 정유사와 맺은 공급계약을 일부 취소했다. 자국 내 비싼 연료 수입을 줄이기 위해 수출 제한에 나선 것이다. 지난달 멕시코의 석유 수출은 2019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감소했다. 블룸버그는 멕시코를 비롯해 미국과 이라크, 카타르의 지난달 원유 생산량이 하루 100만 배럴 줄었다고 보도했다.
홍해에서 예멘 후티 반군 공격으로 원유를 운반하는 선박이 아프리카 남단 항로로 우회하면서 유럽에 원유 공급이 지연되고 있는 것도 국제 유가를 높이는 원인 중 하나다. 미국 등 서방 국가의 러시아 원유 수출 제재와 주요 산유국인 리비아와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불안 등 유가 공급에 부정적인 요인들이 동시다발로 발생하고 있다. 공급은 부족한데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여름 휴가철 특수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 제조업이 활기를 되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주요 유종의 가격은 배럴당 9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일부 유종은 9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100달러를 찍을 수도 있다. JP모건체이스는 연료 수요가 증가하는 올 8~9월 100달러를 오르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와 이란 등 정세가 불안한 산유국의 정유시설이 파괴되는 등 돌발 악재가 발생하면 추가 상승 가능성도 있다.
국제 유가 급등은 한국 경제에는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올해 들어 2%대로 내려왔다가 2월과 3월 다시 3%대를 기록했다. 유가가 급등하면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고 이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에 반영된다.
고물가가 지속되면 금리를 내릴 수 없다. 경기가 침체해도 대응할 결정적 카드가 사라지는 것이다. 올해 들어 수출이 살아나고 있으나 내수는 얼어붙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유가 급등은 우리 경제를 옥죄고 있는 고물가와 고금리 기간을 늘리는 악재다. 지금도 파탄 지경에 이른 민생 경제가 더 악화될 게 뻔하다.
부채 늪에 빠진 취약 차주들도 총선 이후 문제가 될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다. 가계부채 증가세는 둔화하고 있으나 취약 차주의 비중은 계속 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때 정부 지원으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문제다. 신용정보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자영업자 335만 8000여 명의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약 1110조 원에 달한다. 1년 전보다 대출자는 8만여 명, 대출 잔액은 27조 원 늘었다. 금융기관 3개 이상에서 돈을 빌려 추가 대출이 어려운 다중채무자 연체액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1월과 2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폐업 사유로 지급된 노란우산 공제금은 3117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이상 증가했다. 작년에도 폐업 사유 공제금 지급액은 2022년 대비 30.1% 증가한 1조 2600억 원을 기록했다. 공제금 지급액이 1조 원을 넘은 것은 처음이다. 이는 취약 차주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또 다른 징후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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