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쓰레기통 직행할 개발 공약 남발
총 2239개 중 실현가능한 공약 36%뿐
재원 조달 계획 제시된 것은 16% 불과
철도 연장·지하화 공약의 67%는 ‘뻥카’
“철도 노선 연장 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상투적인 개발 공약이라고 보면 된다.” 한 부동산 개발 전문가가 사석에서 귀띔해준 말이다. 과거 선거에서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후보자들은 지역 발전과 주민 삶의 질 개선 등을 내세우며 부동산 개발 공약을 쏟아냈으나 실제로 추진됐거나 완성을 본 사업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후보자들은 오지도 않을 기업을 유치한다며 산업단지와 복합단지를 조성하겠다고 하고, 철도와 전철을 지하화해 그 위에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큰소리친다. 주택 공급이 넘치는 지역에서 부동산 규제를 풀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겠다는 후보자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재원 조달 계획이 빠져 있고 기존 도시기본계획이나 도시관리계획과 상충하는 사업도 적지 않다. 인근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의 협조와 지원이 필수적인데 임기 내 끝내겠다며 공수표를 날리기도 한다.
22대 총선에서도 여야 후보들은 수천 개의 개발사업 공약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재원 조달 계획과 구체적인 사업 방식 등을 제시한 후보는 많지 않다. 실현 가능성이 없어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게 뻔한 개발 공약도 부지기수다. 표심 공략을 위해 개발 공약을 가장 많이 쏟아낸 정당은 국민의힘이다. 이번 총선에서 나온 개발 공약의 절반 이상을 국민의힘이 내놓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도시개혁센터는 시사저널과 공동으로 이번 총선에 출마한 여야 후보의 개발 공약 전수조사와 전문가 평가 결과를 4일 공개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녹색정의당, 새로운미래, 개혁신당, 진보당 등 6개 정당의 지역구 254곳 후보 608명의 개발 공약과 필요 재원, 재원 마련 방안 등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이들 후보가 내놓은 개발 공약은 총 2239개에 달했다. 국민의힘이 1136개로 전체의 약 51%를 차지했다. 민주당이 893개로 40%, 나머지 4개 정당은 9.4%였다. 후보 1인당 평균 3.7개의 개발 공약을 발표한 셈이다.
문제는 개발사업의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했을 뿐 재원 조달 계획을 공개한 후보는 개발 공약을 내건 537명 중 153명(28%)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공약 자체로 보면 총 2239개의 16%인 357개만 재원 조달 계획을 담고 있다. 재원도 국가와 지방재정으로 충당하겠다는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의 개발 공약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의미다.
개발 공약에 투입해야 하는 재원 규모도 상상을 초월한다. 재원 규모를 밝힌 개발 공약의 전체 재원을 추정한 결과 최소 554조 원에서 최대 563조 원이 필요하다. 재원 조달 계획을 밝히지 않았거나 미정인 1882개 공약을 모두 조사하면 그 금액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게 분명하다. 전체 개발 공약 16%의 필요 재원 규모가 554조~563조 원이니 단순 계산해도 3000조 원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5배에 달하는 규모다.
전문가 평가에서도 실현 가능성이 있는 공약은 36%에 불과하다. 공약별로 5점 만점을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 전체 공약의 실현 가능성 평점은 1.8점이었다. 도시‧부동산 전문가들이 필요 재원과 재원 조달 방안, 이행시기, 이행 방법, 예비타당성 조사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각 공약을 평가한 결과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하위 30위 공약을 유형별로 분류해 보면 철도(전철) 노선 연장이 16건으로 가장 많다. 역사 신설과 지하화까지 합하면 철도 관련 공약이 67%를 차지한다. 도로 건설이 4건, 도시개발이 3건, 기업 유치와 특구 지정, 문화 체육시설 건설이 각각 1건으로 뒤를 잇는다. 선거법에 위반될 수 있어 공약별 순위는 공개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개발 공약의 가치성도 평가했다. 평점은 5점 만점에 2점에 그쳤다. 사업 효과가 떨어지거나 환경파괴 등 공익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개발 공약이 많아 점수가 낮았다. 가치성이 낮은 하위 30건 중에 도시개발 유형이 10건으로 가장 많고 철도(전철) 역사 신설 5건, 노선연장 4건, 도로건설 3건 등이었다.
전문가들은 여야가 비슷한 개발 공약을 쏟아내다 보니 공약 간 조정 실패 상황이 발생한다고 진단한다. 실현된다면 그로 인한 시장 충격 여파가 지역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고 서민 주거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비전이 없고 실현 가능성 떨어지는 단기 부동산 개발 공약의 남발을 중단하고 지역 풀뿌리 기업들이 해당 지역 내에서 자생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순환 생태계 구축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경실련은 “여야를 막론하고 총선 후보자들이 ‘지하화’ ‘복합개발’ ‘민자’ ‘기업 유치’ ‘00타운 조성’과 같은 어구가 담긴 부동산 개발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대부분 허황된 주장”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최소 수조 원에 이르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그러한 개발이 만약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로 인한 물리적 환경 변화가 해당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것인지, 예상되는 부정적 파급효과는 없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더 이상 이런 도시 대재앙 사업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옥석을 가려내 심판해주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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