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산업혁명의 리더가 되려는 중국

‘개혁개방’에 버금갈 중국 ‘신질생산력’

2024년 예산 과학기술분야 10% 증가

한국, R&D 예산 오히려 14.7% 깎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2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옆자리의 리창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와 함께 중국 최대 연례 정치행사인 전인대는 오는 11일 폐막한다. 2024.03.08. AP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2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옆자리의 리창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와 함께 중국 최대 연례 정치행사인 전인대는 오는 11일 폐막한다. 2024.03.08. AP 연합뉴스

시진핑은 어떻게 미국을 따라잡으려 하나?(How Xi Jinping plans to overtake America)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지난 3월 31일 기사 제목이다. 기사는 지난해 9월 중국 시진핑 주석이 동북부 헤이룽장(흑룡강)성을 방문한 얘기로 시작한다. 중국의 러스트벨트(rustbelt. 산업 사양화 지대)로 알려진 헤이룽장성은 출산율이 중국에서 가장 낮고, 성도인 하얼빈의 주택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성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6%, 인플레율 조정 전의 명목 GDP 성장률은 제로(0)로 심각한 디플레 상태였다. 기사는 이런 헤이룽장 성 상황을 지금 중국경제 전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표본으로 지목했다.

‘개혁개방’에 버금갈 ‘신질생산력’

그때 시 주석이 디플레 상태의 중국경제 돌파구로 제시한 것이 “새로운 질적 생산력”(신질생산력 新質生産力) 함양이었다. 이 신질생산력은 이후 수십차례 국영 매체들과 공식 모임들에 등장했고, 지난 3월의 연례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도 집중 조명을 받았다. 베이징대학 왕셴칭 교수는 자신의 새 책 서문에서 이 말을 덩샤오핑이 1978년에 제시한 뒤 지금까지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개혁 개방”에 비유하면서, ‘신질생산력’이 앞으로 이 ‘개혁 개방’만큼이나 오래 갈 내구력을 지닌 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질생산력의 핵심은 서방의 첨단기술 따라잡기와 이를 위한 과학기술 예산 대규모 집중투입이다.

 

중국을 방문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왼쪽)이 5일 광둥성 광저우에서 왕웨이중 광둥성 성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옐런 장관은 닷새간 중국에 머물며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 등과도 만날 예정이다. 2024.04.05.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을 방문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왼쪽)이 5일 광둥성 광저우에서 왕웨이중 광둥성 성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옐런 장관은 닷새간 중국에 머물며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 등과도 만날 예정이다. 2024.04.05. 로이터 연합뉴스

2024년 국가예산 과학기술분야 10% 증가

중국은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2024년도 과학기술 예산을 전년 대비 10% 늘린 3710억 위안(약 68조 6천억 원)으로 책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5년 만의 가장 큰 증가폭이다. 2023년 증가율 2%보다 무려 5배나 높은 증가율이다.

중국정부는 2024년 예산계획 초안에서 “전체적인 예산 제약이 있지만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중국 발전을 이끄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므로 지속적인 예산 지출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산업 발전 프로그램을 마련해 양자 기술과 생명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겠다고 했다. 리창 총리는 커넥티드카(스마트카)와 첨단 수소 에너지, 바이오 제조, 항공우주 산업 등의 분야에서 표준 지침과 품질을 강화해 ‘메이드 인 차이나’ 브랜드를 더 많이 창출하자고 제안했다.

중국의 이런 신질생산력 전략은 계획대로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미국이 위협과 위기를 느끼고 대응을 서두를 정도로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1일 대덕특구 연구소가 밀집된 대전 유성을 선거구를 찾아 이상민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 그는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삭감으로 상처받은 주민들에게 반성하겠다고 말했다. 2024.4.1. 연합뉴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1일 대덕특구 연구소가 밀집된 대전 유성을 선거구를 찾아 이상민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 그는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삭감으로 상처받은 주민들에게 반성하겠다고 말했다. 2024.4.1. 연합뉴스

거꾸로 가는 한국의 산업발전전략

이는 R&D(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해 버리고, 우주항공, 양자컴퓨터 등의 미래지향적 첨단기술보다는 석유, 석탄, 원자력 등 전통기술 중시의 과거회귀적 국가산업전략을 수립한 윤석열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방향이다.

올해 우리나라 연구개발(R&D) 예산은 26조 5000억 원으로 2023년보다 4조 6000억 원이나 줄었다. 이는 1991년 이후 33년 만의 첫 연구개발 예산 삭감이었다. 지난해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과학계의 카르텔”이 문제라면서 R&D 카르텔을 언급했다. 그리고 손을 댄 것은 문제의 카르텔이 아니라 R&D 예산이었다. 카르텔이 무엇인지 별다른 설명도 없이 예산만 전년 대비 14.7%나 깎아 연말에 국회에서 통과시켜 버렸다.

비판이 들끓으며 여론이 한국 대통령실은 나빠지자 4.10 총선을 1주일 앞둔 지난 3일 대통령실은 역시 별다른 설명도 없이 내년도 연구개발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얼마를 언제 어떻게, 왜 다시 늘려서 편성하겠다는 것인지 아무런 구체적인 설명도 없는 선언적 발표에서 진정성을 찾아보긴 어렵다.

첨단과학기술은 애써 국내에서 연구개발할 것 없이 다른 나라가  해 놓은 것 들여와서 쓰면 된다는 얘기가 권력 주변에서 나왔다는 얘기가 R&D 예산 삭감 직후에 시중에 떠돌았다.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연구개발(R&D) 지원 개혁 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4.3. 연합뉴스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연구개발(R&D) 지원 개혁 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4.3. 연합뉴스

왜 ‘새로운 생산력’인가?

왜 신질생산력(이하 ‘새로운 생산력’으로 통칭)인가?

1978년 개혁 개방 이래 중국은 이제까지 국가경제력 강화에 주로 노동력 동원과 자본 축적에 의존해 왔다. 기술은 서방 기업들로부터 차용하고 노동과 자본을 대량 투입해 경제력을 급속히 키웠다. 싱크탱크인 아시아생산성기구에 따르면, 1996~2015년의 기간에 노동자는 1억 명이 늘었고, 자본축적율은 2001년 GDP의 258%에서 20년 뒤에는 349%로 올라갔다. 자본의 많은 부분은 새로운 부동산과 인프라 형태로 축적됐다.

그런데 이제 고령화 저출산 등으로 노동력이 줄고 부동산 수요도 급감하고 있다.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가 줄고 부동산의 투기적 수익이 더는 보장되지 않게 되자 잠재적 주택 구입자들은 자신들이 돈을 미리 내고 구입할 아파트가 완성되기도 전에 자금이 바닥나 파산할지도 모를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신축 아파트 구입을 꺼린다. 부동산 경기 하락은 소비자 신용을 손상하고 지방정부들로부터 중요한 수입원을 앗아갔다. 코로나19 팬데믹 때의 철저한 봉쇄정책을 해제한 뒤에도 중국경제의 회복은 신통찮고 불안정하다. 지출(소비)은 중국의 기존 생산력을 충분히 가동시킬 만큼 강하지 않다. 결국 디플레 상태가 3분기 연속 이어지고 있다는 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더 발전되고 자족적인 제조업을 위한 투자 증대

중국과 같은 중소득국들은 일반적으로 서비스 분야로 경제의 중심을 옮겨가지만 중국은 제조업을 유지하면서 질적 수준을 높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미국의 첨단 핵심기술 수출통제로 자국산 대체제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정도 제조업 강화 요인이 됐다. 중국 제14차 5개년 계획(2021~2025)은 2006년에 약 3분의 1에서 2020년 4분의 1 남짓으로 줄어든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교하고 자족적인 제조업체제 구축을 추구해 온 중국은 다양한 지원정책들을 시행해 왔다. 예컨대 교육부는 최근 고급 반도체학과 공학(엔지니어링)에 집중하는 새로운 학부과정을 승인했다. 싱크탱크 전략국제연구소에 따르면, 보조금과 세금 감면, 저리의 신용대출 등 산업진흥정책들을 위한 더 적극적인 지출은 2019년에 GDP의 1.7%로 늘었다. 이는 미국의 이 분야 지출 비율의 3배가 넘는다.

 

허리펑(가운데) 중국 부총리가 6일 중국 남부 광저우의 광둥 주다오 게스트하우스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2차 양자 회담에 참석했다. 2024.4.6. AFP 연합뉴스
허리펑(가운데) 중국 부총리가 6일 중국 남부 광저우의 광둥 주다오 게스트하우스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2차 양자 회담에 참석했다. 2024.4.6. AFP 연합뉴스

“다음 산업혁명의 리더가 되려 하는 중국”

“중국이 정말 원하는 것은 다음 산업혁명의 리더가 되는 것”이라고 컨설팅회사 가베칼 드라고노믹스의 틸리 장은 말했다. 그렇게 되려면 기존 기술들에 대한 해외의 장벽을 뚫고 새로운 미래산업의 길을 개척해서 전통산업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베리 노턴은 헤겔과 마르크스 철학의 개념을 원용해 이를 설명한다. ‘새로운 생산력’이란 말은 마치 온도의 점진적인 상승 끝에 물이 수증기로 변하듯이, 양적 변화의 축적이 질적 비약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고 노턴은 얘기한다. 마르크스는 경제에서 새로운 생산력이 일정한 단계에 도달할 때 사회질서가 바뀐다고 했다. “맷돌은 봉건영주가 다스리는 사회를 만들 것이고, 증기기관은 산업자본주의 사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생산력의 시금석은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의 개선이라고 한 시진핑의 말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주류경제학에서 따온 개념이다. 이는 자본, 노동, 인적 자본과 같은 측정 가능한 투입량(inputs)의 증가가 생산량(output)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마르크스와 신고전경제학 개념을 혼합한 ‘새로운 생산력’은 “이상한 혼종 짐승”(strange hybrid beast)이라고 노턴은 말했다.

과학기술 분야 예산 최대로 증가

시진핑에 따르면 새로운 생산력은 과학과 기술의 응용에서 생산 쪽으로 흘러갈 것이다. 이 말은 중국의 기술 굴기가 오늘날보다 더 야심차고 경제적 생산과 더 탄탄하게 결합될 것임을 보여주는 신호다. 중국의 리더들은 기술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전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지난 3월 전인대에서 공개된 중국 중앙정부 예산 가운데 전년 대비 10%가 늘어난 3710억 위안(500억 달러)의 과학기술 예산은 모든 분야를 통털어 가장 많이 증가했다.

이런 시도와 노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에 수립된 15개년 계획은 R&D 지출 증가를 국가 목표로 정하고, 외국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성장에 대한 기술 기여도를 끌어올리는 것으로 설정됐다. 이는 중국 자체 생산 대형 여객기와 탐사선의 달 착륙과 같은 16개 메가 프로젝트로도 확인된다. 이런 것들은 주로 기존기술을 복제하려는 것이었다.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항로를 바꿔 새로운 정보기술, 재생에너지, 전기차 등 다양한 “전략적 이머징(emerging, 신흥) 산업들”을 부양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이들 산업들 중 다수는 아직 태동단계에 있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6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의 광둥 주다오 게스트하우스에서 허리펑 중국 부총리와 양자 회담에 참석했다. 2024.4.6. 로이터 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6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의 광둥 주다오 게스트하우스에서 허리펑 중국 부총리와 양자 회담에 참석했다. 2024.4.6. 로이터 연합뉴스

과학기술 혁신 정부 기여도 60% 

6년 뒤에 중국은 다시 진로를 “혁신 선도 개발전략” 쪽으로 바꾼다. 그것은 세계가 또 다른 산업혁명의 한복판에 있다는 믿음의 표출이었다. 디지털 기술, 사물 인터넷, 녹색 기술, 인공지능(AI)은 경제 전반의 획기적인 발전을 약속했다. 중국의 새 전략은 잡다한 이머징 산업들을 택하기 보다 상호 보강하는 기술 클러스터에 중점을 두었다.

이번 세기 중반까지 중국을 혁신 분야에서 “세계 강대국”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컨설팅회사 로디엄 그룹에 따르면, 2020년까지 2조 9000억 위안(GDP의 2.8%)을 과학과 기술에 쏟아붓기로 했다. 이 가운데 정부 기여도는 큰 폭의 세금 감면까지 포함하면 60%가 넘는다. 수혜자들 중에서 대학들과 연구소들이 그 6분의 1을 받았고, 약 60%는 기업들로 흘러들어갔다.

첨단 기술분야 최전선에 도달한 중국

그 결과 중국은 전자 상거래, 핀테크, 고속열차, 재생에너지 분야 기술의 최전선 또는 그 가까이에 서 있다. 전기차도 마찬가지인데, 놀랍게도 전기차 분야 성공으로 중국은 지난해 세계 최대의 자동차 수출국이 됐다. 싱크탱크 호주정책연구소가 확인한 64개 핵심기술들 중에서 중국은 가장 영향력 있는 논문들 비중을 기준으로 11개 분야를 뺀 나머지 모든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중국은 5G와 6G 통신에서 세계 1위고, 바이오 제조와 (반도체) 나노 제조, 적층 제조, 드론, 레이더, 로보틱스, 수중음파 탐지기(소나), 양자 내성 암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더 광범위한 국가혁신 생태계에서도 잘 나가고 있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가 발표한 글로벌 혁신지수는 인프라, 규제, 시장 상태, 연구 노력, 특허 판정, (논문)인용 수 등 약 80개 지표들을 종합한 것인데, 1인당 GDP 중위 소득국들은 그 순위가 보통 60위 권이지만 중국은 12위를 차지했다.

이런 성취들이 경제에 끼친 파급효과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중국의 “전략적 이머징 산업” 리스트는 2010년에 도입됐는데, 계속 진화해 가는 통에 쫓아가기도 어렵다. 중국 통계국 관계자들은 생산 수준에서 이 전략적 이머징 산업에 포함시킬 수 있는 기준이 뭔지 애매하다고 탄식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그들은 전략적 이머징 산업들이 2021년에 중국 GDP의 13.4%를 차지한 것으로 평가했다. 2014년의 7.6%에서 괄목할 정도로 향상된 것이다. 하지만 애초 목표로 정한 2020년까지 15% 달성까지 가지는 못했다. 이에 비해 부동산 건설과 서비스 분야 부가가치는 약 12%였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앞줄 왼쪽 여섯 번째)이 4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AI전략최고위협의회 출범식'에서 박상욱 과학기술수석(앞줄 왼쪽 일곱 번째), 최수연 네이버 대표(앞줄 왼쪽 첫 번째), 정신아 카카오 대표(뒷줄 오른쪽 네 번째), 유영상 SK텔레콤 대표(가운뎃줄 왼쪽 첫 번째), 김영섭 KT 대표(가운뎃줄 왼쪽 여섯 번째) 등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4.4.4. 연합뉴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앞줄 왼쪽 여섯 번째)이 4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AI전략최고위협의회 출범식'에서 박상욱 과학기술수석(앞줄 왼쪽 일곱 번째), 최수연 네이버 대표(앞줄 왼쪽 첫 번째), 정신아 카카오 대표(뒷줄 오른쪽 네 번째), 유영상 SK텔레콤 대표(가운뎃줄 왼쪽 첫 번째), 김영섭 KT 대표(가운뎃줄 왼쪽 여섯 번째) 등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4.4.4. 연합뉴스

중국에 추월당한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

지난 2월 29일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운영위를 열어 국가 중요 과학기술 수준이 처음으로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내용이 담긴 ‘2022년도 기술수준 평가 결과안’을 보고했다.

11개 분야 136개 국가적 핵심기술에 대해 주요 5개국의 논문과 특허를 분석한 정량평가와 전문가 1360명의 조사를 거친 정성평가를 종합해 실시한 평가 결과에 따르면, 전체 기술 수준은 최고기술 보유국인 미국을 100%로 봤을 때 유럽연합(EU)이 94.7%, 일본이 86.4%, 중국이 82.6%, 한국이 81.5% 순으로 평가됐다.

2020년 기술 수준 평가에서 미국 대비 한국은 80.1%, 중국은 80%를 기록해, 간신히 유지했던 우위가 2년 만에 역전된 것이다. 기술격차도 한국과 중국은 2020년 미국보다 3.3년 뒤처진 것으로 분석돼 같았지만, 이번 평가에서는 중국(3년)이 한국(3.2년)보다 격차를 더 줄였다.

136개 중 국가전략 기술 50개를 대상으로 한 세부 평가에서는 중국과의 격차가 더욱 커졌다. 미국을 최고 수준으로 봤을 때 EU는 92.3%, 중국은 86.5%, 일본은 85.2%, 한국은 81.7% 순으로 평가됐다. 한국은 2차전지 분야에서 다른 국가와 비교해 최고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됐지만 우주항공·해양은 미국 대비 55% ,양자는 65.8%로 기술 수준이 상당히 낮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에 앞서 2월 16일 윤 대통령이 대전 한국과학기술원 학위 수여식에서 축사를 하던 도중 “R&D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외치던 졸업생이 대통령실 경호원들의 제지를 받아 입이 틀어막히고 팔 다리가 들린 채 바깥으로 끌려 나갔다. 그 나흘 뒤인 20일에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R&D 예산 삭감은 한국 젊은 과학자들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다.

 

2023년 2월 17일에 촬영.한 사진. 중국과 미국의 국기가 반도체 칩이 있는 인쇄 회로 기판에 표시돼 있다. 2023.2.17 로이터 연합뉴스
2023년 2월 17일에 촬영.한 사진. 중국과 미국의 국기가 반도체 칩이 있는 인쇄 회로 기판에 표시돼 있다. 2023.2.17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의 한계 돌파할 ‘새로운 성장력’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리더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국이 점점 더 강화하고 있는 기술 엠바고와 최근의 첨단기술 성취에 놀라고 있다. 반도체 칩과 칩 제조장비 판매에 대한 미국의 전면적인 수출 통제 조치가 발표됐을 때 서방 장비들과 소프트웨어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가 어느 정도인지 드러났다. AI 분야에서의 미국의 성취는 중국이 최고라고 믿고 있던 리더들에게 반성거리가 됐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썼다. 특히 2022년 오픈AI의 대랑언어 모델 챗GPT가 등장했을 때 그들은 크게 놀랐다.

중국의 진보는 그들의 지도자들 때문에 손상당하기도 했다. 2021년에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당시 앞서가던 중국 기술(하이테크)기업들이 데이터를 오용하고 경쟁을 막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탄압했다. 그때의 규제 폭풍으로 다른 선도적 제조업체나 하드웨어 기술기업들보다는 알리바바와 메이투안 같은 소비자 상대 플랫폼 기업들이 타격을 받았다. 이 때문에 방대한 데이터를 집적하고 AI와 같은 다른 많은 선도기술들에 대한 투자자들이기도 한 그들 눈밖에 난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 손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로디엄 그룹에 따르면 그들 기업의 2023년 상반기 R&D 지출은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약 7%나 줄었다.

시진핑이 좋아하는 새로운 생산력의 시금석인 총요소생산성 증가 또한 속도가 느렸다. 2006년에 도입된 중국의 기술 프로그램은 그 성장 기여도가 60%로 올라갈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그 3분의 1 정도에 그쳤다. 신용평가기관 S&P 글로벌 레이팅즈의 루이스 쿠이주스는 중국이 바로 솔로 패러독스(Solow Paradox, 생산성 패러독스. 정보기술 분야의 급속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생산성과 생산성 성장이 둔화되는 현상) 버전의 피해자라고 지적한다.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시대가 열렸지만 생산성 통계만은 기대한 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이로 인한 좌절, 단점들은 상황을 흔들어 깨울 참신한 슬로건(구호)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그 슬로건이 바로 ‘새로운 생산력’인 것이다.

3갈래 혁신 전략

이제 중국의 혁신은 세 갈래로 추진된다. 하나는 기존 기술강국들이 거부할 수 있는 핵심기술의 복제, 두 번째는 나머지 세계가 아직 만들지 못한 것을 발명해내는 것이다. 중국 과학기술부는 지난 1월 다른 6개 부처와 함께 미래산업 리스트를 발표했는데, 그들 중 다수가 과거의 전략적 이머징 산업보다 더 나간 개척 분야였다. 거기에는 광자 컴퓨팅,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핵융합, 의사가 환자 상태를 일상적으로 모니터할 수 있는 디지털 트윈-디지털 시뮬라크라 등이 포함돼 있다. 중국정부는 연구소들에 대해 기본 연구자금의 절반 이상을 국가적 수요 충족에 돌파구를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35살 이하 나이의 젊은 과학자들에게 주라고 권장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가운데). 6일 중국 남부 광둥성의 광둥 주다오 게스트하우스에서 허리펑 중국 부총리와 양자 회담에서 마주 앉은 모습. 2024.4.6. EPA 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가운데). 6일 중국 남부 광둥성의 광둥 주다오 게스트하우스에서 허리펑 중국 부총리와 양자 회담에서 마주 앉은 모습. 2024.4.6. EPA 연합뉴스

“농촌을 점령한 뒤 도시를 포위한다”

중국의 논평가들은 종종 “구빗길에서의 추월”을 얘기한다. 중국이 현존하는 전통적 자동차 제조업체들을 따라잡으려던 오랜 노력이 실패한 뒤 전기차 분야에서 성공한 것은, 지금의 강자들이 지배하고 있지 못한 분야에서 따라잡기가 더 쉬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베이징의 대외경제무역대학의 지 마오와 그의 공저자들에 따르면, 2000~2012년의 중국 과학기술 정책은 국내외에서 이미 성숙단계에 도달한 산업들보다는 발효중인 신 산업에서 생산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게릴라전에서 마오쩌둥은 도시로 진출하기 전에 시골/농촌을 먼저 장악해야 한다고 믿었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오랜 지배적 전통 강자들의 우위가 상대적으로 덜한 더 험하고 거친 기술의 발견 쪽으로 진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을 쏟아부어도 변증법적 전환 보장못해

세 번째는 기존산업의 업그레이드다. “가장 전통적인 농업도 혁명적 기술들을 채용한다면 새롤운 생산력을 형성할 수 있다”고 베이징대 왕용은 주장했다. 그는 빅 데이터를 활용한 자동화 식재나 선택적 육종을 얘기했다. 양회 기간에 유명한 국영 증류주 회사 대표는 새로운 생산력은 냉철한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업그레이드에는 많은 돈이 들어 간다. 지난 10~15년 간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많은 돈을 들이는 것이 헤겔적(편증법적)인 생산 전환을 보장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중국의 기술개발 촉진에 들어간 돈 가운데 많은 부분이 토지판매와 특수 채권 발행으로 조성한 지방정부 재정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 재정 수입이 2020년부터 2023년 사이에 5분의 1 이상 줄었다. 경제가 호경기고 지방 당국들이 돈이 풍부할 때는 5~10년 간 이익이 없을 수도 있는 신생 산업에 마음대로 투자할 수 있다. 예컨대 2010년 성장기에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 진보적인 기술들에 자본이 흘러들어 갔다. 하지만 오늘날 지방정부들이 가난해진 시절에 경제적 긴급대응조치들은 장기적 안목의 시도들을 허용하지 않는다. 기업들은 단기 이익을 내는 프로젝트들에 투자하도록 압박을 받을 것이고, 지방정부의 장부 균형을 맞추기 위한 세금과 수수료에 시달릴 수 있다.

경기부양부터 하라?

지난 3월 양회에서 리창 총리는 장래의 국가 주요업무를 설정했는데, 첫째가 “산업 시스템의 현대화”, 둘째가 “새로운 질적 생산력”을 진작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디플레 상황을 저지하기 위한 국내 수요 확장은 세 번째 항목으로 밀렸다.

<이코노미스트>는 신질생산력 등 과학기술 혁신 드라이브 전략은 좋은데, 분위기와 시장이 되살아나지 않으면, 지방정부들은 그들의 곳간을 채우는데 애를 먹을 것이고 민간투자는 더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진핑의 중국경제 개혁(reinvent) 의지가 단호한 것은 알겠다, 하지만그렇게 하려면 경기부양부터 좀 하라는 충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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