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재무장관 ‘경제협력’ 강조했지만
대미 수출에만 의존하다 역풍 맞을 수도
과거 미 정부 무역 적자 폭 커지면 제재
미국 내 투자는 중장기 수출 감소 요인
지난 2020년 이후 우리나라 총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미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독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18일 이런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가 나오기 전날인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는 제1차 한·미·일 재무장관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3국 재무장관은 한목소리로 ‘연대와 협력’을 강조했다. 이날 회의는 한국 기업의 미국 내 투자와 양국 교역이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은행 보고서와 결이 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한국은행이 18일 BOK 이슈 노트에 발표한 ‘미국 수출구조 변화 평가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대미 수출액은 2003년 2분기 이후 처음으로 대중국 수출액을 앞질렀다. 미국이 금리를 높였음에도 경제가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데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적극적인 외국 기업 유치 정책에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은 앞으로도 견고한 미국의 소비 여건과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확대를 바탕으로 대미 수출은 상승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또 한국 기업의 미국 내 직접투자는 선진국들과의 기술 교류를 촉진하고 한국 경제의 성장률을 견인하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대미 수출 증가가 과도한 무역흑자로 이어지면 역풍이 불 수도 있다고 한국은행은 지적했다. 과거 미국은 대한국 무역수지 적자 폭이 커지거나 자국 산업 보호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면 무역 제재를 강화한 사례가 있다. 지난 2017~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추진이 대표적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의 낮은 수입 중간재 투입과 높은 생산비용 구조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제조업 생산구조는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중심으로 자국 산업 투입 비중이 높다. 이에 비해 수입 유발률은 낮은 특성이 있다. 이는 중국과 베트남 등 신흥국들이 고부가가치 중간재 수입을 계속 늘려 수입 유발률을 높이는 것과 완전히 다른 점이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기업 유치를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풀면서 미국 내 직접투자가 증가하고 이것이 대미 수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으나 시간이 갈수록 대미 수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미국의 높은 생산비용으로 한국 중소기업들의 동반 진출이 어려운 점도 대미 수출 증가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요인이다.
한국은행은 “대미 투자가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분야에 집중돼 있어 이들 첨단 분야에 대한 국내 투자 둔화, 나아가 인재 유출 위험도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대미 수출 실적에 안심하기보다 통상 정책적, 산업 구조적 위험에 주목하면서 에너지와 농산물 등으로 수입 다변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한국은행은 또 “근본적인 대응책으로 기술혁신을 통한 수출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미국으로 기울어진 윤석열 정부의 경제 외교에 경종을 울리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은 제1차 한·미·일 재무장관회의에서 3국의 긴밀한 협력과 연대를 거듭 강조했다. 옐런 장관은 “탄력적인 공급망 확대와 경제적 강압 대응, 제재 회피 방지 등 지역과 세계적으로 공유하는 핵심 목표에서 우리의 협력을 더 심화할 공간을 본다”고 밝혔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견제하고 한국에 대한 중국의 부당한 경제 제재를 막는데 공동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상목 장관도 “그간 다자무역은 효율성이 최우선시됐으나 팬데믹과 지경학적 분절화 등 공급망 교란을 겪으며 경제 안보가 또 다른 정책 목표가 되고 있다”며 “이런 실물경제 불확실성이 초래할 수 있는 금융 측면의 불안에 대해서도 3국이 협력해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화답했다. 스즈키 장관도 “일본과 미국, 한국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공유하고 있는 진정한 파트너”라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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