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때 "작성자, 출처도 없는 괴문서로 정치공작"

"검사가 작성 아냐" 펄쩍 뛰며 제보자·언론 맹비난

법원 판결로 정치검찰 충격 실태 드러나자 모르쇠

KBS 대담에서도 '패싱'…정권 아킬레스건 반증

고발 사주 4일 전 손준성, 1일 전 권순정과 식사

미리 보고받거나 지시‧승인‧동의 있었는지 밝혀야

윤석열 대통령이 KBS 박장범 앵커와 특별 대담을 갖고 있다. KBS 뉴스 유튜뷰 화면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KBS 박장범 앵커와 특별 대담을 갖고 있다. KBS 뉴스 유튜뷰 화면 갈무리

정치검찰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고발 사주' 사건으로 손준성 검사장이 법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지 열흘이 지났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신년 기자회견을 대신해 1시간 30분 동안 진행한 KBS 특별 대담에서조차 이 사안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아무리 짜고 치는 '약속 대련'의 홍보쇼였다고 하더라도 충격적 국기 문란 행위에 해당하는 고발 사주에 대해 언급 자체가 없었다는 점은 거꾸로 이 사안이 검찰정권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마냥 입을 닫는다고 사건의 전모가 이대로 묻힐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법원 판결 외에도 그간 제기된 여러 근거와 정황은 고발 사주의 배후에 윤 대통령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갈수록 키우고 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이미 공수처에 고발했으며, 여차하면 특검까지 추진하겠다고 벼르는 중이다. 이제 윤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혀야 할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고발 사주'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검사장)가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 사건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2024.1.31 [공동취재] 연합뉴스
'고발 사주'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검사장)가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 사건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2024.1.31 [공동취재] 연합뉴스

첫째, 고발 사주 실행 4일 전 윤석열 검찰총장은 손준성 검사를 따로 만나 식사를 했다. 뉴스타파 등 검찰 예산검증 공동취재단이 대검찰청으로부터 받아낸 '검찰총장 업무추진비 지출 증빙자료'에 따르면 손준성 검사가 첫 번째 고발장을 김웅 미래통합당 후보에게 전달하기 4일 전인 2020년 3월 30일, 윤석열 검찰총장은 손준성 검사와 서울 서초구 한정식집 '명선헌'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당시 손준성 검사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었다. 이 자리는 수사 정보 등을 수집해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맡아 흔히 총장의 '눈과 귀'로 불린다. 식사 당일 윤석열 총장의 업무추진비 집행 명목이 '수사정보정책관 등 오찬 간담회'였다. 업무추진비 카드로 총 34만 3200원을 결제했다. 윤석열 총장이 쓴 업무추진비 내역으로 보면, 2019년 7월 총장 취임 이후 윤석열 총장이 손준성 검사와 오찬을 가진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대검찰청은 두 사람의 식대를 결제한 카드 영수증의 결제 시각과 참석자 명단을 가린 채 공개했다. 따라서 영수증만으로는 두 사람이 정확히 몇 시에 식사했는지, 그리고 두 사람 외에 추가 참석자가 더 있었는지는 파악할 수 없다.

 

권순정 법무부 검찰국장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설 특별사면 기자회견에 참석해 세부 사항 설명을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2024.2.6. 연합뉴스
권순정 법무부 검찰국장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설 특별사면 기자회견에 참석해 세부 사항 설명을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2024.2.6. 연합뉴스

손준성 수사정보정책관과의 오찬뿐만 아니라, 고발 사주가 실행되기 바로 전날인 2020년 4월 2일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권순정 당시 대검 대변인과도 오찬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날 윤석열 총장은 '대변인 등과의 오찬 간담회' 명목으로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의 한 오마카세 식당에서 총 24만 원을 업무추진비로 썼다. 이 자리에 윤석열 총장과 권순정 대변인 외에 누가 더 있었는지는 검찰이 마찬가지로 참석자 명단을 가렸기 때문에 알 수 없다.

권순정 대변인 역시 고발 사주 사건에 연루된 인물이다. 공수처는 지난 대선 전에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윤석열 총장과 한동훈 검사장을 포함해 권순정 대변인까지 피의자로 입건했으나 대선 직후 손준성 검사 외에는 모두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권순정 대변인은 현재 '검사장 4대 요직' 중 하나인 법무부 검찰국장을 맡고 있다.

 

2020년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과 공수처 수사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타임라인. 뉴스타파
2020년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과 공수처 수사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타임라인. 뉴스타파

둘째, 손준성 검사는 윤석열 정권 들어 끊임없는 비호를 받았다. 선거를 앞두고 검찰이 특정 정당에게 여권 인사들과 기자들을 고발하도록 사주한 것이 사실이라면 명백한 '국기 문란'이다. 이런 중대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손준성 검사는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재판이 한창 진행되던 지난해 4월, 손준성 검사를 자체 감찰하던 대검찰청은 '비위 혐의가 없다'는 터무니없는 결론을 내렸다. 이 사건을 처음 신고한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 출신 조성은 씨에게 "사건에 대한 조사와 대검 감찰위원회 심의 결과 비위 혐의를 인정하기 어려워 종결했다"고 통지한 것이다. 조성은 씨는 이를 페이스북에 공개하며 "이미 범죄·비위 사실이 인정돼 공수처에 이첩한 사건을 재차 무혐의 종결한 것은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급기야 지난해 9월 손준성 검사는 '검찰의 꽃'이라는 검사장으로 승진까지 했다. 법무부가 서울고검 송무부장 자리에 있던 손 검사를 검찰 고위직 인사를 통해 대구지검 차장검사로 보임한 것이다. 중대 범죄 의혹을 받는 검사를 징계하기는커녕 오히려 잘했다고 포상한 격이어서 고발 사주의 배후 등에 대한 '입막음용'이 아니냐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돼 왔다.

 

2021년 9월 8일 당시 국민의힘 대권 주자였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MBC 중계방송 화면 갈무리
2021년 9월 8일 당시 국민의힘 대권 주자였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MBC 중계방송 화면 갈무리

셋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출처와 작성자가 없는 괴문서"라며 공작과 선동이라고 강변한 바 있다. 2021년 9월 8일 당시 국민의힘 대권주자이던 그는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번번이 선거 때마다 이런 식의 공작과 선동으로 선거를 치르려고 해서 되겠느냐 하는 정말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어 오늘 제가 여러분 앞에 섰다"면서 취재진을 상대로 다음과 같이 목청을 높였다.

"앞으로 정치공작을 하려면 잘 준비해서 제대로 좀 하라. 인터넷 매체나 무슨 재소자나 또 의원들도 면책 특권 뒤에 숨지 말고, 우리 국민들이 다 아는 메이저 언론을 통해서, 국민들 누가 봐도 믿을 수 있는 신뢰성 있는 사람을 통해서 문제를 제기했으면 좋겠다.

늘 하는 시나리오가 하도 뻔해 가지고. 어떤 페이퍼, 종이 문건이든지 디지털 문건이든지 간에 그 작성자, 출처가 나와야 그게 확인돼야 그것이 어떠한 신빙성 있는 근거로서 그걸 갖고 의혹도 제기하고 문제도 삼을 수 있는 건데, 그런 게 없는 문서는 소위 괴문서라고 하는 거다. 이런 괴문서를 가지고 국민들을 혼동에 빠뜨리고.

이걸 인터넷 매체(뉴스버스)에 제일 먼저 제보했다는 사람(익명으로 제보했던 조성은 씨 지칭), 여러분 전부 다 알고 계시죠? 그 사람의 신상에 대해서. 과거에 그 사람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 여의도 판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고 저도 들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공익제보자가 되는가. 그렇게 폭탄을 던져놓고 숨지 말고 당당하게 나와서 그 디지털 문건의 출처, 작성자에 대해서 정확히 대라 이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공익제보자가 되면 공익제보라는 것의 취지에 맞는 것인가.

의혹을 제기하고 검증을 요구하려고 하면 정상적인 자료로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그것이 허위일 때는 당당하게 책임질 수 있는 그런 절차와 방법을 통해서 하라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고, 국민을 상대로 사기 치는 것이다.

이런 정치공작, 제가 그렇게 무섭나. 저 하나 그런 공작으로 제거하면 정권 창출이 그냥 되느냐. 당당하게 하라. 그리고 국민들께서는 진행 중인 내용들 꼼꼼하게 잘 보시고 다시는 이런 정치공작에 현혹되지 마시고. 치사하게 숨어서 하지 말고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그게 사실 아니면 책임질 각오를 하고 그렇게 해주기 바란다.

상식적 맥락에서 보라. 제 처와 한동훈 검사장의 채널A 사건 두 건을 묶어서 고발장을 쓴다는 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언론을 통해 고발장 내용을 봤는데, 도무지 검사가 작성했다는 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 제 처의 주가 조작 의혹은 특수부에서 1년 6개월째 조사하고 있다. 11년 전 일이고, 제가 결혼하기도 전의 일이다. 그리고 한동훈 검사도 당시는 실명이 나오기 전이었다. 도무지 이걸 야당을 통해 고발을 시켜서 뭘 어쩌자는 한다는 거냐. 상식에 맞아야 뭐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나한테 유리한 게 있나.

('메이저 언론', '제대로 된 언론'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냐는 기자 질문에) 작은 언론이 메이저가 아니라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뉴스타파나, 뉴스버스에서 (보도를) 하고 나서 막 달라붙을 게 아니라, 자신이 있다면 처음부터 독자가 많은 곳에서 시작하는 게 맞지 않냐는 것이다.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그런 데에 던져놓고 쭉 따라가지 말고 KBS, MBC에서 바로 시작하든지 아니면 더 진행되는 것을 보든지 말이다."

 

'고발 사주' 의혹 최초 제보자인 조성은씨가 2021년 10월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김웅 ·권성동·장제원 의원, 주광덕·박민식·김경진 전 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중앙지검에 고소하기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10.5. 연합뉴스
'고발 사주' 의혹 최초 제보자인 조성은씨가 2021년 10월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김웅 ·권성동·장제원 의원, 주광덕·박민식·김경진 전 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중앙지검에 고소하기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10.5. 연합뉴스

그러나 이처럼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주장과는 정반대로, 법원은 고발 사주의 실체를 명확히 인정했다. 손준성 검사장이 검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하고 국민의힘 김웅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했으며, 수사정보정책관실 성상욱 수사정보2담당관과 임홍석 검사가 고발장 작성을 위해 각종 자료를 조회하는 등 사실상 조직적 범행이 이뤄졌다는 점을 판결문에 적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그 지시자에 대해선 아무런 판단도 내놓지 않았다.

수사정보정책관실이 검찰총장의 지시 또는 승인, 최소한 묵시적 동의도 없는 상태에서 아무 이익도 없이 그 같은 국기 문란 행위를 자발적으로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에 이제 초점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모아지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금도 고발 사주가 '괴문서에 의한 정치공작'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대선 때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인지 국민들에게 다시 설명할 책임이 있다.

지난 7일 방영된 윤 대통령의 KBS 신년 대담에서 진행자인 박장범 앵커는 고발 사주 사건과 관련해 단 한 마디도 질문하지 않았다. 무작정 침묵하거나 모른 척한다고 덮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제 윤 대통령 스스로 입을 열어야 할 시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KBS 박장범 앵커와 특별 대담을 갖고 있다. KBS 뉴스 유튜뷰 화면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KBS 박장범 앵커와 특별 대담을 갖고 있다. KBS 뉴스 유튜뷰 화면 갈무리

이와 관련해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9일 성명서를 내고 "윤석열 대통령은 답해야 한다. 고발 사주가 실행되기 4일 전 검찰총장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수사정보정책관을 만나 취임 후 첫 오찬을 한 것이 진짜 우연인가?"라며 "고발 사주 실행을 미리 보고받거나 혹은 '암묵적 지시'의 사인을 보내준 것이 아닌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온갖 궤변과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손준성 검사는 1심 판결에 항소했다. 법원의 명백한 실형 선고에도 이렇게 뻔뻔할 수 있는 이유가 자신의 뒷배에 '최고 권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 아니냐"면서 "고발 사주는 공고한 '검찰 카르텔'이 대한민국 법치를 어디까지 짓밟을 수 있는지 보여준 사건이다.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헌법 원칙이 왜 검찰에게는 적용되지 않는지, 국민이 묻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민주당은 7일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그리고 임홍석 서울중앙지검 검사와 성상욱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를 공직선거법 위반 및 공무상 비밀 누설, 증거인멸 등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이들을 한 차례 무혐의 처분했던 공수처가 이번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재수사를 하지 않을 경우 특별검사를 통해 고발 사주 배후의 진상을 반드시 규명한다는 게 민주당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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