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 전국 돌며 나흘에 한 번꼴 '공약 발표회'
서울‧경기 집중…부산 시작으로 영남‧충청권 예정
호남은 제외…국힘 열세 지역이나 승부처에 몰려
실현 가능성 낮은 선심성 정책 무더기로 쏟아내
이미 11회 진행…언제쯤 중단될지도 알 수 없어
민주, 불법 선거운동 규정…선관위 저지도 촉구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 소통'을 이유로 부처별 새해 업무보고를 대체한다며 줄줄이 개최하고 있는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두고 신종 관권선거 아니냐는 의구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신년 기자회견도 안 하고, 예정됐던 독일·덴마크 순방도 느닷없이 연기한 윤 대통령이 유독 전국을 돌면서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행사에는 열성을 쏟고 있어 총선을 앞두고 사실상 '공약 발표회'를 하고 다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가 권역별로 골고루 열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1월 4일 경기도 용인시를 시작으로 고양‧수원, 서울 여의도‧동대문, 다시 경기 의정부·판교‧성남·하남, 서울 성수동 순으로 수도권에서만 10차례 연속 개최됐다. 가장 최근인 2월 13일에는 처음으로 수도권을 벗어나 부산 연제구에서 열렸고, 앞으로는 영남권과 충청권을 집중적으로 찾는다고 한다. 호남권에서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으며 앞으로 계획도 없는 상태다.
이렇게 국민의힘 열세 지역이나 승부처로 꼽히는 곳에 몰려있다 보니 자연히 선거용 행보라는 관측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건축 규제 완화, 상속세 완화,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 연장 및 신설 등 명분과 당위성이 결여됐거나, 야당과 협의를 통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거나, 막대한 예산이 소요돼 실현 가능성이 낮은 정책들을 정부 차원에서 무더기로 발표부터 하고 보는 것도 있을 수 없는 행태로 지적된다.
'부산이 활짝 여는 지방시대'를 주제로 부산시청에서 열렸던 민생토론회에서는 부산을 남부권 중심축으로 육성하기 위한 '글로벌 허브 도시 특별법' 제정과 함께 금융물류특구와 투자진흥지구 지정, '부산형 테크노밸리' 구축, 산업은행 부산 이전, 사직구장과 구덕운동장 재개발 정부 지원 등 장밋빛 청사진이 대거 제시됐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지방시대를 열어갈 가장 중요한 한 축이 부산"이라며 "부산을 물류와 금융, 첨단 산업이 어우러지는 종합적인 글로벌 허브 도시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라고 부산 민심에 노골적인 구애를 보냈다. 이날 동래시장을 찾아 상인 및 주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나흘에 한 번꼴로 빈번히 열리는 민생토론회가 유권자들의 환심을 노린 선거운동처럼 진행되고 있지만 언제쯤 끝이 날지 확실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대통령실은 당초 10회로 계획했었는데 총선 코앞인 3월 중순까지 15회 이상으로 늘렸다고 한다. 야당은 이를 공직선거법 등을 위반한 불법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저지를 촉구하는 한편 윤 대통령 및 관련 공무원들에 대한 고발 조치 검토에도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15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질문을 피해 기자회견도 열지 못하면서 불법적인 선거운동으로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해 선관위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거 시기와 관련되면 선거에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할 수 없는 것이 공무원들"이라며 "대통령 역시 선출직이지만 공무원으로서 동일한 법적 구속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거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런 식의 행위는 절제하고 자제하는 것이 필요한데, 한순간에 이런 관권선거 문화를 지금 확산시키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홍 원내대표는 "특히 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래 나라 살림은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선심성 공약만 쏟아내고 있다. 민생과 경제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고 총선에서 승리하는 데만 정신이 쏠려 있는 것 같다"면서 "국민들이 이에 대해 잘 살펴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관권선거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선관위는 이 부분에 대해 판단을 한 번 해 주기 바란다"고 거듭 윤 대통령과 선관위에 요구했다.
이개호 정책위의장은 국민의힘 총선 공약의 여러 문제점을 열거한 뒤 "집권 2년 동안 민생은 나 몰라라 하고 한 달에 한 번꼴로 해외 출장을 다니던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갑자기 벼락치기 민생간담회를 하면서 전국을 순회하고 있다"며 "거창하게 '민생토론회'라고 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보면 민생도 없고 토론도 없다. 심지어 검토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발표하는 터라 집권여당의 공약과 명백히 배치되는 정책도 난무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 정책위의장은 "이 정도면 '총선용 정권 홍보 쇼', 더 나아가서는 그냥 '본인 만족용 쇼'가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 개입을 멈추고 고단한 민생부터 살펴주길 부탁한다. 국민 앞에 약속을 말하기 이전에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에 대한 국민들의 물음부터 제대로 답해주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김성주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19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관권선거 사례를 들어 윤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1967년 제7대 총선은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이 달린 선거였다. 박 대통령은 3선 개헌선 확보와 정적의 낙선에 총력을 기울였다"며 "박정희 정권이 낙선 1번으로 지목한 야당 정치인은 김대중"이라고 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장을 광주로 파견해 선거를 지휘하도록 했고, 마지막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목포를 두 차례 방문해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호남 푸대접 불식과 목포 발전 방안을 발표했다"면서 "공장 수십 개를 목포에 유치하겠다고 하는 기업 유치 전략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은 목포의 전쟁으로 불리며 목포를 최고 관심 지역으로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반세기도 더 지난 7대 총선을 소환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신종 관권 선거가 도를 넘고 있기 때문"이라며 "지난 13일 부산에서 열린 민생토론회 보도자료의 제목은 '부산특별법 제정, 사직 야구장 재건축, 구덕 운동장 재개발, 센텀 2지구 개발'이다. 처음에 저는 국민의힘 부산시당 보도자료인지 의심했으나 용산 대통령실 보도자료가 맞았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선거 중립과 공정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김 수석부의장은 "총선이 55일 남았다. 윤 대통령이 갑자기 독일, 덴마크 방문을 취소하고 다음에는 충청권을 방문한다고 한다"면서 "그런데 왜 호남은 방문 계획이 없나? 줄 것이 없나? 주기가 싫은가? 아니면 선거에 도움이 안 되느냐? 윤석열 대통령은 불법적인 관권선거 운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은 대통령을 포함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와 함께 선거 개입 금지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항들이 존재한다.
헌법 제7조
①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②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공직선거법 제9조(공무원의 중립의무 등)
①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단체를 포함한다)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검사(군검사를 포함한다) 또는 경찰공무원(검찰수사관 및 군사법경찰관리를 포함한다)은 이 법의 규정에 위반한 행위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신속‧공정하게 단속‧수사를 하여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85조(공무원 등의 선거 관여 등 금지)
①공무원 등 법령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국가공무원법 제65조(정치 운동의 금지)
②공무원은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사실상 선거운동에 대해 법적 조치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서은숙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부산을 다녀갔다. 신년 기자회견은 KBS 단독 대담쇼로 대체하더니, 총선을 앞두고 전국을 돌며 민생토론회라는 핑계로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며 "부산어린이병원 건립을 지원하겠다, 사직구장과 구덕운동장을 재건축‧개발하겠다, 국민의힘 부산시당이 발표할 만한 총선 공약을 대통령이 대신하고 갔다"고 지적했다. 서 최고위원은 "공직선거법을 우습게 아는 윤석열식 관권선거"라면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는 명백한 선거법 위반임을 명심하라. 대통령 또한 선거법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경고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공직선거법 제85조 1항을 직접 읽은 뒤 "(이를 위반하면) 공소시효가 10년"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위반의 소지가 다분하고, 그 밑에 정책을 짜고 정책 활동을 하게 한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로 선거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 더불어민주당 관권선거대책위원회에서 이를 정밀하게 검토해 윤석열 대통령과 그 밑에 있던 공무원들의 행위에 대해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최고위원들 발언을 듣던 이재명 대표는 "국민 여러분께서 이해하기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재명 도지사가 평소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선거 때 다 돼 가지고 연천군 가서 이것 하겠다, 시흥시 가서 이것 하겠다, 이렇게 발표하면 공직선거법 위반일까요, 아닐까요?"라며 "저 같으면 이미 구속됐을 것 같다"고 말해 좌중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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