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안보다 후퇴한 수정안…특검 조항도 삭제
유족 눈물 외면한 여당, 집단퇴장하며 반대
이만희 "특별법은 국론분열, 사회적 혼란"
유가족 "우리가 얼마나 참아야 하냐" 오열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특별법을 공포하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9일 여당 의원의 불참과 반대 속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참사가 발생한 지 438일째 되는 날이다. 본회의장에서 방청하던 유가족들은 법안이 통과되자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유가족과 야4당, 시민사회 노력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출발점이 뒤늦게 마련됐지만, 특별법은 원안보다 다소 후퇴하게 됐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우려로 여당 요구를 최대한 반영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있는 만큼 유가족들에게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아있다. 유가족들은 "이태원 특별법 즉각 공포하라"고 촉구했다.
여야 합의 결렬…끝내 야당 단독 통과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재적위원 177명, 찬성 177명으로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에 대한 수정안(이하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표결에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만 참여했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반대 의사를 밝히며 전원 표결에 불참했다. 여당 의원들의 집단 퇴장을 보며 유가족 중 일부는 방청석에서 눈물을 훔쳤다.
여야는 지난달 28일 본회의에서 합의한대로 김진표 국회의장 중재안을 바탕으로 협상을 진행했다. 중재안은 특별검사(특검) 임명을 위한 국회 의결 요청 조항을 삭제하고 법 시행을 4월 총선 이후로 미루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중재안은 원안에서 크게 후퇴하는 내용이지만, 유가족도 여야 합의 통과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 중재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 원내대표는 협상을 진행해 특별조사위원회(조사위) 설치에 일부 공감을 했다. 하지만 위원 구성 등 세부 사항에서 거리를 좁히지 못하면서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여당은 유가족 추천이 야당 성향으로 예상돼 특조위 구성과 관련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당 요구대로 갈 경우, 특조위 자체가 형해화될 수 있는 만큼 야당과 유가족이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안이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본회의 전 의원총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단독으로 처리하겠다고 주장하고 있기에, 우리는 표결에 임하지 않고 퇴장해서 규탄대회를 할 것"이라며, 최종 협상결렬 의사를 밝혔다.
유가족은 혹한에 오체투지까지 하며 여야 합의로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했지만, 결국 그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여당 요구 반영한 수정안…원안보다 후퇴
국회 본회의 표결에는 김진표 국회의장 중재안과 여당 요구를 반영한 수정안이 올랐다. 지난 4월 야 4당 국회의원 183명이 발의한 원안에서 후퇴해 김진표 국회의장 중재안과 여당 요구를 반영한 내용이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민주당 국회의원 166명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특별법 수정안은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구성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는 직권으로 진상규명 조사를 하며, 자료·물건의 제출명령, 동행명령, 고발·수사요청, 감사원 감사요구, 청문회 개최 등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원안에는 특검 수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언제든지 국회에 이를 요청한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수정안에는 여당의 요구대로 특별검사 임명을 위한 국회 의결 요청 조항을 삭제했다. 진상규명을 위한 핵심 조항을 지운 것이다.
아울러 특조위 위원도 원안은 상임위원 5명을 포함한 17명의 위원으로 구성하는 내용이었지만, 수정안은 상임위원 5명을 포함한 11명의 위원으로 대폭 축소했다. 위원 구성도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와 협의해 3명, 각 교섭단체가 4명씩 추천하도록 했으며, 특조위 활동기간 연장도 당초 6개월에서 3개월 이내로 단축했다.
또한 수정안은 법 시행 시기도 '공포 후 3개월 경과한 날'에서 22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인 '올해 4월 10일'로 미뤘다.
대표발의한 박주민 의원은 표결 전 "원안에서 후퇴한 수정안을 제출하게 되어 마음이 매우 무겁다. 유가족분들의 의견을 100% 반영하지 못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민주당은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이러한 수정안을 제출하게 되었음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수정안은 유가족과 야당 입장에서 최대한으로 양보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여당은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이날 퇴장하지 않은 채 단독으로 반대토론을 신청하고 특별법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우리사회와 국회의 민주적 가치를 크게 훼손하고 편파적 입법, 참사의 정쟁화라는 부정적 전례로 기록될 것"이라며 "특별법으로 인해서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며 국가의 행정력 및 국민의 혈세가 엉뚱한 곳에 낭비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이 의원의 발언을 듣던 유가족들은 "우리가 얼마나 참아야 하느냐"고 외치며 오열했고, 야당 의원들도 "양심이 없다" "그러고도 국회의원이냐"고 항의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발언 시간을 지나 마이크가 꺼졌음에도 준비한 발언을 모두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갔다.
유가족 "이태원 특별법 즉각 공포하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어렵게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유가족들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이라는 또다른 문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이날 법안 통과 뒤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특별법 즉각 공포하라" "정부는 특조위 구성에 적극 협조하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그동안 1년 동안 열심히 투쟁했고, 우리 아이들이 간절히 자신들의 억울함을 밝혀주기를 원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첫걸음을 떼려고 한다"며 "이제 이러한 간절한 소망을 대통령은 뒷받침하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이러한 간절한 소망을 저버린다면 우리 유가족들은 이제는 결코 인내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대통령에게) 분명하고 똑똑하게 말씀드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절대 이태원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입장문을 내고 "특별법은 정부와 특정 고위공직자를 흠집내고 정쟁화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며 "2022년 10월 29일 국가의 부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결정과 과정으로 실제 나타났는지를 드러냄으로써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태원 참사의 진실을 염원하는 모든 국민의 이름으로 촉구한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아니라 즉시 법률을 공포하고, 빠른 시일 안에 제대로 된 진상조사기구가 출범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는 적극 협력해야 하라"고 재차 촉구했다.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울광장 앞 분향소로 돌아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희생자 159명의 영정 앞에 바쳤다.
관련기사
- 해 넘긴 이태원 특별법…"국회는 유족 눈물 기억하라"
- 이태원 유가족 '오체투지'에도 특별법 처리 또 밀려
- 민들레에서 딸아이 이름을 불러 봅니다
- 물타는 국힘…책임자 처벌 쏙 뺀 이태원 특별법 발의
- 이태원 참사 규명 독립 기구, 유엔도 권고…귀 막은 정부
- 이태원 참사 1주기, 국민들과 정의의 힘을 믿습니다
- 참사 307일 만에…이태원 특별법, 국힘 방해 뚫고 '성큼'
- 다시 일어선 이태원 참사 유족들…"특별법, 마지막 보루"
- 이태원 참사 유가족 삭발, 혈서까지…최악의 패륜 정권
- 살을 에는 혹한 속 '1만 5900배'…이태원 유가족 또 고행
- "대통령님, 유가족을 10분만이라도 만나주십시오"
- "가슴에 두 번 못질 말라" 이태원역~대통령실 오체투지
- 정부, 이태원법 거부권 건의…유가족 "차라리 우릴 죽여라"
- 159명 생명 못 지킨 정부…특별법 거부 사유가 황당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