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되면 기소 철회” ‘트럼프 소송’ 지연전략
시간쫓긴 특검 대법원 판결 요구하며 제동 걸자
대법원이 심리 거부하며 "항소심부터 거쳐라"
미국 연방 대법원이 22일 “대통령 임기 중에 한 행위는 형사책임에서 면제된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주장에 대한 항소심 절차를 건너뛰고 대법원이 신속히 결론을 내려 달라는 잭 스미스 특별검사팀의 신청을 기각했다고 <뉴욕타임스> 등이 23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내년 3월부터 공판이 예정돼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4건의 피소 사건 재판 일정이 선거 캠페인, 나아가 선거 이후까지 연장되면서 최종 판결이 나지 않은 가운데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그가 소송 자체를 기각시킬 수도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대법원, 항소심 건너뛰자는 특별검사 요구 기각
스미스 특검은 지난 11일, 대통령 면책특권을 이유로 트럼프에 대한 공판이 시작되기 전에 그에 대한 기소를 기각해 달라는 트럼프 변호인의 요구를 워싱턴 연방 지방법원이 지난 1일 기각한 뒤 이에 불복한 변호인이 7일 항소하자 신속히 결론을 내려 재판이 빨리 진행되게 하는 것이 “공익상 가장 중요하다”면서 통상적인 항소심 재판절차를 건너뛰고 대법원이 바로 심리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그것이 “이례적인 일이지만, 이번 사건 자체가 이례적인 것”이라며 재판을 신속히 진행하려는 자신의 대응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대통령 재임 중의 행위는 형사책임에서 면제된다”는 트럼프 쪽 주장을 지금은 심리하지 않겠다며 그 이유도, 몇 명이 반대했는지도 밝히지 않은 채 특검 쪽의 요구를 물리쳤다. 이에따라 항소심이 통상적인 절차대로 진행되게 됐다.
대법원이 검찰 쪽 요구를 수용해 심리를 하려면 9명의 판사 중에서 4명 이상이 동의해야 하며, 판정을 내리는 데에는 과반수인 5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지금 대법원은 트럼프가 대통령 재직 당시에 지명한 3명을 포함해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한 보수파 대법관이 모두 6명이다.
트럼프 쪽 변호인은 “현행 헌법 하에서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된 행위에 대해서는 탄핵, 파면되지 않는 한 형사소추에서는 완전히 면책된다”면서, 트럼프도 면책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공판이 열리기 전에 기소를 기각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트럼프 쪽 변호인 존 사워는 “권력 분립 체제에서 사법부가 대통령의 공적인 행위를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91개 죄목의 4건 기소 내용
트럼프는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미국 대통령 경험자로서는 처음으로 91개 죄목의 4가지 범죄 혐의로 기소됐다.
2020년 대통령선거 결과를 뒤집으려고 2021년 1월 6일 자신의 지지자들을 의회 의사당에 난입하도록 부추긴 혐의로 워싱턴 DC 연방검찰에 기소돼 연방 지방법원이 재판을 맡게 된 사건이 그 하나다. 또 하나도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해 조지아 주 개표 집계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조지아 주 풀턴 카운티 검찰관이 기소하고 조지아 지방법원이 재판을 맡은 사건이다.
그리고 포르노 배우 출신 여성 스토미 대니얼스와의 성추문 ‘입막음’용으로 13만 달러를 주고 회계장부를 거짓 기재한 혐의로 지난 3월 뉴욕 주 맨해튼 지구 검찰관에 기소당했다.
또 대통령 퇴임 때 기밀문서를 백악관에서 플로리다 주 마라라고 사저에 몰래 빼돌려 보관하다가 돌려 주기를 거부해 연방검찰이 기소하고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연방법원이 재판을 맡은 것이 있다.
트럼프, 1심 면책요구 기각되자 항소
이들 중 가장 먼저 내년 3월 4일 첫 공판이 열리는 워싱턴 DC 연방 지방법원 담당 사건을 앞두고, 트럼프 쪽 변호인은 대통령 면책특권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워싱턴 DC 연방 지방법원은 지난 1일 이를 기각했다. <로이터>, <AFP> 등의 외신에 따르면, 워싱턴DC 연방 지방법원은 트럼프가 자신의 지지자들 의사당 난입을 부추긴 것을 두고 “전직 대통령들은 연방 형사 책임에 대해 특별한 조건(면책 적용)을 누리지 못한다. 피고인(트럼프)은 재임 중 행한 범죄행위에 대해 연방 수사, 유죄판결, 처벌 등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그러자 트럼프 쪽 변호인은 "1월 6일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행위는 미국 국민들을 위한 것으로, 미국 대통령의 의무를 행한 것이었음이 자명하다"며 법원 판단이 편협하다고 비판하고 7일 항소했다. 그러면서 항소심이 끝날 때까지 모든 재판절차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항소심은 내년 1월 9일 변론이 예정돼 있다.
트럼프 쪽의 노림수
그런데 항소심 심리에만 몇 개월이 걸릴 가능성이 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트럼프 쪽이나 검찰 쪽에서 대법원에 상고할 게 분명해 또 몇 개월이 더 걸릴 수 있다. 항소심마저 기각되더라도 트럼프 쪽이 이의를 제기하며 대법원에 상고할 경우 내년 3월의 공판은 연기되고 11월 선거 전까지 공판을 끝내지 못할 수도 있다.
트럼프 쪽은 그것을 노리고 있다.
공판이 지연되고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시간을 끄는 가운데 대선이 치러져, 만일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그는 자신이 지명하는 법무장관의 권한으로 기소를 철회시킬 수 있는데다, 검찰 쪽이 수집한 증거 내용을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전에 알게 될 기회를 차단할 수 있다.
유죄로 판결나도 당선되면 취임 못 막아
지금 공화당 후보지명 선거전에서는 트럼프가 압도적 우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공판이 시작되는 내년 3월 4일부터는 공화당 후보 지명전도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때여서 각 주를 돌며 지지를 호소해야 하는 트럼프만 계속 법정에 불려다닐 경우 변수가 될 수 있다.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후보지명을 해야 하는 주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설사 유죄로 판결이 나더라도 그가 당선될 경우 대통령 취임을 막을 명확한 규정이 헌법에는 없다.
민주당과의 본선에선 트럼프에 불리할 수도
기소가 트럼프에게 불리할지 여부도 알 수 없다. 2016년 대선 때도 트럼프는 여성 추문 관련 대화 녹음 테이프들이 미디어를 통해 보도됐지만 당선됐다. 재임 중에 하원에서 두 차례나 탄핵당하고 2020년 대선에서 패했지만 그의 핵심 지지층은 지금도 여전히 흩어지지 않았다.
트럼프가 법정에 출두할 경우 미디어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그에게 관심이 집중되면 공화당 후보 지명전에서는 그가 더 유리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민주당 후보와 대결하는 본선에서는 그것이 트럼프에게 불리해질 수 있다. 본선에서 판세를 좌우하는 것은 무당파층인데, 당락을 좌우할 몇 개의 경합주들에서 재판 결과에 따라 무당파 유권자들이 트럼프 지지를 철회할 경우 그 영향이 클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지금 여러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현직 대통령인 바이든까지 추월하는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아직 예단하긴 어렵다.
콜로라도 주 대법원, 트럼프에 출마자격 없다 판결
한편 콜로라도 주 대법원은 지난 19일, 2021년 1월 6일의 지지자들 의회 의사당 난입사건에 관여한 트럼프의 대선 출마자격을 묻는 재판에서 그가 주 예비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트럼프의 대선 출마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나온 것은 콜로라도 주가 처음이다.
콜로라도에서는 유권자들이 의회 의사당 난입사건에 트럼프가 관여한 것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 3항을 위반한 것으로, 그의 예비선거 출마가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4조 3항은 “헌법을 지지하는 선서를 한 뒤에 미국에 대한 폭동이나 반란에 관여한 자는 국가나 주의 관직에 취임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860년대의 남북전쟁 직후에 정해진 것인데, 패배한 남군이 선거를 통해 다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다.
이 조항이 트럼프의 출마자격을 박탈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견해가 갈리고 있으나 콜로라도 주 대법원은 “가볍게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게 아니다”며 14조 3항에 따라 트럼프는 출마자격을 잃었으며, 예비선거 투표용지에 트럼프의 이름을 후보자로 기재하는 것이 부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트럼프 진영은 성명을 통해 콜로라도 주 대법원의 이런 판결을 민주당의 “선거개입 책략”이라며 연방 대법원에 이를 정지시켜 줄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콜로라도 주 대법원은 7명의 법관 중에서 4명을 민주당 지사가 지명했다.
판결의 직접적인 효력은 콜로라도 주에 한정되며, 트럼프 진영은 연방 대법원에 상고할 방침이다. 연방 대법원이 이를 심리할 경우 콜로라도 주의 판결은 유보된다.
그러나 연방 대법원이 심리를 시작하면 다른 주들에 대해서도 트럼프의 대통령선거 출마자격 여부를 판단할 가능성이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선거전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관련기사
- 이스라엘이 자극한 반유대주의, 트럼프 선거 돕는다
- '자기 회의'에 빠진 슈퍼파워, 미국은 어디로 가나
- 바이든 '이스라엘 편애' 정책에 백악관 내부도 '분열'
- 1년 남은 미국 대선 “지금대로면 트럼프가 이길 것”
- 이스라엘 전폭지지…바이든, 재선 위한 “위험한 도박”
- '한미일 동맹' 일제 식민지배 ‘1905년 체제’의 부활?
- 한-미-일 vs 북-중-러 대결 우주까지 넓히겠다는 미국
- 후보 사망·자격박탈? 미국 대선 '제3의 가능성' 대두
- 변함없는 트럼프 지지, 공화당 대선후보 '따논 당상'
- ‘슈퍼 화요일’ 압승한 트럼프 기다리는 치명적 악재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