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법 리스크 탓 1년 간 "미국 대선 과정 불투명"
바이든 또는 트럼프 당선 외 떠오르는 후보자 궐위
민주·공화 당규약, 주마다 선거법 달라 혼란 불가피
미국 정치 '비상' 따라 전 세계가 혼란 휩싸일 우려
"75세가 넘는 정치인은 임기 제한을 두거나 정신건강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젊은 세대에 자리를 넘길 필요가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 예선후보로 뛰고 있는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가 지난 3일 CBS '페이스 더 네이션' 인터뷰에서 쏟아낸 말이다.
한국 같으면 망언 논란 끝에 사과 요구가 쏟아질 발언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선 정치인의 나이와 건강, 정신상태 등을 면밀하게 따지는 게 당연한 민주적 정치 과정의 일부다. 정치적인 관점에서도 기껏 지지율이 낮은 후보(지지율 6.2%, 리얼클리어폴리틱스)의 안간힘 정도로 해석될 뿐이다.
정치인의 '고령 리스크'에 대한 미국 사회의 관심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결할 내년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지속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헤일리의 '망언'은 마침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81, 켄터키)의 건강 이상설이 제기되는 와중에 나왔다. 지난달 30일 켄터키주 커빙턴 기자회견 자리에서 매코널 의원이 30초간 화면이 정지된 듯 멍한 모습을 보인 뒤 우려가 확산됐다.
이코노미스트/유고브가 7일 발표한 조사 결과 75세 이상 정치인에 대한 '정신건강 테스트 의무화'에 76%가 찬성했다. 바이든(80)과 트럼프(77)는 불과 세 살 차이지만, 바이든의 건강을 걱정하는 유권자가 많다. 같은 조사에서 '(바이든의) 고령이 심각하게 업무 능력을 제한한다'는 답변이 57%나 나왔다. 트럼프는 30%에 그쳤다.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5월 20일 전용기로 올라가다가 넘어지는 장면. 바이든은 건강을 과시하기 위해 종종 나이 보다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처럼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있다. 영국 스카이 뉴스가 유튜브에 유포하고 있는 동영상으로 조횟수가 635만 명을 웃돈다.
매코널의 건강에 관심이 집중됐던 것은 그의 부재가 의회 운영에 결정적인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원 야당 대표의 역할은 막중하다. 매코널은 수십 년 동안 의회 민주당의 발목을 잡아 온 공화당 원로. 하지만 재정적자에 따른 연방정부 폐쇄, 우크라이나 지원, 하와이를 비롯한 자연재해 지역의 회복 등 중요한 국정 현안이 쌓인 상황에서 매코널과의 협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 사안이다. 다행히 의회 의료진이 5일 "발작 질환이나 파킨슨병과 같은 행동 장애가 없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72, 뉴욕)는 "매코널의 복귀를 보게 돼 기쁘다"라며 환영했다.
언제부터인지 미국 정치 지도자들의 활동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역할을 의사들이 맡게 됐다. 바이든도 "업무수행에 문제 없다"는 내용이 담긴 백악관 주치의의 소견서를 올해 초 공개했다.
백악관과 의회 민주당 지도부가 가장 집중하는 이슈는 연방정부 폐쇄 저지와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다. 예산 확정에 필수적인 관문은 하원 세입위와 상원 세출위.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과 타협을 이뤘지만, 매코널의 건강이 불안해지면 상원에서 결정적인 장애에 부딪히게 된다. 공화당 내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공화당 극우 성향 의원들 사이에선 이달 말을 기점으로 연방정부를 폐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매코널은 "의회는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필요에 부응해야 한다"면서 민주당과의 협치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문제를 아퀴 짓지 못하면 민주, 공화당이 대선 및 총선 체제에 돌입하는 올가을부터 1년 동안 미국 정치판 전망이 더욱 불투명해진다. '고령 리스크'가 내년 대선을 전후해 돌발상황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미국 대선은 공화당 또는 민주당 후보의 당선이라는 두 개의 시나리오가 있다. 내년에는 그러나 이에 더해 대선후보 또는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활동 불능 상태가 되는 '제3의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이든과 트럼프는 사법 리스크도 걸머지고 있어 후보 자격 상실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는 사기와 자산 조작, 선거 개입, 의사당 폭동 지시 혐의를 받고 있다. 바이든은 차남 헌터의 우크라이나 사업 개입 등의 혐의로 하원에 탄핵안이 상정된 상태다. 내년 대선은 고령과 사법리스크 탓에 벌써부터 가장 혼란스러운 선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앨라인 캐막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아예 후보 또는 당선자의 궐위를 전제로 발생 시기별로 5가지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캐막 연구원은 7일 연구소 사이트에 올린 분석에서 대선후보의 궐위 탓에 시기별로 예상되는 논란 및 절차를 짚었다.
시기는 △지금부터 2024년 1월 1일까지 △1월 1일부터 양당의 후보 선출 코커스 및 프라이머리(예비선거)가 끝나는 6월 중순까지 △6월 중순부터 8월 전당대회까지 △대선투표 다음 날부터 선거인단 투표가 예정된 12월 17일까지 △당선 뒤 등이다. 각각의 경우에 검토해야 할 당 규약과 주 및 연방 선거법, 헌법상의 문제 등 수십 가지의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다. 미국 조야가 살얼음을 걷는 심정으로 거쳐 가야 하는 다섯 고개인 셈이다.
내년 1월 1일이 가장 먼저 거론된 것은 민주당 규약 때문이다. 50개 주 가운데 22개 주가 12월 31일까지 예비선거 후보자 명단을 확정하기 때문이다. 후보 궐위 상황이 전개되면 후보 명단을 새로 만들지 못하고 예비선거를 치르게 된다. 예비선거에서 승리한 후보자가 공석이 되면 후보자가 없이 밀워키(공화)와 시카고(민주)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 당선자가 취임 이후 궐위되면 부통령이 승계하면 된다.
잇달아 전해지는 정치인의 고령과 정신건강, 사법 리스크 중 어느 것이라도 비상 상황으로 연결된다면 미국 내 혼란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변수들이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