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대통령실 신호’ 언급하며 수도권 차출 압박

장제원 요지부동 “권력자 뭐라 해도 할 말 한다”

조해진 “장제원 반발, 영남 중진 전체 목소리로 봐야”

영남·강원 중진 18명 중 5명이 무소속·민주당 당선 경험

국힘-민주-무소속 3자 구도에서도 “경쟁력 있다” 자신감

무소속 당선 가능성…복당해도 대통령 장악력 떨어질 듯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2일 부산의 한 교회에서 간증을 하고 있다. 2023.11.16. 장제원TV 갈무리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2일 부산의 한 교회에서 간증을 하고 있다. 2023.11.16. 장제원TV 갈무리

국민의힘에서 나온 영남권 중진 험지 출마론이 정국을 달구고 있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대통령실의 신호’를 언급하며 중진 의원들을 압박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요지부동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인 위원장이 ‘원조 윤핵관’ 중진을 압박하면서 본격적인 여권 분화의 단초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영남권 중진들이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수도권 차출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받아들이면 사실상 ‘정계 퇴출’이라는 부정적 인식과 함께, 공천을 받지 못해도 지역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투영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영남과 강원 지역에서 21대 국회 국민의힘 3선 이상 중진 18명 중 5명이 무소속 또는 민주당으로 당선된 경험이 있다. 대구 수성구갑의 5선 주호영 의원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수성구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이인선 후보(수성구을 현 의원)를 꺾고 당선됐다. 부산 사상구의 3선 장제원 의원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박근혜 키즈’ 손수조 후보와 민주당 배재정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도 강원도 강릉의 4선 권성동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김경수 민주당 후보를 꺾었다.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3선 김태호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부산 사하구을의 5선 조경태 의원은 이 지역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3선을 한 경험이 있다.

영남권 중진 5명의 사례는 이들이 국민의힘, 민주당, 무소속 3자 구도에서도 생환할 수 있는 경쟁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2016년 총선의 경우 대구 지역에서 ‘진박 감별사’ 논란이 빚어졌고 ‘비박’으로 분류된 주호영 의원이 공천에서 밀려나게 됐다. 역시 ‘친이계’인 장제원 의원도 ‘박근혜 키즈’에 밀려 공천에서 밀려났다. 2020년 총선에서 권성동 의원이 공천 탈락한 것도 옛 친박계인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 대표가 ‘친이’ 색채가 뚜렷한 권 의원을 배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위 3명의 사례는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서 존재해 온 계파 갈등이라는 성격이 강하지만 2020년 김태호 의원의 사례는 인요한 위원장이 주장하는 ‘영남 중진 차출론’과 가장 유사한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김태호 의원은 황교안 대표 등 지도부로부터 험지 출마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아왔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탈당한 뒤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다.

무소속 생환이라는 전례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인요한 위원장을 앞세운 국민의힘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들의 공천을 배제하려 한다 하더라도 결국 이들이 뜻을 거둘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장제원 의원은 지난 11일 자신의 외곽 조직인 ‘여원산악회’ 15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관광버스 92대로 모인 42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소속 출마하더라도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장 의원은 지난 14일 부산의 한 교회에서 간증한 동영상을 공개했는데 이 영상에서 그는 “저는 눈치 안 보고 산다. 할 말은 하고 산다”면서 “아무리 권력자가 뭐라고 해도 저는 제 할 말을 하고 산다”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도 장제원이 뭐 험지 출마하라고 한다”면서 “제가 16년간 걸어왔던 길은 지름길이 아니었고, 어려운 길이었지만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강원 춘천시 강원대 백령아트센터에서 열린 강원특별자치도 출범 기념식에 입장하며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2023.6.10.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강원 춘천시 강원대 백령아트센터에서 열린 강원특별자치도 출범 기념식에 입장하며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2023.6.10. 연합뉴스

주호영 의원도 8일 대구 수성구청 대강당에서 의정 보고회를 열고 “걱정하지 마라. 서울로 가지 않는다”면서 “대구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면 대구에서 마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이 40년째 미국 상원의원을 했는데 지역구를 옮겼나. YS가 지역구를 옮겼나”라면서 “우리나라만 이상한 발상을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역시 영남 중진인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1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현실적으로 그분들 정치적 캐리어나 연령대를 보면 22대 4년을 쉬고 나면 다시 돌아오기가 어렵다고 봐야 한다”면서 “당이 또다시 그런 기회를 주기도 어렵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불출마한다면 그건 단순 불출마가 아니고 정치를 그만두는 선택, 정계 은퇴 선언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인요한 위원장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런 불출마, 험지 출마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중진들) 각자는 다 ‘정치 그만둬라’, ‘정계 은퇴 선언하라’라는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또 “장제원 의원의 반발이 험지 출마 대상자로 지목된 그룹 전체의 목소리로 봐도 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역시 영남권 중진인 조경태 의원은 ‘험지’를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지난 6일 기자들과 만나 “수도권만 험지라는 인식은 좀 안 맞는 것 같다”면서 “수도권도 험지가 있지만 영남 지역, 특히 PK 지역에도 험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부울경에서) 민주당이 점유하고 있는 게 7석인데 그 지역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해야 되는데 그게 빠져 있다”면서 “지금 혁신하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선거에서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인요한 위원장은 지난 14일 제주 4·3평화공원을 참배한 뒤 “시간을 주면 100% 확신한다. 움직임이 있을 것이고 거명을 안 했지만 (그 의원들이) 움직일 거라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영남권 중진의 기류는 정반대인데 인 위원장이 지속적으로 ‘영남 중진 수도권 차출론’을 주장하는 배경에 ‘캐비닛 정치’가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검찰이 영남권 중진들의 약점을 쥐고 있어 결국 이들이 ‘험지 차출론’에 굴복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남권 중진들이 모색하는 것은 ‘각자도생’이다. ‘각자도생’이란 기존 권력에서 원심력이 작용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는 검찰을 기반으로 한 윤석열 정권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전망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캐비닛 정치’는 권력이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 속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만약 기소 가능성을 통해 압박하더라도 비슷한 공력을 들여 공소를 유지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영남권 중진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캐비닛 정치’를 정면 돌파하고 그 이후를 도모하는 것이 우월한 전략일 수 있다. 정권은 유한하고 자신의 정치 인생은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에서 거물급 중진을 쳐내는 공천을 단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친박’, ‘친이’의 계파 갈등 성격을 벗어나 성공적으로 계파를 초월한 거물급들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사례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이회창 당시 총재가 김윤환, 이기택, 조순, 이수성, 박찬종 등을 공천 배제한 사건이 꼽힌다. 김윤환은 TK와 민정계의 본류로 꼽히는 거물이었다. 이기택은 1997년 대선 전 조순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연대 당시 당 대 당 통합을 하면서 지분 30%를 보장받은 당의 대주주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들은 16대 총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전격적으로 공천에서 배제됐다. 이후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으나 2석을 얻으며 참패했다.

이회창 전 총재와 윤석열 대통령 모두 당내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직전 대선 전 당에 들어와 기존 당 주류를 몰아내는 세력 교체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2000년 이회창과 2023년 윤석열은 결정적으로 당 장악력에 차이가 있다. 2000년 이회창은 유력한 ‘미래권력’으로 떠오르던 상황이었다. 당시 상황에서 사실상 그를 대적할 당내 경쟁자가 없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윤핵관 인사들로부터도 ‘지는 권력’으로 보이는 상황인 것이다.

아직 22대 총선까지 4개월여의 시간이 남아 있어 섣부른 예단은 어렵지만, 영남권 중진을 계속 압박하는 것보다는 이들의 지역구 지분을 보장하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영남권에 검사를 포함한 신인들을 공천하고, 이들을 꺾고 기존 영남권 중진들이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중진들은 당에 복귀하겠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현저하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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