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혁신위원장 '깜짝·신선' 인선 너머엔
한국 역사와 현실에 대한 단편-표피적 인식
집권당 난국 타개할 이로 적임자일지 의문
결국 그에게 부담 떠안긴 집권당의 문제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23일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으로 인요한 씨가 임명된 것은 외국인 출신 귀화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깜짝 인선이었다. 그러나-혹은 그렇기에- 파격 발탁, 신선한 선택이라는 평도 나온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친가와 외가 양쪽으로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이력에서 한국인들에게 호감을 주는 여러 면들이 있다. ‘푸른 눈의 한국인’이란 별칭이나 4대째 한국에서 교육·의료 활동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1호 특별귀화자’가 된 것, 스스로를 '전라도 촌놈'이라 자칭할 만큼 호남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는 점 등이 그같은 호감의 배경을 이룬다. 특히 그의 집안 선조들이 조선말 이래 일제 강점기 시절 의료·선교 활동은 물론 3·1 운동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공헌을 세웠다는 것에 따른 '후광'까지 작용한다.
온유한 인상과 선량한 듯 보이는 품성, 개방적인 태도, 집안의 특별한 내력 등의 배경까지 갖춘 그는 '한국을 사랑하는 벽안의 외국인' 출신으로서 분명 여당의 영입 대상이 될 만해 보인다. 그러나 한국 집권정당의 혁신을 지휘해야 하는, 그것도 위기에 처한 여당의 난국을 타개할 이로서 적임이냐는 다른 문제이다.
그의 발탁에는 무엇보다 선조 때부터 제2의 조국이 된 한국을 위해 적잖은 선행과 기여를 한 집안 출신이며 그 자신이 '전라도 촌놈'임을 자처할 만큼 한국을 사랑하는 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했을 듯하다.
그러나 뭔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곧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더라도 어느 수준에서의 이해냐는 것이 문제다.
종잡을 수 없는 말들이 드러내는 인식과 사고의 깊이
그가 임명된 뒤 언론을 통해 알게 된 그의 발언들을 읽다 보면 그의 말들에서 '종잡을 수 없는 말들'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 발언들의 문제는 그 말 자체보다는 그 말에 담긴 인식이나 사고의 깊이에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그는 백선엽에 대해 "6·25 때 이 나라를 지켜낸 영웅 아닌가"라며 “일부 국민들은 일본 사관학교를 나왔고, 또 일제강점기 장교를 했다고 친일파 군인이라고 깎아내린다”고 주장했다. 나아가서 백선엽이 친일을 했다는 그런 논리로 따지면 미국이란 나라도 잘못 출발했다며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들고 나오면서 "워싱턴도 영국군이었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영국군에 속해 대 프랑스 전쟁에 참여했던 것을 놓고 일본군에 들어가 같은 조선인인 독립군을 토벌했던 백선엽과 다를 게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면서 “한국 민족한테는 링컨보다 더 훌륭한 분”이라는 말로 모자라 “링컨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보다 백 배 더 독재했다”고도 했다. 정치적 반대파들과의 타협, 당내 정적들을 내각에 포함시키는 등 관용적인 리더십을 보인 링컨에 대해서는 '차갑고 계산적이며 냉정한 이성'을 갖춘 마키아벨리적 근대 정치가였다는 평도 있지만 그를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살인적인 강압독재를 펼친 박정희보다 더한 독재자로 몰고 간 것이다.
이런 말들을 단지 수사학적 과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런 류의 말들이 되풀이된다면 단지 과장이나 실수라고 할 수만은 없다. 그는 한국 역사를 잘 모르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본래의 모국인 미국 역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링컨과 워싱턴에 대해 독재자로 비하하고 백선엽에 함부로 비유함으로써 미국의 두 역사적 인물은 물론 그들을 존경하는 미국인들을 모독한 것이다.
이는 그가 평소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다는 것, 즉 대척점에 서 있는 양쪽을 다 존경하는 것이 그의 온유하고 포용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으나 과연 그가 유신독재 시절의 한국 현실에 대해, 김대중의 극적인 생애가 통과했던 한국의 현대사의 진상과 굴절에 대해 과연 얼마나 제대로 알고서 한 말일지에 대한 의문과 연결된다.
이런 말들은 어떤 악의에서나 깊은 생각에서 나온 말이 아닐 수 있다. 단지 짧은 지식에서 나온 우발적 발언일 수도 있다. 반면 ‘국민건강보험은 사회주의적’이라든가 ‘성경 말씀에서 이탈하면 에이즈에 걸린다’ 등의 발언은 그의 확고한 신념을 드러내는 말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국민건강보험에 대해 "사회주의적인 경향이 강하고 수가 자체가 너무 낮게 책정되어 비정상적인 1차 진료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우리나라도 이제 민간의료보험(사보험) 도입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면서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은 많은 돈을 지불하고 손쉽게 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의사이면서도 "성경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에이즈에 감염된다"는 반의학적 발언을 '과감히' 내놓는 것이나 이슬람은 개종, 승복 아니면 다 죽어야 되는 용서와 화해가 없는 정의의 종교라고 하는 것은 그의 기독교 신앙의 바탕이 초보수적인 미국 남부 교회 출신인 그의 집안의 내력에서 비롯됐다는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에게서 두 개의 근본주의, 즉 시장 근본주의와 개신교 근본주의 사고를 보여주는 일면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그는 자신이 80년 광주 5.18 때 시민군의 영어 통역으로 참여한 것을 자주 말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이같은 행동은 분명 진취적이며 용기 있는 행위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그같은 경험이 한국의 현대사에 대한 깊은 인식으로 발전된 것으로 보이는 않는다.
보통 수준에서의 '상식적' 인식 머물러
그는 다만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보통 수준에서의 ‘상식적’ 인식에서 한국 역사와 한국 사회를 보려 하는 듯하다. 그 상식의 이면으로, 그 표면의 상식 밑으로 들어가한국 사회를 제대로 보려는 모습은 최소한 그의 말들에서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의 한국 사회에 대한 시각은 피상적 인식에서 비롯된 피상적 관찰과 진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그의 인식에서 그럴 뿐만 아니라 복잡한 사안에 대해 가볍게 단정해버리는 식의 말로 나타난다. 예컨대 그는 링컨을 매도하면서까지 박정희를 치켜세우면서 “미국 사람들은 링컨이 잘못한 부분은 땅속에 묻어버렸다. 남 잘된 것을 축복해주고 축하해주고 그런 문화로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박정희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정당한 비판을 '남 잘되는 것을 시샘하는 것'으로 폄하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의 한국인으로서의 삶의 이력에 가문의 후광과 배경이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그의 귀화 선택에도 한국사회로부터의 후대가 작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어 보인다.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100%대한민국대통합위 부위원장) 및 박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에서 활동했던 것이나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대표 20인’ 자격으로 참석했던 것에서 보이듯, 그는 권력에 의해 좋은 상징이며 장식으로 채택됨직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지금의 위치를 있게 했으며 그의 집안의 큰 긍지가 돼 왔을 조부의 후광에 힘입는 만큼 조부가 3.1운동을 도왔을 때처럼 과연 한국사회 현실에 대한 깊은 숙고를 해 왔는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국가보훈처 정책자문위 위원장을 지내며 보훈처의 보훈부 격상에 힘을 보탰다는 그가 보훈처의 최근의 행보, 특히 백선엽의 영웅화 등과 관련성은 없는지도 의구심이 든다.
인요한 씨는 단지 평범한 '특별한 한국인'으로, 한국을 한국인보다 더사랑하는 외국 출신 한국인으로서, 그 자신의 시야와 인식만큼, 그 자신의 방식으로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면 될 일일 듯하다. 한국 역사에 대해, 한국 사회 현실에 대해, 그 자신이 잘 알지 못하고 생각을 깊게 해 보지 않은 일들에 대해 쉽게 말을 툭 던지듯, 그런 단편적 인식과 이해로 한국의 정치현실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은 그에게 과도한 부담이 될 듯하다.
그러므로 결국에 문제는 그에게 지나친 짐을 지우는 집권당에 있다. 평범한 한국인으로 살면 되는 이에게 한국사회에 대한 고도의 안목에다 외과의보다 더 높은 수준의 숙련도가 필요한 집권세력의 혁신이라는 수술을 맡기는 그 정당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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