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원 의원 '출마포기'를 '결단' '희생'으로 미화

강요된 불출마…누구를 위한 '결단' '희생'인가

국민에 갑질·막말, 아들 범죄·본인 비리 의혹도

'철새' 이력까지… 구태·구악으로 비판받는 정치인

언론, 제대로 검증해 '출마포기' 아닌 '정치포기' 시켜야

부산 사상구를 지역구로 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힘당 혁신위원회가 ‘친윤’ 정치인들에게 ‘험지 출마’나 ‘불출마’ 압력을 가한 뒤 나온 첫 출마포기 발표다.

여러 언론 매체들이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그런데 기사를 보면 언론이 장 의원 출마포기의 의미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진작 정치에서 퇴출됐어야 할 정치인의 불출마 선언, 그것도 자발적으로 보이지 않는 출마 포기 선언을 마치 무슨 대의를 위해 자기희생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미화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장 의원 출마포기를 ‘오래된 결심’(국민일보), ‘결단’(서울신문·매일경제·YTN), ‘용단’(세계일보)이라고 추켜세웠다. ‘백의종군’(한국경제)이니 ‘희생 릴레이 도화선’(머니투데이)이라는 해석을 붙인 매체도 있다. 그러나 이번 장 의원 출마포기가 과연 이런 '아름다운 말'들을 갖다 붙일 만한 명분이 있는 대단한 ‘결단’이었을까? 또한 그는 그런 찬사를 받을 만한 정치를 해온 인물인가?

장 의원의 출마포기는 ‘자발적’이라고 보기도, ‘자기희생적’이라고 하기도 힘들다. 그는 불과 한 달 여 전까지만 해도 당 혁신위의 ‘험지 출마’ 압박에 반발했던 정치인이다. 관광버스 92대로 동원된 4천여명의 지지자들이 모인 대규모 행사에 참여해 자기 세력을 과시했던 게 딱 한 달 전이다. 그랬다가 이제와서 갑자기 ‘불출마 선언’을 발표하니 주변에서는 ‘검찰이 캐비넷을 열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용찰’(용산+검찰)이 그의 비리 수사기록을 꺼내들려 하자 이를 피하려고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사실상 ‘강제적 출마포기’라고 봐야한다.

장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밝힌 이유를 봐도 무슨 대의나 명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나를 밟고 총선 승리를 통해 윤석열 정부를 성공시켜주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자기 정당이 내년 총선에서 이기기를 바랄 뿐, 그의 ‘결단’이나 ‘희생’이 한국 정치발전이나 국가발전에 무슨 도움을 줄 것인지 알 수 없다.

언론은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백의종군’이니 ‘희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화려한 관직을 버리고 평민으로 오로지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나간다는 ‘백의종군’을 아무에게나, 아무 경우에나 가져다 쓰고 있는 것이다. 

12월13일 서울신문 기사 "장제원 첫 결단...압박 커진 김기현" 빅카인즈 화면 갈무리
12월13일 서울신문 기사 "장제원 첫 결단...압박 커진 김기현" 빅카인즈 화면 갈무리

2008년에 정계에 입문해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장제원 의원은 그동안 정치인 또는 국회의원으로서 자격이 의심되는 여러 문제를 일으켜왔다. 우선, 그는 두 번이나 탈당·복당을 반복한 ‘철새 정치인’이다. 공천탈락이나 ‘노선차이’를 이유로 탈당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복당한 경력 때문에 그는 지역구에서 ‘정치 철새’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민들은 장제원 의원을 ‘국민에게 고압적이고 아무한테나 반말하고 고함치는’ 정치인으로 기억한다. 지난 2008년 국정감사 도중 참고인으로 나온 ‘유모차 부대’ 시민에게 고함을 치며 고압적 태도를 보였던 장면은 지금도 국민들의 기억에 생생하다.

2019년 정개특위 회의 때에 봉쇄된 문으로 나가는 장 의원을 제지하는 국회 방호과 직원에게 “국회의원을 밀어?”라며 반말로 윽박지르고, 2023년 상임위에서는 선관위 사무총장에게 “어디서 배워먹은 거냐”며 반말과 삿대질을 하고, 툭하면 다른 당 의원들에게 삿대질과 모욕을 주던 모습을 국민들은 영상을 통해 봐왔다. 2018년에는 경찰을 향해 “정권의 사냥개가 광견병까지 걸려...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경찰 비하’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다.

그가 조국 전 장관 청문회에서 “자식에게 문제가 있는 공직자는 공직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한 발언도 그 자신의 ‘자격 없음’을 스스로 증명한다. 그의 아들은 음주운전, 음주운전자 바꿔치기 시도, 성매매 시도, 경찰폭행 등 범죄 경력으로 아버지만큼이나 유명인이 됐다.

12.12 쿠데타 세력이 만든 민정당 의원을 지냈고 부산에서 사학재단을 운영하는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의 아들인 장 의원이 학원소유 고가 아파트에 ‘특혜 거주’했던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적도 있다. 최근에는 그가 사학재단 소속 대학에 용역을 맡아하는 기업으로부터 불법적인 ‘쪼개기 후원’을 받은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민에게 고압적인 태도, 막말, 자녀 문제, 특혜 논란, ‘철새’ 이력 등 언론을 통해 드러난 그의 흠결과 문제만 봐도 과연 그가 한국 정치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그는 윤석열 정권 출범의 공신, 이른바 ‘윤핵관’ 중 한 사람으로서 윤 정부의 총체적 국정운영 실패에 책임이 있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언론은 애초에 이런 정치인에게는 선거와 상관없이 ‘퇴출’을 요구했어야 했다. 정치인에 대해 견제·감시하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땅히 퇴출되었어야 할 구태·구악의 정치인에 대해 그동안 언론은 대체로 눈을 감아왔다. 국민을 향해 상습적인 갑질·막말을 해도, 국민들 앞에서 거짓말을 밥먹듯 해도 따옴표를 동원해 받아쓰기에만 바빴다.

이중잣대를 가지고 한두 번의 잘못은 마녀사냥하듯 몰아붙이면서도 상습적인 거짓말과 비리에는 무딘 칼을 내미는 경우도 많았다. 민주당의 ‘586 정치인’에게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 ‘정치퇴출’을 요구하면서, 12.12 쿠데타의 후예인 국힘당 중견 정치인의 숱한 구태·구악·비리·부패·무능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다물지 않았는가?

언론이 대의와 명분이 아닌, 선거의 승패만 따지는 정치공학적 시각으로 보니 장제원 의원의 출마포기가 ‘결단’이니 ‘희생’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단’과 ‘희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이번 기회에 여야에 똑같은 잣대를 갖고 상습적 구태·구악 정치인들에게 출마포기가 아니라 정치포기를 선언하도록 주문해야 한다. 국민이 정치를 혐오하지 않게 하려면, 언론이 정치공학적 보도에서 벗어나 국민의 입장에서 정당과 정치인들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보도를 해야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