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연기 진통 끝에 3:1 매각 가결

EU 합병 조건부 승인 청신호 켜졌지만

미국·일본 승인 남아 있어 ‘산 넘어 산’

알짜노선 포기하며 통합 시너지 반감

대한항공 독점력 강화로 소비자도 불리

아시아나항공은 이사회가 한 차례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화물사업을 매각하기로 했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2일 화물사업 매각안을 가결했다. 이날 이사회에는 유일한 사내이사인 원유석 대표를 비롯해 배진철 전 한국공정거래조정위원장과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윤창번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등 4명의 사외이사가 참석했다. 

매각에 반대했던 강 교수가 이사회 중간에 퇴장했고 남은 4명 중 3명이 화물사업 매각에 찬성하며 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진통 속에 가결된 만큼 이사진에 대한 배임 논란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은 곧바로 ‘합병 후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분리 매각’을 포함한 시정조치 방안을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에 제출했다. 

 

 인천국제공항에 계류 중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2023. 5. 18. 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에 계류 중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2023. 5. 18. 연합뉴스

그러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이 성공하려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아직 합병을 승인하지 않은 미국과 일본이 또 다른 조건을 내세워 제동을 걸 수 있고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을 인수할 기업을 찾는 일도 만만치 않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 해외 알짜노선 슬롯(이착륙 허용 횟수)을 포기하고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을 매각하면 산업은행과 대한항공이 처음에 내세웠던 명분을 잃게 된다는 점도 문제다.

산업은행은 2020년 두 항공사의 통합 계획을 발표하며 중복 노선을 줄여 비용을 절감하고 화물사업을 합치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거대 항공사의 출범으로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는 상황을 보면 한국 항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알짜노선을 외국에 내주면서 항공산업도 후퇴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화물사업 매각안을 두고 고심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사회는 지난달 30일 안건을 처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매각 결의가 회사에 손실을 주는 결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배임 소지가 있고 노조 등 회사 안팎의 반발이 심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 사내이사였던 진광호 안전·보안실장이 이사회가 열리기 직전 ‘일신상의 사유’로 사의한 일도 논란을 키웠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 내용이 담긴 시정 조치안을 EU에 제출하며 합병에 한 발 더 다가섰으나 최종 통합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화물사업을 인수할 기업을 찾기 쉽지 않다. 화물사업은 여객 수요가 없었던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효자 역할을 했다. 지금은 비중이 20%대로 떨어졌다. 여객 부문과 비교하면 수익성이 높지 않아 적자에 빠질 위험도 큰 편이다. 떠안아야 할 부채도 적지 않다.

현재 티웨이항공과 이스타항공, 에어프레미아 등 저비용항공사(LCC) 4곳이 인수 후보 기업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위험성을 떠안으며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을 인수하려고 할지는 두고봐야 한다. 대한항공이 지원한다고 해도 최종 매각까지 험로가 예상된다. EU의 조건부 합병 승인을 받더라도 불확실성을 안고 가야 하는 셈이다.

미국과 일본의 경쟁 당국이 쉽게 승인해줄지도 미지수다. 지난 5월 미국 법무부가 경쟁 제한을 이유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 중복되는 노선의 슬롯을 내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과 중국의 일부 노선 슬롯은 이미 반납하기로 했다. 미국과 일본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도 뉴욕과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노선을 추가로 외국 항공사에 넘겨야 할 수 있다. 합병 성공을 위해 적지 않은 국부가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심사 국가별 현황. 연합뉴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심사 국가별 현황. 연합뉴스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12조 원에 달해 합병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주장한다. 아시아나항공의 독자 생존이나 제3자 매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반감되고 국가의 귀중한 자산인 슬롯을 외국에 넘기면서까지 밀어붙일 일인지는 논란이 있다.

EU에 이어 미국과 일본의 승인을 받는다고 해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상처뿐인 영광’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국적기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항공료 부담이 커지고 국적기 노선이 줄면서 소비자 편익은 떨어질 게 뻔하다.

두 항공사의 통합은 대한항공의 독점력 강화로 귀착될 것이다. 그러나 최대 수혜자는 대한항공 대주주인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이다. 통합 대한항공의 출범으로 확실하게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명분·실리 모두 잃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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