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 제치고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영구채 주식전환 3년 유예’ 요청 등으로
특혜 의혹 불거진 상황서 높은 점수 받아
김홍국 회장, 윤석열 대통령과 밀착 행보
“글로벌 해운사 경영 능력도 검증 안 돼”
하림그룹이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에 따르면 하림은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 57.9%(3억9879만 주)에 대한 인수금으로 6조 4000억 원을 써냈다. 최종 입찰에 경쟁사로 참여했던 동원그룹의 인수가를 근소한 차이로 앞선 데다 자금 조달계획과 해운업 경험 등 정량평가에서 더 높은 점수 받았다고 한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세부 계약 조건에 대한 협상을 거쳐 가급적 빨리 주식 매매계약(SPA)을 체결하고 내년 상반기 중에 거래를 끝낼 계획이다. 하림은 재무적투자자(FI)인 JKL파트너스와 함께 유가증권 매각과 영구채 발행, 선박 매각 등으로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보인다. 하림그룹과 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이 HMM을 인수하면 하림그룹은 자산이 약 43조 원으로 불어나며 CJ를 제치고 단번에 재계 13위로 도약한다.
그러나 하림이 HMM을 최종적으로 품으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적절한 조건으로 매각했는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특혜는 없었는지 논란의 불씨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특혜 의혹은 하림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하림은 본입찰에 참여하며 HMM 영구채 주식전환 3년 유예를 요청했다. 이에 경쟁자였던 동원그룹은 하림의 요청이 입찰 기준에 반한다며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맞섰다. 특혜 논란이 제기되자 하림은 요청을 철회했으나 본계약 협상 과정에서 다시 이 조건이 포함될 소지가 있다.
하림이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해운사인 HMM을 제대로 경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작지 않다. 하림의 HMM 인수는 새우가 고래를 삼킨 격이다. 하림그룹은 올해 자산 17조 원으로 재계 27위이고 HMM은 25조8000억 원의 자산을 보유한 기업이다. HMM은 하림그룹보다 자산이 9조 원 가까이 많고 재계 순위가 19위로 덩치도 훨씬 크다.
하림그룹이 지난 2015년 국내 최대 벌크선 운송사인 팬오션(옛 STX팬오션)을 인수해 해운업 경험이 있다지만 컨테이너선 사업이 주력인 HMM 경영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사업 구조와 글로벌 경쟁자 등 경영 환경에서 큰 차이가 있다. 업계에서는 벌크선과 컨테이너선은 사업 방식이 달라 팬오션과 HMM의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경영난을 겪고 있던 팬오션을 인수한 뒤 흑자 기업으로 돌려놓았다며 HMM 경영에도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팬오션은 하림이 인수되기 전에 2년 이상 이어진 기업회생 절차를 거쳐 부채를 대부분 털어냈다. 하림의 경영 능력이 뛰어나서 팬오션이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견강부회일 수 있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해운업계 관계자는 “누가 팬오션을 경영해도 흑자로 돌려놓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향후 몇 년 동안 해운시장이 불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도 하림의 HMM 인수에 불안한 눈길을 보내는 이유다. 침체가 길어지면 초대형 컨테이너선 운영 경험이 없는 하림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해운업에는 이미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해운사 수익 마지노선인 1000포인트 안팎에서 등락하고 있다. 작년만 해도 SCFI는 5000포인트에 달했다.
문제는 내년 이후 해운 업황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선사들이 2021년 전후로 발주한 선박이 운항에 투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급 과잉으로 해운사 수익과 직결되는 운임이 떨어질 게 뻔하다. 이런 흐름은 HMM 실적 전망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HMM은 지난해 10조 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달성했으나 올해 증권사 전망치는 5000억 원대로 급락했다. 작년 대비 94%가량 감소한 수치다. 선박 공급 과잉으로 운임 수입이 줄며 내년엔 영업이익이 3000억 원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HMM이 경영난에 빠지면 하림그룹도 힘들어질 수 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걸릴 수 있는 것이다. HMM 노동조합이 하림의 인수를 반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우려 때문이다. 현재 HMM은 약 10조 원의 이익잉여금을 보유하고 있는데 하림이 이 돈을 다른 곳에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운업계에서는 HMM가 현금 유보금을 선박 확대와 디지털화, 친환경화 등 경쟁력 강화에 써야 한국 해운업의 미래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에 대응하려면 막대한 자금을 친환경 선박에 투자해야 한다. 컨테이너선 사업에 치중된 사업 구조를 다각화하는데도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 때 동행해 구설수에 올랐다. 하림은 김 회장이 무역협회가 주관하는 포럼에 초청받아 참가하기 위해 간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HMM 인수전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동행한 것은 오해받을 만하다. 경쟁업체인 동원그룹은 윤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에 동행하지 않았다. 김 회장은 윤 대통령 직속 1호 위원회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고 지난해 5월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환영 만찬에 초청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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