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사건 44주년…추도식에 여권 대거 출동
윤석열 "위대한 지도자가 세계사적 위업 이뤄내"
현직 대통령 첫 참석…순방 귀국하자마자 달려와
"박근혜와 유가족 심심한 위로"…이태원과 대조적
TK 지지율까지 심상치 않자 '보수 대통합' 제스처
주최 측 "문재인 주사파 정권은 배은망덕의 극치"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세계사적 위업" "눈부셨던 시대" "100년을 내다보는 혜안"….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일제히 '박정희 찬가'를 합창했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야수의 심정'으로 권총을 발사한 지 44년이 된 날, '검사정권'은 유신 독재자의 죽음을 새삼 안타까워하며 '군사정권' 시절을 미화하고 그리워했다. 여기에는 물론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었다.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26일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제44주기 추도식'에는 여권 주요 인사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했다. 집권당의 구태를 철저히 쇄신하겠다는 인요한 혁신위원장도 동참했다. 수구보수 진영의 정체성과 경향성(멘탈리티)을 확인시켜주는 장면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님을 추모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다"며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하면 된다'는 기치로 국민을 하나로 모아 이 나라의 산업화를 강력히 추진하셨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세계사적 위업'을 이루어 내셨다. 지금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께서 일궈 놓으신 철강, 발전,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 반도체, 방위 산업으로 그간 번영을 누려왔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취임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92개국 정상을 만나 경제 협력을 논의했다"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이뤄내신 이 압축성장을 모두 부러워하고, 위대한 지도자의 결단에 경의를 표했다"고 주장했다. 92개국 정상 중에 박정희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도 의문이지만 윤 대통령은 "저는 이분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을 공부하라, 그러면 귀국의 압축성장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늘 강조했다"고 전했다.
또 "박정희 대통령의 하면 된다는 정신은 웅크리고 있는 우리 국민의 잠재력을 끌어내서 위대한 국민으로 단합시켰다"며 "세계적인 복합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정신과 위업을 다시 새기고 이를 발판으로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의 혜안과 결단과 용기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4박 6일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약 2시간 만에 첫 일정으로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1980년부터 매년 민족중흥회 주관으로 열려온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작년에는 추도식 하루 전날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자랑스러운 지도자를 추모하는 이 뜻깊은 자리에서 영애이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유가족분들에게 자녀로서 그동안 겪으신 슬픔에 대해 심심한 위로 말씀을 드린다"는 인사로 추도사를 마무리했다.
159명이 처절하게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유가족들의 이루 말할 수 없는 통한의 슬픔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시민추모대회조차 '정치집회'라는 치졸한 이유를 들어 불참하기로 한 윤 대통령이 박정희 추도식이라는 '정치집회'에는 만사 제쳐두고 달려와 심심한 위로를 표명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장녀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추도식에 11년 만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추도식장에 도착하자마자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제일 먼저 인사하며 안부를 물었다. 윤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웃는 모습도 연출됐다. 검은색 정장 차림인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있다가 추도식이 끝난 뒤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 묘소를 참배했다. 단둘이 계단을 오르고 오솔길을 내려오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은 지난해 5월 대통령 취임식 때 이후 1년 5개월여만이다. 당선인 시절까지 포함하면 이번이 세 번째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12일 대구 달성군의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 50분간 대화한 바 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와 지지율 추락이라는 여권의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보수 결집 및 대통합이 절실한 윤 대통령으로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손을 맞잡는 그림이 필요했을 것이다. 급기야 보수의 절대 아성으로 불리는 대구·경북(TK) 지역 민심까지 흔들려 윤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높다는 여론조사까지 나오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애 제스처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해석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유족 대표 인사에서 "특히 오늘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추도식에 참석해준 윤석열 대통령님께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께서 일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잘 사는 나라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며 "지금 우리 앞에는 여러 어려움이 놓여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는 우리 정부와 국민께서 잘 극복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추도식에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인요한 혁신위원장, 김병민 최고위원, 장예찬 청년최고위원, 이만희 사무총장, 황교안 전 대표, 박대출 전 정책위의장, 나경원 전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참석했다. 대통령실에서도 김대기 비서실장, 이관섭 국정기획수석, 이진복 정무수석,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김은혜 홍보수석 등이 대거 나왔다.
추도식에서는 윤석열 정권답게 전 정부를 비방하는 극우적 발언도 쏟아졌다. 행사를 주관한 민족중흥회 정재호 회장은 개식사에서 "윤 대통령께서 이역만리 열사의 땅 사우디와 카타르에서 사상 초유의 엄청난 아주 드라마틱한 국익을 성취하시고 돌아오신 데 대해서 우리 함께 그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기립 박수를 제안한 뒤 "아울러 마녀사냥의 덫에 걸려 엉뚱한 고생을 강요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근 건강 상태가 호전되고 있고 머지않아 공식적으로 활동하시게 됨을 깊이 축원드린다"고 말했다.
'부국강병의 대업' '눈부셨던 박정희 시대' '허허벌판에 천지개벽' 등의 표현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한 정 회장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미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황당한 변곡점을 찍은 것은 문재인 주사파 운동권 세력의 등극"이라며 "주사파 정권은 박정희 흔적 지우기에 광분했다. 배은망덕의 극치"라고 열을 올렸다. 또 "북한 김정은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던 '자칭 남쪽 대통령' 문재인의 언(言)과 동(動)을 줄줄이 엮노라면 국사 농단의 범정(犯情)이 수두룩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매서운 삿대질"이라며 "이 대목은 섣불리 놓칠 수 없는 중대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고 색깔론 공세를 지속했다.
정 회장은 "문재인 권력이 마구 흩뿌린 좌파 이념의 씨앗은 괴담, 조작, 선동의 파장을 타고 거대한 먹이사슬을 구축했다. 권력에 기생하는 사이비 시민단체가 양산되고 권력은 국민의 혈세를 허드렛물 쓰듯 펑펑 쏟아부었다"면서 "사악한 가짜뉴스가 춤추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아찔한 순간을 용케 뚫은 윤석열 정권의 탄생은 하늘이 허락하신 천행"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거듭 윤 대통령을 칭송하며 "박정희 행보를 본뜬 학습효과라는 해석이 만만찮다"면서 "윤 대통령은 대서사시를 닮은 박정희 실록을 한 아름 가슴에 품고 열독하고 있다는 귀띔도 있다"고 했다. 심지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9‧19 남북군사합의 폐지까지 촉구한 뒤 "윤석열 대통령은 정권의 명운을 걸고 건곤일척의 결단을 내려야 할 엄숙한 시점"이라고 했다.
김기현 대표는 추도식에서 발언 순서는 없었지만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 서거일을 맞아 오늘 오전 숙연한 마음으로 대통령님의 44주기 추모식에 다녀왔다"며 "국민을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경제 발전에 헌신하셨던 박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고 말했다. 지난달 13일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던 김 대표는 "대한민국의 산업화, 근대화를 이끈 박정희 대통령님께 마음 깊이 경의를 표하며 100년을 내다보는 혜안으로 오늘의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든 리더십을 발전적으로 승계하겠다"고 다짐했다.
장예찬 청년최고위원도 "20대 초중반 시절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성과에 대해서 무지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땀 흘려 돈을 벌고 세금을 내면서 우리가 이룩한 산업화의 성과를 체감할 수 있었다"면서 "박정희 정신이 깃든 우리 부모님 세대의 땀의 가치를 배우는 게 세대 갈등을 치유하는 세대 통합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인요한 위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것이 혁신위원장으로서 첫 공식 일정이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박 전 대통령 43주기 추도식에서 "미국에서 최고로 알아주는 사람이 링컨 대통령이다. 한국 민족한테는 링컨보다 더 훌륭한 분이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등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을 기회 있을 때마다 표시해왔다. 그는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혁신위원 인선 관련 기자회견 중 "이명박 전 대통령을 찾아뵈려고 하고, 대구에 가서 박근혜 전 대통령도 만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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