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살아나는 것은 박정희 신드롬에 치명적"

'박정희 추앙'의 연대기…뉴라이트의 박정희 소환

'신드롬'은 메시아주의·영웅주의·조작 때문일까?

무속으로 '박정희 신드롬' 해석한 심리학자까지

'박정희 신드롬' 배태한 산모는 IMF 외환위기

IMF 원인…박정희의 재벌중심·개발독재 탓인데

박정희(왼쪽)와 김재규. 연합뉴스 자료 사진
박정희(왼쪽)와 김재규. 연합뉴스 자료 사진

26일은 박정희가 쓰러진 날이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독재의 심장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다. 그 뒤로 수십 년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에 죽은 독재자의 숨겨졌던 악행과 만행이 밝혀져 켜켜이 쌓였다. 그 세월은 김재규를 복권시키고 다시 살려내 마침내 ‘의인’으로 규정하는 역사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박정희의 부활을 염원하며 추앙하는 사람들이 있다. 뉴라이트 세력과 아스팔트의 극우 세력 등이다.

‘박정희 추앙’의 연대기

양과 질을 떠나 ‘박정희 향수’는 그의 사후 특정 지역이나 특정 계층에서 부분적으로 늘 존재해오던 현상이긴 했다. 그 현상이 질적·양적 변화를 일으키며 ‘신드롬’으로 폭발한 것은 IMF 외환위기 때다. IMF 외환위기는 1997년 말에 발생해 2001년 8월까지 대한민국을 괴롭히며 큰 상처를 냈다.

불안한 일부의 대중은 자신들을 나락에서 건져줄 ‘강인한 카리스마의 지도자’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들은 자연스레 박정희를 소환했다. IMF 외환위기는 ‘박정희 신드롬’을 배태한 산모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IMF 외환위기의 원인(遠因)은 박정희의 재벌중심 개발독재였다. 태어난 ‘박정희 신드롬’은 대단했다. 그 무렵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정희는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75.9%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여러 사람이 나서 ‘박정희 신드롬’을 해석했다. 조갑제는 1990년대 말 박정희 무덤에 침을 뱉으라며 ‘영웅주의’를 들고 나왔다. 이인화도 ‘영웅주의’ 해석에 가담했다. 비슷한 시기 강준만은 ‘박정희 신드롬’이 기득권 일부와 단체들의 조작이라며 그들에게 놀아나는 ‘무개념 대중’을 비판하는 취지의 해석을 내놨다. ‘박정희 신드롬’을 ‘정치적 메시아주의’와 연결짓는 사람도 있었다. 여러 해석과 분석이 분분했지만 가슴 뻥 뚫리는, 시원하고 후련한 해석은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 눈 감고 코끼리 만지는 식이었다.

 

조갑제(오른쪽)와 박정희를 '영웅주의' 관점에서 쓴 그의 책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언합뉴스 자료 사진 
조갑제(오른쪽)와 박정희를 '영웅주의' 관점에서 쓴 그의 책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언합뉴스 자료 사진 

무속으로 해석한 ‘박정희 신드롬’

‘박정희 신드롬’의 실마리를 무속에서 찾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심리학자인 한민 전 고려대 행동과학연구소 교수는 논문 <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박정희 신드롬의 무속적 의미>(‘한국무속학’ 제16집 2008년 2월호)에서 ‘박정희 신드롬이 한국인들의 무의식적 심리에 자리하고 있는 무속적 세계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색 주장을 펼쳤다. 천공, 건진법사 등 무속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무인정권’(巫人政權) 치하에서 새삼 관심을 끄는 논문이다.

논문은 ‘박정희 신드롬’이 “한국인들의 현세주의적 태도에서 비롯되었다”며 “박정희의 최대 업적이라 할 수 있는 경제발전은 이러한 성향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현세의 복을 의미하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육군 대장으로 예편한 ‘박정희 장군’이 사후 민간에서 ‘장군신’으로 대접받게 됐다는 사실이다. 박정희의 권위주의적 이미지 등이 ‘무속의 장군신 이미지와 많은 부분 일치’한다는 것이다. 논문은 실제 박정희를 신장(神將)으로 모시는 무속인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역시 아이러니다. 박정희는 새마을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며 미신 타파 차원에서 무속의 기반을 거의 파괴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박정희 신드롬’에 불 붙이다

2001년 여름, 김대중 정부는 IMF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나라 경제를 제 궤도에 올려놓았다. ‘박정희 신드롬’은 여전했지만 위세는 전만 못 했다.

시들해지던 ‘박정희 신드롬’에 다시 불을 붙인 사람은 딸 박근혜였다. 2012년 7월 10일, 스스로 이룬 것이 없고 내세울 게 없던 박근혜는 새누리당 대통령 예비후보 출마를 선언하며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를 불러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 박근혜, 이번 18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합니다. (…) 어머니가 흉탄에 돌아가신 후,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빈자리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 때문이었습니다. (…) 저에게는 국민이 곧 어머니였고, 가족이었습니다. (…) 아버지를 잃는 또 다른 고통과 아픔을 겪고….”

박근혜의 출마 선언문에 일부의 대중이 감격했다. 그녀의 등장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박근혜 신드롬’이었다. ‘박근혜 신드롬’은 ‘박정희 신드롬’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렇게 ‘2차 박정희 신드롬’이 시작됐다.

‘박정희 신드롬’의 파괴력은 당내 경선 투표 결과로 드러났다. 2012년 8월 20일에 실시한 당내 경선 결과 박근혜 득표율은 83.97%였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포함해 역대 대선 후보 경선 사상 최고 득표율이었다. 8.68%를 얻은 2위 김문수 득표율의 거의 10배에 이를 정도였다.

박근혜는 그해 12월 19일 치러진 대선에서 ‘박정희 신드롬’이라는 코끼리 등에 올라 마침내 당선됐다. 2013년 2월 25일 취임한 박근혜의 취임사에 박정희나 육영수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선고일이었던 지난 2018년 4월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가 선고 결과를 확인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박 전 대통령의 공소사실 18가지 가운데 16가지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4년에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2018.4.6.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선고일이었던 지난 2018년 4월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가 선고 결과를 확인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박 전 대통령의 공소사실 18가지 가운데 16가지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4년에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2018.4.6. 연합뉴스

박근혜가 묻어버린 ‘박정희 신드롬’

박근혜는 대통령 부적격자였다. 최순실이란 비선 실세를 옆에 두고, 밀실에서 보톡스나 맞는 박정희의 딸을 국민은 용서하지 않았다. ‘박정희 신드롬’ 혹은 ‘박근혜 신드롬’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박근혜 찍은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는 사람이 속출했다. ‘박정희 신드롬’이나 ‘박근혜 신드롬’은 허상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시민들은 거리에서 “박근혜를 탄핵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박근혜가 묻어버린 ‘박정희 신드롬’>이라는 제목의 당시 주간경향 기사는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박정희 신드롬’의 쇠퇴 현상과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분위기 등을 전하는 기사였다.(주간경향 2016.12.27)

기사 첫 문장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혁명을 한 것입니다”라는 김재규의 법정 최후진술이었다. (김재규 최후 진술, 아래) 특히 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발언이었다. 의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한 교수의 발언을 요약해보자.

“김재규가 살아나는 것은 박정희 신드롬에 치명적인 것이다. 유신시대의 자료를 꼼꼼히 읽으면서 김재규란 사람이 자기가 잘릴 수도 있는데 박정희의 충신으로서 자기 몸을 던져서 최태민을 막으려 했던 것을 알게 됐다. 그때 최태민을 막았다면 오늘의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내막이 최근 들어 다시 알려지면서 집회에 김재규 얼굴이 들어간 깃발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생기는 게 아니겠나.”

“박정희가 최태민 문제를 처리하지 못한 책임이 이번에 드러났고, 김기춘 비서실장이나 남재준 국정원장 같은 사람들을 통해 공안통치를 해온 것이 바로 박근혜의 박정희식 통치술이다. 유치원생까지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분위기에서 이제 박정희 신드롬은 미래세대에게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과거 설문조사에서 박정희가 못한 점을 물으면 대체로 독재정치와 민주주의 탄압을 꼽았는데, 이제는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게 중요 항목으로 나올 수도 있다. 여전히 박정희를 신격화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박근혜의 지지율처럼 국민의 4~5% 내외일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10일 재판관 전원일치로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파면했다. 헌정사상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은 처음이었다. ‘박정희 신드롬’이나 ‘박근혜 신드롬’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박근혜(왼쪽)와 최순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박근혜(왼쪽)와 최순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박정희를 ‘묻지 않으려는’ 사람들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와 ‘박근혜에 대한 환멸’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묻히지 않았다. 한사코 그를 묻지 않으려는 세력과 사람들이 있다. 뉴라이트 세력은 끝없이 박정희를 불러내는 주문을 외고 있다. 그들은 지난 시절 조갑제의 ‘영웅주의’도 다시 소환한다. 아스팔트의 극우 세력도 ‘박정희 최고’를 다시 외치기 시작한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일부 인사들도 박정희를 부활시키자는 주장을 한다.

뉴라이트 성향의 학자 등 ‘가방끈이 긴’ 사람들은, 구멍이 숭숭 나있기는 하지만, 나름의 논리를 제시한다. 아스팔트의 ‘노인 대중’은 박정희에 대한 ‘무조건적 추앙’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하다. “박정희가 대한민국을 밥 먹고 살게 해줬다. 박정희가 대한민국을 북한 빨갱이로부터 지켜줬다. 그러니 박정희를 복권시켜야 한다.” 강준만의 ‘박정희 신드롬’은 기득권 일부의 조작이며, 그들에게 놀아나는 무개념 대중이라는 분석은 이 대목에서 유효해 보인다.

‘박정희 신드롬’ 아닌 ‘박정희 컬트’

오늘날 ‘박정희 신드롬’이라는 말은 거의 사라졌다. 언론도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포털 뉴스창에서 ‘박정희+신드롬’을 검색해봐도 눈에 띄는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박정희 신드롬’은 IMF 외환위기 때 한 시절 영화를 누리고, 박근혜가 정치를 하고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한시절 반짝했을 뿐이다. ‘박정희 향수’도 점점 쓰지 않는 말이 돼가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오히려 ‘박정희 신드롬’을 넘어서는 무리한 주장을 한다. 그들의 주장을 듣다보면 기묘한 ‘컬트 현상’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 일부는 말 그대로 극소수다. 단체도 많고 사람도 많아 보이지만 면면을 보면 늘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1979년 김재규가 ‘박정희 시해’ 현장에서 사건 당시를 재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1979년 김재규가 ‘박정희 시해’ 현장에서 사건 당시를 재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김재규 법정 최후 진술]

최후 진술의 기회를 주어 감사합니다. 목이 잠겨서 말이 안 나오나 끝까지 말하겠습니다. 금번 본인은 내란죄로 기소되어 재판 받고 있습니다. 합법적인 민주당 정권은 5.16 군사혁명에 의하여 밀려났습니다. 10월유신은 자유민주주의를 발산한 또 한 차례의 혁명이었습니다.

10.26 혁명은 이 나라 건국 이념이요, 국시인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하여 혁명한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우리가 6.25를 통하여 수난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바쳐 지켜온 것입니다. 이 혁명이 어찌하여 내란죄로 심판받느냐. 자유민주주의는 3700만 우리 국민이 갈구하고 있는 게 사실인 것입니다. 또한 10.26 혁명은 순수한 것입니다. 집권욕이나 사리사욕이 있는 게 아닙니다. 오로지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입니다.

10.26 혁명의 결과 자유민주주의 회복은 보장되었습니다. 최 대통령도 대행으로 있을 때 공약하지 않았습니까? 최 대통령은 연임기를 마치지 않고 도중에서 그만둔다고 하였는데 이는 과도 정부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 과도는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가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10.26 혁명은 완전히 달성되었습니다. 국회에서도 긴급조치 9호의 해제 결의를 하였습니다. 10.26 혁명이 없었던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으며 꿈이라도 꿀 수 있는 일입니까? 이 또한 이 혁명의 성공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10.26 혁명은 5.16 혁명이나 10월유신에 비하여 정정당당한 것입니다.

10.26 혁명은 서슬이 시퍼렇고 막강한 유신체제를 정면에서 도전하여 타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하여 민주회복 혁명은 완전 성공한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정정당당한 혁명입니다. 무혈 혁명이 혁명으로는 가장 바람직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혈이 안 될 때는 최소한의 희생이 따르고, 최소한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민주 회복과 그 자신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민주 회복과 그 자신의 희생은 숙명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그 희생 없이는 민주 회복이 안됩니다.

박 대통령을 잃은 것은 가슴 아픈 일이고 마음 아픔을 비할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신 이후 7년이 경과되었고, 영구 집권이 보장된 이상 최소한 20년 내지 25년 내에는 자유민주 회복이 안됩니다.

마음 아프지만 국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하여 이 혁명은 필연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 감상적이고 감정이 몹시 앞서 있기 때문에 사리 판단에 있어서 지나치게 판단하기 쉽습니다.

나에 대한 내란죄 심판도 그런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감상이나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정치 현실은 현실대로, 감상은 감상으로 엄연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나 경우를 잘 가리기 위하여 판례를 중히 여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스스로가 내 생명을 구걸하기 위하여 최후 진술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내가 갈 수 있는 명분을 찾은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나는 죽어서도 영생할 수 있기 때문에 생명을 구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10.26 혁명의 그 이념과 정신과 그 성공을 뚜렷이하기 위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이 허용하는 한 나는 투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5.16 혁명, 10월유신이 부당한 것이 아니라면 10.26 혁명도 정당한 것입니다. 10.26 혁명이 범법이라면 의미 없는 혁명이 되고 맙니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건국 이념이고 국시입니다. 전체 국민이 수난 당하며 지켜왔던 것입니다. 무슨 이유로도 말살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10월유신으로 까닭 없이 말살되었습니다. 10월유신은 국민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 박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위한 체제였습니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보호해야 할 의무와 책임은 있어도 말살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로부터도 받을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체제반대 민주회복의 소리가 높아지자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구속되었습니다. 이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고 계속 번져 나갔습니다. 정보부장으로서 파악한 바에 의하면 유신체제를 유지하려면 정부와 국민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집니다. 이승만과 박 대통령을 비교하면 이승만은 그만둘 때 그만둘 줄 알았으나 박 대통령은 많은 국민이 희생되더라도 그만둘 사람이 아닙니다.

본인이 이를 알기 때문에 유신의 지주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지만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어 뒤돌아서서 그 원천을 두드려 부순 것입니다. 10.26 혁명의 목적은 △자유민주주의 회복 △국민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고 △적화 방지(건국 이래 미국 관계 가장 나쁘다) △민주 회복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국방·외교·경제상 국익 도모 △국제 사회에서 독재 국가라고 손상된 명예를 회복하고 국제 사회에서 한국인의 명예를 회복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 모두가 10.26 혁명 결행으로 해결이 보장되었습니다.

한마디 확실히 말할 것은, 나는 결코 대통령이 되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나는 군인이요 혁명가이고, 군인이 정권을 잡으면 독재자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내가 독재를 마다하고 혁명한 사람이 다시 독재의 요인을 만들겠습니까?

나는 개인의 의리를 배반하고 대통령 무덤 위에 올라갈 정도로 그렇게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혁명의 결행은 성공했으나 혁명과업은 수행 못 했습니다. 이 나라에는 5.16 이후 19년 동안 많은 쓰레기가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런 쓰레기 위에 자유민주주의가 회복을 한다면 출발과 동시에 자유민주주의가 또 곤욕을 치르게 되고, 나아가서는 자유민주주의가 나쁘다는 애매한 수모를 겪게 됩니다.

이런 쓰레기를 설거지하지 않고 어떻게 사회 정의가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6.3 데모가 일어난 것도 자유민주주의를 철저히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고, 오히려 4대 의혹 사건과 같은 비민주주의적인 일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고 악순환한 것입니다. 4대 의혹사건 자체도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었습니다.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한 행위로써 수없이 많은 돈을 치부하고 책임진 사람이 지금까지 아무도 없습니다. 또 그때 치부한 돈이 한푼도 회수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설거지하지 않고서야 혁명 과업을 완수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이 나라에 핵심이 없습니다. 이 상태가 가장 어려운 상태이고 가장 위험한 상태입니다. 4.19 후와 같이 힘센 놈이 덤비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악순환이 또 옵니다. 이를 막는 것은 오로지 민주회복 혁명을 지도한 저만이 할 수 있습니다. 자유를 회복해 놓고 새로운 정권에 대해서 군 수뇌와 협의하여 그 정권을 보호하여 민주당 정권을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습니다. 건국 이래 지금까지 한번도 평화적 정권 교체가 된 적이 없었습니다.

4.19, 5.16 등 악순환이 거듭되었습니다. 이런 악순환을 언제까지 가게 하겠습니까? 정권을 순리적으로 넘어가게 하는 것을 토착화하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최 대통령에게 말씀드립니다. 자유민주주의 때문에 절대 혼란은 오지 않습니다. 자유당 때는 부정 선거, 국민 의혹 사건 때문에 혼란이 왔었습니다. 지나치게 급격한 변화가 문제는 되겠지만, 혁명과업은 3~5개월이면 충분합니다. 오히려 빨리 민주회복을 하지 않고 천연하면 내년 3, 4월에 민주회복 운동이 일어나서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입법부에 말합니다. 진정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라면 국민의 갈망을 받아들여 10.26 민주혁명을 지지 결의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는 민주 회복되고 난 후에 자유민주 회복을 위해 무얼 했느냐 물어보고 싶습니다.

긴급조치 해제 건의는 지엽적인 것입니다. 더 긴급한 것은 자유민주 회복뿐이고, 자유회복 결의가 더 원천적인 결의인 것입니다.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가만히 눈 감고 생각하면 내 혁명이 원인이 되어 혼란이 오고 국기마저 흔들릴까 봐 큰 걱정입니다. 최 대통령께 지금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나와 같이 혁명 과업을 수행합시다.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읍시다. 진정 나라를 생각한다면 이성으로 돌아가 냉혹하게 정치 현실을 판단해야 합니다.

심판관님께, 재판장님께, 연일 공판에 매우 피곤한데도 장황한 이야기 경청해 주어 고맙습니다. 마지막 하직해도 고마움 간직하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20~25년 앞당겨 놓았다는 자부 가지고 나는 갑니다. 자유민주주의 만발을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대한민국의 앞날에 자유민주주의 만발하기를 기원합니다.

10. 26 민주회복 국민혁명 만세!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만세!

세상을 하직하고 가면서 자유민주주의 회복 보지 않고 가니 한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 기약되었으니 웃으며 갈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소신에 의한 행동이니 그에 알맞은 형벌을 내려 주십시오.

끝으로 나의 부하들은 착하고 순한 양 같은 사람들입니다. 무조건 복종했고 선택의 여유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저 하나가, 중앙정보부장 지낸 사람이 총책임 지고 희생됨으로써 충분합니다. 저에게 극형을 주고, 나머지는 극형만 면해 주도록 부탁합니다. 특히 박 대령은 단심이라 가슴 아픕니다. 매우 착실하고 결백하며 가정적인 사람입니다. 청운의 꿈이 있던 사람입니다. 군에서 곤란하더라도 여생을 사회에서 봉사 할 수 있도록 극형을 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해 2월 경북 구미시 박정희 생가를 찾아 참배했다. 2022.2.18. [공동취재] 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해 2월 경북 구미시 박정희 생가를 찾아 참배했다. 2022.2.18. [공동취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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