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폐지된 교정시설 인터넷 서신
나와 상관없는 감옥 안 범죄자들의 문제?
감옥 인권이 그 사회 인권의 척도인 이유
힘없고 가난한 수감자들에게 더욱 치명적
외부와 단절될수록 검찰 압박·회유 용이해
검찰공화국 시대에 과연 남의 문제일까?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이 후퇴하고 있는 윤석열 시대에 최근 또 심각하게 생각하고 분노할 문제 중의 하나가 한동훈 법무부의 감옥 인터넷 서신 제도 폐지이다. 감옥에 있는 사람에게 인터넷으로 간단하고 편리하게 편지를 보내서 하루 만에 전달할 수 있는 이 제도는 지난 20년 동안 시간이 갈수록 이용자가 늘고 있었는데도 당장 올해 10월부터 폐지됐다.
어떤 이들은 ‘나랑은 상관없는 문제’라거나, ‘감옥 범죄자들의 인권까지 챙겨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착각하는 것이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범죄자라는 생각부터 편견이다. 이 나라의 뒤틀린 사법 제도 속에서는 무고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감옥에 갈 수 있다. 게다가 구속된 상태의 피의자라도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옹호해야 하는 것은 ‘나와 친하고 내가 좋아하는 인격이 훌륭한 사람들’만의 차별적이고 선택적인 권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권리라는 점에 있다. 따라서 나와 친하지 않고 내가 싫어하는 인격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의 권리일수록 더 옹호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이것을 놓치기에, 검찰과 언론이 누군가를 범죄자나 괴물로 만들고, 따라서 그들의 인권을 짓밟는데도 대부분이 외면하고 침묵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의 권리가 보장될수록, 모든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는 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감옥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 수준이 그 사회의 인권 수준의 척도’라는 말이 존재한다. 그리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터넷 서신의 중요성은 정말 크다. 감옥에 있으면 사회와 단절될 수밖에 없고, 모든 정보와 교류가 차단된다.
요즘처럼 휴대폰, 카톡, 메신저 등이 발달해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자기 의사를 상대에게 전달하고 상대의 반응을 확인하는데 며칠에서 일주일까지 걸리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편지나 면회에만 의존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터넷 서신 덕분에 그나마 이 시간이 많이 단축될 수 있었다. 그마저 감옥에 있는 사람 자신은 인터넷 서신을 받아볼 수 있을 뿐 내보낼 수 없으므로 매우 제한적이지만 말이다.
20년 전만 해도 인터넷 서신은 없었다. 더구나 당시에는 모든 편지의 봉투를 닫지 않고 교도관에게 건네야 했다. 아예 공개적으로 서신 검열을 한 것이다. 그래서 감옥 내부의 문제에 대한 불만을 전달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 내용을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차피 감옥 당국이 읽어볼 테니 말이다.
당시에는 신문 검열도 있었다. 일간지를 구독하면 어떤 기사는 그 부분만 오려져서 들어왔다. 그러면 그 기사 내용이 어떤 것이었을지 온갖 추측과 상상이 떠돌았다. 나중에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나마 참여정부 때부터 인터넷 서신이 도입되고 서신 검열도 원칙적으로는 폐지됐다. 신문 검열은 2012년부터 폐지됐다고 알고 있다.
인터넷 서신 덕분에 멀리서 힘들게 면회를 가야 하거나, 면회를 자주 가지 못하는 사람도 감옥 안에 있는 사람에게 더 빨리 더 자주 위로나 안부의 인사를 보낼 수 있게 됐다. 그것은 감옥 안에서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숨 쉴 수 있는 소중한 틈을 제공했다. 특히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더욱더 소중했다.
그런데 이처럼 수십 년 동안 서서히 나아져 온 개선과 변화를 윤석열 정부와 한동훈 장관의 법무부는 단칼에 없애 버렸다. ‘인터넷 서신으로 수감자에게 부적절한 정보가 전달되는 경우가 있었고 관리할 인력과 비용도 부족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감옥의 수감자라 해도 무엇이 알아야 하는 적절한 정보인지는 정부가 판단하거나 검열할 문제가 아니다.
결국 핵심은 감옥의 범죄자에게 쓸 돈은 없다는 말인데, 이렇게 교정과 교화에 쓸 돈을 줄이면 감옥에서 작은 범죄자가 더 큰 범죄자가 되는 현상만 강화될 것이다. 대신 인터넷 우체국 'e-그린우편'으로 대체한다지만, 이것은 배달에만 며칠이 걸리고 유료이기에 대체 방안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이런 후퇴는 면회 와줄 사람도 별로 없어서 줄곧 감방에 앉아서 바깥소식만 기다리는 가난한 수감자들에게는 너무 심각하겠지만, 고액을 써서 대형로펌과 계약한 수감자들에게는 큰 불편도 아닐 수 있다. 그런 사람은 대형로펌에 소속된 면회 전담 변호사가 매일 같이 면회와 접견을 와서 실시간 정보 전달과 소통을 해줄 수 있다.
게다가, 정치검찰이 감옥에서 고립된 수감자를 압박해 수사 협조를 받아내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인터넷 서신을 없애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수감자를 외부 정보나 소통과 단절시키고 어렵게 만들수록 그런 압박과 회유가 더 효과적일 것이니 말이다.
실제로 최근 검찰은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에서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가 자신들에게 협조할 것을 압박하면서 변호사와 접견하거나 소통하는 것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대로, 검찰이 감옥의 수감자들을 회유해서 사건을 조작하거나 은폐한다는 의혹을 다룬 ‘뉴스타파’의 <죄수와 검사> 시리즈는 감옥 안의 수감자들과 소통 덕분에 취재가 가능했다.
이 모든 점을 볼 때 법무부의 감옥 인터넷 서신 제도 폐지는 현재 이 나라에서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 6만~7만여 명을 대변해서 누군가는 항의할 문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디서도 그런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찾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툭하면 상대방을 ‘잡범’, ‘깡패’라고 공격하는 한동훈 장관의 법무부에서 수감자의 인권은 고려 대상도 아닌 것 같다.
감옥에 있는 죄지은 사람들의 문제까지 관심을 가지고 편을 들 이유는 없다는 생각도 이 사람들의 존재와 목소리를 지우고 입을 막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툭하면 압수수색, 소환조사, 구속수감이 펼쳐지는 신검부 정권의 검찰공화국 시대에 어느 순간 바로 내가 겪을 불편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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