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사건들 속에 커지는 절망적 우려

오답만 찾고 있는 주류언론과 윤석열 정부

한동훈과 조정훈의 섬뜩한 국회 법사위 문답

'사형제 유지' 미국이 증명한 엄벌주의 실패

시카고 진보 시장의 대안이 제시하는 희망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화면 캡쳐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화면 캡쳐

무차별 흉기 난동 살상범죄들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이러다가 한국 사회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되는 것이 아니냐는 절망적 우려들이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툭하면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지고, 일본에서는 ‘길거리의 악마’라고 불리는 무차별 살인 범죄가 계속돼 왔다.

특히 미국에서는 총기 난사 범죄가 끊이지 않을 뿐 아니라, 별다른 해결책도 찾지 못하고 있다. 개개인들이 오히려 더 총기로 무장해서 자신을 지키려고 하거나, 학교에 경찰을 배치하거나, 부모가 아이에게 방탄 기능의 책가방을 메고 등교하게 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결국,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사랑하는 이들을 안아주고 끝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한탄이 쏟아지고는 한다. 끔찍한 사건만이 아니라 ‘살인 예고글’까지 계속 올라오면서, 지금 우리나라도 비슷한 길로 가는 게 아닌가 정말 걱정이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주류언론들과 정부의 대응을 보면 희망을 찾기가 어렵고 일부러 잘못된 답을 찾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자극적인 이미지와 선정적인 표현, ‘배달업 종사자’라고 범인의 직업을 특정하는 방식, ‘범인들은 모두 치료 거부한 정신질환자’라고 낙인찍기 등이 고민이 부족하고 클릭 수에만 집착하는 언론들의 대표적인 잘못된 보도 태도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힘겹게 일하고 있는 배달 노동자들은 아무 죄가 없고, 통계에 따르면 2012~2016년 동안 ‘묻지마 범죄’ 사건 중에서 21.4%만 ‘정신질환’과 관련 있었다. 즉 80% 가까이는 정신질환과 무관하게 벌어졌다는 이야기다. 

 

흉기 난동과 살인 예고 온라인 게시물로 국민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에 경찰특공대원과 전술 장갑차가 배치돼 있다. 2023.8.6. 연합뉴스
흉기 난동과 살인 예고 온라인 게시물로 국민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에 경찰특공대원과 전술 장갑차가 배치돼 있다. 2023.8.6. 연합뉴스

도심 곳곳에 장갑차를 배치해 긴장을 조성하고, 일선 경찰의 총기와 테이저건 사용을 독려하고, 신상 공개를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하겠다며 엄벌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정부의 대표적인 잘못된 대응 방식이다. 그런 측면에서 얼마 전 국회 법사위에서 한동훈 법무장관과 조정훈 의원이 나눈 질의응답은 지켜보기가 참 불편했다.

이 자리에서 명문대와 해외 유학 등 자타가 인정하는 화려한 스펙을 뽐내온 2명의 초엘리트는 ‘사형제를 대신할 가석방없는 종신형’에 의기투합했다. 먼저 조정훈 의원이 ‘이런 범죄자들을 당장 사형에 처하라고 하고 싶지만, 그러면 외교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가석방없는 종신형을 제안했다. 한동훈 장관은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괴물들은 영원히 격리해야 한다”며 적극 호응했다.

족벌언론과 종편 등은 “훈훈 브라더스”라며 이것을 추켜세웠다. 하지만, 이걸 보면서 마음이 훈훈해지기보다는 서늘해진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의 대화에서 범죄와 형벌에 대한 철학, 사형제에 대한 인권적 고민은 실종돼 있고, 오로지 ‘괴물에 대한 증오와 격리 의지’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에게 사형 집행은 ‘너무 하고 싶은’데 “외교적 문제와 EU와 관계 단절” 때문에 못 하는 것일 뿐이다. 사형제는 막상 범죄 예방 효과는 없는 대표적인 야만적 형벌이고 ‘국가가 조직하는 살인’일 뿐이며, 역사적으로 권위주의적 정부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됐기에 인권단체들이 폐지를 주장해 왔다는 고민은 전혀 찾을 수가 없다.

또 윤석열 정부와 한동훈 법무장관이 적극 추진하고 있고 족벌언론들이 적극 지지하고 있는 것은 ‘흉악범이나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 공개 확대와 머그샷 도입’이다. 그런데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10여 년 동안 성범죄자 신상 공개 및 범죄 통계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신상정보 공개 제도가 성범죄자의 재범을 억제하는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신상 공개는 범죄 예방의 별다른 실익도 없으면서 단순히 대중의 호기심만 부추기고 선정적 언론의 클릭 수만 높여줄 수 있다. 반면 단지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양산할 수 있고, 무엇보다 흉악범죄의 사회구조적 원인이나 해법, 피해자 치유와 보호에 대한 정부의 무대책 등 더 중요한 다른 문제들에서 시선을 돌리게 된다.

끔찍한 흉악범죄 소식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힘든데, 결코 보고 싶지 않은 그 범인의 얼굴을 왜 봐야 하냐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나아가 그것이 인간 존엄에 부합하느냐는 문제가 있다. 2015년의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신상 공개에 반대한 소수의견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신상 정보공개 제도는 ‘현대판 주홍글씨’에 비견할 정도로 수치형과 흡사한 특성을 지닌다. 공개적으로 범죄인의 체면을 깎아내려 그에 대한 대중의 혐오를 유발하고 … 대중의 조롱거리나 경멸의 대상으로 만들어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의도가 짙다. 이는 단지 범죄인의 인격을 황폐화시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인간 존엄성에 대한 불감증을 만연시킬 수 있다.”

결국, 한동훈 장관과 조정훈 의원처럼 엄벌주의적 대책만 강조하는 이들은 사형제를 유지하고 군사화된 강력한 경찰력과 범죄자 처벌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에서 왜 총기 난사 같은 무차별 살상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지 답해야 한다. 그런 ‘해결책’은 흑인 남성 청년의 3분의 1이 감옥에 있도록 만들었고, 동시에 ‘가난한 흑인은 범죄자’라는 편견에 찬 경찰들이 툭하면 무고한 흑인들을 총으로 쏴 죽이는 결과도 만들었다. 

 

출처 - 유튜브 '젊은 시각'에서 화면 캡쳐
출처 - 유튜브 '젊은 시각'에서 화면 캡쳐

물론, 타인에게 심각한 고통과 피해를 준 범죄자를 많은 이들이 증오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자 이해할만한 감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범죄자를 괴물로 만들고, 최고형의 처벌을 하고, 인권을 빼앗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과연 우리 모두의 인권과 안전에 도움이 되는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떠한 나쁜 행위에 대한 분노는 범죄자를 회복시키려는 소망이나 가해자의 인권에 대한 존중과 양립할 수 있다 … 잘못된 행위를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토사물이나 배변 같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을 개선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혐오와 수치심>)라는 세계적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지적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흉악한 범죄자나 살인마라고 해도 누군가의 인권과 존엄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인권의 기본적 원칙에 어긋나고, 인권은 가해자의 존엄성을 떨어뜨려서 피해자의 존엄성이 높아지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괴물’로 낙인찍혀서 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된 범죄자가 과연 무거운 처벌만을 통해서 교정과 교화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생계나 취업뿐 아니라 삶의 희망도 찾을 수 없게 된 범죄자는 삐뚤어진 분노를 키우다가 자포자기식으로 타인을 해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또 다른 피해자들만 낳게 된다. 반면, 지난해 <시사직격>의 ‘조두순 출소가 던진 숙제’ 방송을 보면 캐나다나 한국에서 출소한 성범죄자들을 이웃들이 찾아가 관심을 두고 정기적으로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한 결과 재범률이 극적으로 낮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즌1보다는 아쉬웠지만 볼만했던 <D.P.> 시즌2에 보면 총기난사범 김누리 일병이 나온다. 그는 명백히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설명(서사)이 필요하다. 물론 그것은 피해자를 삭제하면서 가해자를 변명해주기 위한 설명(서사)은 아니어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설명(서사)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환경에 대한 설명(분석)이다.

우리는 왜 무차별 살상범 중에 압도적 다수가 남성인 것인지, 정신질환은 과연 개인적 특성과 기질의 결과인지, 낙인찍히고 처벌받은 범죄자들은 왜 교화가 아니라 재범을 하게 되는지 묻고 답을 찾아야 한다. 어떤 구조와 환경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낳았고,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낼 것인지를 알아야,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해법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가부장 사회가 강요하는 ‘남자다움’에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 정신장애를 왜 억압적 구조가 낳는 ‘사회심리적 장애’로 접근해야 하는지, ‘폭력적 게임’이 문제라는 조선일보나 검찰의 주장이 왜 엉터리인지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일본에서 지난 20년 동안의 ‘길거리 악마’ 사건을 분석한 결과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빈곤이 극단적인 선택의 중요한 동기가 됐다는 것도 주목할 수 있다.

 

지난달 미국 시카고 시장 선거 결선투표에서 극적으로 승리를 거뒀던 브랜든 존슨(민주당)이 15일(현지시간) 시카고 일리노이대학에서 제57대 시카고 시장으로 취임한 뒤 연설하고 있다. 이날 존슨은 "탄탄한 사회 기반과 다양한 경제체제를 갖추고 유구한 유산을 간직한 시카고를 다시 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2023.05.16. AP 연합뉴스
지난달 미국 시카고 시장 선거 결선투표에서 극적으로 승리를 거뒀던 브랜든 존슨(민주당)이 15일(현지시간) 시카고 일리노이대학에서 제57대 시카고 시장으로 취임한 뒤 연설하고 있다. 이날 존슨은 "탄탄한 사회 기반과 다양한 경제체제를 갖추고 유구한 유산을 간직한 시카고를 다시 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2023.05.16. AP 연합뉴스

올해 봄에 미국 시카고에서 시장으로 당선한 브랜든 존슨은 교사노동자 출신의 흑인이며 ‘민주적사회주의자들’(DSA)의 지지를 받은 민주당 좌파이다. 범죄 문제가 심각하기로 악명 높은 시카고에서 그는 여론의 압력에도 경찰력과 경찰 예산 확대를 약속하지 않고도 시장에 당선할 수 있었다. 그는 ‘시카고는 시민 1인당 경찰 비율이 미국에서 가장 높은데 왜 가장 안전한 도시가 아닌가’를 되물었다.

그는 고가 부동산과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로 재원을 마련해 청년 일자리 수를 두 배로 늘리고, 공공 정신건강센터를 열고, 공공은행을 만들고, 공교육을 강화하고, 노숙자를 위한 주택 제공을 하는 것이 더 필요한 범죄 예방 대책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미 시작된 시카고 권력자들의 방해와 흔들기 속에 브랜든 존슨의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그럼에도 여기서는 한동훈-조정훈 콤비에서는 찾을 수 없는 희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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