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희 표적 감사'에 40명 투입…"유병호 조사한다"
'윤 대통령,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수사에도 박차
'김학의 의혹' 사건 뭉갠 검사들 "최선 다해 수사"
'공무원 뇌물' 제보 받고 덮은 검사들도 수사 착수
공수처 내부에서도 "이제 제 역할 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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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출범 1000일을 맞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있기는 하냐’는 냉소적 비판을 받던 공수처가 최근 들어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 2021년 1월 21일 출범한 공수처는 한동안 별 실적을 내놓지 못해 공수처(空手處), 식물기관으로 불렸다. 심지어 ‘윤석열 정부와 검찰의 눈치를 본다’는 조롱까지 받았다.
그러던 공수처가 바뀌었다. 공수처가 현재 수사 중인 굵직한 사건들은 ‘감사원 직권남용 의혹’ ‘해병대 수사 외압 의혹’ ‘검찰의 김학의 별장 성접대 사건 무혐의 처분’ 등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윤석열 정부에 치명타를 안길 사건들이다.
‘전현희 표적 감사’ 수사에 40명 투입…“유병호 등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할 계획”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원의 ‘표적감사’ ‘직권남용’ 의혹 관련 수사다. 공수처는 여기에 검사와 수사관 40여 명을 투입했다. 공수처 수사 인력의 3분의 2가 넘는 숫자다. 수사선상에 올린 사람도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을 포함, 국·과장 등 모두 1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최근 참고인 신분으로 감사원 감사위원들에게 소환 통보를 했다. 최 원장과 유 총장이 감사위원들에게 정당한 절차를 거쳐 감사보고서를 시행·공개했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감사위원 소환은 의혹의 한복판에 있는 최 감사원장과 유 사무총장 등을 겨냥한 ‘전초 작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초 작업’이 끝나면 유 총장과 최 원장에 대한 수사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위법이 드러날 경우 최 원장과 유 총장은 수사를 피하기 어렵다.
최 원장과 유 총장의 혐의는 ▲허위 제보를 근거로 감사 착수 ▲최초 제보자와 증인을 서로 다른 사람처럼 꾸며 감사 내용 조작 ▲감사보고서 시행·공개 과정의 위법성 등 크게 세 가지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 ‘권익위 내부 직원의 제보를 받았다’며 전현희 당시 위원장의 근무 태만 의혹 등 13건의 의혹에 대해 특별 감사를 실시했다. 13건 가운데 10건은 소명 등이 명확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안이었다. 건진 것은 3건에 불과했는데 그마저 ‘기관 주의 통보’에 그쳤다.
감사원이 권익위를 특별감사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표적감사라며 직권남용 등 혐의로 최 원장과 유 총장을 공수처에 고발했다. 공수처는 고발 1년여 만인 지난달 6일 감사원을 압수수색하고 강제 수사에 착수했다. 늦었지만 공수처는 칼을 갈고 있는 모습이다. 공수처는 16일 한겨레신문에 “유병호 사무총장과 국장급 공무원 등을 이르면 이번주부터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수사까지 갈까
공수처는 지난 7월 폭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사망한 채수근 상병 수사 외압 사건도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수사 외압 의혹이 있는 민감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수처는 지난달 8일 ‘수사과정에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을 고발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국방부 관련자들을 공수처에 고발한 지 2주 만이었다.
공수처는 다시 채 2주도 안 된 지난달 20일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에 수사팀을 보내 수사단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공수처는 이때 경북경찰청 관계자 일부에 대해서도 면담을 진행했다.
공수처는 이어 지난달 26일 박 대령과 함께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해병대 박아무개 중앙수사대장(중령)을 참고인으로 소환 조사했다. 박 중령은 국방부 검찰단이 박 대령을 항명 혐의로 수사한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다. 공수처는 박 중령에게 채 상병 사건 이첩 경위, 국방부가 경북경찰청에서 사건을 회수한 경위, 박 대령이 보직해임된 직후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의 통화 내용 등을 물었다. 공수처는 박 중령 말고도 복수의 해병대 관계자들도 조사했다.
공수처는 참고인들에 대한 기초조사가 끝나는 대로 조만간 해병대 윗선과 국방부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령 측은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한 상태다.
공수처 특별수사본부는 해병대 수사 외압 사건 외에도 채 상병과 함께 실종자를 수색하다 생존한 A병장 측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사상 및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사건도 수사 중이다.
‘김학의 별장 성접대’ 뭉갠 검사들 “최선 다해 수사 진행 중”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을 무혐의 처분했던 검찰을 겨냥한 수사도 눈길을 끈다. 이 수사는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관리본부장이 지난 7월 22일 사건의 1차 수사팀이었던 전·현직 검사들을 특가법상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공수처는 고발 5일 뒤인 같은달 27일 차 전 본부장을 불러 조사했다. 공수처는 다시 지난달 5일 서울중앙지검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김 전 차관 사건 관련 수사기록을 확보했다. 공수처는 확보한 기록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는 중으로 “최선을 다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2021년 1월 19일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김학의 사건 관련 질의에 “사실관계가 다 맞다면, 또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는데 권력기관에 있는 사람은 처벌을 안 받는다, 그것은 법 앞의 평등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법의 지배 원리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헌법 질서상 허용되지 않는다. 공수처의 의의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은 2013년 7월 건설업자 윤중천 씨 별장에서 촬영된 성접대 동영상과 피해 여성들의 진술을 토대로 김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 씨를 특수강간 등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검찰은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다.
‘공무원 뇌물’ 제보 받고 덮은 검사들도 수사 착수
공수처는 최근 ‘공무원에게 7000만 원 상당의 뇌물을 줬다’는 제보를 받고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검사들에 대해 수사에 들어갔다. 제보자 김희석 씨는 지난 5일 ‘공무원에게 뇌물 수천만 원을 줬다고 제보했으나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며 2016년 당시 서울서부지검 형사부 소속 권 아무개·박 아무개 검사, 2018년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소속 김 아무개 검사를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지난 5일 공수처에 고발했다.
서울서부지검은 김 씨의 제보와 함께 계좌 거래내역을 확인하고도 정식 수사 없이 2018년 8월 사건을 내사종결했다. 이에 김 씨는 다시 2018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동일 사건을 알렸으나 수사는 진척이 없었다. 이 제보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공무원은 강현도 경기도 오산시 부시장으로 사건 당시 경기도청 투자진행과장이었다. 공수처가 이 사건을 떠맡아 수사3부(부장 송창진)에 배당했다.
김희석 씨는 지난 2016년 김형준 전 부장검사에게 수천만 원이 넘는 뇌물과 향응을 제공한 ‘고교 동창 스폰서’로 세간에 알려진 인물이다. 이 때문에 검찰이 김 씨의 ‘공무원 뇌물 사건’을 덮은 이유는 김형준 전 검사의 비위 사실 노출을 우려해서라는 의혹도 있다.
이진동 서울서부지검장은 이 사건과 관련, 17일 국정감사에서 “(당시로서는 공무원에 대해) 무혐의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며 “조사해보니 공여자의 일부 진술만 가지고는 뇌물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변명을 깰 수가 없어 혐의없음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공수처 내부에서도 “이제 제 역할 해야 하지 않나”
공수처의 ‘변신’을 두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김진욱 공수처장이 재임 중 ‘뭔가 보여주려는 것에 불과하다’는 의심이다. 그러나 이런 의심은 기우일 가능성이 높다. 공수처의 개점휴업 시기가 길어지니 내부에서도 “이제 제 역할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우려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김 처장 후임으로 ‘말 잘 듣는 사람’을 앉히면 진행 중인 수사들이 물거품이 되거나 왜곡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공수처의 인력과 자원 부족도 우려 사항이다. 공수처 소속 수사 검사는 처장을 빼고 19명에 불과하다. 정원(25명)도 못 채운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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