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다시 오르며 전기 생산비용 상승

올해도 적자 내면 내년 한전채 발행 힘들어

정전 사태 막으려면 전기요금 인상 불가피

총 전기사용의 55%인 산업용부터 올려야

한국전력이 내년에 셧다운 될 위기에 처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다시 상승하며 전력생산비가 올라 올해도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적자 폭이 커지면 법으로 정해진 한전채 발행 한도가 축소되며 설비투자와 운영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최악의 경우 한전의 경영난으로 정전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영업손실이 사상 최대 규모인 32.6조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모습. 연합뉴스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영업손실이 사상 최대 규모인 32.6조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모습. 연합뉴스

한전은 중장기 재무계획에서 올해 6조 원가량 적자를 볼 것으로 내다봤다. 올 4분기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kWh)당 10원 인상한다고 해도 4조~5조 원의 적자는 불가피하다. 적자를 본 만큼 내년에 한전채 발행 한도는 줄어든다. 약 5조 원 적자를 보면 한전채 발행 기준이 되는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는 현재 20조 9200억 원에서 15조 원가량으로 쪼그라든다. 이렇게 되면 내년 한전채 한도는 현행 한전법에 따라 90조 원이 된다.

지난달 15일 기준 한전채 발행 잔액은 이미 81조 4000억 원에 달했다. 내년 초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한전채는 10조 원이 채 안 된다. 적자 폭이 6조 원 이상으로 불어나면 상황은 더 안 좋아진다.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내용으로 한전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한전은 설비투자와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힘들어진다. 한전채 발행이 막힌 상황에서 한전의 셧다운을 막으려면 전기요금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

전력생산 비용에 반영되는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등 연료가격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특히 천연가스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한국가스공사가 공급하는 발전용 천연가스 열량 단가는 10월 기가칼로리(G㎈)당 9만 4590원으로 한달 새 5.9% 올랐다. 국제 연료가격은 5, 6월 안정세를 보였지만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지난 4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연료비 연동제를 2021년에 시행하면서 올해 기준 연료비를 킬로와트시당 45.3원 올리기로 했는데 현재 수준은 이것에 못 미친다"며 "올해 인상한 기준연료비 19.4원을 제외하고 25.9원가량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9월 20일 오전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전력 본사에서 김동철 신임 사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3.9.20. 연합뉴스
9월 20일 오전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전력 본사에서 김동철 신임 사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3.9.20. 연합뉴스

4분기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할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정부가 전기요금을 연료비 상승분을 반영해 대폭 인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하철과 버스 등 공공요금이 크게 오른 데다 물가가 다시 들썩이고 있어 전기요금 인상을 결정하기 쉽지 않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점도 전기요금을 올리는 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후폭풍을 생각하면 전기요금 인상을 마냥 뭉갤 수만은 없다. 한전이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송전과 배전 등 기본 설비투자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 필수 운영비도 줄일 수 없다. 한전이 자산 매각과 임금 삭감 등 자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역마진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다를 바 없다.

유일한 해법은 국제연료가 상승에 맞춰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이다. 가계와 소상공인·자영업자는 고물가와 고금리로 형편이 어려운 만큼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기업 전기요금을 더 인상해야 한다. 전체 전기사용에서 산업용이 55%를 차지하고 있어 전기요금 인상 효과도 크다. 

유럽과 일본 등 다른 나라는 연료비 급등을 반영해 전기요금을 큰 폭으로 올렸다. 이를 통해 전력회사와 기업이 고통을 분담했다. 이와 달리 한국은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며 기업이 부담해야 할 전기요금을 한전이 떠안아 막대한 적자를 볼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탓하고 있지만 한전이 대규모 적자를 본 원인은 비정상적으로 급등한 국제 연료가격과 정부가 억지로 찍어누른 전기요금에 있다.

연합인포맥스가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한국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대비 전기요금을 5% 미만으로 올린 것과 달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전기요금 인상 폭은 13.6%에 달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만 따지면 25.8%에 이른다. 연료가격이 오른 만큼 주기적으로 요금을 조정하면서 네덜란드는 전기료를 100% 가까이 올렸고 영국은 58.1%, 이탈리아는 32.4%나 올렸다.

 

  자료 : 한국전력. 산업용 전기요금 국가 비교
  자료 : 한국전력. 산업용 전기요금 국가 비교

그 결과 지난해 한국 전기요금은 OECD 평균보다 84%나 저렴했다. 특히 기업들이 부담하는 산업용 전기요금 수준은 OECD 38개 회원국 중 32번째였다. 미국은 한국의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이 사실상 정부 보조금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한국산 철강 제품에 상계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이 미국에 수출하는 후판(두께 6㎜ 이상 철판)에 1.1%의 상계관세를 부과한다는 최종 판정을 내렸다. 이 중 전기요금과 관련한 상계관세는 약 0.5%로 업계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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